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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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중계를 보는 것에서 흥미를 잃었다.
미미와 김말중이 그야말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그것은 뻔한 얘기이기도 하고 너무 사실 중심의 이야기라 굳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뉴스를 보면 언제든 들을 수 있는 가십거리들.
둘 다 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핵심을 빼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는 것이 친목을 다지기 위해 대화를 한다는 느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TV에서 내 흉을 보는 장면이 나왔을 때, 그리고 그런 공작을 하고 있는 게 김말중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미미는 엄청나게 화난 표정이었으니까.
나는 전에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사람 하나 잡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너무도 내 예상과 달랐다.
김말중이 수완 좋게 미미를 구워삶으려고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게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왜냐면 내 눈에도 그가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손바닥 싹싹 비벼 가면서 사모님 앞에서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행동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보는 데도 그것을 느낄 수 있는데 미미처럼 영리한 여자가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단지 자신의 비위를 맞춰준다고 해서 뭐가 진짜 중요한지 잊어버릴 미미가 아니었다.
물론 나와 자신의 사이를 가까운 남녀관계로 오해받았을 때 유독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공과 사는 냉철하게 구별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파프리카는 오로지 과자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맛있어 보이기는 하네.’
듣기로 김말중이 선물로 한 상자 준비했다고 하니까 미미와 파프리카가 집에 올 때 같은 것을 가지고 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때 맛보면 되겠지.’
나는 장관실의 생중계로부터 관심을 껐다.
슬슬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이것도 두루뭉술 화젯거리로 삼을 뿐이었다.
김말중은 당연히 이쪽에서 요구하는 바를 다 들어줄 생각이 없었고 다만 조금은 양보를 하는 식으로 생색을 내려는 것 같았다.
그것도 다 자기 출세를 위해 나를 이용하려는 거겠지.
미미는 웃는 얼굴로 그의 말을 들었지만, 조금도 양보하지는 않았다.
다만 호텔에서 공무원을 상대했을 때처럼 냉정하게 자르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머금고 생각해 보겠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나는 그 중계로부터 관심을 끄기로 한 것이다.
미미에게 뭔가 다른 속내가 있는 것 같아서.
나로서는 그것을 간파할 수가 없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얘기를 나눠 보면 알겠지.
나는 그때까지 게임이나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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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와 파프리카가 호텔로 돌아왔다.
“왈! 왈!”
강아지로 돌아간 파프리카가 입에 과자 상자를 물고 내 배 위로 올라왔다.
정말로 이 과자가 맛이 있었나 보다.
얼핏 듣기로 이 과자는 몬스터 부산물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는 것 같았다.
몬스터는 드물게 식재료가 되기도 했다.
헌터가 사용하는 각종 아이템 재료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고급 식재료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는 두 가지 케이스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일반인도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헌터만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식재료로 이용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몬스터 사체는 독성이 있는 만큼 헌터들만 먹을 수 있는 재료가 따로 있으니까.
이럴 경우 부가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단히 가격이 높아지곤 했다.
맛이 있고 건강에도 좋으면 당연히 가치가 높아지니까.
그런 종류의 과자라고 하니까 당연히 구하기 힘들고 가격도 비쌀 것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기로 했다.
바사삭!
포장을 벗겨서 과자를 입에 넣은 나는 “아!” 하고 감탄을 흘렸다.
‘맛있네!’
“왈! 왈!”
나와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한 파프리카가 신난 표정으로 짖었다.
나는 녀석의 입에도 과자를 넣어 주었다.
미미는 그동안 차를 준비했다.
그 차도 김말중의 장관실에서 받아온 것이었다.
확실히 실권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청와대에서 보내온 선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다.
사비로 준비했다고 하는데, 진짜일까?
아무리 그래도 공무원 월급이란 빤한 것인데.
사비라고 해도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번 돈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마음 편히 먹어줘야지.’
나는 찻잔을 들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음~ 딜리셔스.”
차를 즐기지는 않지만 이것은 정말 풍미가 좋았다. 과자와도 더할 나위 없이 궁합이 잘 맞다.
인상은 더러워도 김말중은 나름대로 미각적인 센스는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미미가 말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네요…….”
“무슨 예상?”
“저는 김말중이 당연히 사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나는 그녀가 장관실에서 보였던 극적인 태도 변화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김말중이 사도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래서 이 일을 더 가볍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고.
하지만 실제로 만나 보니 김말중이 사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면 잘된 일 아니야?”
내 말에 미미가 웃음을 지었다.
“잘된 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요.”
“왜 그렇지?”
“김말중은 사도가 아니지만 사도 못지않게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진짜 사도들이 내버려 두는 거죠. 말하자면 사도들이 그를 이용하고 있는 거예요.’
“아…….”
뭔가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약간은 귀찮았지만, 그래도 흥미가 당기기는 했다.
“김말중이 이용당하고 있다고?”
“네. 흔히 있는 일이죠.”
게다가 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김말중은 이렇게 바뀐 세상을 이용해서 출세의 기회를 잡았다고 좋아하고 있을 텐데 사실은 사도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니.
그렇다고 해도 전혀 동정심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바사삭, 바사삭 과자를 먹으면서 미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뭘?”
“김말중이요. 그가 그런 지위에 있는 것은 이용할 가치가 있어요.”
“굳이?”
“그는 권력욕 때문에 그 밖의 것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해요. 그에게는 지금 사도들이 많이 꼬여 있어요. 그를 이용하면 그 사도들도 같이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죠.”
“아…… 그런 거야? 그런데 왜 귀찮게 사도들을 이용해야 되는 거지? 그냥 싸워서 죽이는 게 낫지 않아?”
“주군의 목표는 물론 사도들을 일망타진하고 악마를 죽이는 것이지만, 그 일은 너무 눈에 띄지 않게 진행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일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하면서 힘을 키우는 것이 좋죠.”
“음…….”
나는 왜 미미가 장관실에서 김말중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부를 감내했는지 이해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네. 주군!”
나는 믿음직한 부하의 믿음직한 대답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이 나서셔야 할 때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응…….”
가급적 그럴 때는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바사삭, 바사삭.”
그나저나 이 과자 참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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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는 종종 TV를 틀어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미미가 찾아가서 만나기는 했지만 김말중은 자신의 공작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는 핑계를 댔었다.
자기는 이 일과 관련이 없고, 오히려 내게 해가 미치지 않게끔 노력하고 있다고.
‘설마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공작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그것이 실은 사도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고, 이제는 우리 쪽에도 이용당할 예정이라니.
물론 그래도 싼 놈이기는 하지만.
“흐응…….”
이제는 미미도 나를 흠집 잡는 방송을 보고 그리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번은 걸려온 전화를 받은 그녀가 내게 말했다.
“재협상을 하러 오겠다는데요? 이번에는 김말중에 직접 오겠대요.”
“아, 왜 굳이…….”
“주군도 이번에는 그자를 만나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제 생각에 혼자 오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혼자 오지 않는다고?
나는 오랜만에 노근의인 스킬을 쓸 때가 왔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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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의 예상은 어긋남이 전혀 없었다.
김말중은 정말로 혼자 나타나지 않았다.
호텔 방에 찾아온 것은 세 남자였다.
김말중은 그렇다 치고 나는 나머지 두 명의 남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세 남자는 추리닝 차림으로 소파 한가운데 앉아있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보니 내가 풍기는 아우라가 자기들이 예상했던 것을 뛰어넘었기 때문이겠지.
좋은 의미가 아니라 안 좋은 의미로 그렇다.
S급 헌터가 귀찮으니까 얼른 꺼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그들이 걸음을 흠칫 멈추고 놀랄 수밖에.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고 스킬을 사용했다.
‘의지.’
부왁-
스킬이 발동하면서 내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고 목소리만 뱉어 인사했다.
“아이고오~~ 헌터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김말중이 나를 보고 굉장히 친한 척을 했다.
당연히 나는 그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를 만나러 장관실에 갔던 것은 나로 변신한 파프리카였고, 그때 파프리카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과자만 먹었었다.
그가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따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그와 동행한 두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들이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태양 클랜 클랜장, 박수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오성 클랜 클랜장, 장오성입니다!”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생각했더니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클랜의 클랜장들이었다.
이 정도 인물들이라면 거의 대기업 총수라고 보아도 모방했다.
그런 인물들이 둘이나 와서 내게 고개를 숙였다.
헌터부 장관이 헤실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은 덤.
뭐랄까? 내 권력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저 귀찮기만 했다.
게다가 이들을 본 순간 미미가 말했던 것이 100퍼센트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내 앞에 두꺼운 책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라서 파라락 소리를 내며 넘어갔으니까.
‘사도 도감’
당연하다는 듯이 태양 클랜과 오성 클랜의 장들은 사도들이었다.
나는 입을 열지 않고 생각만으로 펼쳐지려는 도감을 치웠다.
왜냐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니까.
내 앞에 있는 두 남자의 정체가 그리 서열이 높지 않은 사도들이라는 것을.
오성택과 김철호를 상대하는 바 있기 때문에 내게는 이 정도의 인물들은 그저 피라미일 뿐이었다.
‘S급 헌터도 아닌데 뭘.’
내가 자세히 알아 다 알아야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의지 스킬 덕분에 얼굴에 귀찮다는 표정은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인간들이니까.
현실에서도 그렇고, 그들의 실제 정체를 생각해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