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19위 사도 ‘메테르’가 인근에 있습니다.]
‘사도라고?’
너무도 뜻밖의 메시지였기 때문에 나는 당황했다.
이런 메시지가 나타난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내게는 ‘사도 사냥꾼’이라는 특수능력이 있으니까.
‘누가 사도라는 거야? 박상구가?’
“왜 그러시나요?”
내가 빤히 바라보자 박상구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물었다.
아무리 봐도 이자는 사도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태도나 말투에서 뭔가 어색함이 묻어났다.
뭐라고 할까, 심하게 말하면 인간 같지가 않았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네? 뭐가 그렇다는 말씀이신지요?”
“연기 그만하시지.”
내가 그렇게 말한 대상은 박상구가 아니었다.
나는 박상구가 대동하고 나온 S급 헌터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궁금증이 풀렸다.
어떻게 박상구처럼 비리비리한 놈이 S급 헌터를 대동하고 나타날 수 있었는지.
사실은 반대로 된 것이었다.
박상구가 S급 헌터를 대동한 게 아니라 S급 헌터가 박상구를 대동했던 것.
“왜 그러십니까? 헌터님?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왈! 왈!”
이번에 나선 것은 파프리카였다.
귀여운 애완동물이 주인을 대신해서 나섰다.
짖는 것뿐 아니라 와락 달려들기까지 했다.
박상구에게.
박상구 놈은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을 수 없었다.
펑!
변장이 풀리면서 놈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두 마리 개가 뒤얽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왈! 왈!”
“월! 월!”
그렇다. 박상구는 원래 인간이 아닌 각성수였다.
그것도 파프리카처럼 개의 형태를 한 각성수.
다만 놈은 파프리카처럼 귀엽지 않고, 볼살이 축 늘어진 불독처럼 생겼다.
“왈! 왈! 왈!”
“월! 월!”
두 각성수의 신경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누구에게 승리가 돌아갈지는 처음부터 너무 빤한 일이었다.
곧 박상구로 변장하고 있던 불독이 고개를 슬그머니 숙이고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끼잉~”
“대단하시군요.”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왜지? 왜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 거야?”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S급 헌터인 본래 모습을 이용해서 일을 하면 지하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데도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기억이 안 나나 보군요.”
여자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온갖 감정이 다 느껴졌다.
미움, 후회, 한탄, 그리움…… 그리고, 사랑……?
‘뭐야, 이게?’
그녀의 눈빛을 보다 보니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당연히 인간 조철웅의 기억이 아니었다.
잠재되어 있는 람바스의 기억.
칭호 ‘사도 사냥꾼’의 효과로 잊혀졌던 오랜 기억이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으음…….”
내 눈은 앞으로 보고 있지만, 의식은 먼 곳에 가 있었다.
손으로 회를 한 점 집어 먹고, 술을 한 잔 쭉 들이켰다.
왠지 술이 들어가지 않고는 쉬이 넘길 수 있는 영상이 아니었다.
“아아…….”
왠지 귀찮아졌다.
람바스는 물론이거니와 나 조철웅도 이런 상황에는 익숙지 않다.
나를 사랑하는 여자라니.
엄밀히 말하면 내가 아닌 람바스를 사랑했던 여자이지만, 지금은 내게 람바스의 기억이 빙의한 상태이므로 차이가 없었다.
이 여자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조철웅이 아닌 람바스를 보는 눈빛이었다.
“이렇게 부활하셨군요.”
“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역시 이런 데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미미에게 맡기고 호텔 방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보는데, 이럴 수가 그녀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활활 전투력을 불태우면서 여자 메테르를 보고 있었다.
‘젠장.’
나는 스킬 ‘인내심’의 효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느끼고 ‘근성’을 이어서 발동시켰다.
그러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끈질긴 인연이네요.”
미미가 말했다.
“그러게. 짜증 나게 너는 언제나 람바스 님 옆에 붙어 있구나.”
“당연하죠. 제가 있어야 할 곳은 람바스 님 바로 옆이니까요.”
“흥!”
메테르가 자기 앞에 있는 술잔을 들어 그 안의 술을 쭉 들이켰다.
“람바스 님. 어때요? 이제는 제가 생각나신 모양인데.”
“응, 생각났어.”
여기에는 다소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본래 19위 사도 메테르는 조직의 지령을 받고 람바스를 죽이러 왔다.
모략이 주특기인 그녀는 정체를 숨기고 접근해 람바스의 약점을 캐내려고 했지만, 어떤 일인지 그의 압도적이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그 과정에는 여러 단계의 일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 일은 큰일이었다.
사도 중 하나가 조직을 배반하고 적에게 붙은 거였으니까.
하지만 모략의 대가 메테르는 사도 조직을 속였다.
그 안에서 스파이가 되어 람바스에게 핵심 정보를 전해주기도 했다.
그것은 끝까지 성공적이었지만, 그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회한의 시간을 보낸 끝에, 메테르는 한국에서 람바스의 환생이라고 할 수 있는 나를 만난 것이었다.
“제 현재 이름은 박혜나예요. 어머니가 한국분이고, 아버지는 독일인이죠. 어머니가 원래 지하시장에서 한 가락 하는 사람이었고 딸인 제가 그것을 물려받아 키웠다. 뭐, 대충 스토리가 이렇게 되는 거죠.”
사도는 인간에게 빙의했을 뿐이다.
사도가 빙의한 인간은 자기 안에 사도가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때가 되면 그것을 각성하고 본격적인 사도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
하지만 메테르, 박혜나는 자기가 사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또한 그녀의 비범한 능력을 방증하는 부분.
“람바스 님이 저를 책임지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람바스 님이 왜 너를 책임져야 하는데?”
미미가 발끈하여 반발했다.
그래.
왜 내가 너를 책임지는데?
나는 나조차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다.
미미와 미나, 그리고 파프리카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하루하루 게으른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저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박혜나가 한탄 섞인 음성으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아직 사도의 기억을 각성한 자는 극소수예요. 하지만 제 행적이 수상하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활동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요. 이제 이렇게 람바스 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저를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왜……!”
나는 미미를 저지했다.
“아니야, 미미.”
아직 스킬 ‘근성’이 발동 중이라 그럭저럭 메테르와 람바스의 사연, 그리고 람바스가 그녀를 어떻게 여겼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그리 귀찮지 않았다.
람바스는 물론 그녀의 사랑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일말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미안함도 함께.
그 감정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도 그의 기억과 능력을 물려받은 자의 사명이 되어버렸다.
귀찮기는 하지만 나는 박혜나를 마냥 모른 척하면 안 되었다.
“우리는 협상을 하러 온 거잖아. 얘기를 들어보자. 이건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야. 일이 잘 풀리려고 우리 편을 만난 거잖아.”
“오…….”
박혜나의 눈이 커졌다.
“람바스 님, 달라지셨군요.”
그녀의 눈이 촉촉해졌다. 나는 그 눈빛을 피했다.
책임감과 사랑은 별개의 감정이다.
제발 그녀가 그 부분을 착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했다.
“음, 역시 주군이세요. 제가 너무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웠습니다. 죄송합니다.”
미미가 반성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필요 이상으로 진지한 것 같아서 말했다.
“아니, 메테르가 사도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네가 잘못한 건 없어. 하지만 메테르가 스스로 고백했다시피 사도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야. 그러니까 같은 편인 우리가 도와줘야지.”
“네…….”
박혜나가 말했다.
“이제 람바스 님을 만났으니 저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앞으로 한국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만큼은 람바스 님이 승리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미미는 박혜나가 한국에 남겠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개인적인 감정만 앞세울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그러면 부탁이 있어요.”
미미가 한 장의 종이를 꺼내었다.
거기에는 빼곡히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나는 전에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바로 보구를 만들기 위한 레시피.
‘……그렇구나!’
박혜나는 한국의 블랙마켓을 장악하고 있느니만큼 아이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즉, 내가 힘들게 재료를 하나하나 모을 필요가 없다는 뜻.
‘엄청 잘됐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박혜나는 천천히 목록을 보았다.
“다른 것은 다 구할 수 있어. 그래도 이건 안 돼.”
그녀가 콕 집은 것은 목록의 가장 하단에 있는 재료였다.
레시피에 빠져서는 안 될 핵심재료.
종이에는 ‘헤타리로스의 혀’라고 적혀 있었다.
당연히 S급 몬스터다.
‘……역시 안 되는구나.’
아무리 블랙마켓이라도 S급 몬스터의 재료는 쉽게 구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S급 몬스터의 사냥만큼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닌 듯했다.
“이것만 빼고 나머지는 금방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건 다른 문젠데…….”
박혜나는 나를 보고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김철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 맞다. 김철호.
그는 블랙마켓을 장악하는 문제로 오성택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고 했다.
오성택이 사라진 지금 그가 직접 블랙마켓을 접수하러 나설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도 사도입니다.”
박혜나가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을 알려주었다.
“저조차도 놈을 상대하는 것이 내심 꺼려졌었어요. 김철호 대신 오성택과 손을 잡은 것도 그를 컨트롤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이죠. 김철호는 눈이 뒤집히면 자기 감정을 가누지 못하는 놈이에요. 그런 사도가 빙의해 있죠.”
그렇게 말한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래도 이제는 걱정 없겠죠? 람바스 님이 계시니까.”
아아, 귀찮은 일이 끊이지를 않는구나.
내가 해치워야 할 큰일 두 가지가 업데이트되었다.
하나는 S급 몬스터 헤타리로스를 사냥해 새 보구 재료를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철호, 더 정확히 말해 놈에게 빙의한 사도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잘됐네요, 주군. 한국 블랙마켓을 접수하는 일이 이렇게 쉬울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어요.”
미미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블랙마켓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박혜나지만, 그녀가 내게 충성하는 상황이니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 긍정적인 측면도 있구나.’
내가 직접 블랙마켓을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고무적이기는 했다.
‘좋게 생각하자.’
나는 회를 한 점 더 입에 넣었다.
어쨌거나 음식은 진짜 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