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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45화 (45/160)

▣ 45화

‘진짜 무시무시한 물건이라는 말이지.’

자그마치 S급 몬스터를 불러내는 보구다.

아무나 사용한다고 무조건 S급 게이트가 열리는 것은 아니고, 보구+람바스(나)라는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 것 같지만.

이 메커니즘의 기본 원리는 몬스터들이 람바스에게 품은 악의, 복수심이었다.

“아…….”

‘의지’ 스킬을 사용한 탓에 몸이 근질거렸다. 이왕 싸워야 한다면 빨리 끝내고 싶었다.

목걸이에 마나를 주입하자 곧 밝은 빛이 분사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은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왈! 왈!”

감이 좋은 파프리카가 먼저 반응했다.

그다음,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새파란 하늘에 검은색 구멍이 생기더니, 구름과 공기가 그것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구멍이 점점 확장되어 간다.

나는 입고 있던 등산복을 벗었다.

안에 받쳐입고 있던 것은 당연히 헌터 장비였다.

미나가 ‘쓰레기’라고 표현한 방어구.

이 사냥이 마무리되면 보구가 완성될 것이다. 미나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낼 새로운 보구를 살이 마를 정도로 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딱히 불편한 것 같지 않지만.’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굳이 방어구까지 보구로 맞춰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얼마 전에 싸운 김철호만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쉽게 이겨 버렸으니까.

‘람바스가 실패했다는 게 믿기지를 않네.’

이 정도 천재 괴물이 쓰러뜨릴 수 없었다면 악마라는 놈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람바스는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르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 수준이 되지 못한다.

김철호와 싸운 뒤 ‘일렉트로닉 스톰’ 스킬을 얻어 폭풍우를 불러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른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 말은 곧 아직 성장해야 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었다.

‘하는 수 없지.’

그 성장의 발판이 되어야 할 게 이 보구 수집인 모양이니까.

구멍이 점점 벌어지면서 그 안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S급 게이트가 열리는 것이니만큼 평범한 스파크가 절대 아니었다.

김철호가 만들어냈던 폭풍 속에서 파직거리던 번개보다도 크다.

나는 웅장한 광경을 보며 싸울 채비를 갖추었다.

또 하나의 보구 ‘지배자의 손아귀’를 양손에 끼운 것.

“물러나.”

느낌상으로 보면 지난번에 싸웠던 S급 몬스터보다 더 강한 놈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미미와 파프리카에게 물러나라는 말을 했다.

지난번에 싸울 때는 도움을 받았지만, 가급적 나는 이 둘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S급 몬스터니까.

조금만 방심해도 치명상을 입는다.

쿠구구구-

드디어 몬스터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압박감에 산이 진동했다.

줄기가 약한 나무들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헤타리로스라고 했지?’

몬스터 백과가 있으므로 대강의 정보는 숙지했다.

여타 헌터들에게는 S급 몬스터와 싸우는 데 정보 따위가 도움이 안 되겠지만, 나는 다르다.

적에 대해 웬만큼 알고 있다면 머릿속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저절로 시뮬레이션이 되었다.

‘용이라고 해야 할까?’

헤타리로스는 중국 설화에 나오는 용을 닮았다.

서양 판타지에 나오는 드래곤이 아닌 용.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리고, 몸통은 뱀처럼 길다.

그리고 등에는 붉은색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내가 숙지한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몬스터가 서서히 자신을 드러냈다.

물론 전형적인 용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그 전투력과 위압감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헤타리로스는 뱀처럼 긴 몸통에 맞지 않는 커다란 대가리를 달고 있었다.

한 마디로 대두.

그 엄청나게 큰 대가리가 구멍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다.

노란 눈이 이글대는 것을 보니 몸이 찌릿찌릿했다.

놈이 노리는 대상이 나라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

S급 몬스터가 백 퍼센트의 살기를 뿜어내며 그것을 나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오냐, 와라!’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왜냐면 상대가 적극적일수록 싸움이 빨리 끝날 거니까.

놈의 아가리가 벌어지면서 긴 혓바닥이 나왔다.

침이 뚝뚝 떨어지면서 그것이 나무와 바위를 녹였다.

아마 이 땅은 상당 기간 관리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S급 몬스터가 남긴 흔적은 방사능 못지않을 거니까.

대가리가 다 빠져나오자 기다란 몸통이 꿈틀거리며 나왔다.

역시 몸의 절반을 대가리가 차지한 외형이었다.

작은 발이 네 개 달려 있고, 등에는 전체 크기에 비해 초라하다고 할 수 있는 날개가 돋아나 있다.

날름날름.

끝이 갈라진 혀는 뱀의 그것과 비슷했다.

전체적으로 빨간색이었지만, 독을 품은 만큼 보랏빛도 섞여 있었다.

‘저 혀가 메인 재료지.’

미나가 작성한 레시피의 핵심재료는 바로 이 ‘헤타리로스의 혀’였다.

모양도 끔찍하지만 실제로 품고 있는 독성도 무척 강한 모양이었다.

그 안에서 독성을 제거하고 알맹이를 추출 해내는 것이 미나가 하는 일이었다.

나로서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정도만 이해할 뿐이지, 어떤 원리로 그게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먼치킨이 나 하나가 아니라는 거지.’

따지고 보면 미미나 파프리카, 그리고 미나 또한 각각 먼치킨이라고 할 만했다.

그들을 규합해서 이끌었던 것을 보면 람바스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본인은 최선을 다해 밀어내려고 했던 것 같지만, 먼치킨이 먼치킨을 끌어당긴 것을 보면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인력이 작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력한 적에 대항해 가장 강한 리더 밑에 능력자들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크르르르…….”

헤타리로스가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로 허공을 맴돌았다.

경계하듯 꿈틀거리고 있지만, 다른 곳으로는 절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지만 놈은 나를 크게 경계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패배의 기억 때문이겠지.

일개 S급 몬스터에게는 일일이 ‘승리의 기억’ 따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람바스의 대단한 점 중 하나였다.

나는 놈이 내게 적대감을 가진 이유가 딱히 공감되지 않으니까.

그냥 과거에 람바스가 놈을 사냥했었고, 그 이유로 S급 몬스터들이 람바스가 빙의한 내게 꼬여 든다는 것을 이론으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을 오래 끌 필요는 절대 없는 일이다.

게다가 헌터와 싸울 때와는 달리 ‘분석’을 통해 뭔가를 얻어내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그런 방법이 효과를 발휘하는 종도 있는 모양이지만 헤타리로스는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미 행정기관 일부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마나 수치를 감지하여 상급기관에 보고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헤타리로스를 향해 손을 까딱까딱했다.

몬스터가 인간의 제스처를 이해할까?

정답은 ‘그렇다’였다.

제스처의 정확한 의미보다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감정을 캐치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크라아아아아!!”

드디어 헤타리로스가 내게 떨어져 내렸다.

놈의 커다란 대가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확실히 부담스럽기는 했다.

몬스터가 만들어낸 풍압과 마나에 주변의 나무들이 우지직 날아갔다.

바위도 가루가 되어 쪼개지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내 주위는 그야말로 크레이터가 되었다.

쿠웅!-

나는 몸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았다.

왜냐면 천재 람바스는 모든 전투 상황에서 고도의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으니까.

수백 개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헤타리로스가 나를 집어삼킨다는 그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놈의 대가리가 충분히 가까워진 시점에 주먹을 휘둘렀다.

“꽈앙!!!”

핵주먹의 레벨은 갈수록 높아져서 이제는 거의 그 이름에 걸맞은 위력을 갖추게 되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아직은 주먹 한 방에 핵폭탄을 터뜨린 듯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S급 몬스터의 대가리가 한쪽으로 홱 돌아가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크아아아아!!”

충격이 컸는지, 당황한 헤타리로스가 허공을 뱅글뱅글 돌았다.

“정신없다, 인마.”

자기 몸뚱이가 크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않을-상관하고 있지 않을-몬스터가 부담스럽게 산 위를 맴돌았다.

이 정도면 누구 눈에 띄어도 띄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도 웬만큼 시간은 걸리겠지만.

도심에서 게이트가 열린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드론이 날아와도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직은 그런 기미조차 없었다.

핵주먹 한 방으로는 헤타리로스의 전투력을 잠재우기 충분치 않았다.

놈이 어쩔 줄 모르고 허공을 맴돌았던 것은 단순히 아팠기 때문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왜냐면 놈이 곧바로 다시 내 쪽으로 강하해 왔으니까.

그러면 별수 있나? 한 방 더 때려주는 수밖에.

꽈앙!!!-

이번에는 작심하고 때렸다.

그래서 반응도 고개가 돌아가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헤타리로스의 몸이 뒤집히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쿠과과과광!!-

지진을 방불하는 소리와 진동이었다.

나는 놈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것을 본 헤타리로스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이전에 얻어맞았을 때는 회복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회복이 빨랐다기보다는 내게 한 방 더 얻어맞을 것을 겁냈다.

휘익-

내가 접근하기 전에 먼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쳇!”

나는 귀찮게 피해버린 헤타리로스를 올려다보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놈은 다시 공격해 올 것이다.

강력한 본능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사라질 거니까.

나는 이 싸움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이전에 S급 몬스터와 싸웠을 때에 비해 내가 비약적으로 강해졌다는 사실을.

내가 전에도 이만큼 강했다면 절대 집을 날려 먹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놈을 사냥해야 할까?

사실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몬스터 정보를 볼 때 해답이 즉시 내려졌으니까.

그것은 람바스가 놈을 사냥했던 기억을 떠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사실 몬스터 한 마리 사냥한 기억을 찾아내려면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할 것이고.

그만큼 람바스에게는 사소한 기억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S급 몬스터라고 해도.

나는 ‘지배자의 손아귀’가 끼워진 양손에 마나를 주입했다.

웅, 웅-소리를 내며 보구가 내 마나와 공명했다.

충분한 마나가 고였을 때, 나는 상상했던 것을 구체화했다.

각각 하나의 방어구와 무기를 만들어냈다.

왼손에 만들어낸 것은 방패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방패 중앙에 뾰족한 돌기가 나 있다는 것.

그 돌기들은 강력한 접착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오른손으로 만들어낸 것은 창이었다.

기다란 창.

물론 그 크기는 헤타리로스의 큰 몸집에 비하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허공을 맴돌던 헤타리로스가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전략도 바꾼 듯했다.

크게 벌린 주둥이 안에서 보라색의 독액을 쏟아내기 시작했으니까.

쏴아아아-

폭우처럼 쏟아지는 그것을 나는 방패를 들어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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