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55화 (55/160)

▣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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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계십시오…….”

결국 공무원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눅만 잔뜩 들어서 돌아갔다.

미미가 문제 삼은 조항은 처음 두 가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구체적인 조항에 들어가 S급 몬스터 사체 매매 때뿐 아니라 일반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도 일체 세금을 물지 말 것과 앞으로 길드 등 단체를 만들었을 때도 세금 전액 면제, 그리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요구했다.

공무원이 들고 온 것에는 얼핏 내가 듣기에도 부당한 조항이 있었지만 갈수록 좀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왜냐면 내 입장에서도 미미의 요구가 좀 너무 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중에 그렇게 묻자 그녀가 말했다.

“어머, 주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앞으로 주군이 구할 생명이 얼만데요. 아예 지구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요.”

그녀의 말은 당연히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해서 농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직접 겪었던 것이다. 살고 있던 행성 자체가 사라지는 경험을.

람바스도 같은 경험을 했으므로 그의 기억이 빙의한 내게도 감정이 전해졌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암, 전혀 무리한 요구가 아니지.”

열 배는 더 받아냈어야 했다.

미미가 엄청 양보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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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장난해?”

대한민국 헌터관리부 장관 김말중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 앞에서 방금 조철웅-정확히 말하면 그의 비서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를-을 만나고 돌아와서 보고한 이정남이 고개를 조아렸다.

“면목이 없습니다.”

왜 자신이 면목이 없어야 하는 건지 이유를 모르면서도 이정남은 상급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김말중은 무서운 상관이었다. 실제로 그는 장관직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A급 헌터이기도 했다.

몬스터를 직접 사냥해 본 사람이 관련 법률을 입안해야 한다는 것을 캐치프레이즈로 총선에 도전했지만, 워낙 인상이 더러웠던 탓에 떨어지고, 어쨌든 이름을 알린 덕분으로 장관까지 하게 된 자였다.

온갖 추문이 따라다니는 사람이었지만 헌터계에 오래 몸담은 만큼 인맥이 많고 수완이 좋아서 그걸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헌터 산업과 관련한 비리는 어느 국가에서나 공공연히 벌어지는 일이라서 웬만큼은 눈감아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도 했다.

이미 정계 자체가 관련 비리로 오염된 지 오래되었기도 하고.

헌터 산업으로부터 흘러드는 뒷돈이 아니면 어느 국가든 굴러가지 않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장관이 인상을 쓰면서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 앞에서 주눅이 안 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이정남은 오늘 자신의 일진이 왜 이리 사나운지 한탄했다.

실은 조철웅을 만나러 가면서, 그와 인간관계를 잘 맺어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내 인생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지.’

조철웅의 방에서 그의 비서라는 여자에게 실컷 깨지고, 돌아와서는 장관에게 깨지고 있다.

더럽고 목숨이 아까워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는 용기를 냈다.

“저는 헌터님의 대리인으로부터 얘길 듣고 그대로 전달 드리는 것뿐입니다…… 앞으로 협상에 대한 조율은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야, X발놈아!”

쾅!

인간말종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말중이 책상을 내리쳤다.

고급스러운 소재가 사용된 튼튼한 책상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죄, 죄송합니다!”

이정남은 자기가 ‘X발놈’이라는 욕을 들었다는 사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실제 공무원 사회에서 상급자에게 욕을 듣는 경우라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김말중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자였다.

조인트가 까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에게 조인트를 까였다가는 다리가 완전히 부서지고 말 것이었지만.

그저 고개를 팍 숙이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수밖에.

“협상도 협상 나름이지! 이건 전부 다 뜯어고치겠다는 거잖아! 세상에 이런 게 어디 있어? 헌터한테 관대하기로 유명한 미국도 이렇게 안 해! 어후, 씨!! 이 X신을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게 직접 가지 그랬냐.

이정남은 당연히 자기 생각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상대는 전혀 협상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냥 돌아가서 상급자한테 보고하고 허락만 맡으라고…….”

“어후!”

김말중이 얼굴을 문지르려고 손을 들었을 때 이정남은 무언가가 날아오지 않을까 몸을 팍 숙였다.

실제로 조금 오줌까지 지리고 말았다.

“그걸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와? 이 무능한 새끼가 진짜!”

거기까지 말한 김말중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급자를 갈구는 것을 멈추었다.

“알았으니까 나가 봐! 앞으로 내 눈에 안 보이게 조심하고!”

“네…….”

이정남은 그나마 자신이 함부로 잘리지 않는 공무원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장관실을 빠져나왔다.

홀로 남은 김말중은 이빨을 북북 갈았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그는 조철웅이 불과 얼마 전까지 아르바이트나 전전하던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각성했을 때의 등급은 C에 불과했다.

물론 들리는 말로 그날의 일은 수상한 부분이 많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서류에 적힌 바로는 그러했다.

‘흉악한 흉계를 꾸민 게 이것 때문이었나?’

등급 검사를 할 때 능력을 속인 데다가 그동안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엎드려 있었던 게 이 협상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확실히, S급 헌터가 되었으니 한몫 잡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이미 S급으로 각성한 것 자체가 로또 몇 번을 연속해서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었다.

오히려 꽤 영리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놈도 이게 말이 안 되는 걸 알고 있을 거고.’

공무원 한 명만 혼자 오라고 한 것도 쉽게 윽박질러서 보내려고 한 밑 작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정남이 말한 대로 협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김말중은 조철웅이 하자는 대로 응할 생각이 당연히 없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욕심이 과하면 되레 얻어맞는 법이지.

‘네가 힘겨루기를 하자면 응해주마.’

상대는 로또에 맞아 가슴이 부푼 순진한 놈에 불과했다.

세상 무섭다는 걸 알려줘야지.

비열한 웃음을 입가에 건 김말중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81

정부에서 나온 공무원을 케이오시켜서 돌려보낸 뒤로 나는 편안한 기분으로 일상을 보냈다.

물론 이 협상이 끝이 아니고 뭔가 귀찮은 일이 더 생길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미미가 먼치킨에 버금가는 같은 협상 능력을 선보였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든든하다, 정말로.

하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그러니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유튜브나 볼까 하고 소파에 드러누웠을 때 손님 한 명이 더 찾아왔다.

이미 조만간 그녀가 올 것이라는 알고 있었지만, 하루에 두 명이나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저절로 썩은 표정이 지어진다.

“주군! 완성되었습니다!!”

미미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안으로 뛰어들어온 그녀의 표정은 엄청나게 밝았다.

내 썩은 표정이 그녀의 압도적인 긍정성에 전염되어 일시적으로 펴졌을 정도로.

그녀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신났는지는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몬스터 사체를 연구해서 그것과 관련된 장비를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미나는 천재인 동시에 엄청나게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먼치킨급 능력은 타고난 재능이기도 하지만 이런 성품까지 더해져서 완성된 것이다.

미미가 공무원에게 말한 대로 대한민국 연구자들 전부를 모아서 대항한다 해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는 못할 것이었다.

애초에 인간 세상에 몬스터가 출연한 역사가 별로 길지 않은 만큼 거기에 대한 연구성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나에게 비빌 수 있는 과학자가 있다니, 어불성설이다.

“아…… 그래?”

나는 그녀의 기분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성의 있게 대답했다.

크게 기대되지는 않는다.

헌터 중에는 이른바 장비 덕후들이 많이 있고, 설령 덕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새 장비를 갖는다는 것은 헌터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것처럼 엄청 기분 좋은 일인 모양이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왜냐면 좋은 장비가 생겼다는 것은 그 장비로 사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내게는 자주 되새기고 싶지 않은 엄청나게 무게감 있는 의무가 있었다.

행성을 하나씩 먹어치우고 다닌다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악마를 물리쳐야 한다는 의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전 우주에 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내게 람바스의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때가 되면 지구와 함께 사라졌을 테니 살아남을 기회가 주어진 것 자체는 좋은 일이었지만, 람바스의 게으름마저 패키지로 이어받은 내가 그 악마와 싸워야 한다는 것은 절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내 기분과 무관하게 미나는 밝디밝은 표정으로 자기 인벤토리에서 따끈따끈한 새 보구를 꺼냈다.

“음…….”

나는 순간적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멋있긴 하네…….’

“멋있죠?”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미나가 말했다.

엄청 뿌듯해하면서 가슴을 내밀고 있지만 그녀의 가슴은 사이즈에 있어서 미미의 가슴과 견줄 것이 못 되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뇌가 발달한 타입이지, 몸매가 그만큼 발달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녀가 새로 완성해서 가지고 온 보구는 일단 외형이 무척 멋있었다.

S급 몬스터 헤타리로스의 일부가 쓰인 만큼 장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도 대단했다.

혀가 주재료인 만큼 보구의 전체 빛깔은 붉은색이었다.

반쯤 투명한 붉은색.

겉으로 보았을 때 경도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나게 단단하겠지.

S급 장비, 더구나 람바스가 사용했던 보구인 만큼 단단함 자체를 따질 레벨이 아닐 것이다.

미나가 그리 자랑스러워할 것 없는 자신의 가슴을 계속 들이밀면서 말했다.

“이 장비는 주군께서 가진 다른 보구들과 연동이 돼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직접 입어보시면 제 말뜻을 알 수 있으실 거예요.”

“하아아…….”

내가 귀찮다는 뜻에서 노골적인 한숨을 쉬었지만, 미나는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어서요, 주군! 빨리 입어보고 싶지 않으세요?”

얘는 똑같이 람바스 옆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미미만큼 나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구나.

나는 별수 없다는 생각에 보구를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들 앞에서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을 만큼 예의가 없지 않다, 나는.

“지배자의 손아귀도 한 번 같이 끼워보세요!”

미나의 말대로 내 침실에서 새 장비와 함께 ‘지배자의 손아귀’까지 끼운 나는 그녀의 말뜻을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손안의 ‘지배자의 손아귀’가 번쩍번쩍 빛을 발했다.

몸에 입은 보구도 마찬가지.

‘연동된다고?’

확실히 대단하구나.

보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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