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내가 육성을 뱉으며 놀란 것을 보고 파프리카가 가슴 위로 뛰어들었다.
“왈! 왈!”
나는 애완견의 머리통을 쓰다듬은 뒤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대한민국에는 진짜 S급 헌터이 세 명뿐일까?
영상을 올린 것은 ‘켂튜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나도 가끔 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구독자가 60만 명이나 되는 유명한 유튜버였다.
주로 업로드하는 동영상은 세간의 이슈를 소재로 한 것.
‘대한민국 S급 헌터 숫자가 이슈일 수 있나?’
한국의 S급 헌터 숫자가 세 명이라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고정된 사실이었다.
S급 헌터는 여간해선 각성하지 않으니까.
이 세 명이 한국에서 출현한 S급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 년 이상 된 일이다.
가장 늦게 각성한 것이 이희진이고 그녀가 각성한 뒤로 대한민국에는 더이상 S급 헌터가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S급 헌터의 숫자는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은 지가 꽤 됐다.
초기에는 사냥에 실패하여 죽는 헌터들이 있었는데, 마치 그 숫자를 채우려는 듯 곧 다른 S급 헌터가 각성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몬스터에 대한 정보와 사냥 기술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이후로는 S급 헌터가 사냥에서 사망하는 일이 없어졌고, 그것과 궤를 같이하여 새로 각성하는 S급 헌터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지만 이제는 상식처럼 된 일이라 누구도 이것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새로운 S급 헌터가 나타났다니.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만으로 화제가 될 만했다.
두근두근하는 심정으로 동영상을 지켜보았다.
켂튜브는 평소에도 업텐션한 모습으로 영상에 등장하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이 영상은 소재만으로도 대박이 예고된 거니까.
‘요즘 뉴스를 너무 안 봤나?’
오성택이 자꾸 나오는 게 싫어서 뉴스나 이슈를 다루는 방송은 일부러 피했는데, 설마 최근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화제가 되었을 줄은 몰랐다.
켁튜브가 특유의 과정 섞인 말투로 이야기했다.
“여러분들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제4의 S급 헌터, 그는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인지. 저 켂튜브는 구독자님들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파헤쳐보았습니다. 최근 업로드된 뉴스, 발간된 신문을 모조리 읽은 것은 물론이고요. 인터넷상에 떠도는 소문이나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 조사를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이 영상은 특별히 1시간짜리로 편집해서 올라갈 예정이고요. 물론 영상은 짧으면 짧을수록 조회수가 늘어나지만, 이 켂튜브는 조회수에 목숨 거는 남자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최대한 빠뜨리는 것 없이 생생한 정보를 전해드릴 것을 약속드립…….”
“에라이!”
뭔 놈의 사설이 이렇게 길어? 아무리 내 얘기라지만 듣고 있기 귀찮다.
나는 손가락으로 재생 막대를 터치해 앞으로 넘겼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최초의 자료화면이 등장하는 장면까지.
“……여러분 보이십니까? 이 뒤통수를 잘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웃통은 벗고 있지만, 바지 추리닝 보이시죠? 이것도 잘 기억해 주십시오.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것은 3초짜리 자료화면이었다.
무언가가 붕 스치면서 찍힌 화면이다-각도로 보아 방송국에서 날린 드론이 틀림없다.-. 멀리서 뒷모습을 포착했는데, 몬스터의 피를 묻히고 바지 추리닝만 입은 남자가 찍혔다.
그리고 나는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내 모습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미친!”
감정이 직접적으로 전달되어서인지 파프리카가 발딱 몸을 일으키고 다시 짖었다.
“왈! 왈!”
“괜찮아, 괜찮아. 형 아무렇지도 않아요~”
단추 구멍 같은 눈으로 걱정스럽게 보는 녀석의 머리통을 쓰다듬어주자, 파프리카는 다시 안심하고 내 가슴팍에 풀썩 주저앉았다.
파프리카를 안심시킨 것과는 별개로 나는 전혀 괜찮은 기분일 수가 없었다.
설령 앞모습이 찍혔다고 해도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직접 노출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순간적으로나마 노출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큰일이다.
‘그런데 뭘 기억하라는 거지?’
켂튜브는 내 뒤통수와 추리닝을 잘 기억하라고 했다.
나는 불안불안한 기분으로 계속 영상을 시청했다.
다시 한동안 잡설이 이어지기에 또다시 구간을 건너뛰었다.
‘이럴 거면 왜 영상을 한 시간짜리로 만든 거야?’
재생 막대를 이동하다 보니 두 번째 자료화면이 등장한 곳에서 손가락이 멈춰졌다.
그리고 나는 이 대목에서 더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 얼마 전에 분양소 사건 기억하십니까? 각성수가 난동을 피워서 가게가 작살났었죠. 그 사건으로 분양소 오너였던 분이 목숨을 잃었고요. 자, 이 대목에서 10초간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네, 됐고요. 아무튼 그 사건이 발생한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이번에 S급 몬스터가 출몰한 곳과 불과 5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와~ 소름! 그리고 보십시오. 이 뒤통수와 추리닝…… 이번에는 웃통까지 제대로 입고 있지만,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물론 한 동네에 같은 추리닝을 가진 남자가 있을 수는 있죠. 하지만 그 사람이 동시에 사건 발생 현장에 나타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분양소 각성수가 난동 피우는 일이 자주 일어나나요? S급 몬스터가 날이면 날마다 출몰하나요? A급 이하의 헌터들은 다 대피를 했어야 할 상황이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 저는 지금 소름이 돋아서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젠장…….”
나 역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지금 내가 굳이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켂튜브가 쓸모없는 사설을 계속 붙이는 것도 귀찮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계속 불필요한 말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입장이고, 그는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포착하여 덧붙였다.
“여러분은 S급 몬스터 한 마리를 잡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라고 보시나요? 오성택이 이번에 비정상적인 속도로 S급 몬스터를 사냥한 것. 물론 그건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일인 것이 맞죠. 하지만 이제 막 각성한 것도 아닌, 수년 동안 S급 몬스터를 사냥해 온 사람이 갑자기 실력이 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는 헌터가 아니라서 뭐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상식적으로 이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는 이 대목에서 합리적 의심 하나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분양소 사건과 S급 몬스터 출현 현장에 동시에 나타난 이 남자! 그가 바로 새로 각성한 S급 헌터이고, 두 사건에 직접 개입을 했다면! 오성택이 사냥한 게 아니라 이 남자가 사냥한 것이라면? 실제 현장으로 가는 오성택을 목격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몬스터가 사냥된 것과는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여러 정황으로 비추어 S급 몬스터를 진짜 사냥한 것은 이 추리닝 입은 남자가 분명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혹시 의견 있으신 분은 댓글 남겨 주시고요. 구독과 좋아요도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 일과 관련해 추가 제보를 해주실 분들이 있으면 메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만해, 미친놈아!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가 보더라도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팩트니까.
S급 헌터가 또 한 명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될텐데.
이렇게 그럴듯한 추측까지 해버리면 더더욱 화제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괜히 구독자가 60만 명이나 되는 게 아니구나.’
물론 내가 이 대목에서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만.
켂튜브의 추측이 무서운 것은 그가 오성택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직전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화제를 독점하고 있던 인물.
웬만큼 간댕이가 부어서는 건드릴 수 없는 독보적 존재.
심지어 오성택은 잘났다는 듯이 방송에 나와 칭송하는 말에 겸손을 떨어대기까지 했었다.
켂튜브는 유튜브 조회수에 연연하지 않는 게 아니라 거기 목숨을 건 것이 분명하다.
‘아…….’
귀찮은 일이 생길 거라는 확실한 예감에 장기가 쑤셔왔다.
문득 향긋한 냄새가 나서 시선을 들었더니 미미가 어여쁜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머, 주군도 보셨어요?”
“너…….”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구나.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해.
미미의 생글거리는 얼굴은 켂튜브 영상에 당황한 기색이 전혀 아니었다.
하기야 그녀는 나처럼 세상일에 무관심하지 않으니까.
켂튜브가 나름대로 조사를 하는 동안에 그녀 또한 이 일을 체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오성택 쪽이 무능하다고 봐야겠지.
아마 나를 조사하는 데 집중하느라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을 거다.
아니면 누구도 감히 그의 면전에 대고 상황이 뭣 같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이왕이면 잔금까지 받고 일이 터지길 바랐는데, 그건 어렵게 됐네요.”
“지금 포인트가 빗나갔잖아. 돈보다 내 정체가 드러나게 된 게 더 큰 일 아니야?”
“주군.”
미미의 음성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왠지 분위기상 계속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몸을 일으켜 바른 자세로 앉았다.
“낭중지추라는 말 알고 계시죠? 아무리 정체를 감추려고 해도 주군의 존재는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요. 왜냐면 주군이 명성을 떨칠수록 사도들도 함부로 주군께 해코지하기 어려워질 테니까요.”
“아예 내 존재가 알려지지 않는 쪽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흠흠. 그리고 오성택이 사도라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돼요. 그가 저지른 만행을 직접 말씀드릴까요?”
미미는 모든 사도가 저지른 짓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
뭐, 그녀라면 직간접적으로 겪은 것들이 있을 테니 사도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알고 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녀를 통해 오성택에 빙의한 카날리스라는 사도가 저지른 일들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와 마주했을 때 머릿속에 영상들이 떠올랐으니까.
그것을 생각하니 한층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게으른 성정에 지배받고 있다지만 그런 끔찍한 일을 나 몰라라 할 리는 없으니까.
어쩌면 이 최소한의 정의감도 람바스가 내게 남긴 성정의 일부분일지 몰랐다.
“안 그래도 돼…….”
젠장.
왠지 오성택과 맞붙게 될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짜증 난다.
일단 켂튜브 구독 해지부터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