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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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하는 기자회견.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귀찮다는 것만 빼면.
사실 그것 때문에 다른 감정이 다 압도되어 버린 것 같지만.
나는 중얼거리며 켂튜브 최태영이 준 매뉴얼을 외웠다.
물론 기자들의 질문이 여기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최태영이 그 부분은 자기가 알아서 컨트롤하겠다고 했다.
평소 유튜브에서 보았던 그의 달변을 떠올리며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됐습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내게 미미가 들어와서 말했다.
그녀는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있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문제 될 소지가 있어서 파프리카도 방에 두고 왔다.
파프리카는 지금 박혜나가 돌보고 있으며, 그녀는 방과 연결된 카메라로 기자회견을 실시간을 볼 것이었다.
“으음…….”
죽을 것같이 귀찮은 표정을 하고 있던 나는 스킬을 사용했다.
바로 획득한 지 얼마 안 되는 스킬 ‘표정 바꾸기’.
사실 이 스킬에는 따로 이름이 있지 않았다. 그냥 편한 대로 내가 붙인 것.
그러자 스테이터스 화면에서 그렇게 표기되었다.
아주 간단한 스킬이니만큼 마나는 거의 소모되지 않았다.
내 수준에서는 아예 안 닳아진다고 말하는 게 맞을 정도였다.
다만 이 스킬은 내 기분에 영향을 받는 만큼, 스킬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기분을 표출한다면 금방 깨어질 수 있었다.
‘조심해야지.’
람바스도 종종 실수한 모양이니까.
람바스의 정체가 밝혀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 거기에는 본인의 의지도 작용했다.
친절한 이미지로 포장하니까 사람들이 끝도 없이 뭔가를 요구해 온 것이다.
차라리 단호하게 나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귀찮게 하지 마!” 소리를 내질렀다고 한다-그런 기억을 각성했다.-.
나는 부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지구의 미디어 문화는 잘 발달한 편이니까 이 기자회견만 잘 끝내면 아마 귀찮은 일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뒤에 숨어버리면 감히 S급 헌터를 귀찮게 하려는 간 큰 놈은 없겠지.
나는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밖이라고 해봤자 대기실은 기자회견장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애초에 그런 구조다.
오성급 호텔이니만큼 기자회견을 하기 위한 장소 정도는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하마터면 표정을 무너뜨릴 뻔했다.
‘뭔 인간들이 이렇게 많냐?’
많을 줄은 알았다. 하지만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방은 꽉 차 있었다.
심지어 의자에 앉지 못해 서 있는 사람만도 스무 명은 되었다.
‘인원을 추렸다고 하더니.’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으음…….”
나는 ‘표정 바꾸기’ 스킬이 깨지지 않게 주의하며 의자에 가서 앉았다.
내 옆에는 진행을 맡은 켂튜브, 최태영이 있었다.
설마 했는데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나 이상으로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남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뭐, 사람들이 딱히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 나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프레시가 터졌다.
팡! 팡! 팡! 하고.
하지만 그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아마도 사진을 찍는 숫자도 사전에 조율이 된 것 같았다.
나와 켁튜브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도 딱 한 대뿐이다.
아니, 두 대였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인사드리는데요! 예고했던 대로 저는 기자회견자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바로바로 여러분이 궁금해 마지않으셨던 제4의 S급 헌터! 조철웅 님의 기자회견장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뭐야, 미친.
나는 욕을 뱉을 뻔했다.
내 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점잖은 사람인가 했더니, 기자회견장에서는 평소의 켂튜브로 돌아가 있었다.
그의 앞에는 방송용 카메라가 돌아갔다.
그래서 기자회견장에 총 두 대의 카메라가 있는 것이었다.
‘코미디네…….’
장안의 화제였던 제4의 S급 헌터의 존재가 밝혀지는 기자회견인데.
일개 유튜버에게 진행을 맡기다니.
이곳에 자리를 차지한 언론사들은 다들 쟁쟁한 곳일 터였다.
나는 그들의 표정이 편치 않은 것을 보고 이 상황이 코미디 같다고 느끼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든든하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대기업에 가까운 언론사를 쥐락펴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미미가 인증한 대로 백 퍼센트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최태영이 옆에 있어서 편했다.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내 존재가 대한민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언론사들을 따 찍어눌러 버린 거니까.
그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받아들일 만큼 똥줄이 탄 것이었다.
‘생방송도 아니지.’
켁튜브 영상이 먼저 올라가고, 나중에 언론사들이 보도하기로 합의했다.
아마 그 합의를 어기는 간 큰 언론은 없을 것이었다.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백 명이 넘는 기자들을 귀찮게 여겼던 마음을 슬쩍 눌렀다.
그리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그린 채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여러분 이것 보십시오! 여러분 덕분에 출세한 저 켂튜브가 와 있는 장소를요! 자그마치 오성급 호텔 기자회견장이라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갈수록 텐션이 높아지는 켂튜브가 자기 카메라로 기자회견장 내부를 비췄다.
그러자 난처한 표정의 누군가가 슬쩍 제재를 해왔다.
오디오가 섞이니까 말을 하지 않고, 손을 빙빙 돌린다.
좀 더 빨리 진행하라는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기자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허락된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되는데 켂튜브가 다 잡아먹고 있었으니까.
‘잘한다!’
나는 최태영을 응원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귀찮은 질문을 받을 시간도 줄어들겠지.
시간이 줄어들면 매뉴얼 외의 질문이 들어올 가능성도 사라진다.
생각하고 하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결같은 켂튜브의 모습에 나는 응원을 보냈다.
옆에서 손목을 빙빙 돌리는 남자의 액션을 무시하고 인트로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켂튜브가 가면을 쓴 얼굴로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질문받겠습니다.”
기자들이 한꺼번에 손을 우르르 들었다.
켂튜브는 이 상황을 즐겼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기자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그만큼 조철웅 님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런 기자회견에서 진행을 맡은 저는~~ 크윽~~~! 취한다, 취해! 이게 다~~~ 여러분들 덕분 아니겠습니까? 인정하시면 구독과 좋아요 한 번 씩들 눌러 주시고요~~~”
기자들은 아예 켂튜브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너 괜찮겠냐?
나는 최태영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나는 딱히 그를 보호해 주지 않을 거니까.
나는 그럴 만한 조직도 인맥도 없다. 그걸 만드는 것도 귀찮다.
아마 미미와 박혜나가 알아서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네, 저쪽 분!”
첫 질문을 하기로 선택된 남자가 고무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반갑습니다. 저는…….”
그가 자기소개를 하려고 하자 뒤에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소개하지 마!”
“시간 아껴!”
이런 건 처음 본다.
나와 켂튜브에게는 하지 못했던 반응을 자기와 같은 입장의 기자에게는 날카롭게 쏟아냈다.
“크흠, 아마도 국민들이 조철웅 헌터님께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이게 아닐까 싶은데요. 왜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던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나는 매뉴얼대로의 대답을 했다.
“제가 부끄러움이 좀 많습니다.”
“네?”
기자가 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왜냐면 자기가 기대한 것에 비해 너무 짧은 답변이었을 테니까.
게다가 부끄러움이 많아서라니. 이걸로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할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켂튜브가 진행을 이어갔다.
“또 질문 있으십니까?”
저요! 저요! 저요!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두 번째로 선택받은 여기자가 물었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조철웅 씨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하는 것입니다. 아직 관리소에서 제대로 측정을 안 받으신 걸로 아는데요. 앞으로 검사를 받을 계획이 있으십니까? 그전에 본인의 능력이 다른 S급 헌터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형편없어요.”
“네?”
“기대하지 마십시오. S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무늬만 S급입니다.”
“네?”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대답은 끝이었다.
나는 내 대답에 핵심을 담았다.
너희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뛰어난 헌터가 아니니까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웬만하면 S급 몬스터 사냥하는 데 나 부르지 마라.
“그러면 다음 질문…….”
켂튜브가 진행을 이어가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짓말하지 마!!”
그 목소리에 어찌나 박력이 넘쳤는지, 기자회견장이 쩌렁쩌렁 울릴 지경이었다.
실제로 일반인인 기자 몇은 우르르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목소리를 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S급 헌터.
나와 더불어 대한민국에 딱 두 명 남은 S급 헌터 중 하나였다.
“이희진……?”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최태영과 나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
나는 대기실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미미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가?’
사실 이희진이 마음먹고 여기 들어왔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S급 헌터라는 능력을 떠나 그녀는 ‘순간이동’과 ‘은신’이 특기이니까.
그 스킬로 호텔 안에 잠입했다면 누구도 막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뭐라는 거야, 쟤는?
나는 내 표정이 이미 무너졌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희진은 자기 주위에 쓰러진 기자들을 보더니 목소리 크기를 낮춰서 말했다.
“너는 나보다 더 세잖아! 아니, 나와 오성택, 김철호를 다 합친 것보다 더 세면서!!”
응?
그걸 왜 네가 장담하는 건데?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팡! 팡! 팡!
규정된 횟수가 있으므로 나를 찍는 사진이 아니었다.
이희진을 찍는 것.
어차피 내 얼굴은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다소 맥이 빠져 있던 기자들의 눈이 빛났다.
‘아, 이거 뭐냐고…….’
내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자 당황한 최태영이 재빨리 말했다.
“이희진 씨는 무슨 증거로 그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S급 헌터라지만 사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것은 무례한 일 아닌가요?”
내가 옆에 있어서인지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팟-
뭔가 바람이 부는 것 같아서 뒤를 보았더니 이희진이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자기 핸드폰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나는 가까이에서 그녀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친…….’
이 사진을 얘가 왜 갖고 있는 거야?
X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