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그런데 왜 오셨는지…….”
나는 ‘의지’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오르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그렇게 말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남의 호텔 방에 오면서 사전에 약속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아무나 막 끌고 오다니.
‘김말중, 이 자식은 진짜 나를 우습게 보고 있구나.’
물론 김말중이 보기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할 것이다.
그 정도 지위에 있다면 내 뒷조사 같은 것은 아주 쉽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미미가 찾아와서 각성을 깨닫기 전에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았다.
노력만 죽도록 하고 보상은 전혀 주어지지 않는 평범 이하의 삶.
그리고 각성하기 전 일 년은 아르바이트도 전혀 하지 않고 수입이 전무한 상태에서 오로지 자취방에만 처박혀 있었으니.
이런 나를 그저 운 좋은 애송이라고 생각할 것이 당연했다.
아마도 내가 정체를 숨겼던 것도 각성을 이용해서 한몫 크게 잡아보려는 수작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제가 헌터님을 보러 간다고 하니까 꼭 같이 오고 싶다고 해서 말이지요.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바람에…… 헌터님도 아시겠지만 이분들이 그렇게 한가한 분들은 아니거든요.”
“아~ 한가한 분들이 아니라서 이렇게 약속도 없이 남의 호텔 방에 함부로 막 들어오고 그러시는 거구나~”
내 가시 돋친 말에 두 클랜장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아닌 게 아니라 이들은 대한민국 헌터계의 정점에 있는 인물들이었다.
S급 헌터들이야 워낙 숫자가 적고 구름 위의 존재들이니까 논외로 하고, 그다음은 A급 헌터가 가장 권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내 호텔 방에 찾아온 이 두 명은 그중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인물들이었다.
사업으로 치면 클랜 사업은 절대 망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승승장구할 사업이었다.
그런 클랜의 장들이니 부러울 게 아무것도 없겠지.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늘 주목받아야 하는 S급 헌터보다 더 편하게 잘 먹고 잘사는 인물들이었다.
대기업 총수급인 두 인물인 만큼 당연히 한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약속도 없이 찾아오는 건 아니지. 개자식들아.’
나는 그들을 우러러보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헌터가 되기 전에도 전혀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C급 정도만 돼서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게다가 그들의 본질이 사도라는 것을 안 이상 이들의 표정이나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들이 사도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박혜나처럼 자기가 사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으니까.
자신들은 본능에 따라서 이익을 노리고 서로서로 붙어먹은 거겠지만, 내밀히 진행되고 있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빙의한 인간이 그걸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서 천천히 지구를 장악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무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굳어졌던 얼굴을 풀고 박수철이 먼저 그렇게 말했다.
그는 허공에 손을 뻗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인벤토리에서 내게 가지고 온 선물을 꺼낸 것이다.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럭셔리한 철제 상자를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이태리에서 공수한 명품 장비입니다.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실지 몰라서 그냥 성의껏 준비해 보았습니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단 열 개만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자세한 건 잘 모르겠고요. 하하하!”
아주 자세히 알아보고 가져온 것 같은 말투를 하면서 그가 말했다.
“……장비라고요?”
내가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
“유럽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장인이 만들었습니다. 성능은 말할 것도 없고 명품 브랜드와 합작으로 디자인이 잘 빠졌기로 유명하죠.”
“저도 준비한 게 있습니다!”
지지 않겠다는 듯이 장오성도 허공에 두 손을 뻗었다.
그가 꺼낸 것은 검집에 들어있는 검이었다.
“이번에 일본에 갔을 때 구한 물건입니다. 원래는 제가 쓸까 하고 주문했던 건데 워낙 수준 높은 물건이라서 그런지 저는 잘 못 쓰겠더라구요. 헌터님이시라면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겼다.
마치 서로 나에게 잘 보이려는 듯한 모습이다.
나는 그들의 이런 모습이 참 귀찮을 뿐이었다.
내게는 이미 ‘지배자의 손아귀’와 미나가 최근에 만들어 준 장비가 있었다.
두 클랜장이 가지고 온 것들은 대단히 비싼 것들이겠지만, 가치로 따지자면 내가 가진 보구와 감히 견줄 수가 없는 것이다.
“저는 이런 거…….”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대각선에 앉아있던 미미가 얼른 손을 뻗어 그것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감사합니다. 역시 대형 클랜을 이끄시는 분들답게 안목이 훌륭하시네요.”
‘하긴…….’
받아두어서 나쁠 것은 없지. 팔면 다 돈이니까.
귀찮은 돈 관리를 전부 떠넘긴 주제에 들어오는 선물을 마다하려고 했다니.
이럴 때는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지.
미미가 선물을 거두어들이자 두 클랜장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왜 저를 보려고 하셨는지…….”
내 말에 박수철이 자기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다 한배에 탄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오성택과 김철호가 그동안 저희들의 리더 역할을 했었지만 사실 저희는 그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장관님께 들으니 새로 각성한 헌터님은 인물이 번듯하고 인품도 훌륭하시다고 하셔서 이렇게 꼭 찾아뵙고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이게 뭔 개소리야?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내용은 마치 학부모가 선생님을 찾아와서 하는 말 같았다.
‘나한테 무슨 지도편달을 부탁한다는 거야?’
속내를 보면 빤했다.
자기들이 가진 돈벌이 계획이 있으니 거기 협조하라는 것이겠지.
괜히 헛짓하지 말고 자기들을 도와주라는 뜻일 것이다. 너에게도 콩고물을 나누어줄 테니 한통속이 되어달라는 거겠지.
악당들이 서로 짬짜미하는 것은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지만, 실제 내가 그중 한 명이 되고 보니 마음이 영 찝찝했다.
악당이 모의하는 것 같은 불쾌한 분위기를 깨고 내가 다시 한번 이 자리의 진짜 목적을 환기했다.
“재협상을 하러 오신 거라고 들었는데요?”
그것은 빨리 할 일이나 끝내고 돌아가라는 의미였다.
의지 스킬이 사용되고 있어서 그것이 효과적으로 전달이 되지 않았는지, 김말중은 눈치 없이 내게 말했다.
“복잡한 얘기는 천천히 하시고 모처럼 만났으니까 서로 친분을 다지는 것도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안 좋아요.”
나는 씩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러자 자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나도 느끼고 있다. 입은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는 것을.
내 얼굴이 가히 보는 사람의 심력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가급적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미지로 알 수 있었다.
내 표정으로 이런 웃음을 지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게 될지.
“아, 네…….”
역시 노련하다고 할까? 나를 마주하는 것이 두 번째여서 그런지-첫 번째로 만났던 것은 파프리카였지만- 김말중이 다소 적응된 태도로 내게 말했다.
“계약 조건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원하시는 것을 다 들어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조율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 재량에 달린 문제이니만큼 제가 목을 걸고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허허허허.”
“하하하하.”
개인적인 협상을 하는 일에 다른 이들이 끼어 있어도 되는 걸까?
박수철과 장오성은 그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내가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도 김말중이 뭘 의도하고 있는 것인지는 빤히 보였다.
이 자리에서 오갈 다른 이야기 혹은 이 자리에서 다지게 될 친분으로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더 많이 들어줄 수 있다는 거겠지.
말하자면 딜을 하자는 것이다.
뒷거래.
정말로 악당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는 자들이 이런 짓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심했다.
뭐 이런 잔챙이들이 돈벌이에 혼이 빠진 것 정도는 지구가 악마에게 집어 삼켜질 미래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아…….”
나는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의 분위기는 결코 반갑지 않았다.
각성하기 전이라도 나는 이런 분위기가 싫었을 것이다.
왜냐면 대놓고 악당인 세 명이 나에게 함께 악당이 되자고 꼬시고 있는 거니까.
아마 김말중은 내가 가난하게 살아온 시간이 길고 또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했었기 때문에 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마음 같아서는 테이블은 엎고 이 세 명에서 S급 헌터의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미미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 그것은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했다.
김말중을 이용하자고 했던 그녀의 말.
미미가 했던 말은 다 사실로 드러났다.
그녀는 김말중에게 사도들이 꼬여 있다고 했었고, 아니나 다를까, 오늘 김말중은 두 명의 사도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
이다음은 너에게 맡기겠다는 눈으로 미미를 바라보았다.
내 바통 터치를 받은 그녀가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 헌터님이 오전에 개인 일정으로 체력을 너무 쓰셨습니다. 피곤해서 쉬셔야 하니 나머지 이야기는 제가 대신 듣기로 하죠.”
“아…….”
“그건…….”
두 명의 클랜장은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김말중이 나서서 밝게 말했다.
“물론이지요! 피곤하신 것도 모르고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나머지 얘기는 저희끼리 나누고 마무리를 지을 테니 헌터님은 가셔서 휴식을 취하시지요.”
멘트만 들으면 꽤 기분을 잘 맞춰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글거리고 웃고 있는 얼굴이 전혀 정이 가지 않기는 하지만.
그런 인상을 제쳐 두고 보면 김말중을 이용하는 것은 꽤 쓸 만 한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 이익대로만 움직이는 인물은 목숨줄만 꽉 쥐고 있으면 땅바닥이라도 박박 기어서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말중이 그렇게 말을 하자 다른 클랜장들도 분위기를 따라갔다.
“어이쿠, 그러시지요. 죄송합니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그래도 이렇게 얼굴이라도 뵐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식사 대접이라도 한번 하고 싶은데 괜찮을런지요.”
“말씀 나누시고 가시지요.”
나는 더 할 얘기가 없고 슬슬 ‘의지’ 스킬의 발동 시간에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일으켰다.
‘게임이나 해야지.’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