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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34화 (34/160)

▣ 34화

“하하하! 어때? 힘들지? 어디서 근본 없는 새끼가 나와서 지랄하고 난리야, 지랄을!”

하늘을 날고 있는 오성택은 아주 기고만장했다.

내가 날리는 총알은 그에게 닿지 않을 뿐 아니라 위력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명확했다.

이대로만 가면 오성택의 승리.

더구나 그에게 나는 코너에 몰린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방패를 앞세운 채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것은 이 상황이 답답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나는 ‘분석’을 사용하기 직전에 오성택을 떨어뜨릴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을 떠올렸다.

아직 실전경험이 부족해 순간적인 응용력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전투를 치를수록 내 안에 축적되어 있는 람바스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발현되었다.

수치화할 수 있는 게 아닌 감각적인 부분이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오성택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부분은 이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이었다.

‘분석’을 사용하니 오성택이 가진 능력의 요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마나탄의 위력을 줄이지 않고 총알을 쏠 수 있는지.

이것은 람바스가 치렀던 무수한 전투기술과 융합되어, 그리고 그가 가진 엄청난 재능과 결합하여 정답을 도출하고 있었다.

요체만 알면 그것을 습득하는 것은 쉽다.

일반인이라면 이론과 실전과의 간극이 크겠지만,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먼치킨에게는 그 차이가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군…….’

“하하하! 뭣도 아닌 게 능력 좀 얻었다고 깝치기는, 이 근본 없는 새끼가!”

이빨을 절반이나 잃은 주제에 오성택은 잘도 떠들어댔다.

눈이 새빨개진 채 등 뒤로 붉은 아우라가 드러난 것이, 사도의 영향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사도가 헌터를 완전히 집어삼키지 않는 것은 일종의 제약이 걸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 개인의 방종이 허락되지 않는 형태의.

나는 나름대로 도출한 답을 실습하기 위해 ‘지배자의 손아귀’에 마나를 주입했다.

이 보구는 내가 상상하는 대로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상상의 범위는 무한(無限)이었다.

바꿔 말하면 아주 디테일한 조정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나를 미세하게 쪼개서 각각에 다른 성질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합하여 특별한 능력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인 헌터에게는 처음부터 주어지거나, 각고의 노력, 우연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능력을, 람바스는 지켜보는 것만으로 습득할 수 있었다.

재능 자체가 먼치킨, 게으른 성정이 아니었다면 전 우주를 진동시키고도 남았을 능력.

내가 새로 만들어낸 총은 오성택이 만들어낸 것과 닮아 있었다.

사출구가 긴 형태의 총.

내가 형태를 이렇게 만든 것은 단순히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기의 형태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시스템적인 문제였다.

[특수능력 ‘총기술(고급)’을 습득했습니다.]

‘총기술’은 ‘람바스식 무기술’에서 독립해서 따로 특수능력이 되었다.

사실 이 기술은 나름 깊은 이론적 토대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무기술과 함께 뭉뚱그리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아마 다른 무기술도 더 깊은 경지에 이르면 이와 비슷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웬만한 범위에서는 ‘람바스식 무기술’로 다 커버할 수 있겠지만.

“하하하! 이거나 처먹어라!”

콰앙!!

오성택은 양손으로 총을 쥐고 커다란 마나탄을 날렸다.

이것을 게임 용어로 표현하자면 초필살기라고 해야 할까?

얼핏 보아도 일반 마나탄보다 열 배는 위력이 세 보인다.

지금까지처럼 마냥 방패로 막기에는 역부족.

거기다 마나탄의 크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피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대미지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방패를 지우고, 오성택처럼 양손으로 총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똑같이 그를 향해 마나탄을 쏘았다.

퍼엉!!

내가 상상했던 이상의 진동이 발생했다.

그 반동으로 몸이 주욱 뒤로 밀렸을 정도.

하늘에서 땅을 향해 쏘아진 마나탄, 그리고 땅에서 하늘을 향해 발사된 마나탄.

두 개가 중간지점에서 맞부딪쳤다.

콰아앙!!!

처음에는 양쪽 다 소멸하는 것처럼 보이던 것이, 한쪽이 다른 쪽을 이겨내고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승리한 것은 내가 날린 마나탄.

비록 오성택의 능력을 습득하여 쏜 총알이지만, 애초에 재능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같은 기술이라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위력이 차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

커다란 총탄에 가려 오성택의 절망하는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웠다.

적어도 단말마는 들을 수 있었지만.

“끄아악!”

시체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일 터.

만약 이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었다면 무척 아쉬웠을 뻔했다.

사체를 건지지 못했다고 미미가 불평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총탄의 잔영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투명한 모습의 영혼이 남아 있었다.

비열한 인상의 사도.

카날리스는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바짝 쫄아 있었다.

자세한 것은 몰라도 람바스가 이전에 그를 아주 바닥까지 탈탈 털어 혼내주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사도 카날리스가 한 짓들이 무엇인지 보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카날리스는 휙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게이트.

애초에 달아날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A급 헌터들을 대부분 정리한 미미와 파프리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미는 ‘미러 월’을 발동시켜 카날리스의 퇴로를 막았다.

그리고 파프리카는 뛰어난 도약력을 발휘해 카날리스의 몸통을 물고 아래로 끄집어내렸다.

카날리스가 바닥을 기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근 한 달간에 걸쳐 나를 괴롭혀온 귀찮음의 근원을 없앨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에.

나는 카날리스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었다.

바짝 겁을 먹은 모습에 약간의 동정심이 생겼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도에게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타앙!

카날리스의 영혼이 찢어져 사라졌다.

그 뒤에, 여느 때처럼 무수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마지막에는 다른 내용을 담은 메시지도 떠올랐다.

[칭호 ‘사도 사냥꾼’을 획득했습니다.]

칭호?

확실히 스테이터스 화면에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정리가 끝난 현장을 둘러보았다.

오성택은 물론이거니와 나를 죽이려고 동원된 스무 명에 가까운 A급 헌터들이 모두 죽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제발 살려주십시오! 뭐든 달라는 대로 다 드리겠습니다!”

‘다 죽은 건 아니었구나.’

이제 보니 딱 한 명이 살아 있었다.

전에도 본 적이 있는 남자.

바로 오성택의 집 거실에서 돈을 꺼내 놓았던 남자였다.

헌터로서 능력은 형편없지만 다른 쪽 능력이 비상해서 오성택의 비서로 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돈까지 맡길 정도면 그만큼 유능하다는 뜻일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약점이 잡혀 오성택을 절대로 배신할 수 없는 처지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은 단순히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입꼬리를 올리고 웃음을 짓고 있는 미미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녀가 말했다.

“일단 돈부터 내놔.”

“물론이죠! 드리기로 한 돈은 한 푼 빠짐없이 다 드리겠습니다!”

“장난해?”

“네……?”

“오성택은 죽었어. 네가 그놈 돈 가지고 있어서 뭐할 건데? 현금화할 수 있는 건 지금 다 꺼내.”

“아, 알겠습니다…….”

남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현금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뒤에 나온 것은 금괴를 포함한 보석류.

오성택은 며칠 전에 만났을 때도 일시불로 돈을 지급할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두 번으로 나눈 것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것이겠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나름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이번 싸움을 치르면서 ‘노근의인’ 스킬 중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이번에는 평소보다 강렬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귀찮음의 근원을 잘라내고자 하는 의지가 기본적인 성정마저 눌러버렸다고 할까?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할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납득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람바스 또한 전에 무수한 싸움을 치렀고, 그것을 통해 사도들을 물리쳤으니까.

그를 움직인 동기 또한 ‘귀찮음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였을 것.

“후우…….”

깨닫고 났더니 엄청난 피로감이 찾아왔다.

풀썩 주저앉은 나를 향해 거대한 몸집의 파프리카가 걸어왔다.

몸집은 커도 짓고 있는 표정은 조그만 모습일 때 그대로다.

적어도 녀석의 주인인 나는 커다란 각성수의 모습에서 귀여움을 읽을 수 있었다.

파프리카는 입술로 나를 덥석 물어-순간 식겁했다.-휙 던졌다.

내가 안착한 것은 파프리카의 넓고 폭신한 등.

‘아~ 편안하다~~’

애완견의 등은 넓고 편안했다.

저절로 솔솔 잠이 왔다.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획득한 ‘칭호’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확인했다.

[사도 사냥꾼]

사냥한 사도 : 카날리스(27위)

효과 : 사냥으로 인한 추가 경험치 획득. 사도의 특수능력 중 일부 습득 가능. 사도의 기억 일부 열람 가능. 인접한 서열의 사도 위치 파악 가능.

“오…….”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마치 게임에서 특정한 업적을 달성하고 얻은 보상과 비슷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이 능력이 담고 있는 숨은 의도는 명백했다.

사도를 사냥하려는 동기를 고양하는 것.

보상이 있다면, 그리고 다른 사도를 찾아내는 것이 수월해진다면 당연히 사냥하고 싶은 의지가 높아질 테니까.

그래도 당장은 ‘사냥’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토가 쏠릴 것 같았다.

흘긋 아래를 보았더니 미미가 계속 남자를 윽박지르고 있었다.

돈은 다 꺼내 놓은 것 같은데, 아직 무언가가 더 남은 모양.

나는 그 장면에서 흥미를 잃고 눈을 감았다.

이왕이면 샤워하고 호텔 침대에 눕고 싶지만, 아쉬운 대로 파프리카의 등에 누워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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