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와.”
효과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즉각적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람바스식 무기술’을 초급에서 중급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이번에 고급으로 등급 업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엄청 짧았다.
‘역시 노력은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구나.’
뭔가 예전에 깨달았으면 좋았을 법한 사실을 지금에야 깨달았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예전의 나는 무식하게 양으로 밀어붙이자는 타입이어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일단 행동부터 하고 보았으니까.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면 내 아픈 개인사를 들추는 것밖에 되지 않으므로 그만 생각하기로 하고.
내가 영상을 보면서 얻은 느낌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뭔가 알 듯 말 듯한데?’라는 쪽의 느낌에 가깝다.
그런데도 불쑥 람바스식 무기술이 고급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뭐랄까?
오성택의 총기술을 습득할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술의 요체’라는 것은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한없이 복잡하다.
오성택에게 멋들어지게 총알을 날려 제압한 나로서도 그 내용을 설명하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얘길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마나의 술식을 해제(解題)하는 적당한 용어가 한국어에 없기도 하고.
스포츠의 천재가 몸으로 고급 기술을 터득하는 것처럼, 혹은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감으로 체득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뭐, 등급이 올랐다니 그런 거겠지.’
이것은 나중에 실전을 치르거나 훈련을 하면 더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소파에 누운 채로 계속 동영상을 보았다.
‘……재밌네?’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감상이었다.
내가 훈련하는 영상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다니.
솔직히 어지간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흥미로웠다.
물론 무기를 써서 몬스터를 제압하는 단순한 장면은 얼마 가지 않아 싫증이 날 법했지만, 내 머릿속에 휘도는 영감은 그보다 몇 배나 더 자극적인 것이었다.
뭔가 가려운 부분을 벅벅 긁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든다.
심지어 가렵다고 의식하지도 못했던 부분을 긁는 느낌이다.
40여 분 분량의 영상을 계속 시청하던 중에 나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특수능력 ‘채찍술(고급)’을 얻었습니다.]
“허허!”
이것 봐라?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복습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다.
슬쩍 복습하는 것만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특능 습득을 해버렸다.
‘람바스식 무기술’이 고급으로 올랐기 때문에 무기에 관련한 다른 특능을 습득하는 것도 쉬워진 걸까?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인 연관도 없어 보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오성택과 싸울 때 ‘총기술’을 습득한 것도 ‘람바스식 무기술’이 중급 단계일 때였으니까.
성과를 얻게 되니 복습하는 것이 더 재밌어졌다.
심지어 나는 영상을 끝까지 본 다음에 다시 한번 재생하는, 불과 한 시간 전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행동을 했다.
두 번째 시청할 때는 재생속도를 두 배로 올렸다.
영상이 절반쯤 흘러갔을 때 설마 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수능력 ‘검술(고급)’을 얻었습니다.]
“하하하.”
뭔가 전국의 범상한 헌터들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천재인 것도 정도껏 해야지.
괜히 우주 최고의 재능이 아니구나!
오성택이 장기로 삼았던 총기술, 그것을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습득하고 나서 그와 비슷한 수준의 특능인 ‘고급 채찍술’과 ‘고급 검술’을 얻었다.
‘람바스식 무기술’이라는 진정한 사기 능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는 순식간에 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따라올 자가 없는-조금 잘난 척하는 것 같지만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헌터가 되어버렸다.
“후후후.”
재미있네.
복습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몰랐다.
‘그래도 이것으로 끝.’
아무리 복습이 재밌다고 해도 두 번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훈련시설에 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람바스는 우주 최고의 천재인 동시에 우주에서 최고로 게으른 인간이었으니까.
그의 성정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나는 이다음에 하게 될 훈련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얻을 것을 다 얻었으니 또 다른 뭔가를 얻으려고 하면 시간이 더 걸릴 뿐 아니라 머리까지 굴려야 한다.
당연히 그것은 재미없는 일이었다.
재미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시간을 투자할 만큼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노근의인’ 스킬을 쓰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 스킬을 쓰는 동기부여 자체가 안 된다면 말짱 헛일.
’잘됐네.‘
훈련으로 얻으려고 했던 성과를 하루 만에 다 얻었으니 이제 마음 편히 쉬면 되겠다.
핸드폰에 새 게임이나 다운받아야지.
돈이 많으니 현질에도 부담이 없었다.
61
이틀 뒤, 호텔 방에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소파에 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처음 보는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미미가 문을 열어주고, 제법 반가운 얼굴로 안에 들이는 것을 보니 완전히 타인 같지는 않은데, 나는 그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주거공간에 침입했다는 것은 나처럼 귀찮음을 기본 성정으로 탑재한 사람에게는 난처한 일이었다.
빨리 꺼져줬으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더니, 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표정을 구겼다는 의미의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얼굴이 찌그러진 것.
뭉크의 <절규>처럼.
확 찌그러졌던 남자의 얼굴이 곧 다시 반듯하게 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아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이택수.
오성택의 하수인이었고, 이제는 미미가 건 주박에 걸려 가외 노예로 활동하고 있었다.
‘신기하네.’
얼굴이 찌그러졌다가 펴지면서 용모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것은 매우 신기하고 재밌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미미나 이택수는 설명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나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으므로 묻지 않았다.
아마도 미미가 이택수에게 빙의시킨 악마의 영혼과 관련된 현상이겠거니 추측할 뿐.
‘그렇구나.’
이택수가 얼굴을 변형한 이유는 빤했다.
그는 뉴스에 제법 이름과 얼굴이 자주 등장할 만큼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으니까.
일반인들은 그가 오성택의 유서를 제공한 인물이라고만 알고 있고, 그 이상은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오성택이 발을 담그고 있던 세계가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성형보다 훨씬 낫고, 많고 많은 헌터의 능력 중에도 똑같은 능력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보았으므로 누군가의 의심을 받을 확률도 없을 것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인물이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귀찮음이 해소되었지만, 그렇다고 빨리 사라져주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친하지 않은 인물이 한 공간 안에 있으면 편하게 쉴 수가 없다.
나는 일백 퍼센트의 완전한 빈둥거림을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불만족스러웠다.
귀찮은 상황을 무시하기 위해 소파의 등받이 쪽으로 몸을 돌렸더니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내용의 일부가 귀에 담긴다.
요약하자면 어떤 중요한 인물과 만날 약속이 잡혔다는 것 같은데…….
‘거래’라는 단어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게이트 안에서 이택수가 곤란해 했던 내용.
즉, “이것은 며칠 뒤에 거래 대금으로 쓰일 돈입니다.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큰 곤욕을 치르고 말 거예요.”라고 했던 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듣자 나도 관심이 생겼다.
왜냐면 게이트 안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궁금했었으니까.
과연 대한민국 안에서 최고 권력을 누리고 있던 오성택에게 곤욕을 치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
얼추 대화의 흐름으로 짐작건대 연락이 닿았다는 사람이 바로 그 인물인 것 같았다.
미미는 그 사람과 만나려고 하는 것 같고.
‘안 돼!’
어렵사리 ‘제4의 헌터’가 사람들의 주된 관심에서 사라졌고, 오성택이라는 성가신 사도까지 물리쳤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왜 자꾸 귀찮은 일거리를 만드는 걸까?
대한민국에 단 세 명밖에 S급 헌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오성택이 죽었지만 내가 있으니 그대로 세 명-, 그리고 오성택과 거래를 하려고 했던 인물이 김철호나 이희진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만약 그랬다면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론했을 테니까.-굳이 그 인물을 만날 필요가 없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주된 사명은 사도들을 제거하는 것이고, S급 헌터가 아니라면 사도일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 이하의 악마들은 죽이든 말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빗나가길 바랐던 내 불안은 그대로 적중했다.
“주군~”
못 들은 척 외면하는 나를 미미가 더욱 달콤한 목소리로 불렀다.
“주구운~?”
그래도 못 들은 척했더니 짐짓 슬픈 목소리를 꾸며냈다.
“주군은 저와 파프리카만 사지(死地)에 보내실 생각이군요. 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주군을 위해 바쳤던 저의 시간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어요. 주군이 죽으라면 이 한목숨 희생하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답니다.”
“아앗, 진짜!”
나는 결국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 기세에 이택수가 움찔 놀라 몸을 움츠렸다.
빙의된 영혼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미미와 달리 그는 내게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품은 듯했다.
어쩌면 그도 당연한 일.
그의 입장에서는 최강자라고 생각했을 오성택이 바로 내 손에 쓰러진 거니까.
그것도 오성택의 필살기를 고스란히 되돌려 힘 대 힘으로 제압해버렸다.
추리닝을 입고 귀찮은 표정을 한가득 짓고 있는 내가 그의 눈에는 악귀로 보일 터였다.
미미는 자신과 파프리카만 사지로 보낼 생각이냐고 했지만, 실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다수 가지고 있는-정확한 등급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웬만한 S급보다 뛰어나리라고 생각한다.-출중한 헌터이고, 파프리카조차 ‘킹 오브 각성수’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이런 콤비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과연 존재할까?
이 콤비를 죽이려면 김철호와 이희진이 태그를 형성해서 덤벼야 할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주군’이라고 불리는 입장에서, 그녀의 볼멘소리를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다.
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이 애틋한 마음.
나는 귀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그놈이 누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