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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56화 (56/160)

▣ 56화

하지만 내가 그냥 입어보고 느끼는 것과 전문가, 그러니까 장비를 만든 개발자가 하는 얘기를 듣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도구를 착용한 상태로 거실로 나갔다.

“와! 주군 멋있으세요!”

미미가 쌍 엄지를 치켜들면서 칭찬했다.

“왈! 왈!”

파프리카도 방방 뛰면서 기뻐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감동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미나였다.

“아…… 주군, 정말 대단하세요. 이 보구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전 우주에 주군밖에 없으세요.”

나는 미나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 보구를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은 전 우주의 나밖에 없을 테니까.

개발자인 그녀가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만약 어설프게 다른 헌터가 이 장비를 착용하면 감당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몽땅 빼앗겨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이 보구는 자체로 어마어마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재료는 S급 몬스터의 극히 일부와 여러 몬스터의 신체 일부분들이 골고루 쓰였는데, 이 보구 자체만 놓고 보면 웬만한 S급 몬스터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대단한 물건이었다.

먼치킨 개발자가 만든 레시피로 제작된 것이니만큼 각각을 재료 가치를 떠나 그 시너지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나는 추리닝을 입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내가 아닌 다른 헌터가 이 보구를 입는다는 큰일이 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갔군요.”

미미의 음성에는 감동이 어려 있었다.

그녀의 우수에 젖은 눈빛이 아마도 과거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람바스와 함께 겪은 많은 일들. 전투들……

그때 람바스는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장비를 입고 있었을 테니까.

미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람바스의 보구를 입는다고 해도 딱히 새로운 장비를 얻었다는 이상의 감흥은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내 안에는 람바스의 기억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경험했던 일이 아닐뿐더러 람바스는 딱히 이 장비를 입고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남들은 우와! 대단하다! 하고 생각했던 그 수많은 전설적인 전투들이 람바스에게는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이건 왜 그러는 거지?”

나는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지배자의 손아귀’와 몸에 입은 장비를 보면서 물어보았다.

“그게 그거예요! 연동!”

미나는 흥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배자의 손아귀는 입고 계신 보구 덕분에 그 위력이 몇 배는 더 강해질 거예요. 그리고 입고 계신 장비는 지배자의 손아귀 덕분에 한 가지 기능이 더 추가되었고요.”

“그게 뭔데?”

“형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기능이에요!”

“음……”

나는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혹시 그렇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그 변신 기능은 앞으로 얻게 되는 스킬, 그리고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추가될 거예요.”

아, 이게 그거구나.

말로만 듣던 성장하는 갑옷.

내 레벨 업에 따라서, 그리고 얻는 능력에 따라서 기능이 계속 추가되는 모양이다.

이것에는 단순한 사실 이상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왜냐면 이것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새 장비를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내가 레벨 업하는 것에 따라서 장비가 성장하는 거니까, 더 대단한 보구를 얻기 위해서 또 S급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엄청 좋네.”

나는 간단하게 평가를 했다.

그래도 미나는 뭔가 좀 아쉬운 표정이었다.

“저 주군…… 한 번만 보여 주시면 안 돼요?”

“뭘?”

“장비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물론 실제로 그녀가 자기가 만든 장비에 이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일은 없을 터였다.

적어도 자기 일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자부심이 강한 그녀이니까.

다만 그녀는 순수하게 보고 싶은 것 같았다. 자기가 만든 장비를 내가 입고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대체로 그녀는 사냥하는 현장에는 동행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입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좀 보고 싶은 거겠지.

나는 뭘 보여줄까 생각했다가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비행 능력.

이 능력이라면 장비가 변화하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었다.

능력을 사용하자 내 두 발이 붕 떠올랐다.

동시에 등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났다.

그 느낌은 내가 느끼기에는 아주 사소했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아닐 듯했다.

펄럭-

육중한 감각과 함께 내 등 뒤에 커다란 날개가 펼쳐진 것이 느껴진다.

장비가 붉은색인 만큼 날개도 붉은색이었다.

다만 S급 먼치킨 헌터가 그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호텔 방은 너무 좁고 위험한 장소였다.

펄럭펄럭-

살짝 날개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엄청난 바람이 일었다.

호텔 방 안에 있는 집기들이 흔들거렸다.

“아아아…….”

감동한, 그리고 이왕이면 좀 더 오래 보고 싶어 하는 미나의 표정을 무시하고 나는 날개를 접었다.

탁.

두 발이 다시 바닥에 닿았다.

“어때? 이상 없지?”

“네! 최고예요! 앞으로 장비 업그레이드도 기대하세요, 주군!”

업그레이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냥 이것만 갖고 있으면 앞으로 다른 장비는 찾을 필요가 없는 거 아니었어?

“주군이 S급 몬스터를 사냥하면 그 재료로 보구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요. 그러면 주군은 더욱더 강력한 장비를 입고 싸우게 되시는 거랍니다!

아, 이런 젠장.

역시 쉬운 게 없구나.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당장 업그레이드 계획은 없는 모양이었다.

“고마워.”

나는 짧게 감사를 표했다.

갖고 싶었던 물건이든 아니든 그녀의 노고만큼은 치하해야 했다.

“아니에요! 제가 영광입니다, 주군!”

미나가 만면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83

김말중은 며칠 전 부하가 조철웅을 만나고 와서 보고한 내용, 계약을 조정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일부 세부적인 부분에서 얼마간 양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철웅이 요구한 것은 계약서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만약 이것이 공개됐다가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문책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계약 내용은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없으니까.

물론 S급 헌터 자체가 국가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일부 나라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일은 후진국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자기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자신의 포부를 생각해서도 절대로 이놈에게 굽혀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서 주요 언론사들에 연락을 돌렸다.

그들은 당연히 당황스러워했다.

“정말요? 정말 그렇게 하라고요?”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보통은 자기에게 말대꾸도 하지 못했던 기자들도 S급 헌터를 공작한다는 말에 놀라서 되물어왔다.

하지만 김말중 양보 없이 밀어붙였다.

“이 친구야. 지금 내가 언제 안 되는 일 하는 것 봤나?”

“이번 일 잘 도와주면 안 잊고 기억할 거니까 잘 좀 부탁하네.”

그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도 마냥 공무원만 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그는 전직 A급 헌터였다.

그는 헌터 세계를 직접 겪고, 그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한순간에 인생을 역전한, 말하자면 로또에 당첨된 졸부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신체적으로 큰 힘을 얻었지만 안은 그렇지 않다.

더구나 조철웅의 나이와 그가 살아온 경력을 생각하면 사회 밑바닥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런 인간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이미 한계이리라.

여기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괜히 S급 헌터라고 대우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멍청한 놈이……’

그냥 생긴 대로 살면 됐을 것을 뭐 하러 과한 욕심을 부리고 난리야?

이래서 각성이라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실제 역량까지 고려해서 능력이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S급 헌터는 나 같은 사람이 돼야지.’

그는 장관실 안에 있는 큰 거울 앞에 섰다.

이대팔로 가른 가르마, 그리고 번들번들 윤이 나는 낯짝이 마음에 들었다.

‘똑같이 A급으로 각성했더라도 장관까지 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지.’

일반적으로 각성자들은 몬스터를 사냥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지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한다.

이 능력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너희 버러지들의 한계지.’

“크크크.”

그는 거울 앞에서 웃음을 흘렸다.

‘오히려 잘됐어.’

그는 이 타이밍에 조철웅이 나타난 게 자신에게 무척 유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전에 상대해야 했던 오성택, 김철호는 정말 껄끄러운 놈들이었으니까.

자기 못지않게 욕심이 많은 놈들이었다.

놈들이 그대로 있었다면 자기의 계획이 많이 미뤄졌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 많은 것들을 양보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과 자신의 뒷배가 어느 정도 맞았기 때문에 자신이 장관까지 올 수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놈들은 항상 자기 머리 꼭대기에서 군림하려고 했을 것이었다.

‘그놈들보다야 이 피라미를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하지.’

어쩌면 운명 같았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 두 명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갑자기 사라지다니.

이런 건 영화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온 우주가 나를 돕는구나.’

“크크크크.”

84

김말중이 행동에 들어간 뒤에 각 언론사들은 장관이 지령을 내린 대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철웅. 그는 영웅인가, 오만한 사기꾼인가!

-각성수 숍에서 벌어진 일, 과연 그 진상은?

-조철웅이 정체를 끝까지 숨겨야 했던 이유

그런 타이틀들이 기자회견장에서 미처 감추지 못하고 드러나 버린 조철웅의 썩은 표정과 함께 인터넷 기사를 장식했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왜냐면 조철웅의 얼굴은 어마어마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얼굴을 보고 선한 영웅이 출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4의 헌터가 온통 뉴스를 장악했을 때처럼, 또 한 번 인터넷, 그리고 TV 공영방송까지 조철웅에 대한 뉴스가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와, 저 얼굴 보소.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헌터가 아니라 악마 같은데? 사람을 개미처럼 눌러 죽일 얼굴이야.

-그게 아니라 엄청 귀찮다는 표정인데? 수틀리면 서울도 10초 만에 박살 낼 것 같은 얼굴이야.

-기자회견장에서 귀찮게 하지 말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며?

국민들 사이에 제4의 헌터의 존재가 확인됐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존재가 드러나기 전보다 훨씬 큰 불안감이 확산되었다.

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뒤에서 김말중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뱃속으로부터 끌어올려진 진정한 의미의 썩은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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