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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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 직원은 약속한 시각에 꼭 맞추어 나타났다.
처음에는 따로 장소를 마련하여 만나야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러는 게 더 귀찮을 것 같았다.
호텔 방은 프라이빗한 공간이기는 해도, 이 스위트룸은 지나치게 넓은 데다가 지난번에 기자회견을 한 탓에 이 호텔에는 내 존재가 상당히 알려지고 말았다.
일반 손님에게는 당연히 비밀로 했지만, 이런 종류의 소문은 어떤 식으로든 쉽게 퍼져나가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호텔 내에서 조용한 장소를 찾는다 하더라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크게 소란이 일어날 기미는 없지만 내가 굳이 나서서 빌미를 만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추리닝 차림으로 반갑지 않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일 분도 어긋남이 없이 노크 소리가 났다.
똑똑.
아무래도 문밖에 서 있다가 시간이 되자마자 노크를 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
지나친 대응에 부담스러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빨리 오든 늦게 오든 나로서는 귀찮은 손님이니까.
얼른 맞이하고 쫓아내 버리는 것이 좋다.
나와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던 미미가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척 보기에도 대단히 경직된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 허리를 숙였다.
그는 자신을 맞이한 사람이 기대했던 S급 헌터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을 보고 안경을 치켜올렸다.
“저기…… 조철웅 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 그렇군요.”
남자는 미미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정부가 그녀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그녀가 가짜 라이선스를 지닌 대한민국 국적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좀 걱정이 되었다.-, 밝게 웃으면서 깍듯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남자가 건넨 쇼핑백을 보고 미미가 물었다.
“이건 뭔가요?”
“이번 명절 선물로 청와대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아직 날짜가 남았습니다만 미리 한 박스 빼내서 가져왔습니다. 별것 아닙니다만 저희 행정부, 그리고 대통령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어머!”
나는 안에서 필요 이상으로 좋은 S급 헌터의 청력으로 대화 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행정부 직원이 미미에게 선물을 건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종종 본 적이 있다.
대통령에게 선물을 받았다고 언박싱하는 영상들을.
정말로 별것이 아니긴 했다.
법률문제가 있기도 하니 그 이상의 선물을 가지고 오기 어려웠을 터.
굳이 선물을 미미에게 주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정부에서도 나와 미미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디 불필요한 가십으로 언론에 흘러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실례하겠습니다.”
남자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생각해 보았지만 따로 ‘표정 변화’ 스킬을 사용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왜냐면 귀찮아 죽겠다는 아우라를 계속 뿜어내고 있어야 상대가 알아채고 빨리 사라져줄 테니까.
공무원이니까 그 정도 눈치는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나를 본 공무원이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크게 놀란 모션을 취하는 것을 보면 평소에도 심약한 타입인 것이 분명했다.
S급 헌터를 대면하러 온다는 것 자체가 긴장된 일일진대 그 S급 헌터가 이렇게 죽도록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는 것은 그의 심장에 무리를 주는 일일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표정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실은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리 귀찮지만은 않았다.
내 지금 표정은 반쯤은 연출이었다.
뭐, 평소에도 늘 이런 표정이니까 굳이 작위적일 필요도 없었지만.
“아, 안녕하십니까.”
공무원은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내게 허리를 숙였다.
이렇게 겁이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모르긴 해도 헌터 중에는 꽤 막 나가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니까.
얼마 전에만 해도 이희진이 기자회견장에 난입한 것도 인간 세상의 일상적인 룰을 완벽히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내지른 기함에 실제로 몇 명의 기자들이 우수수 쓰러지기도 했었다.
내장이 망가질 정도로 심대한 물리적 타격을 입지는 않았겠지만, 일반인으로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희진은 어디까지나 양반이다.
내가 때때로 들었던 헌터들의 갑질은 상상을 초월했다.
흔히들 관용적으로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고 하는데,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빠져나오는 세상이 된 이후로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헌터들의 갑질이 어느 수준이냐 하면, 어떤 영화도 그것을 흉내 내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영화판뿐만 아니라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모든 사람이 헌터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비판적으로 다룰 수도 없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공무원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헌터 앞에서 주눅 드는 게 일상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것 자체가 웬만큼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말단 직원들보다야 낫겠지만.
“앉으시죠.”
나는 내 맞은편 자리를 권하며 그렇게 말했다.
“네, 가, 감사합니다.”
서류가방을 품에 안은 채로 공무원이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일부러 마나까지 차단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토록 나를 겁내는 걸 보니 살짝 짜증이 났다.
물론 기자회견장에서의 내 기행은 그것을 전해 들은 사람으로서는 겁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이희진만 아니었으면 완벽했는데.’
예상 밖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내 기자회견은 최초 계획대로 잘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걸 아쉬워해 봤자 소용없지만.
게다가 언젠가 한 번은 만나야 했던 대한민국의 다른 S급 헌터와의 관계정리를 할 수 있었고, 그녀가 꽤 많은 돈도 꺼내놓고 갔으니 손해라고만은 볼 수 없었다.
공무원은 이마의 땀을 훔칠 생각도 못 한 채로 허허, 웃으며 경직된 말투로 말했다.
“말씀은 들었습니다만 실제로 만나 뵈니 기상이 정말 훌륭하십니다. 헌터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나왔으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실로 밝다고…….”
“본론만 말씀하시죠.”
나는 울컥 미간을 찡그렸다.
가만두면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줄줄이 내뱉으며 내 비위를 맞추려고 안달할 것 같았.
본인에게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새로 출현한 S급 헌터와 처음으로 독대할 기회를 잡았으니까.
그것이 출세를 위한 사다리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기회를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될 수 있으면 나를 귀찮게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는 최대한 접촉을 피하고 싶었다.
“네, 네!”
깜짝 놀란 공무원이 바닥에 놓았던 가방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 안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놓는다.
“어휴…….”
그것을 보자마자 골치가 아파 왔다.
‘역시 변호사를 한 명 고용할 걸 그랬나?’
웬만큼 등급이 높은 헌터들은 걸어 다니는 기업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다 변호사 한 명씩은 끼고 있었다.
S급 헌터라면 아예 십수 명 단위의 변호사 인단을 거느리고 있어도 될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거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당연히 귀찮은 것이 싫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최소한의 접촉은 해야 할 테니까.
미미가 알아서 한다고 해도 그럴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고 싶었다.
변호사단을 굴릴 일 자체를 안 만들면 되는 거니까.
나는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조용히 활동하고 살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두꺼운 서류 뭉치를 보았더니 슬쩍 그 생각이 흔들렸다.
변호사가 필요할지 어떨지는 나중에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미미가 찻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나타났다.
웬만하면 차 한 잔을 마시기 전에 용무를 마치고 돌아가 주었으면 했지만, 서류 뭉치를 보니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았다.
미미는 실제로 람바스를 도와 우주 최악의 악마와 싸웠던 경험도 있는 만큼 이렇게 차 시중이나 할 여자가 아니지만, 어쨌든 그녀가 스스로 나서서 잡일을 해준다는 것은 나로서는 편한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녀에게는 내게 직접 시중을 든다는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진 람바스의 기억, 그 편린을 더듬어본 결과 과거에 람바스도 한 번 시중 같은 것은 다른 사람이 들게 하라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 미미는 되레 엄청나게 서운해했었다.
원래 딴 사람의 기분 같은 것은 개의치 않는 람바스이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 대단히 노력을 한 모양인데, 그 일을 계기로 다시는 같은 식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말하자면 미미에게는 나를-람바스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싶어 하지 않는 독점욕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내 앞에서 쩔쩔매고 있던 공무원은 미미의 등장이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밝게 웃었다.
찻잔을 집어 들고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두 분은 무슨 사이이신지…….”
그런 질문을 하는 상대에게서 약간은 불온한 느낌이 전해졌다.
이것은 S급 헌터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느낄 수 있는 세세한 반응 포착 능력이었다.
“저는 조철웅 님의 곁에서 이것저것 사소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 주고 있어요. 비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미미가 예리한 눈빛으로 공무원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역시나, 그녀 또한 공무원의 불온한 감정 기류를 눈치챘다.
나는 분석하는 것이 귀찮아서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반응으로 미루어 공무원이 내심 품었던 불온한 감정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공무원은 미미의 정체가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조철웅이라는 인물은 원래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미미는 다르다.
그녀의 라이선스는 가짜고, 어디서 흘러든 인물인지조차도 불명이니까.
그 정도는 나를 만나러 오면서 조사를 했을 것이고, 거기 대한 생각이 불연 중에 그의 표정에 드러난 것.
하지만 미미가 딱딱한 표정으로 묻자마자 공무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 아닙니다. 문제라니요! 그러셨군요. 두 분이 워낙 선남선녀시다 보니 혹시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결례를 범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결례일 것까지는 없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공무원이 협상하러 온 것치고 지나치게 저자세가 아닐까 여겨졌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세상이 인식하는 헌터라는 존재가 그런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헌터들을 씹어대도 현실에서 마주하면 생물로서의 당연한 위협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늘 헌터들을 상대하는 공무원은 무조건 그들이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미미는 공무원의 말에 밝게 웃었다.
“어머! 선남선녀라니요~ 저는 그저 조철웅 님의 비서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같은 오해를 여러 번 산 미미는 이번에도 썩 기분이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반면 공무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으로 미미의 신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뭉개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큰일이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이게 바로 세상에서의 S급 헌터의 위력이겠지.
영리한 미미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애초에 가짜 라이선스를 들고 있으면서 그렇게 당당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방증일지도.
원래 지구인이 아닌 그녀의 사회생활 레벨은 이미 진즉 나를 초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