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이어진 장면은 처음의 충격적인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면, 나중에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철웅이 S급 몬스터-S급 중에서도 절대로 약한 놈이 아니었다.-를 사냥하는 것은 너무 여유가 넘쳤으니까.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은 것은 몬스터에게 일부러 잡아먹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아도 사냥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능력이 있다면 몬스터를 부릴 수 있기보다는 오히려 몬스터의 타깃이 되는 쪽인 것 같았다.
그렇게 세게 얻어맞고도 몬스터가 계속 조철웅에게 살기를 뿜어내는 것을 보면.
이희진은 상식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감히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장면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꽝!!-
두 번째 주먹을 얻어맞았을 때 몬스터의 고개를 더 세게 꺾어졌다.
보는 자기가 다 아플 정도였다.
맞는 몬스터가 불쌍할 정도.
진짜 싸움은 여기서부터였다.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듯 조철웅이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으니까.
그렇다. 아직까지는 본 실력을 다 꺼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의 손이 기이한 모양으로 변화했다.
그것은 점점 형태를 갖추더니 각각 방패와 창이 되었다.
‘물질화’ 능력이 완전히 드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눈으로 본 것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S급 헌터가 자기 마나를 양손에 모아 물질화를 시전한 것이므로 엄청난 창과 방패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희진이 경악한 것은 그 능력을 펼치기 전에 조철웅이 S급 몬스터의 안면에 강력한 주먹을 두 방이나 꽂았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헌터들은 한 가지 능력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S급 몬스터의 고개를 홱 돌아가게 할 정도로 강한 주먹을 가지고 있다면, 양손에 무기를 만들어내는 물질화 능력은 없어야 말이 되었다.
하지만 조철웅은 양쪽 능력을 최상위로 발휘했다.
이것은 절대로 상식의 영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해외의 난다 긴다 하는 헌터들도 이 정도는 하지 못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세상은 넓고 강한 S급 헌터는 많은 모양이니까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직접 코앞에서 보는 것은 또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때였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은.
삑! 삑!
알람 소리를 들은 이희진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신의 핸드폰에서 난 소리였다.
당연히 핸드폰은 무음으로 해놨지만, 이것은 S급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긴급 알림이었다.
핸드폰이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들을 수밖에 없도록 무음모드가 적용되지 않는 것.
서둘러 핸드폰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는데, 여자가 다가왔다.
바로 조철웅과 이곳까지 함께 온 여자.
멀리서 봤을 때도 예쁘다고 느꼈는데 가까이에서 보자 더 아름다웠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안 거야!
물론 핸드폰이 소리를 냈으니 방향을 특정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동선이나 속도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소리가 나지 않냐’고 조철웅이 물었을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양을 보니 자기가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생글거리는 낯으로 말했다.
“쉿, 들키잖아요.”
“네……?”
그 말만 하고 여자가 떠나갔다.
잠깐 벙쩌 있는 사이에 전장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몬스터의 안면이 조철웅의 방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던 것.
이어서 조철웅은 오른손의 창을 몬스터의 주둥이에 꽂아 넣었다. 안 그래도 큰 창의 크기가 쭉쭉 길어졌다.
실로 가공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물질화 능력!
S급 몬스터가 조철웅의 창에 꼬치처럼 꿰어버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자 같이 있던 여자와 강아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응? 강아지?’
귀엽기 짝이 없는 조그마한 강아지는 순식간에 덩치가 커졌다.
“멍! 멍!”
그 위용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역시, 조철웅이 데리고 다니는 각성수는 일반 각성수와는 달랐던 것이다.
뭐라고 할까? 이 각성수 자체가 S급인 것 같다.
S급 각성수를 데리고 다니는 S급 헌터.
정체가 드러난다면 세계적인 화제를 모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인가?’
그게 귀찮아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걸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까 보았던 그의 썩은 눈을 떠올리면 이해가 되었다.
‘낭중지추일 텐데…….’
이만한 능력을 가진 헌터가 조용히 살기는 힘들 것이다.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만약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헌터라면 이렇게 조용히 강원도 산에 올라 S급 몬스터를 불러내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왜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돈을 벌려고? 성장 때문에?’
어떤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납득이 되지 않기도 했다.
왜냐면 자신은 이미 조철웅의 눈을 보았으니까.
그 만사가 귀찮다는 눈빛은 돈이나 성장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애초에 이만큼 강한데 무슨 성장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오성급 호텔에 장기간 투숙할 정도면 돈도 부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넋이 빠져 있다 보니 이미 상황은 정리되어 있었다.
S급 몬스터는 꼬치에 꿰어진 채로 수명을 다했다.
그리고 조철웅 일행은 서둘러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절대로 귀찮은 일에는 휘말리지 않겠다는 듯이.
이희진은 멍하게 서 있었다.
조철웅을 붙잡거나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투두두두-
그래서 드론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하나가 나타나자 연속해서 새까맣게 몰려왔다.
“어?”
드론은 이미 죽어 있는 몬스터와 자신을 비치고 있었다.
“어?”
73
“우와, 주군!”
미나는 감격스러워했다.
드디어 자신이 고대해 마지 않았던 새 보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고생 많으셨어요!”
“응.”
고생 많았지.
강원도까지 가서 말이야.
나는 소파에 푹 몸을 묻은 채로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후딱 만들어서 대령하겠습니다!”
“천천히 해도 돼.”
내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될 만큼 미나는 부리나케 호텔을 나갔다.
아마 며칠은 자기 공방에 틀어박힐 것이다.
장인 혼자서 S급 장비를 만드는 데는 보통 몇 달은 족히 걸리는 모양이지만, 미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더구나 보구는 일반 S급 장비도 아닐진대.
물론 거기까지는 내가 생각할 필요 없는 일이다.
심지어 미나가 만들어올 새로운 보구에 딱히 호기심도 없었다.
‘좋겠지, 뭐.’
‘지배자의 손아귀’와 ‘운명의 목걸이’가 그런 것처럼 새로운 보구도 상식을 부술 만큼 대단한 물건일 것이다.
그때 띡, 하는 소리가 났다.
바로 TV가 켜지는 소리.
나는 등받이 쪽으로 돌리고 있던 몸을 반대로 돌렸다.
TV를 켠 것은 역시 미미였다.
이렇게 보란 듯이 TV를 켤 때는 뭔가 숨은 의도를 가질 때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미미는 TV 보기를 즐기는 타입이 아니니까.
세간에서 유행인 드라마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녀가 TV를 왜 켰는지 알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녀가 내게 뭘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
-이번 강원도에서 발생한 S급 게이트는 발생 즉시 제압되었습니다. 당국은 마침 등산 중이었던 S급 헌터 이희진이 빠르게 몬스터를 사냥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최근 들어 빨라지고 있는 S급 몬스터의 출현 주기에 시민들은 큰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지금처럼 운 좋은 상황이 반복되지는 않으리라는 의견이 팽배합니다. 그런 가운데 그 존재가 아직 미지 상태인 제4의 헌터에 대해서…….
“음…….”
과연, 이 뉴스는 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내용은 의외였다.
‘이희진이라고?’
물론 S급 몬스터를 사냥한 일이 빨리 밝혀질 줄은 알았다.
그것은 숨긴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등산 중이었던 S급 헌터 이희진이라니?
이건 또 무슨 경우지?
“주군, 운이 좋았네요.”
미미가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 자신도 몰랐다는 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이희진이 그 산에 등산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설마…….’
아무리 미미가 용의주도하다고는 해도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다.
‘그러면 진짜 우연?’
이희진이 등산을 좋아했던가? 혼자서 그 깊은 강원도 산골로 들어갈 정도로?
‘말이 되냐?’
아무리 등산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 타이밍에, 하필 그 산을 오르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것을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물론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뉴스에서는 그렇게 보도할 수밖에 없겠지만.
“잘됐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어쨌든 잘된 일이다. 이번에는 S급 몬스터를 제대로 도축했다는 점에서 더 아쉬움이 없었다.
물론 짧은 시간에 해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느니만큼, 게다가 S급 몬스터의 사체는 통째로 가치를 지니고 있느니만큼 돈 될 만한 부위를 다 건진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때도 돈은 벌었지.’
몇 배로 뽑아냈으니 불평할 일은 절대 아니었다.
‘여전히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는구나.’
아무리 이희진이 S급 몬스터를 사냥한 것으로 되는 행운이 따랐다고 해도, 사람들의 제4의 헌터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일로 더 부각된 측면이 있었다.
이희진이 근처를 등산하고 있었던 것 같은-물론 그럴 리 없지만-행운이 다음번에도 이어질 리는 없으니까.
게다가 사람들은 확실하게 알았다.
이제 S급 몬스터가 나타나면 그걸 사냥할 사람이 이희진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물론 그녀의 실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은 이번 일로도 증명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세 명이 사냥할 때와 혼자 사냥할 때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결된 문제이기도 했다.
‘알게 뭐냐?’
나는 알고 있다. 이번에 S급 몬스터가 출현한 것, 그리고 지난번에 출현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두 내가, 정확히 말하면 ‘운명의 목걸이’가 불러낸 것이었다.
인위적인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는 당분간 S급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을 것이었다.
출현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이희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람바스의 능력을 탑재한 내가 있으니까.
아무리 귀찮다고 해도 사람들의 생명을 나 몰라라 할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니다, 나는.
‘이제 편해졌구나!’
나는 다시 몸을 뒹굴 돌렸다.
가장 시급했던 문제 두 가지를 해결했으니 당분간은 푹 쉬어도 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다시 삑, 소리가 났다.
미미가 채널을 돌린 것.
그리고 그 안에서 경악스러운 멘트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제4의 헌터의 정체가 드디어 공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뭐라고?”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왈! 왈!”
파프리카가 걱정하며 짖었지만, 아무리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라도 지금은 신경 쓸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