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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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것은 이희진이 내게 전화를 걸어 와서 물어본 말이었다.
내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그녀가 내게 전화를 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번호는 그 여자한테 들었어. 미미라고 했나? 근데 그 여자 진짜 한국 사람 맞아? 이름도 그렇고 외모도 좀 너무 이국적이잖아?”
“한국 사람이야.”
나는 짧게 대답했다. 미미가 이희진에게 내 번호를 알려주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이희진이 이런 걸로 나에게 거짓말할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해롭지 않은 사람이고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자주 안 할 거라고 생각해서 번호를 알려준 것일 수 있었다.
아니면 위급한 순간에 빠르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고.
“죽은 방금 전에 이희진 씨가 물어봐서 주군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어요. 연락하기 싫으시면 번호를 차단하세요.”
미미가 이제야 그렇게 말을 했다.
아마도 즉각 보고를 한 것일 텐데 이희진이 내 연락처를 알자마자 전화를 걸어 온 것 같았다.
이희진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참을 만했다.
하지만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전화를 받느라고 끊어진 게임 때문이었다.
모처럼 매크로가 아니라 장비 세팅을 하고 있었는데.
“괜찮냐고 물었잖아~”
“뭐가?”
내가 되묻자 이희진이 기가 찬 기색을 보였다.
“너 설마 모르는 거야? 대한민국이 온통 네 얘기로 떠들썩하잖아. 보는 내가 나 울화통 치밀 지경인데, 너 참고만 있을래?”
“아…….”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TV에서 이상한 얘기를 하는 놈들이 있었지.
그 뒤로 신경을 끄고 있었던 탓에 그녀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 몰랐다.
그나저나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로 내게 전화까지 걸다니.
이희진이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유대감은 내가 예상한 이상이었나보다.
귀찮게시리.
“신경이 쓰여서 그래. 내가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일 무마해 주겠다고 했잖아. 근데 이런 일이 터질 줄 어떻게 알았겠어? 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그녀의 말을 듣고 왜 굳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인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신경 쓰였나 보다. 기자회견장의 일은 알아서 잘 해달라고 했던 것에 자신이 알았다고 대답했었으니까.
그런데도 상황이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희진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언론에서 주구장창 떠들면서 증거로 내놓고 있는 것은 기자회견장에서 내 사진 한 장인 모양이니까.
그밖에 무슨 얘기를 더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해도 그 사진이 엄청난 증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희진을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괜찮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곧장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젠장. 미미가 말한 대로 그냥 이 번호 차단해 버릴까? 얘 생각보다 집요하네?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더니 이희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야! 그냥 끊으면 어떡해? 너는 예의도 없냐?”
“미안. 끊을게.”
“아, 잠깐잠깐!”
이희진은 한숨을 푹 쉬었더니 말을 했다.
“누가 배후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음…….”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희진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누가 감히 내 이미지를 이렇게 매도하고 있는 것인지.
가만히 있어도 조사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편한 일이었다.
귀찮은 거 싫어하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그 이상으로 의리가 있는 여자인 것 같았다.
나는 자꾸 전화를 걸어서 귀찮게 한 것에 대한 노여움이 조금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누군데?”
“김말중이야.”
“김말종?”
“아니~ 김말중. 뭐, 별명이 말종이기는 한데. 아무튼 그 있잖아. 헌터부 장관.”
아…… 본 것 같다.
전에 국회의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에 곧바로 장관으로 취임했었지.
인상이 엄청나게 안 좋아서 뇌리에 깊게 남았었다.
물론 내가 남 인상에 대해서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원해서 이런 표정을 갖게 된 게 아니지 않은가?
김말중은 빈말로라도 성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원래 가지고 태어난 얼굴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비열한 인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그 스스로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장관이라고?
‘그렇구나…….’
나는 퍼즐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미미가 말했었다. 대통령도 임기 5년짜리 공무원에 불과하다고.
그보다 더 철밥통이 있다고.
하기야 지금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헌터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놈이 나를 굳이 건드리고 있는 거니까 조금은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알려줘서 고마워.”
“괜찮겠어? 내가 도와줄까?”
도와주면 고맙지. 그렇게 생각했다가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미미는 흥얼거리면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텔이니까 룸서비스를 시키면 될 텐데 가끔은 직접 이렇게 요리를 하는 그녀였다.
“아니, 괜찮아.”
나는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이희진을 통하면 더 쉽게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희진의 도움을 받아야 될 일은 앞으로 더 많이 있을 거니까.
그녀는 아직 자신에게 빙의된 기억을 깨치지 못했고 그것을 알게 된다면 나와 많은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쉬게 놔두자.
“진짜?”
“응, 걱정하지 마.”
“알았어. 그래도 신경 쓰이니까 문제 생기면 나한테 얘기해라.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S급 헌터는 힘이 있어. 상대가 누구든지 네가 밉보일 필요는 없단 말이야. 오성택이랑 김철호가 사라지니까 놈이 S급 헌터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은데 조만간 본때를 보여줘야지.”
“그래.”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도 너무 갑작스럽게 끊은 것 같은데 끊겠다고 먼저 말을 했었어야 하나?
하지만 내가 태도를 바꾸는 것보다 이희진이 내게 익숙해지는 것이 더 나을 터였다.
‘그랬구나.’
나는 내 이미지를 깎아 먹고 있는 놈이 누구인지 알아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상대는 S급 몬스터가 아니다. S급 헌터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그놈도 헌터라고 했었나?
복잡한 생각을 접고 다시 게임을 하려고 했더니 옆에서 미미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짧은 통화를 끝내더니 내게 말했다.
“그때 그 공무원 다시 온다는데요?”
“아~ 그래?”
그때 그 공무원이란 미미에게 쩔쩔매다가 돌아간 그자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애초에 여기 왔던 공무원은 한 명밖에 없으니까.
협상을 하고 돌아간 뒤 아무 말이 없었는데 아마도 재협상을 위해서 오는 모양이었다.
협상이라는 것은 귀찮으니까 한 번에 끝내는 게 가장 좋지만 그래도 그때 엿들은 바로는 미미가 내놓은 조건들이 내게 무척 필요한 것들이었다.
국가가 내민 조건들은 다 받아주기에 너무나도 귀찮은 것들이었으니까. 수정은 불가피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미미가 말했다.
“오늘은 외출을 좀 해야겠네요.”
“외출은 왜?”
“주군은 집에 계셔도 돼요. 파프리카랑 저랑 둘이서 다녀오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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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중은 굳어버렸다.
처음에 여자가 보였을 때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뒤를 이어 나타난 사람은 몰라보려야 몰라볼 수가 없었으니까.
조철웅.
그의 얼굴은 유니크하다 못 해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 여유작작했던 그는 머릿속이 하얗게 엉켜 버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미미가 인사를 했다. 예의 바른 멘트였지만 그녀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김말중은 이정남을 엄청나게 노려보았지만 아무 질책도 직접 입에 담지 못했다.
왜냐면 이 사람들이 왜 여기 온 거냐는 말을 조철웅 앞에서 할 수는 없었으니까.
비록 좀 전까지 조철웅을 무시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보니 차이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어쨌든 헌터이기 때문에.
형태라서 장관 자리에 쉽게 올랐지만 또 그래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헌터가 자기보다 더 강한 헌터 앞에서 쫄게 되는 것은 본능이나 다름없으니까.
그것은 거의 짐승과 짐승이 맞부딪쳤을 때와 같았다.
문답 무용. 따로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장관실에 이렇게 쉽게 들어와도 되는 거야?’
되긴 되지. 그는 과거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오성택과 김철호는 자신들이 원할 때 눈치 따위 보지 않고 어디든 나타났다.
아무도 그들의 앞을 막고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말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들이 웃고 있어도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없었다.
‘성격도 개차반이었지.’
“저, 무슨 일로 오셨는지…….”
몸에 경직이 좀 풀린 김말중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미미가 다시 말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죄송합니다. 먼저 인사부터 드렸어야 했는데…….”
그제야 김말중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그는 책상을 돌아 나와서 미미와 조철웅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일단 앉으시죠.”
그러고 나서 여태 사색이 되어 서 있는 이정남에게 말했다.
“뭐 해? 빨리 차 가져오지 않고! 뭐 드시겠습니까? 커피든 차든 원하시는 걸로 준비하겠습니다.”
“냉수가 좋겠네요. 누구 때문에 속이 뜨거워졌거든요.”
미미가 말했다.
이러는 동안에도 조철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말중은 알고 있었다. 이 여자가 조철웅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본인 말로는 조철웅의 비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지만 남녀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니다.
숙식까지 같이하고 있는데 그냥 비서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자에게 대하는 태도는 조철웅에게 하듯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었다.
‘뭐라는 거야?’
김말중은 자존심이 상했다.
조철웅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이런 여자가 자기한테 함부로 말하는 것에 짜증이 치밀었으니까.
그는 어쨌거나 장관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S급 헌터야 논외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A급 헌터들은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다.
난다 긴다 하는 길드며 클랜의 장들이 자기와 자리 한번 마련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이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자는 뭐야?’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여자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그녀의 라이선스는 가짜였다. 신분이나 국적조차 알 수 없다.
세상이 바뀐 후로 이렇게 신분이 분명치 않은 헌터들이 종종 나오고는 했다.
범죄자들이 각성한 경우 자신의 신분을 세탁하고 지하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니까.
C급 이하의 헌터들은 비교적 쉽게 검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B급 이상의 헌터는 그렇게 하기가 힘든 데다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물들이기도 했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이 있었다.
물론 법을 어긴 경우 처벌을 받게 하긴 하지만 일반인보다 처벌을 받는 강도가 훨씬 약하고 빈도도 적었다.
그래도 여자는 너무 대놓고 가짜 라이선스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
더구나 A급 라이선스.
A급 신문을 위조하면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는 데도.
하지만 장관인 자신조차도 이 여자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바로…….
‘와, 실제로 보니까 장난 아니네.’
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조철웅의 인상은 어마어마하게 사람 기운을 빠지게 만들었다.
과연 S급 헌터라고 해야 할까?
전투 의지를 꺾어 놓는다는 점에서 웬만한 스킬보다도 훌륭한 위력을 발휘하는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제가 한번 찾아뵈려고 했는데…… 직접 여기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실 줄은…… 정말 반갑습니다.”
“못 들으셨어요? 누구 때문에 열불이 난다고요. 제가.”
미미가 다시 말했다.
‘아, 젠장…….’
김말중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금씩 자신이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기분이 치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