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63화 (63/160)

▣ 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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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지루하지 않으세요?”

“아니.”

소파에 누워서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미미의 물음에 즉답을 했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이 상태가 쭉 계속되었으면 했다.

호텔 서비스는 부족함 없이 훌륭했고, 약간 부족한 부분은 미미가 모조리 다 채워 주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 안에만 있으면 바깥에서 들리는 불쾌하고 귀찮은 것들이 전혀 귀에 꽂히지 않는다.

이곳은 예전에 내가 살았던 자취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천국이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미미가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는 항상 뭔가 꿍꿍이가 있었다.

소파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미미가 다시 한번 말했다.

“슬슬 다시 해보셔도 괜찮지 않으시겠어요?”

“뭘?”

“훈련 말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상당히 오랫동안 훈련을 안 하고 있었다.

내 존재가 알려져서 시끄럽게 된 이후로.

거기다 이 호텔에서도 내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방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었다.

‘확실히 좀 답답하기는 하지.’

나는 이 호텔 지하실에서 훈련을 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훈련은 내게 무척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반복할수록 내 안에 좋은 느낌이 커졌다는 것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노근의인’ 스킬을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그 스킬들에 레벨이 빠르게 올랐다는 것도 좋은 점이었다.

성장을 할수록 람바스의 능력이 더 많이 깨어나지만 동시에 내가 가진 조철웅의 본성도 더 빠른 속도로 깨어난다.

그야말로 내게 있어 훈련이란 들이는 노력에 비례해서, 아니 훨씬 그 이상으로 성장을 이끄는 행위였다.

게다가 뭐라고 해야 되나?

약간 재미있기도 했다.

소파에 드러누워서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직접 내 몸을 움직여서 게임을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헌터는 마나를 사용하고 몸을 움직여야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일단 훈련장으로 내려가서 노근의인 스킬을 쓸 때까지가 문제이지, 일단 훈련을 하고 나면 나름대로 개운한 기분이 들었었다.

내 심경의 변화를 어떻게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미미가 은근하게 권유해왔다.

“새 장비도 얻으셨잖아요? 제가 미러 월로 확실하게 백업을 할 테니까 우리 같이 내려가 보시는 게 어때요?”

“음…….”

나는 머리를 비웠다.

이럴 때 본능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

왜냐면 내 본능은 늘 한 가지 결론밖에 내리지 않으니까.

귀찮다. 하기 싫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스킬을 발휘하는 것이 낫다.

‘의지’.

부왁-

오랜만에 한 번 내려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번 가 볼까?”

“네, 주군! 사실 저도 훈련장을 가보고 싶었어요. 이거 꽤 쓸만할 것 같거든요.”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장오성이 가지고 왔던 검이었다.

박수철이 가지고 온 장비는 남성용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맞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장오성이 일본에서 공수했다는 검은 나름대로 그녀의 마음에 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검을 참 잘 다루었었지.

몬스터를 해제할 때의 솜씨를 보면 그쪽 방면으로 나갔으면 스페셜리스트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체 스페셜리스트라는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TV에서 가끔 참치를 해체할 때 그런 사람들을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그것만 하는 게 직업은 아니겠지.

어쨌든 미미도 훈련장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 의지가 꺾이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귀찮아도 장비는 입고 가야지.’

훈련장에 가서 장비를 착용하려고 하면 내 알몸을 드러내야 한다.

아무리 미미가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함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미나가 만들어온 장비는 부피가 크지 않았다.

마음대로 형태를 변형할 수 있으니까, 물리적인 부피 문제 따위는 아예 초월했다고 할까?

한마디로 내복처럼 받쳐 입고 위에 다른 옷을 입는다면 안에 장비를 입었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간만에 미미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얼굴에는 커다란 마스크를 착용했다.

호텔에서 나름 비밀로 해서, 내게 다른 접촉을 해오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이곳에 S급 헌터가 투숙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지가 중립일 때도 문제였지만 지금은 김말중 개자식 때문에 내 이미지가 바닥이기 때문에 더 얼굴을 숨겨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

내 귀찮음이 어떤 식으로 발동이 될지 모르니까.

기자회견장에서 끝내 버럭 소리를 질러 버리지 않았는가?

그때 표정을 드러낸 것이 지금까지도 엄청나게 나쁜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안 좋은 방향의 나비효과.

그런 실수를 다시 하면 안 된다.

다행인 것은 내가 머물고 있는 스위트룸이 최고층이기 때문에 복도가 조용하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엘리베이터로 가서 탑승할 수 있었다.

프라이빗한 엘리베이터.

역시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다.

그대로 곧장 지하까지 내려갔다.

훈련장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헌터들은 대체로 일반인과 분리된 고고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리 눈에 띄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편이었다.

게다가 이 호텔에 머물면서 훈련장까지 이용할 정도라면 등급이 웬만큼 높은 헌터라는 뜻인데,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럭셔리한 생활을 즐기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내 눈에는 귀찮은 생각이 들 만큼의 헌터들이 있지는 않았다.

나를 흘긋흘긋 보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크게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미를 보고 혹하는 남자들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옆에 내가 있기 때문에 따로 접근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훈련장이 붐비지 않는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아이고~~ 헌터님!!”

우락부락한 최형의 남자 직원.

이자는 내가 등급 판정을 받았을 때 처음 만났던 사람이다.

운 나쁘게도 훈련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를 알아본 뒤 쭉 귀찮게 하고 있었다.

물론 이자 덕분에 훈련장 이용요금을 디스카운트 받기는 했지만, 그 정도 돈은 할인받아도 안 받아도 그만이거든.

하지만 이자의 오늘 분위기는 평소와 확실히 달랐다.

나는 좋지 않은 예감이 폐부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헌터님!!”

그는 급기야 무릎까지 꿇으려고 했다.

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얼른 그의 팔을 잡았다.

가볍게 잡았는데도 그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으악!”

힘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근육에는 통증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헌터 능력의 차이가 너무도 커서 내 마나에 닿기만 해도 압박감을 느낄 만했다.

게다가 이자는 근육만 클 뿐이지, 실제로 힘은 엄청 약하거든.

“무릎 꿇지 마.”

나는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눈만 드러낸 채로 말을 했다.

내 썩은 눈은 사람을 굴복시키는 힘이 있었다.

“아, 네네. 죄송합니다.”

그는 급히 사과를 했지만 이어서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냈다.

“저는 헌터님이 대단한 분이신 줄 알았지만 설마하니 S급 헌터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그의 팔에 대고 있던 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으아악!”

그건 비명을 지르자 시선이 모였다.

“목소리 낮춰.”

“네네! 죄송합니다! 아무튼 제 말은 헌터님이 그렇게 대단하신 분인지 몰랐습니다. 미리 언질을 주셨다면 제가 그렇게 실례를 범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는 내게 실례를 범한 적이 없다.

오히려 호의를 베풀었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길드를 만들게 되면 자기를 거기에 넣어 달라고 했었지.

그리고 형수님이라고 부르면서 미미의 비위를 맞추기도 했었다.

훈련장 직원도 알고 있을 정도면 역시 이 호텔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퍼져 있는 것이 아닐까?

남자가 입에 손바닥을 갖다 붙이고 속삭였다.

“헌터님이 요즘 TV에 많이 나오시지 않습니까? 저는 TV에서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헌터님이 실은 친절하고 정의로운 분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 속이 터질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확성기를 들고 다니면서 헌터님이 사실 좋으신 분이라고 광고하고 다니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또 헌터님에게 누가 될 것 같고.”

하지 마. 미친놈아.

광고하지 마.

“그런 거 하지 마.”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네네! 물론이죠. 헌터님이 자신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정의감이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설령 이렇게 사방에서 부당한 오해를 하는 상황에서도요. 언젠가 세상이 꼭 헌터님을 이해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에 이자는 절대로 입이 무거운 타입이 아니었다.

확성기를 들고 광고하고 다니고 싶다고 한 것은 진심이겠지.

내가 억울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을 해명하고 싶다는 마음을 떠나 자기가 나와 아는 사이라는 것을 떠벌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겠지.

아마도 이 호텔에서 입막음을 했을 터. 만약 그것을 어긴다면 잘린다거나 하는 페널티가 있을 게 분명했다.

역시 오성급 호텔. 여기 머물길 잘했다.

“알았으니까 훈련장이나 안내해 줘.”

“네, 물론이죠! 안 그래도 상부에서 지시가 있었습니다. 헌터님이 이곳 훈련장을 자주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고 다시 찾아오시면 가장 크고 성능 좋은 방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게 하라는 지시가 있었거든요.”

“나는 광고 같은 거 안 할 건데?”

유명인이 특정 시설을 이용하고 그 시설 주인이 그것으로 광고 효과를 노리는 경우는 숱하게 많이 있다.

헌터도 그런 식의 광고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니까.

“아닙니다! 헌터님은 존재 자체로 저희 호텔에 엄청난 메리트가 되고 있으시니까요. 광고 따위로 헌터님을 귀찮게 해 드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이용하실 만큼 편하게 이용하고 가시면 저희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갑자기 남자가 친절한 호텔 직원이 되어 멘트를 늘어놓았다.

아마도 교육된 멘트가 아닐까 싶었다.

누가 교육을 시킨 것인지 몰라도 좋은 상급자였다.

이 남자는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하기야 그렇긴 하겠지.’

지금은 내가 이 호텔에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내가 여기 머물다가 나가면 조철웅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로 큰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지금도 알음알음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졌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내가 머물렀던 방에 프리미엄이 붙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은 항상 있기 때문에 절대 내가 오버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미 방값도 공짜가 되지 않았을까?

돈 문제에 대해서는 미미에게 전부 맡겨 두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가장 큰 훈련실로 안내하겠다는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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