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스킬 ‘일렉트로닉 스톰’을 얻었습니다.]
김철호의 필살기를 습득했다.
이것만으로도 오늘 싸움에 대해 어느 정도 보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이게 끝이 아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어휴, 이 레벨 업 메시지.’
그냥 좀 한꺼번에 레벨 ‘N’이 올랐다 하고 떠올라 주면 안 되나?
내가 인상을 찌푸릴 때 문득 발아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를 보니 작은 사이즈로 돌아간 박상구가 몸을 바짝 숙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내 압도적인 힘에 굴복하는 모션을 취하는 것을 보니, 역시 각성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을 낮추고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니?”
“파투! 파투!”
놈이 잊힌 축구선수 이름을 연속해서 말했다.
평소 단순히 월! 월! 짖기만 하던 녀석임을 떠올려보면 지금 말하는 게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파투. 겁먹지 않아도 된다.”
나는 놈의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녀석이 혀로 내 손바닥을 싹싹 핥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녀석 덕분에 방해받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싸움이 끝나가는 시점에 맞추어 몬스터를 죽여놓기까지 했다.
‘그나저나 박혜나는 왜 각성수를 키우는 거지?’
그 이유가 람바스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높은 확률로 람바스가 파프리카라는 귀여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으리라.
우리 파프리카는 매우 혈통이 훌륭한 각성수인데, 파투도 그냥 아무 데서나 굴러먹던 녀석은 아닌 듯했다.
파프리카에게는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지만, 웬만한 각성수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품종이 좋겠지.
‘그래도 그런 추레한 남자로 변신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박상구로 변신하는 것이 원래 내재되어 있는 능력인지, 아니면 박혜나가 부여한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에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우리 불쌍한 파프리카도 썩은 눈의 나로 변신해야 하기는 하지.
나는 왠지 각성수들의 처지가 안쓰럽게 느껴져서 파투의 머리통을 쓰다듬어주었다.
“월!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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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의 시체를 삼킨 채로 게이트가 닫혔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자동차 한 대가 다가와 앞에 섰다.
차창이 내려가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미미가 말했다.
“주군! 수고하셨어요! 얼른 타세요!”
하기야 사람들 눈에 띌 수 있는 장소에 오래 있으면 안 된다. 더구나 자그마치 S급 헌터를 죽인 참이니까.
나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탔다.
그나저나 대한민국은 이제 괜찮은 걸까?
세 명 있는 S급 헌터 중 두 명이나 죽어 버렸는데.
물론 놈들은 죽어 마땅한 사도들이기는 했지만, 일반인들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엄청난 짓을 저질렀네.’
내가 이것을 남 일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물론 S급 헌터로서의 책임감을 떠맡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S급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의무적으로 출동해야 하는 것만 빼면 책임보다 누리는 게 훨씬 많은 일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셨네요.”
미미가 내 패배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그 이유를 간단히 댔다.
“바보한테도 배울 게 있거든.”
뒤를 보자 멋들어진 외제 차 안으로 파투가 뛰어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박혜나도 현장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
어쨌거나 이로써 귀찮은 일 목록 하나가 제거되었다.
물론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거기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미미의 운전실력이 워낙 훌륭해서 조수석에 앉아서 가는데 솔솔 졸음이 왔다.
나는 참지 않고 바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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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당연하다. 시기적으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동안 두 명의 S급 헌터가 사라졌으니까.
죽었다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김철호의 상태가 ‘실종’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미미 그리고 박혜나의 현란한 술수가 발휘되었다.
그녀들이 꾸민 스토리는 이러했다.
오성택 게이트가 터지고, 많은 비리를 함께 저질렀던 김철호가 심적인 부담을 느껴 한국을 떠나 잠적했다는 것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을 국가가 관리하는 S급 헌터이니만큼 그 빈자리는 금방 티가 나게 되어 있다.
그전에 선수를 친 것이기도 했다.
모든 게 잘 마무리되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왜냐면 S급 헌터의 존재 유무, 그리고 숫자가 국력을 상징하는 세상이 된 후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거기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두 명의 S급 헌터가 사라진 데 대해 사람들은 크게 불안감을 느꼈다.
심지어 국보급 존재들에게 수사의 칼날을 들이댄 정부기관에 대한 성토들이 터져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국가는 S급 헌터들을 수사하지 않았다.
그저 켂튜브가 비리를 터뜨렸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언론사 몇 곳이 그것을 퍼 나르기 했을 뿐이었다.
세상이 들썩이는 동안에도 오성택과 김철호에 대한 수사는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사람들이 믿는 구석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이제는 어느 정도 잠잠해진 ‘제4의 헌터’가 있다는 썰.
켂튜브는 주가는 지금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그에 대한 관심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졌다.
그가 S급 헌터들이 비리를 터뜨린 데 대해 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제4의 헌터가 누구냐며 빨리 정체를 밝히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 퍼센트 긍정적인 반응만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구독자 수가 빠르게 늘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러고 버틸 수 있나?’
나 같으면 귀찮아서 자살하고 싶어질 것 같은데.
역시 관종은 타고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만…….’
그의 구독자 수는 200만이 되었고, 증가추세로 볼 때 300만도 곧 넘을 것 같았다.
‘돈은 많이 벌겠네.’
물론 나는 억만금을 주더라도 이런 관심은 싫었다.
제4의 헌터의 출현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에 불을 지핀 일은 더 있었다.
한국이 두 명이나 S급 헌터를 잃은 것을 지켜본 이웃 나라들이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
일본 정부가 선언했다.
-한국이 필요로 할 시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중국 정부도 발표했다.
-한국은 우리와 같은 역사를 공유했다. 우리는 한국에 호혜적 조치를 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이것은 개 같은 소리였다.
S급 헌터가 곧 국력인 세상이다 보니 이 기회를 통해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수작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라서 여기 숨겨진 속내를 읽어냈다.
그런 식으로 일본과 중국이 영향력 아래 집어넣은 동남아 국가들이 이미 적지 않은 것.
그러니까 제4의 헌터가 빨리 모습을 비치기를 발을 동동 구르면서 바라는 것이었다.
“흥!”
안 나설 거거든? 나는 가능한 한, 아니, 절대로 바깥에 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제4의 헌터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켂튜브가 치르는 유명세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을 통해 피해를 본 것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68
“아우, 이게 뭐야!”
이희진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쯤 들르는 자신의 팬 카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원래도 많은 가입자 수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것들은 왜 갑자기 자살을 하고, 잠적을 하고 지랄이야?”
이희진은 원래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고맙게도 대한민국의 다른 S급 헌터인 오성택과 김철호가 관종인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신은 관심을 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타고난 외모 덕분에 아무리 대외 활동을 적게 해도 웬만큼의 인지도는 있었지만, 현재 받고 있는 관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거실 안까지라도 쳐들어올 기세였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희진은 이런 상황이 절대로 달갑지 않았다.
‘왜 나한테 찾아내라는 거야?’
사람들이 팬카페에 올리는 상당수의 글은 그녀더러 ‘제4의 S급 헌터’를 찾아주라는 것이었다.
‘S급 헌터들이 서로서로 텔레파시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래도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그리고 하나 남은 S급 헌터는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리라.
‘뭔가가 있기는 있어.’
사실 그녀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4의 S급 헌터에 대해.
켂튜브의 동영상을 몇 번이나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왜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드러나길 꺼려하는 건가 싶어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제4의 S급 헌터가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인 듯했다.
‘숨어 있으면 꿀도 못 빨 텐데.’
아마 이 자는 S급 헌터가 국가로부터 얼마나 큰 혜택을 받는지, 그게 아니라도 마음먹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S급 헌터라는 걸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는 건 싫었지만, 그래도 S급 헌터라서 받는 혜택을 생각하면 불평할 수 없었다.
S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도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 맞다!”
그녀는 S급 몬스터를 생각한 뒤에 얼굴이 핼쑥해졌다.
“나 혼자 사냥해야 되잖아!”
이희진은 원래 몬스터 사냥을 즐기지 않았다.
왜냐면 맞으면 아프니까.
S급 몬스터는 엄청 강하다.
그래서 아무리 조심해서 사냥한다 해도 필연적으로 몇 방은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적극적으로 사냥에 가담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이 김철호에 미치지 못한다고 오해하고 있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냥한 S급 몬스터들을 생각하면…….’
이희진은 혼자서도 사냥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혼자 S급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몬스터 사냥이 경험치가 되어 헌터의 성장을 이끈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혼자 사냥할 경우 그 경험치를 혼자 독차지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아픈 건 싫단 말이야!”
이희진은 의자에 앉은 채로 소리를 빽 질렀다.
S급 헌터가 소리친 탓에 앞에 있는 모니터는 물론이고,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이 들썩거렸다.
‘대체 어떤 놈이길래…….’
원래는 관심이 없었다. 지가 나올 때가 되면 알아서 나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서 S급 몬스터를 사냥해야 할지 모른다는 절박한 상황을 자각하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 내가 정체를 밝혀주마!”
그녀는 제4의 헌터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