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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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가 게이트 안에서 유일하게 살려준 남자의 이름은 이택수였다.
능력으로만 보면 가장 먼저 죽었어야 할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는 게이트 안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현금성 자산을 꺼내 놓았고, 그 밖의 자산을 토해내기 위한 인질이 되었다.
나는 미미의 일 처리 솜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굳이 그를 살려두지 않았을 텐데.
물론 내가 엄청나게 게으른 성정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내 사고방식도 그리 노멀하다고 볼 수 없지만.
미미가 이 정도로 유능한 부하가 된 것에는 람바스의 게으름이 한몫 톡톡히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강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고 할까?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미미는 람바스가 내게 남겨준 훌륭한 자산임이 분명했다.
‘자산’이라고 하니까 오성택과 게이트에서 싸움을 치른 이후로 재산이 엄청나게 늘었다.
S급 몬스터 사체를 통째로 처리한 수입의 세 배를 받아낸 것만으로도 큰돈을 번 것일진대, 이택수가 게이트에서 꺼내 놓은 돈은 거기 그치지 않았다.
그는 거의 울먹이면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
“이것은 며칠 뒤에 거래 대금으로 쓰일 돈입니다.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곤욕을 치르고 말 거예요.”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파프리카의 등에 누워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을 때였다.
딱히 이택수가 뭐라고 하든 관심이 없었지만 ‘곤욕을 치르게 된다’는 부분이 이상했다.
오성택이 뭔가를 거래하고 그 대금을 치르려고 했다는 것은 특별할 것 없지만, 누가 감히 대한민국에서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S급 헌터에게 곤욕을 치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신용 면에서 최고일 것이고, 만약 곤란한 상황을 만난다고 해도 살짝 주먹을 들어 보여주면 얘기가 끝날 텐데.
‘음…….’
나는 람바스의 능력을 이어받아 하루아침에 먼치킨이 되었지만, 냉정히 따지면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이쪽 바닥에 대해 아는 것이 극히 적다는 뜻.
‘S급 헌터도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구나.’
내가 이택수의 말로부터 얻은 감상은 이게 전부였다.
그다음은 정말로 귀를 닫아버렸으니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신기한 것은 내가 미미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을 때도 여전히 이택수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 환장한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상황에서는 그를 죽이는 게 맞다.
오성택을 비롯한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고, 본인의 의지야 어찌 됐든 나를 죽이는 일에 가담했으니까.
어떤 식으로 따져보아도 죽어 마땅한 그가 미미의 자비로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물론 이 경우에 마냥 멀쩡하다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파프리카의 등에서 내려와 정면에서 마주한 그의 표정은 다소 멍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무척 지친 얼굴이기도 하고.
그것에 대해 미미가 설명했다.
“주술을 걸어두었어요. 성격 나쁜 악마의 영혼을 빙의시켰죠. 지금은 억제할 방법을 마련해두었지만, 우리 말을 거역할 때는 그것을 해방할 생각이에요. 그러면 죽는 게 낫다고 여겨질 만큼 고통을 겪게 되겠죠.”
“…….”
나는 미미가 이근수를 어떻게 처리했었는지 떠올렸다.
그녀는 적이라고 간주한 상대에게는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이택수를 보면 이근수는 그나마 내 자취집에서 오줌을 지리고 바짝 쫄아서 쫓겨난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택수의 얼굴을 보자니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모종의 ‘악몽’을 겪은 얼굴.
미미의 말에 따르면 기존에 있던 각성 영혼을 쫓아내고 다른 헌터에게 있던-일부는 소멸했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던전 안에 떠돌고 있었다.- 것 중 가장 악랄한 영혼을 이택수에게 빙의시켰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악마의 영혼이 난폭해지도록 모종의 작업을 한 것 같은데, 자세한 메커니즘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로써 이택수는 완전히 미미의 노예가 되었다.
아마 손오공이 삼장법사로부터 씌워진 주박보다 강도가 셌으면 셌지,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돈은 충분히 있잖아?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이 자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오성택은 이 나라의 블랙마켓을 장악하고 있었어요. 그것도 사업 규모를 전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하고자 판세를 점점 키워가고 있었대요. 이제 오성택이 죽어버렸으니 그걸 관리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노릇이잖아요?”
“……그래?”
그게 왜 아깝지?
전 아시아 지역에 세를 뻗치고 있는 블랙마켓 따위에 관심을 가졌다가는 귀찮은 일이 셀 수도 없이 발생할 게 분명하다.
미미가 학업에 의욕이 없는 학생을 타이르듯 내게 말했다.
“주군. 암시장을 장악해 세상을 집어삼키는 것은 사도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에요. 우리가 그곳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놈들과 대면할 기회가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그러면 주군이 모든 사도를 처치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시게 될 날도 더 빨리 올 거예요.”
“으음…….”
암만 그래도 귀찮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반론 따위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미미의 표정을 보자니 그 말이 쑥 들어갔다.
당장은 미미와 언쟁을 벌이는 일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내가 이길 것 같지도 않고.
“이제 어쩔 거야?”
나는 이택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반쯤 영혼이 가출해 있어서 무슨 말을 해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미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호텔로 데려갈 수는 없으니 가외 활동을 시켜야죠. 우리와 떨어져 있어도 배신은 못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미미가 직접 처리한 일에 빈틈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외 활동’을 하게 만든다는 말에서 국사 시간에 배웠던 ‘가외 노예’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되어 있으면서 주인에게 일정한 노동력과 경제적 대가를 제공하는 노예.
내가 주군이라고 불리는 입장이다 보니 그것이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뭐, 상관없지.’
일단은 시체들이 널브러진 게이트 안에서 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복잡한 일은 유능한 참모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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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두 시간을 자고 일어났을 때-원래는 24시간을 목표로 잠을 청했는데 일어나 보니 그 절반의 시간밖에 흘러 있지 않아 실망했다.-세상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된 이유는 미미가 보란 듯이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보자니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자각이 됐다.
대한민국에 세 명밖에 없는 S급 헌터 한 명을 죽였다.
물론 제4의 S급 헌터가 있으리라는 의혹이 불거졌고, 그것이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지만, 어쨌거나 사건이 터지자 언론은 ‘세 명밖에’ 되지 않는 S급 헌터 중 하나가 죽었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이것으로 소기를 목적이 달성되었다.
오성택의 사망 뉴스로 내 존재가 알려지는 위험을 막겠다는.
하지만 뉴스의 마지막에 앵커가 덧붙인 말 때문에 세상일이 모두 뜻대로 호락호락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했다.
“대한민국은 S급 헌터라는 소중한 자산을 상실했으며, 이로써 이 나라의 몬스터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빨리 새로운 S급 각성자가 나타나서 몬스터 안보에 생긴 빈틈을 메꿀 수 있었으면 한다는 개인적 바람을 가져봅니다.”
앵커가 개인적인 바람으로 뉴스를 끝맺지 말란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앵커의 말대로 S급 헌터가 죽었다는 것은 단순 가십거리로 끝날 문제가 아니니까.
일 년에 몇 번밖에 안 되지만 S급 몬스터는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고, 그것을 사냥할 수 있는 것은 S급 헌터들뿐이다.
대한민국에 세 명밖에 없던 S급 헌터 중 한 명이 죽었으니, 일반 시민으로서는 불안을 느끼고 그 숫자가 빨리 채워지길 바라는 게 당연한 일.
공교롭게도 오성택이 죽기 직전 대한민국에 제4의 S급 헌터가 각성했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불행한 일이 이어지리라는 예고와도 같았다.
‘미친.’
왜 이렇게 문제가 끊이지 않는 거지?
나는 그냥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놀고 싶은 마음뿐인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적게 벌어서 많이 놀고 싶은 마음뿐이다.
앵커의 쓸데없는 마무리 멘트와는 별개로 오성택의 죽음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가 갑자기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더구나 대외에 알려진 그의 사망원인은 ‘자살’이었다.
그의 비서였던 이택수가 유서를 공개했으며-그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더구나 오성택이 이렇게 빨리 게이트에 들어가 자살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거기 적힌 내용 중 일부 공개된 부분에 따르면 오성택은 죄책감과 부담감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죄책감과 부담감.
던져진 키워드를 놓고 벌써 언론은 많은 추측들을 내놓았다.
주된 추측은 최근 그에게 쏟아진 관심이 부담이 되었을 거라는 것이었다.
켂튜브는 S급 몬스터를 최단시간에 사냥한 것이 오성택이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았으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오성택에 대한 의심과 비난으로 연결될 것이었다.
아직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S급 헌터는 특수한 지위를 보장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놓고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약간 비약일 수 있으나, 어쨌거나 오성택이 센서티브한 양심을 가진 존재라고 가정한다면-당연히 틀린 가정이지만-자신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몰락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살을 택했다고 해도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추측 역시 내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오성택이 S급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사냥한 것은 제4의 S급 헌터라는 이야기가 되니까.
‘어휴…….’
조금 쉴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상황이 더욱 꼬이는 모양새다.
‘그나저나 유서라…….’
이 일을 꾸민 것은 다름 아닌 미미일 게 분명하다.
지금 이택수는 그녀의 가외 노예가 되었으니까.
내 원망스러운 시선을 의식했는지, 미미가 돌아보고 방긋 웃음을 지었다.
“어휴…….”
원망과 동시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미미는 무턱대고 일을 크게 벌리는 타입이 아니니까.
분명 생각한 것이 있어서 오성택의 유서를 만든 거겠지.
내 궁금증을 읽은 미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켂튜브의 새 동영상이 업로드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