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흐음, 그렇군요…….”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미미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면 내 방으로 돌아왔다.
넓은 스위트룸은 방과 거실 사이의 방음처리가 확실하게 되어있었지만, 내 청력은 일반인과 다르므로-심지어 다른 헌터들과도 다르니까- 들으려고 하면 목소리쯤은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숨소리, 작은 모션이 일어날 때 발생하는 소리 하나하나를 통해 그림을 보듯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다.
실로 판타지나 무협 소설에나 나올 법한 궁극의 경지이지만, 너무 당연하고 마나도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제가 자리에 있으니까 아무래도 불편하신 모양이네요.”
얼핏 상대를 배려하는 듯한 멘트를 남긴 채로 나는 자리를 피했다.
미미가 공무원을 상대하면 되니까 실제로 나는 자리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공무원은 말로는 “그래도 당사자가 계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지만, 안도한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나는 그를 만나서 어떤 물리적인 위협도 한 적이 없다.
상대가 오인할 수 있는 무기는 오로지 내 썩은 표정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이 표정의 위력은 대단하구나.
기자회견장에서도 가면을 벗고 원래 얼굴을 드러냈을 때 기자들이 몇 센티미터는 뒤로 물러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귀찮음에 찌든 썩은 표정이라는 것도 S급 헌터쯤 되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왈! 왈!”
아무리 한 침대에서 방방 뛰고 있어도 귀찮지 않은 귀여운 파프리카와 놀면서 나는 미약한 신경을 거실에 두고 있었다.
완전히 신경을 끊지 않은 것은 나도 조금은 계약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S급 헌터를 따로 관리하려는 것은 의무를 지워서 그 행동을 통제하려는 목적이었다.
당연히 이것은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약간이라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뜻.
감히 우주 최고의 먼치킨에게 족쇄를 채우려고 하다니. 간도 크구나, 대한민국 정부.
미미가 미간을 찡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앞에서 공무원은 안절부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도 있으신지…….”
“안 들죠. 마음에. 하나부터 열까지.”
“허억!”
공무원은 나보다 미미를 대하는 것이 훨씬 편안한 기색이었다.
미미도 라이선스 상으로 A급의 헌터이지만-물론 그것은 가짜 라이선스였으므로 진짜 능력도 그런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상대성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S급 헌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A급인 그녀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편할 터였다.
게다가 귀찮게 하면 죽이겠다는 살벌한 표정을 하고 있는 S급 헌터이니까.
하지만 그런 그의 편안함은 지금 사라졌다.
그것으로 미미가 얼마나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가 그려졌다.
공무원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협상에 있어서는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는 완벽한 성격이라는 것을.
차라리 인내심이 없는 나를 상대하는 것이 정부 입장에서는 훨씬 좋은 협상 결과를 얻는 일이 될 터였다.
“저……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일단 이 ‘S급 몬스터 사체의 정부 우선 양도권’ 말인데요.”
“아, 네! 해당 조항은 S급 몬스터의 사체가 워낙 가치가 있다 보니 생긴 것입니다. 당연히 금전적 가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S급 몬스터의 사체는 연구 가치가 무궁무진합니다. 몬스터의 출현이 랜덤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어떤 몬스터가 나타나서 어떤 연구 결과를 도출할지가 국가 발전에 직결되는 상황까지 되었죠. 이 조항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 해당하는 금전적인 보상은 해드리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입죠, 네.”
미미의 반응에 폭포처럼 설명을 쏟아내는 공무원.
나도 미미의 말을 듣고 그게 뭔가 했지만, 공무원을 말을 듣자니 그럴듯했다.
과연 현시대의 과학, 경제 발전은 몬스터 사체 연구가 견인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물며 S급 몬스터의 사체니까.
공무원의 말대로 어떤 S급 몬스터가 어느 지역에 출몰할지는 랜덤이니까 모든 국가는 그것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생긴 조항이 ‘S급 몬스터 사체의 정부 우선 양도권’.
금전적 보상을 해준다니까 딱히 트집 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미미가 말했다.
“이거 빼세요.”
“네?”
미미는 협상을 하는 자의 태도가 아니라 명령하는 자의 태도였다.
내게는 아름답고 친절하기만 한 그녀이지만 지금은 절대적 갑의 입장에 있는 협상가로서의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이것은 핵심 조항이라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부분이 아닌데요…….”
공무원도 그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로 말을 덧붙였다.
“해외로 유출될 것을 걱정하는 거라면 안 그러셔도 돼요. 저희가 요구하고 싶은 것은 몬스터 사체의 특정 부위를 정부에 팔지 안 팔지를 저희가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네? 그러니까 왜 그러시는 건지…… 저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더 높은 금액으로 해외에 팔 생각인 것이 아니라면 대체 왜 그 조항을 문제 삼는 것일까?
나도 궁금했다.
“저희 팀에는 엄청나게 유능한 개발자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연구원들을 다 모아서 겨루어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유능한 사람이죠. 일단 그녀에게 사체의 가치를 감정하게 한 다음 필요한 부위는 팔지 않고 저희가 사용하고 싶습니다.”
“아…….”
공무원은 넋이 나간 것 같은 음성을 뱉었다.
반면 나는 시원하게 이해가 되었다.
왜 미미가 ‘S급 몬스터 사체의 정부 우선 양도권’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내 보구의 핵심 재료는 대부분 S급 몬스터로부터 나온다.
사체를 통째로 정부에 넘긴다면 필요한 재료를 정부로부터 재구매해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무리 S급 헌터의 구매 의사라고 하더라도 이미 소유권을 국가가 가진 만큼 그것은 복잡한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있었다.
‘보구 재료는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지.’
미미의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아무리 연구의 연구를 해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감히 미래의 지구적 재앙이 될 악마와 싸우는 데 사용될 보구 재료라는 발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미미가 말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구자들 전부보다 더 유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미나였다.
그리고 나는 미미의 의견에 동의했다.
누가 와도 미나에게 비비지는 못하지.
성격은 나쁘지만 개발자로서의 유능함은 우주 최고이다.
하지만 그 말을 공무원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한민국 연구자들 전체보다 훌륭하다고 하는 개발자는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외람되지만 대한민국의 몬스터 사체 연구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분의 존함이라도 좀 알려주신다면…….”
“그게 중요한가요? 빼주실 거예요, 말 거예요?”
미미의 말투는 단호했다.
이쯤 되자 공무원은 차라리 내가 그리울 것 같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절대로 쉽게 협상을 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나는 변호사단을 고용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보류했다.
적어도 지금은 미미만 있어도 될 것 같다.
그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일당백이었다.
변호사 따위 한 트럭이 있어도 미미만큼은 못하지, 암.
“그게…… 뜻은 알겠습니다만…… 제 선에서 확답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그럼 됐어요. 다음으로 넘어가죠.”
“네…….”
“‘이 해외이동 보고조항’은 뭔가요?”
“S급 헌터는 국가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런 분의 신변의 안전은 국가가 항상 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으로써…… 해외에 가실 일이 생기시면 무슨 사유로, 언제 돌아오실지를 알려주셔야…….”
“이것 보세요.”
“네, 네?”
공무원은 미미 앞에서 완전히 쩔쩔맸다.
과연 내가 옆방에 없어도 그랬을까? 공무원은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럴 수밖에, 미미가 협상 테이블에서 뿜어내는 아우라는 정말 대단했다.
나는 어느새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저절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저희 조철웅 님이 어린애인가요? 왜 해외에 나갈 때 일일이 보고를 올려야 한다는 거죠?”
“네? 하지만 이것은 특별히 조철웅 님만 차별하는 조항이 아니라…… 원래 일반 국민의 해외여행 정보는 국가에서 수집하는 것으로…… 그것은 꼭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S급 헌터의 안전을 국가가 보장한다고요?”
“아, 그건…….”
자기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공무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군부대 몇 개와도 맞짱을 뜰 수 있는 게 S급 헌터일진대, 게다가 S급 몬스터 사냥은 군부대도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인데 그런 존재의 안전을 운운하다니.
핑계를 대도 그럴듯하게 댈 것이지.
이 조항은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S급 헌터의 발을 국내에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다.
함부로 나가서 외국과 이민 협상을 하거나 돌아오지 않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래도 공무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일반 국민의 해외여행 정보도 국가가 수집할 수 있는 거니까.
딱히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국의 국민으로서 그쯤은 일반 상식이나 다름없다.
“S급 헌터가 비자 없이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네?”
‘오…….’
그래? 그건 나도 몰랐다.
하긴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가 발생해서 각국의 S급 헌터가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 되면 비자 따위 발급하고 말고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경제력이 부족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는 몇 개 나라의 S급 헌터가 모여서 S급 몬스터를 사냥했던 전례가 있으니까.
그때 S급 헌터가 비자를 발급받고 어쩌고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리가 없다.
일단 S급 몬스터는 나타난 즉시 최대한 빠르게 사냥해야 하니까.
그런 비상상황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국제조항을 ‘해외여행 자유’라고 바꾸어서 말하다니.
물론 이렇게 표현하든 저렇게 표현하든 결과는 같지만.
“조철웅 님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를 여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가용 비행기를 구입하실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고요. 이 조항은 없애는 것뿐 아니라 수정이 필요하겠죠?”
“아, 그게…….”
“알고 있어요. 본인 선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요? 나, 참. 이렇게 중요한 일에 말단 공무원을 보내서 어쩌자는 건지. 대통령이 직접 와도 부족할 판에.”
미미의 태도는 점점 과감해졌다.
그래도 오늘 찾아온 공무원은 말단을 아닐 터였다.
나름대로 S급 헌터와 협상으로 온 것이니까 지위가 높을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혼자 오라고 한 것도 이쪽에서 요구한 것이었고.
미미는 어차피 이 협상이 하루 만에 끝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이 와도 부족하다는 것은 좀 너무 가지 않았나 싶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앞으로 나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지구를 구할 영웅이 될 거니까.
다만 그 사실을 나와 미미, 그리고 소수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아…….”
공무원이 쩔쩔매는 목소리가 안쓰럽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