▣ 64화
“오…….”
남자가 나를 안내한 훈련실은 확실히 컸다.
이 호텔의 훈련장은 시설이 좋은 편이고 내가 전에 훈련을 했던 방도 크기나 성능에서 부족함이 없었지만, 이 훈련실은 확실히 다른 데가 있었다.
남자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최근 업그레이드로 다시 꾸민 훈련실입니다. 가히 국내 최고급 훈련 시설이고 전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입니다. 이 훈련실을 아직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이 헌터님이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아…….”
이쯤 되면 조금은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위해 새로 업그레이드한 이 훈련실을 비워두고 있었다니.
‘대체 왜?’
약간은 부담스러운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미미가 말을 했다.
“이게 그거군요. S급 헌터들을 위해서 개발됐다는 훈련 시설. 원래 비슷한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개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누구도 감히 만들기를 꺼려 했다고 들었어요. 당연히 호텔에서도 함부로 이런 것을 두기가 어렵고요.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요.”
‘와…….’
그런데 이런 시설을 만들었단 말이야?
나는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이 호텔이 5성급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시설을 만들기로 결정을 하는 데는 어려운 판단이 필요할 테니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나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사업하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정치질을 하고 있는 누구누구 장관과는 다르다는 말이지.
뭔가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움직일 줄 안다.
이런 식으로 배려하면 나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김말종 같은 인간은 내 힘을 빼는 방식으로 우위에 서려 하다니.
뭐 그것은 각자의 방식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기는 했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어쨌거나 여러 방식으로 S급 헌터를 자기 유리할 대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람바스도 처음에는 그것들을 다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덜 귀찮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니까.
그 깨달음은 내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준다니 받아야지.’
뭐 그들은 나름대로 피드백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내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겠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미미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 시설은 처음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죠.”
“네, 맞습니다. 형수님은 정말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 S급 헌터 전용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만큼 처음 가동하는 데 들어가는 마나는 정순하고 성질을 높을수록 좋습니다. 그렇게 길을 들여야지만 오래도록 잘 시설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니까요.”
음, 그렇구나.
이런 시설을 호텔에 두기로 결정한 데는 내가 호텔에 투숙하고 이곳 훈련장을 이용하게 된 게 주된 이유로 작용한 것 같지만, 역시 호텔도 나름대로 나를 이용하려고 했다.
높은 등급의 훈련 시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리고 그자가 발휘하는 마나의 수준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얼핏 보면 이렇게 돈을 많이 잡아먹는 시설을 두는 호텔은 무조건 손해일 것 같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S급 헌터가 한국에 오게 되면 무조건 이 호텔에 묵을 것이다.
전 세계 몇 개 없는 훈련장이라고 하니까.
게다가 S급 헌터는 기본적으로 자기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
S급 몬스터도 날이면 날마다 출몰하는 것이 아니니까.
무조건 이 훈련장을 사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S급 헌터가 묵는 호텔이라면 그 명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단하네.’
역시 스위트룸 방값 같은 것은 내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고마워.”
내가 말하자 우락부락한 체형의 남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몸을 팍 숙였다.
“이 박거한! 헌터님께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아우 젠장. 충성 같은 거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하지만 한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이자의 이름이 박거한이었다는 것.
지금까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오래 담아 두지는 않을 거지만.
“편하신 만큼 이용하시면 됩니다. 헌터님께는 이 시설을 24시간 개방할 테니 언제든 사용하고 싶으실 때 사용하십시오.”
내가 여기서 훈련을 하는 게 이 시설에도 도움이 되는 모양이니까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응.”
나는 짧게 대답하고 미미와 함께 훈련실에 들어갔다.
그러자 곧장 그 안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다.
미미가 나 대신 인터폰으로 대화한 뒤에 물었다.
“주군 음료나 음식이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는데요? 전부 무료래요.”
“알아서 주문해 줘.”
그렇게 말하지 미미가 자기가 알아서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처음 듣는 음식 이름들이 나열되었다.
역시 사회생활 레벨은 그녀가 나보다 훨씬 높다.
그녀가 이렇게 적응이 빠른 것은 물론 그녀가 머리가 좋고 유능하기 때문이겠지만 거기 더불어 게으르기 짝이 없는 주군을 모셔야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또한 그녀에게는 기쁨인 것 같으니 뭐라고 할 것은 없지만.
공간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니, 그냥 사각 박스 형태의 방에 불과했다.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 공간이 전부 홀로그램 장치라는 것을.
중앙에 놓여 있는 소파며 테이블, 그리고 벽면의 질감까지 모든 게 고급스러웠다.
얼마나 많은 돈을 때려 박은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음~”
미미가 훈련 매뉴얼이 적힌 책을 들어 그 안에 내용을 살폈다.
“확실히 다르네요. 여기서 불러낼 수 있는 몬스터의 등급과 종류는. 최소 A급이에요.”
‘와…….’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시설에서 훈련할 때는 그것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았으니까.
“S급도 대부분 있어요. 물론 100퍼센트 데이터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지구에 출연했던 S급 몬스터는 대부분 다 목록에 들어가 있네요.”
“헤타리로스도 있어?”
궁금해서 물었더니 미미가 목록을 쭉 살핀 다음 대답했다.
“아…… 그건 아직이네요.”
“응.”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빨리 데이터가 업데이트되지는 않겠지.
미미의 말대로 S급 몬스터에 대한 데이터는 100퍼센트 정확하지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상당 부분 출현한 국가의 일급 정보이기도 하고, 애초에 지구의 과학 기술로는 그들의 정체를 완벽하게 밝혀내기가 어려우니까.
다만 훈련에 적합할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해두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곳은 S급 헌터에 맞춰서 개발된 시설인 만큼 만에 하나 낮은 등급의 헌터가 들어오면 감당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상대한 S급 몬스터는 지금까지 두 마리다.
그 두 마리 S급 몬스터를 B급 이하의 헌터가 마주친다고 하면 그 헌터는 오줌을 지려버릴 것이 분명했다.
“제가 알아서 고를까요, 주군?”
“응.”
어차피 미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 안에 S급 몬스터들을 상대한 기억은 숱하게 많이 있을 것이지만 그것들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으니까.
막상 싸우면 기억이 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놈들의 이름조차도 몰랐다.
물론 몬스터 도감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책을 펼치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당연히 귀찮기 때문에 책을 꺼내지 않을 것이다.
“이놈부터 하는 게 좋겠네요.”
미미가 한 놈을 골랐다.
“S급 몬스터 중에서는 가장 약한 축에 속하니까 별로 어렵지 않으실 거예요.”
“응.”
나는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무리 훈련일 뿐이고 놈들이 내게 직접적인 물리 공격을 가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다른 등급의 몬스터들과 훈련장에서 싸울 때와는 마음 자세 자체가 달라야 할 것이었다.
동시에 흥분감이 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겉옷을 벗고 장비를 드러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지배자의 손아귀’를 꺼내어 양손에 끼웠다.
우웅-
마나가 발현되자 그 구체적인 느낌이 전신을 감쌌다.
‘보구끼리는 서로 연동된다고 했었지?’
그 능력이 상호 연결되어서 더 강력한 능력을 발휘된다고 한다.
나는 미나가 이것을 만들어 왔을 때 날개를 펼쳐 본 것 말고는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주군, 시작할게요.”
미미도 겉옷을 벗었다.
그녀도 안에 장비를 받쳐입고 있었다.
그녀의 장비도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도 미나가 만들어 준 것 같다.
유명한 장비 제작자들이 그런 것처럼 특별한 라벨이나 브랜드가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미나가 만든 장비 특유의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역시 본능적인 영역이라서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람바스 자신도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말로 풀어낼 수 없는 것이다.
천재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물론 람바스는 머리도 좋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이론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늘 그렇듯 게으른 성격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본인 훈련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미는 검을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미러 월.
그것이 이 훈련 시설에서도 얼마큼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였다.
왜냐면 여기서 상대할 몬스터들은 S급이니까.
실제 물리력이 발동하지 않더라도 공간이 인식하는 수치와 데이터로서의 마나는 진짜다.
‘미미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겠네.’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미미의 실력이 결코 A급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S급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평범한 S급 이상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람바스가 빙의한 나처럼 처음부터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했다.
나를 보조하면서 그녀도 성장하는 것 같았다.
미미가 장치를 가동하자 주변이 어두워졌다.
어둡고 찜찜한 공기가 느껴지면서 오싹오싹 전신이 울렸다.
“오, 잘 만들었네.”
등급이 낮은 헌터였더라면 이 단계에서 이미 전의를 상실했겠지만 나는 오히려 높은 수준의 시설이 갖추어진 4DX 영화관에 온 것처럼 짜릿짜릿 자극을 느꼈다.
‘역시 모바일 게임이랑 비교할 게 아니야.’
물론 이런 기분이 되는 것은 내가 지금 ‘의지’ 스킬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발동 시간이 거의 끝나가네.’
나는 조철웅 특능의 스킬을 ‘노력’으로 바꾸었다.
“쿠우우우!”
동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쩌렁쩌렁, 온몸이 그 소리에 반응했다.
당연히 이 소리는 소리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직’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공포’ 효과도 있는 것 같고.
하지만 내게는 전혀 그 효과가 닿지 않았다.
흥분감만 일 뿐이었다.
정면으로부터 천천히 대가리를 들이미는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귀여운 용모였다.
하마처럼 둥글둥글하고 거대한 대가리를 가진 짐승형 몬스터였다.
눈은 단추 구멍처럼 동그랗고 작았지만 당연히 파프리카처럼 귀엽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서는 사람의 심장을 조이는 불길한 기운이 담겨있었다.
파라라라락-
몬스터 도감이 저절로 나타나서 펼쳐졌다.
‘케로노만이라고?’
나는 이름 이외에는 몬스터 정보를 보지 않고 책을 넣었다.
왜냐면 싸우기 전부터 약점을 알면 재미가 없으니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게임을 하기 전에 공략집부터 보지 않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