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44화 (44/160)

▣ 44화

69

“주군,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날이면 날마다 내 호텔 방에 찾아오는 미나가 하는 말이었다.

“크흠.”

나는 그녀의 말을 모른 척했다.

말이 좋아 S급 몬스터 사냥이지, 그것이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는 이미 지난번에 한 번 겪은 바가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

장비 만드는 것을 인생 최고의 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미나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딱히 지금 보구를 갖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편한 일은 없었다.

되레 제4의 헌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몸을 사리고 단단히 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준비는 빨리 갖추어둘수록 좋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미나가 안쓰러웠던지-실제로 미나는 갈수록 살이 빠지고 있었다.-미미도 그렇게 말했다.

“오성택과 김철호를 죽였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세상에는 주군을 노리는 사도들이 우글댑니다.”

‘아우, 젠장.’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미미의 말을 듣자 내가 떠안고 있는 책임이 떠올랐다.

람바스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각성되었다.

레벨이 오르는 것과 대체로 비례한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싸울수록, 훈련을 할수록 되찾는 기억도 많아졌다.

그래서 나를 노리는 사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잠재적으로 인류를 위협할 몬스터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었다.

그놈들을 전부 내가 죽여야 한다.

“주군이 강해지면 람바스 님이 심어 놓은 신호가 강해질 거예요. 그러면 동료들이 모이는 속도도 빨라질 겁니다.”

“동료?”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한 미미의 말에 내가 반문했다.

동료라고 하면 일단 네 명을 떠올릴 수 있었다. 미미, 파프리카, 미나, 박혜나(메테르).

이들 말고 동료가 더 있다는 것일까? 얼마나 더?

만약 그 동료들이 전부 모인다면 내가 직접 S급 몬스터를 사냥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뒹굴대며 놀다가 중요한 순간에만 나서면 된다는 뜻.

내 물음에 미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진짜로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게 싫은 걸까?

정답은 전자인 듯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생에 람바스 님이 이끌었던 부하들만이 아니에요. 잠재적으로 람바스 님에게 더 많은 동료들이 모일 거라고 생각해요.”

“왜 그렇지?”

“람바스 님이 장치를 해두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자신의 기억을 빙의할, 그래서 자신이 못다 한 사명을 완수할 적당한 그릇을 찾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죠. 물론 완벽한 그릇을 찾았지만요.”

미미는 애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전제한 뒤 계속 말했다.

“악마와 사도들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은 정말 많아요. 그중 상당수의 영혼이 원망을 안은 채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죠. 에너지나 사념,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요. 어쨌든 그들도 지구에서 헌터로 각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람바스 님은 그들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장치를 심어둔 것이죠.”

“그러니까…….”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미미가 하려는 말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본능적으로 나를 찾아올 거라는 거야?”

몬스터와 사도들이 그런 것처럼?

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해요. 메테르와 만난 것도 그런 식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저나 미나, 파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아, 귀찮네.

결국 그들이 모이게 하려면 내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사냥을 하고, 레벨이 오르고, 어떤 방식으로든 신호를 보내야 그들이 나를 알아채고 모일 것이라는 이야기.

‘주도면밀하네.’

람바스는 원래 엄청 게으른 놈 아니었나?

필생의 한을 담아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인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음…….”

방심하고 있다가 미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듯한 표정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으으음…….”

내가 거부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었다.

역시 귀찮음을 벗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젠장…….”

70

“조철웅? 지금 호텔이 있다고?”

-응, 맞아.

“확실해?”

-너는 내 정보력을 뭘로 보는 거야? 나 이래 봬도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 길드장이다?

“당당하게 최고라고 말할 수도 없으면서 그놈의 다섯 손가락은 왜 항상 강조하는 거야?”

-나는 네가 조사해달라고 해서 조사한 건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다음에는 안 도와줄 거야.

“흥, 네가 고개 뻣뻣하게 들고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가 나랑 친하다는 것 때문일 텐데? 네가 그럴 수 있을까?”

-너 진짜…… 이희진은 정말로 쇼크를 먹은 듯한 상대 반응에 쯧, 입소리를 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왜 그런담?

그녀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대로 상대, 그러니까 친구이자 대한민국 수위권 길드 ‘플라워즈’의 수장이기도 한 A급 헌터 박미진에게 기프티콘을 쏘았다.

-어머? 이게 뭐야?

“길드원들이랑 같이 먹어. 네 성격에 잘 챙겨주지도 않을 거 아니야?”

-호호! 설마 우리 길드원들이 제 돈 주고 치킨도 못 사 먹는 줄 아니?

“피자랑 커피도 있는데?”

-그게 그거지. 어쨌거나 잘 먹을게, 얘.

박미진은 기프티콘에 금방 마음이 풀렸다.

물론 그녀가 벌어들이는 돈, 그리고 길드원들의 수입을 생각하면 기프티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각성 전부터 친구 사이였다.

먼저 각성한 것이 박미진이었고, 그녀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금방 길드를 만들어 유명해졌다.

물론 이희진이 S급으로 각성하면서 한 방에 추월당했지만.

그래도 친구인 탓에 서로 각성 여부, 등급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둘은 일적으로도 긴밀한 관계였다.

박미진은 이희진과 친구 사이라는 화제성을 이용했고, 이희진은 귀찮은 일이 생길 때마다 박미진과 그녀의 길드 플라워즈를 이용하고는 했다.

이희진은 박미진이 부탁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결과를 알려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이러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얘긴데?’

물론 플라워즈가 정보력이 뛰어난 길드이기는 하지만, 하루도 안 되어 정보를 얻었다는 것은 제4의 헌터에 대한 것이 세간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려져 있다는 뜻이었다.

이것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제4의 헌터를 두고 권력자들이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는 것.

‘하여간 일 복잡하게 하는 놈들이야.’

그래서 자신이 정치판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근데 왜 네가 직접 그 사람을 찾으려는 거야?

“왜기는. 한국에 S급 헌터가 한 명밖에 안 남았잖아.”

-아아~~

친구인 탓에 이심전심이었다. 박미진은 곧장 이희진의 생각을 알아챘다.

-S급 몬스터를 너 혼자 사냥할 수는 없지.

“그 새끼들은 왜 갑자기 죽고, 잠적하고 지랄들인지.”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응?”

-오성택이랑 김철호가 진짜로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리고 죽거나 잠적할 사람들이냐는 거야.

“그럴 놈들은 절대 아니지.”

-아무리 비리가 드러났다고 해도, 그 정도는 다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었던 거잖아. 그 정도 곤란하다고 자살할 놈들이 아니지. 그 자식들 뻔뻔한 거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건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는 네가 조철웅을 만나봤으면 해. 아마 그 사람이라면 해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나 귀찮은 거 딱 싫어하는 거 알잖아.”

-그래도 뭐, 너 말고는 그 사람 만나서 대화할 사람이 없지 않겠니?

“남의 일처럼 말하는구나.”

-그런 소리는 고급 정보를 얻어놓고 고작 기프티콘으로 때우려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지.

“하하.”

-호호호.

전화를 끊었다.

물론 이희진이 얻은 정보는 달랑 이름과 머물고 있는 호텔뿐만이 아니었다.

좀 더 세부적인 정보도 손에 넣었다.

‘진짜 평범한 사람인데…….’

그건 문제 될 게 아니다. 헌터들은 전부 평범한 사람이었다가 각성하는 거니까.

물론 각성 과정이 좀 이상하기는 했다.

잠복기가 지나치게 길어 보인다든가, 각성 전 약 일 년간을 두문불출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조용히 지냈다든가 하는 것들.

‘상관할 일이 아니지.’

이희진은 감이 좋은 만큼 박미진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아마 오성택. 김철호의 사망과 잠적이 이 조철웅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일 터.

그것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꼭 이 바닥에 있거나 그 둘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발상.

‘대화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라…….’

그 점은 동의했다.

아무도, 설령 국가 권력자라고 해도 본심을 드러내지 않은 S급 헌터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복잡한 건 싫어.’

이희진이 원하는 것은 놈이 바깥으로 나왔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소한 S급 몬스터 사냥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것.

오성택과 김철호가 죽든지 해외로 날랐든지 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암 덩어리 두 개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희진은 자신이 얻은 정보를 토대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71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무슨 소리요?”

미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 그녀의 태도가 석연치 않았지만, 나는 그걸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발걸음이 무겁기 짝이 없다.

결국 등쌀에 떠밀려 S급 몬스터를 사냥하러 왔으니까.

내가 걸어가고 있는 것은 산속이었다.

그것도 강원도의 깊은 산속.

이렇게 번거로운 계획을 세운 것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인명피해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그마치 S급 몬스터를 불러내는 건데, 조심의 조심을 기해야 할 것이었다.

“어휴~~~”

내 한숨에 미미가 등을 토닥였다.

“힘내세요, 주군.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인적이 드문 산속. 거칠기 짝이 없는 길을 걸어간다.

산꼭대기에서 몬스터를 불러내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일부러 9부 능선까지만 올라갈 생각이었다.

물론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S급 몬스터 출현은 감지가 될 수밖에 없고, 곧 드론들이 날아오겠지.

그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강원도 산속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왈! 왈!”

미미가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이곳은 우거진 산속치고는 제법 공간이 넓게 펼쳐진 곳이었다.

미미의 말마따나 이곳에서 싸우면 비교적 편할 것 같았다.

“그래, 시작할까?”

나는 본격적인 사냥에 들어가기에 앞서 ‘조철웅’ 특능으로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노근의인 중 세 번째.

‘의지’!

부와악-

의욕이 샘솟자 그런대로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몬스터를 불러낼 때이다.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있었던 위험한 물건, ‘운명의 목걸이’를 꺼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