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두 번째 날 훈련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무기를 다루는 데 서툴다고 해도 먼치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S급과 A급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차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꿱!”
“꾸엑!”
내 어설픈 공격에도 몬스터의 몸통은 한 방에 쪼개졌다.
방패를 들이민 놈은 방패까지 한꺼번에 두 쪽이 났다.
‘뭐야, 이게.’
이런 식으로 과연 훈련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지만, 일단은 ‘노력’ 스킬이 발동되는 중이기 때문에 의욕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15마리의 오크 사냥이 3순환 째에 들어섰을 때, 기대치 않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수능력 ‘람바스식 무기술(초급)’을 획득했습니다.]
람바스식 무기술?
검이나 창, 아니면 활 한 가지에 치중한 게 아니라 ‘무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한꺼번에 묶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스킬’이 아니라 ‘특능’이라는 점도 눈에 띄고.
‘뭘 했다고 특능이 생기지?’
물론 게으름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딴에는 ‘노력’ 스킬까지 써 가면서 열심히 하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구사하는 무기술은 기술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이었다.
아무리 ‘초급’이라고는 하지만 ‘-식’이라는 이름이 붙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있다.
‘아닌가?’
사실 몬스터를 40마리쯤 죽이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오기는 했다.
어떻게 베어야 힘을 덜 들일 수 있는지.
옆과 뒤에서 오는 적에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검과 방패의 사용빈도는 어느 정도로 배분하는 것이 좋을지-이를테면 방패를 내미는 대신 몸을 숙여 피한 뒤 검을 한 번 더 긋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방패의 날카로운 면으로 적의 목을 그어버리는 편이 나을 때도 있고.-.
이것도 기술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특수한 축에 속하게 될 터였다.
왜냐면 이 기술의 요체는 ‘최대한 귀찮지 않기’니까.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한 상태에서-심지어는 호흡도 거칠게 내뱉지 않으면서-무기를 이용해 적을 공략한다.
옆에서 보기에는 상식을 벗어난 이 동작이 결과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장면을 연출해냈다.
무기술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탑재하고 있던 나는 이것이 그것들과는 꽤나 동떨어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했다.
그야말로 천재, 먼치킨을 위한 기술이다.
일반인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그래서 ‘람바스식’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거겠지.’
어쨌든 특능이 생겼다는 것은 이 훈련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복잡한 생각을 집어치우고 일단 하던 것을 계속하기로 했다.
무기술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미미는 어제처럼 많은 ‘미러 월’을 생성했다.
왜냐하면 주먹을 내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기로 발생한 마나의 여파가 벽에까지 미쳤으니까.
단순한 주먹 지르기보다 훨씬 패턴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기쁜 얼굴로 그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로 충성스러운 부하가 아닐 수 없다.
‘노력’의 발동시간이 끝난 시점에 나는 계획대로 두 번째 스킬 ‘근성’으로 넘어갔다.
예상대로 그것은 약간 느낌이 다를지라도 ‘노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효과를 발생시켰다.
나는 지치거나 귀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훈련을 이어나갔다.
검과 방패를 쓰는 일에 질렸다고 생각한 시점에 무기를 바꾸었다.
이번에는 쌍검.
미미는 내가 바꾼 무기를 보고 몬스터를 교체했다.
이번에는 몸집이 좀 더 작고 등급이 더 낮은 놈들이다.
그만큼 많은 수를 등장시킬 수 있었다.
30마리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와중에 나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모든 몬스터들을 학살해 버렸다.
심지어 화면에 이런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훈련 완료 시간 07초.
-더 높은 등급의 훈련을 추천합니다.
30마리 몬스터를 죽이는 데 7초라니.
‘지배자의 손아귀’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진 나는 이것이 가진 장점을 마음껏 활용했다.
예를 들어 무기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해서 거리에 상관없이 적을 손쉽게 요리하고, 무기를 던져서 무기가 몬스터와 함께 사라져 버리면 금세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정말이지 ‘지배자의 손아귀’는 쓸수록 대단한 보구였다.
30분의 훈련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 ‘람바스식 무기술’의 등급이 오르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까지는 욕심이겠지.
아닌 게 아니라 이 훈련을 통해 ‘지배자의 손아귀’를 사용하는 데 꽤 익숙해졌다.
무기를 사용하는 일에 대한 개념이 통째로 바뀐 것은 물론이고.
“아, 모두 불태웠다…….”
네 번째 스킬 ‘인내심’의 유지시간까지 모두 끝난 뒤에 나는 제자리에 허물어졌다.
그런 나를 미미가 잽싸게 부축했다.
“수고하셨어요, 주군.”
누가 보면 몇 날 며칠 생사를 건 싸움을 치른 줄 알리라.
물론 내게는 30분의 훈련이 그것 못지않게 대단한 일이었지만.
정말 부지런해졌다, 조철웅.
40
다음날 오전.
창밖을 보고 있던 미미가 말했다.
“때가 되었네요, 주군.”
“무슨 때?”
“오성택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응?”
확실히 그녀는 며칠 전에 그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훈련한 것 말고는 편안하게 호텔 방에서 뒹굴거리는 게 다였던 나는 내게 막중한 의무가 있었다는 것을 새삼 자각했다.
오성택.
그는 내가 마주한 최초의 사도이다.
이석두라는 놈이 있었지만 그놈은 사도의 부하이니 진짜 적이라고 하기에는 급이 떨어졌다.
나는 미미가 내려다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그녀의 옆으로 가보았다.
아래를 보자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쓴 몇 명이 서성대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인 틈에 어색하지 않게 섞여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S급 헌터인 나는 멀리서 보아도 그들이 헌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에 호텔 앞에서 서성대는 헌터들.
어떤 임무라도 부여받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오성택이 처한 현실이 떠올랐다.
빈둥대는 틈에 TV를 자주 보았는데,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그가 화면에 비치는 일이 많았다.
그야말로 그는 장안의 화제를 독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드론이 날아오기 전에 S급 몬스터를 사냥한 천재.
영웅 중의 영웅.
국뽕 효과까지 더해져 비공식 사냥 기록-사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고 엄청나게 빨리 사냥을 마친 것-을 세운 것이 어마어마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뻔뻔한 낯짝으로 언론에 모습을 비치고 있었지만 내심 초조하기는 할 것이다.
언제 내가 자기 앞에 나설지 모르니까.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사실을 밝히지 않은 걸까?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가 말하지 않는 편이 운신하기에 편해서 좋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 눈이 마주쳤지만, 그도 나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가면을 쓰고 S급 몬스터를 쓰러뜨린 괴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뭔가 깊은 곳에서 통하는 게 있었던 것 같다.
아주 불쾌하고 찜찜한 기억을 공유한.
혹시 그것이 이 일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는 본능적으로 나를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랐다.
의식 깊숙한 곳에 나에 대한 적개심을 각인 당한 몬스터들처럼.
사냥 실적을 가로챈 것도 나를 유인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
“귀찮네.”
혼자 중얼거렸더니 미미가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주군은 여기 계세요. 제가 파프리카랑 다녀올게요.”
“그래?”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그녀와 파프리카만 적지에 보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생글거리는 미미의 얼굴을 보자니 뭔가 속내가 있는 듯했다.
그녀는 나의 생각을 모조리 읽지만, 나는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없다.
자신 있는 표정을 보면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나와 같이 가지 않는 것이 비단 내게 귀찮은 일을 시키지 않으려는 목적인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세요, 주군. 이사 가야죠. 돈 벌어올게요.”
이사?
그게 진짜였나? 서울 근교에 매물로 나왔다는 으리으리한 저택을 진짜로 살 생각이야?
오성택을 만나러 가겠다는 것과 돈을 벌어오겠다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위험하면 신호를 보내.”
순간이동은 무리더라도 최대한 빨리 달려갈 수는 있을 것이다.
S급 헌터의 두 다리는 택시보다도 빠르니까.
41
이러한 연고로 나는 지난번 헌터관리소 때 이후로 다시 한번 미미와 파프리카의 나들이를 생중계로 감상하게 되었다.
미미가 오성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택한 방법은 과감한 것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 잠복하고 있는 헌터들에게 접근했다.
당당하게 “가시죠.”라고 말하니 헌터들이 저네들끼리 마주 보다가-옆에 썩은 눈을 하고 서 있는 파프리카를 발견하고-두 사람을 자동차에 태웠다.
오성택의 집은 멀지 않았다.
언젠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최고층 펜트하우스가 그의 집이었던 것.
문이 열리고 으리으리한 실내가 펼쳐졌을 때는 미미가 내게 보여준 저택이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졌다.
오성택, 그가 파프리카의 눈을 통해 또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나서 미미를 쓱, 그리고 파프리카를 지그시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불쾌한 감각이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바로 죽빵을 갈기고 싶은 기분.
이내 그가 벌쭉 웃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쪽에서도 수소문하고 있었거든요. 호텔에 계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싶지 않아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혹시 불편을 끼쳐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멋대로 남의 뒤를 캐고 있던 주제에 뻔뻔하시네요.”
미미의 말에 오성택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미미를 노려보다가 피식 웃음을 짓고,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앉으시죠.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남의 사냥을 가로채고 두 발 뻗고 잘 주무셨는지 모르겠네요.”
미미의 도발은 속 시원하기는 해도 사도를 앞에 두고 하기에는 꽤 위험한 것이었다.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장면을 계속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