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지금 미미에게 요구하는 것은 왜 이택수에게 오성택의 유서-조작되었을 게 분명한-를 공개하게 했느냐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켂튜브 이야기를 꺼내다니.
켂튜브 소리를 들으니 새삼 위장이 쓰려 오는 기분이다.
그가 올린 동영상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또 그 문제가 아직 해결된 게 아니라는 것에 생각이 이르자 대한민국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여생-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많이 남았지만-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하지만 미미는 누가 뭐라 해도 신뢰할 수 있는 부하 내지는 동료이기 때문에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네거티브한 소식을 전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영상은 오성택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거야?”
“네.”
“나하고는 관련이 없고?”
“네.”
오오…….
켂튜브의 새 동영상이 나와 관련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눌려 있는 체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방심은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물어보았다.
“언제 올라오는데?”
그녀는 거실에 걸린 시계를 쓱 보더니 대답했다.
“아! 지금쯤 올라왔겠네요. 저도 봐야겠어요.”
미미는 여유 있게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에 접속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소파로 가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뒤 핸드폰을 들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게 이상한 일이긴 한데…….’
‘제4의 S급 헌터’라는 엄청난 이슈를 터뜨리고 한동안 잠자코 있는다는 것은 관심을 생계수단으로 삼는 유튜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뒤로 미미에게 켂튜브가 우리의 ‘입’이 될 거라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흥미롭네.’
새 동영상이 나와 연관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관심이 돋았다.
게다가 내가 직전에 죽인 오성택과 연관이 있다면…….
켂튜브 영상은 따로 검색할 것도 없이 인기 동영상으로 첫 페이지에 나타났다.
업로드 시간을 보니 불과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조회수는 15만.
‘대단하구만.’
이 정도면 가히 그 어떤 미디어보다도 파급력이 강하다고 할 만하다.
미미의 말마따나 그를 ‘입’으로 삼을 수 있다면 엄청난 무기를 얻는 것과 같으리라.
유튜브 채널이니만큼 콘텐츠의 내용에 거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큰 장점이 있었다.
업로드 시간과 조회수가 첫 번째로 관심을 끌었다면 그다음 눈길이 가는 것은 영상의 제목이었다.
-오성택, 신의 얼굴을 한 악마 (1)
“우와…….”
오성택의 실체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흥미가 확 생겼다.
나처럼 그와 직접 주먹을 맞댄 사이가 아니라도 장안의 화제인 S급 헌터에게 ‘신’이니 ‘악마’니 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가질 만했다.
적어도 손가락을 움직여 터치할 만은 하다.
TV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제4의 S급 헌터’ 콘텐츠에서 그 실력을 증명했으니까-그 전에도 나름 실력발휘를 했겠지만, 개인적 관심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제목 옆에 보란 듯이 (1)이라고 쓰여 있어서 다음 편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짐작게 했다.
나는 영상을 터치했다.
그리고 흘러나온 내용은…….
‘오오!’
이번 영상도 한 시간이 조금 넘도록 편집되었고, 쓸데없는 잡설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지난번에 영상을 볼 때와는 다르게 거의 스킵을 하지 않고 끝까지 보았다.
뭐랄까?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개인이 이런 이슈를 제공할 수 있는지.
이 정도면 가히 공중파 방송이 몇 달 공을 들여 탐사 보도를 한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영상기술이나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은 덜 세련되었지만, 영상에 담긴 내용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아니면 누군가 결정적 제보를 한 것이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나이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진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켂튜브를 우리의 ‘입’으로 삼겠다고 말한 미미.
그녀는 바로 얼마 전 나와 함께 오성택을 죽였다.
이택수로부터 정보를 캐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퍼즐이 맞추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미미를 흘긋 보았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다.
마치 ‘녀석, 제법인데?’ 하고 뿌듯해하는 얼굴.
궁금한 것은 많지만 왠지 말을 거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뭐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적어도 그녀가 내게 불리한 일을 할 리는 없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기로 하자.
켂튜브가 이번에 터뜨린 것은 오성택이 저질러왔던 비리였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권을 누려왔는지.
단순 의심이 아닌 구체적 증거를 들어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그 내용이 굉장히 방대하고 구체적이어서, 확실히 한 시간짜리 영상에서 모든 걸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2편을 예고한 내용에는 오성택과 함께 이익을 챙긴 인물들의 실명과 죄악을 털어놓겠다고 선포했다.
개인이 유튜브에서 터뜨리기에는 후덜덜한 내용.
이택수가 제공한 유서를 바탕으로 추측만을 늘어놓은 공중파 뉴스와 비교하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겠구나.’
이 정도면 제4의 S급 헌터 운운하는 이야기가 쑥 들어갈 만했다.
물론 오성택도 같은 S급 헌터이고,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또 한 명의 S급 헌터가 대한민국에서 각성했으면 하는 염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번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왜 이택수에게 오성택의 유서를 공개하게 한 거지?’
조작된 유서의 내용과 켂튜브가 터뜨린 비리 사이에는 크나큰 갭이 있었다.
이 두 가지를 미미 한 사람이 기획했다고 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감탄을 터뜨렸다.
“아…….”
죄책감이니 부담감이니 하는 소리를 하고 자살을 한 사람이 실상 죄라는 죄는 다 저지른 개새끼였다면.
거기서 오는 심리적 간극과 파급력은 훨씬 커질 것이다.
한편으로 주류 미디어와 개인방송 간의 정보력 차이를 두드러지게 해서-기본적으로 주류 방송 시스템이 개인방송의 그것에 뒤질 수가 없으므로-그들의 무능과 불법 커넥션을 의심하게 만든다.
한 마디로 대중이 주류 미디어를 거부하고 켂튜브를 더 신뢰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켂튜브에게 힘을 실어주는 전략이었다.
오성택을 살해한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음…….’
나는 핸드폰을 놓고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대한민국은 당분간 엄청난 게이트로 술렁이게 되겠지만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
그럼에도 왠지 불길한 기분은 쉽게 떨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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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TV만 틀면 오성택 관련 뉴스가 나왔다.
하지만 호텔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는 그것들과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TV를 켜지 않으면 되고, 인터넷 기사를 읽지 않으면 된다.
대중에게는 대단히 개탄스럽고 한편으로 흥미로운 뉴스거리겠지만, 바로 얼마 전에 오성택을 죽이고 내 존재가 세상에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했던 입장으로서는 모든 게 귀찮을 뿐이다.
갑론을박이 끝나고, 범죄자들이 처벌을 받을 때까지는 아마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제대로 처벌을 받고, 일부는 요령 좋게 빠져나가겠지.
상황이 정리되고 난 뒤에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면 되는 것이다.
미리 기운 뺄 필요가 없다는 뜻.
TV와 핸드폰을 멀리하다 보니 무료함이 찾아왔다.
그 무료함을 달랠 수단으로 떠올린 것은 어이없게도 훈련.
내 머릿속에는 지난번 오성택과 싸웠던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하늘에 떠올라 얍삽하게 총을 쏘아대던 놈의 모습과 그런 그의 능력을 카피해-엄밀히 말하면 능력을 복사한 것은 아니지만, ‘분석’ 특능으로 능력을 간파하고 내 것으로 흡수하는 데 걸린 시간이 엄청나게 짧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렇게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상황을 역전했을 때의 짜릿함.
내가 쏜 총알이 오성택이 쏜 총알을 덮어버릴 때는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이런 감각은 람바스의 것이라기보다는 본래의 나를 통해 느낀 감정일 터.
이전의 내 삶은 노력한 대로 이루어진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스스로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자위하며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노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내 열정이 언젠가는 빛을 보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내 안에 누적된 실망감과 허망함이 너무 컸다.
솔직히 잘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보다는 내 삶은 그럭저럭하게 흘러가다 끝나겠지 하는 막연한 예상-어쩌면 확신-이 더 컸다.
하지만 람바스의 능력을 이용해 대한민국을 호령하던 S급 헌터를 제압하던 순간에 느꼈던 희열이란!
다시 한번 같은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 뒤로 쭉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람바스의 능력을 품고 있는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할 것이기도 하고.
당장 또 다른 사도를 찾아 능력을 시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연스럽게 훈련을 통해 잠재력을 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배자의 손아귀’를 얻은 뒤로 무기술을 익히는 데 주력했지만, 오성택과의 싸움에서 그것 이상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능력을 분석한 결과 ‘고급 총기술’ 특능을 얻었으니까.
내가 총기술을 얻는 순간에 떠올린 것은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무기를 다루는 데에도 나름의 요체가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또 다른 특능을 연속해서 얻는 것도 가능하리라.
“훈련하러 가자.”
미미에게 말을 걸었더니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주군!”
“응? 웬 감사?”
“주군이 짧은 시간에 이토록 크게 성장하실 줄은 몰랐어요. 저는 오랫동안 람바스 님을 섬겼지만, 이제는 주군에게서 그분과는 또 다른 아우라가 보여요.”
어이쿠!
이렇게 쑥스러운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다니.
나는 다소 무뚝뚝하게 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맘 바뀌기 전에 빨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