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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30화 (30/160)

▣ 30화

두 번째 도발에는 오성택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당연히 그 얘기를 나누어야죠.”

원래 배포가 큰 인물인지, 이미 미미에게는 어느 정도 관심을 거둔 기색이었다.

물론 이것은 배포의 문제가 아니라 이 공간에 그의 관심을 더 잡아끄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파프리카.

아니, 바로 나였다.

지금도 그는 미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심은 온통 파프리카에게 두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마나를 발현해서 파프리카를 쿡쿡 찌르고 있다.

마치 뭔가를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파프리카와 나는 의식이 깊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것은 멀리 떨어진 내게도 직접 전달되었다.

미미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글쎄요. 생각하시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직접 말씀해 보시죠.”

미미는 훗 코웃음을 치더니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상황을 무를 수는 없어요. 그건 물론 알고 계시죠?”

“물론이죠. 여기서 커밍아웃을 한다면 제가 가진 신뢰가 한 번에 무너질 테니까요. 당연히 그건 택할 수 없는 선택지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네요. 돈으로 해결하시죠.”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인 대사에 나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구나.’

오성택에게는 S급 헌터로서의 자기 입지가 가장 중요할 테니 미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그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오히려 그의 입장에서는 이쪽에서 먼저 돈 얘기를 꺼내준 게 고맙겠지.

역시나 오성택은 당황하지 않고-오히려 당연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입을 열었다.

“얼마를 원하시나요? S급 사체를 판 값을 고스란히 드리면 될까요?”

“하하!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본인이 이 일로 얻은 프리미엄이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뭐하면 당장 기자회견을 열어서 진실을 밝히도록 하죠. 몬스터 사체는 어차피 저희 건데 그 돈을 고스란히 받는 게 의미가 있겠어요?”

“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그건 적절치 않은 것 같네요. 얼마를 원하시는지 확실하게 말씀해 보시죠.”

나는 이 생중계가 흥미로웠다.

물론 현장에 있었다면 무척 생각이 달랐겠지만, 파프리카의 눈을 통해 보자니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미미와 오성택, 둘 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과연 이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 것인지?

미미는 손바닥을 쫙 펼쳤다.

‘뭐지? 50억?’

나는 떠올리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것 같은 금액을 상상하고 헉 숨을 삼켰다.

하지만 내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이었다-나는 솔직히 S급 몬스터의 사체를 통째로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

오성택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미미의 제안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반대편 손을 들어서 이번에도 손바닥을 펼쳤다.

“열 배는 주셔야죠.”

거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나는 파프리카를 통해 오성택이 이제까지 누르고 있던 마나를 방출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오줌을 지린 것처럼 찔끔하고 흘러나온 것이다.

이제껏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인물이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했다.

쌍방 간에 한동안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한참 만에야 오성택이 불편한 기색으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너무하시네요. 아무리 저라도 그 정도 돈은 없습니다. 혹시 이 일을 빌미로 저를 노예로 만들 생각인가요? 하하하.”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지만, 표정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마치 지금 어디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냐고 경고를 하는 것과 같았다.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알아서 기라는 포식자의 엄포라고 할까?

하지만 오성택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한순간 각성으로 인생을 역전한 자신과는 달리 미미는 람바스와 함께 악마들과 치르는 최후의 싸움까지 갔던 존재라는 사실을.

그녀의 경험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이따위 어설픈 수작에 쉽게 움츠러들 여자가 아니라는 것.

미미는 조용히 웃음만 머금었다.

“협상 안 해보셨나요? 왜 벌써 흥분을 하고 그러세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인데.”

“크흠…….”

“음, 생각보다 배포가 작은 분이시군요. 열 배는 좀 심하다고 치죠. 그래도 최소한 다섯 배는 주셔야죠.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 헌터라고 불리는 분인데. 물론 그건 다 누구 덕분이기는 하지만.”

마치 장단을 맞추려는 것처럼 파프리카가 자신의 마나를 뿜어냈다.

킹 오브 각성수.

나조차 이 애완견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다만 S급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처럼 아직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기 능력을 백 퍼센트 발휘하고 있지 못하지만, 시간만 지난다면 S급 몬스터들도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파프리카의 마나는 오성택이 흘리고 있던 마나와 얽혀 당장 불편한 공기를 만들었다.

오성택의 표정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마치 이제야 현실을 자각한 것처럼.

사실 그는 자기를 내세워 뻗댈 입장이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드론이 날아오기도 전에 S급 몬스터를 사냥한 헌터가 바로 자기 맞은편에 앉아 있는 거니까.

일 대 일로 맞붙는다고 해도 승산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이 대 일이라는 점에서 이길 수 없다고 봐야겠지.

과연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끝까지 자존심을 내세울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굽힐 것인가?

갑자기 오성택이 상체를 곧추세웠다.

그리고 이제까지 흘려보내고 있던 마나를 싹 거둔 뒤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세 배. 그 이상은 저도 무리입니다. 절반은 지금 드리고, 나머지 절반은 열흘 안에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오른손 엄지와 중지로 딱, 소리를 냈다.

그러자 한쪽 방문이 열리면서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헌터인 것은 맞지만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허리를 숙이자 오성택이 귀에 뭐라고 말했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자신의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하나씩 돈뭉치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오만 원권 지폐로 이루어진 현금 뭉치.

미미는 돈뭉치를 들어 파라락 넘겼다.

가짜 돈이 아니라는 것을 일일이 확인한 다음-그녀의 동체 시력으로는 돈의 숫자를 세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었다.

돈을 꺼내고 옮겨 담는 과정이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아마 내가 보통의 감각을 지닌 인물이라면 어느 정도 돈이 오가는지 계산을 했겠지만, 그것이 내 돈임에도 불구하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부터 흥미를 잃었다.

뭐, 돈은 미미가 알아서 잘 간수할 테니까 걱정할 것 없다.

작업이 모두 끝난 뒤에 미미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가 절반이군요.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오성택은 뼈가 시린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리더니 상체를 숙여 말했다.

“저는 이 돈을 대가성으로 드린 겁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저도 요 며칠 동안 마냥 논 것이 아닙니다. 그쪽에 계신 두 분이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아무런 배경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S급 헌터라도 단둘이서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음…….

오성택의 비호감 어린 얼굴을 보자면 섣불리 행동하고 싶어지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세간의 관심을 온통 끌고 있는 그를 건드린다면 상상하기 힘든 귀찮은 일들이 생길 테니까.

내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다.

나 역시 사도를 물리쳐야 하는 사명이 있지만, 그것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다.

뭐, 오성택이 한 말은 내가 이해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겠지만.

“설마 돈까지 받았는데, 그럴라구요~”

미미는 상큼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나머지 돈은 가급적 빨리 준비하시길 바랄게요.”

내내 한마디 말도 없다가 미미를 따라서 몸을 일으키는 파프리카.

오성택이 잊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조철웅 씨 맞죠? 저희 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나요? 물론 그날 마주쳤던 것 말고요.”

파프리카는 뚱한 얼굴로 어깨만 으쓱였다.

그것을 보고 복잡한 표정을 짓는 오성택.

어쨌든 드라마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다소 싱거운 결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쪽은 원하는 것을 받아냈다.

그것 말고 다른 소득이라면 최초로 만난 사도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했다는 것.

파악한 바는 오성택이라는 인물은 아직 본성을 자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잘은 몰라도 아마 사도가 세상을 집어삼키는 데는 나름 순서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오성택의 집에서 나온 미미와 파프리카가 택시를 잡아타는 것까지 보고, 감고 있던 눈을 떴다.

51

호텔로 돌아온 미미는 분주해졌다.

전화하는 내용을 얼핏 듣고, 노트북으로 검색하는 것을 잠깐 본 결과, 그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것은 전에 매물로 나와 있다고 말했던 집을 사는 것과 그것을 인테리어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오성택과 그녀 사이에 오고 간 돈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보았다.

그래서 지금은 과연 그 집을 살 금전적 여유가 있는지 전혀 의심되지 않았다.

열흘 안에 그만큼의 돈이 또 들어온다는 거니까, 나로서는 호텔에서 유유자적 생활하다가 때가 되어 이사만 하면 끝이었다.

‘그냥 이대로 평생 즐기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3년, 5년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들어온 돈이라면 평생 적당한 수준으로 호의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생각처럼은 안 되겠지.’

사도가 빙의한 오성택을 마주한 순간 어렴풋이 느꼈다.

물론 미미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더 직접적으로 깨달았다고 할까?

사도들과 내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대립을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내가 외면하고 싶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람바스의 능력을 이어받은 순간 짊어지게 된 숙명이었다.

“후…….”

귀찮다는 말만으로도 부족하지만, 일종의 보람도 있었다.

S급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은 재료로 ‘지배자의 손아귀’를 완성하고, 그것을 이용해 무기술을 연마했다.

이런 감정을 갖게 될 줄은 몰랐지만, 솔직히 전투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바라는 대로-아니, 그보다는 압도적으로 빠르고 쉽게-모든 것을 술술 습득할 수 있으니까 아예 난도 자체가 없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S급 헌터 오성택에게 받아낸 돈.

그는 사냥을 가로채서 명성을 얻었지만, 우리는 그로부터 사체 값의 세 배가 되는 돈을 뜯어냈다.

내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최선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터.

미미가 오성택의 돈을 받아온 지 며칠이 지나갔고, 나는 매일 빠뜨리지 않고 훈련했다.

무기술을 연마하는 것과는 별개로 훈련에 사용한 ‘노력, 근성, 의지력, 인내심’ 레벨도 계속 올랐다.

‘유튜브나 볼까?’

여느 때처럼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첫 화면에 인기 동영상이라고 노출되어 있는 영상을 확인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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