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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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완성품 ‘지배자의 손아귀’를 건네준 미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틀대며 돌아갔다.
온전한 보구를 손에 넣은 나는 이것을 사용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성정이 게으른 나로서는 느끼기 드문 감각인데, 그만큼 방어 기능까지 갖춘 ‘지배자의 손아귀’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어쩌면 나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일지 모른다.
보구는 오롯이 람바스만을 위해 제작된 것이고, 그의 능력을 이제는 내가 물려받았으니까.
그만큼 이 아이템-무기라고 불러야 할지 방패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해졌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S급 핵심재료까지 사용된 탓에 더더욱 내 마나를 막힘없이 잘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마치 신체의 일부 같다고 할까?
양손을 통해 어떤 무기나 방어 장비도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사가 된 기분이기도 하다.
‘정오 전후에 가장 한가하다고 했지?’
게으른 사람은 자고로 사람 많은 곳에 가기를 꺼리는 법이다.
훈련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아직 이름을 모른다.-를 마주치는 것도 귀찮은 일이지만, 어제저녁에 근무했으면 오늘 오전에는 쉬는 타임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미미에게 물었다.
“나 훈련하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물론이죠. 완성된 보구를 시험해 보실 생각인가요?”
역시 그녀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내가 어떤 기분일지 모를 때는 그녀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보구를 시험한다라.’
그것이 정답이기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시험을 해야 내게 이로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 내게 미미가 힌트를 주었다.
“람바스 님은 전투 능력에 있어서는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분이셨지만, 그중에서도 무기를 다루는 기술은 특히 대단하셨어요.”
“모든 무기를 다?”
“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셨을 뿐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무기까지 만들어서 전투에서 현란하게 사용하셨죠.”
장담컨대 람바스는 무기술을 연마하는 데 크게 공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순수하게 ‘재능’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그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나도 그와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얘기.
물론 공짜로는 안 되고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겠지만.
“오케이, 일단 가자.”
호텔방을 나선 나와 미미는 어제 한 번 가보았기 때문에 익숙해진 방향으로 발길을 잡았다.
익숙해졌다고 해도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쭉 내려가기만 하면 되니까 헷갈릴 것도 없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 훈련장은 과연 어제저녁만큼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에 들었지만 다른 쪽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와, 또 오셨네요?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뵈려고 했었는데.”
각성 판정을 받는 날 한 번 보고, 어제 이곳 훈련장에서 재차 마주쳤던 남자가 나를 보고 반가워했다.
저리 가라. 훠이, 훠이.
웬일인지 남자의 태도는 어제보다 훨씬 살가웠다.
단순히 이틀 연속 만나서 더 친밀해졌다고 느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나를 대하는 경이감이 한층 짙어졌다고 할까?
그는 손안에 있는 태블릿을 툭툭 두드리더니 내게 말했다.
“어제 딱 십 분만 훈련하셨죠? 그 시간에 측정된 마나량이 어제 하루 동안 우리 훈련장 전체에서 측정된 양보다 많았습니다. 하루가 뭡니까? 거의 일주일 치 마나량이 딱 10분 만에 기록됐어요.”
말을 하면서 내뿜는 열정이 나를 몹시 귀찮게 했다.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형님이 그만큼 대단한 헌터라는 거죠. 각성 판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반인이면 아직 완전 각성이 되지 않아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할 시기에…… 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형님!
어느새 그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형님이 되어버렸다.
단언컨대 내가 이 남자보다 적어도 다섯 살은 어릴 것이다.
처음 볼 때는 몰랐는데 정말이지 현실 적응력이 보통이 아닌 남자다.
나는 귀찮은 마음을 꾹 누르고 말했다.
“비밀입니다.”
“네?”
“아마 기계 오류가 있었겠지만, 만약 사실이라고 해도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이왕이면 기록도 삭제해 주시고요.”
“아…….”
남자는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슬쩍 표정을 바꾸었다.
약간은 욕심이 깃든 표정으로.
“제가 보기에 형님은 보통 그릇이 아니십니다. 기존 길드에 들어가는 걸로 만족하실 분이 아니라 새로 길드를 창립할 능력을 갖춘 분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는 뻔했다.
나는 호텔 방에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어쨌든 이미 시작한 대화이니 조금만 참자고 생각했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형님께서 길드를 만드시면 저를 좀 거두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무리 그래도 헌터로 각성했는데 호텔 훈련장에서 계속 일하는 것도 좀 아니죠. 시키시는 일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형님! 한 사람, 아니, 두 사람 몫을 할 테니 꼭 좀 부탁드립니다!”
남자 입장에서는 각성 판정 때 좌절을 맛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 스케일이 이미 결정이 났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 정도로는 결코 길드의 스카웃 제의를 받을 수 없고, 자신이 먼저 이력서를 내밀더라도 받아주는 곳이 없을 터.
말하자면 이자에게 나는 반드시 붙들어야 할 동아줄이었다.
“말씀은 이해하지만…….”
내가 거절하려는 찰나에 미미가 불쑥 끼어들었다.
“물론이죠. 이렇게 열정이 많으신 분인데 당연히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아야죠.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계시면,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아…….”
남자는 나와 미미를 번갈아 보더니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형수님!”
젠장. 이건 또 무슨 놈의 오해야?
미미는 빨개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이~ 인사는 됐고요. 아무튼 일단 훈련 기록을 지워주세요. 앞으로 훈련할 기록도 다 지워주시고요.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향해 눈치 빠른 남자가 잽싸게 말했다.
“물론 이곳에서 훈련하신 비용은 전부 무료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지인 할인쿠폰이 쌓여 있거든요. 지금처럼 예약이 빠진 시간에만 오시면 무조건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아이쿠, 이거 감사드려요.”
“별말씀을요, 형수님.”
“호호호.”
“하하하.”
웃는 낯으로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보자니 제법 훈훈했다.
물론 상부상조했다기보다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혜택을 제공한 것이지만.
훈련 기록이 남는 걸 막고 시설도 공짜로 이용하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무조건 이익이었다.
앞으로도 절대 길드를 만들 생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남자에게 좀 미안하긴 해도, 현대 사회에서 절대 강자인 헌터들이 이런 청탁을 받는 일은 아주 흔할 일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어제 내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방에 배정받았다.
어차피 ‘노력’ 스킬을 사용할 것이니 훈련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응? 잠깐만…….’
나는 문득 내가 가진 스킬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조철웅’ 특능에서 파생된 스킬은 모두 네 개다.
‘노력’, ‘근성’, ‘의지’, ‘인내심’.
이름은 다르지만 의욕을 고취한다는 의미에서는 일맥상통하는 스킬들이기도 했다.
만약 이 스킬들을 연달아서 사용한다면 훈련 시간의 연장을 꿰할 수 있지 않을까?
‘나답지 않게 엄청 귀찮은 생각을 해버렸네.’
아마 순서는 ‘노력’, ‘근성’, ‘의지’, ‘인내심’ 차례대로 하면 되겠지.
줄여서 ‘노근의인’이다.
어디 보자, 시간은…….
현재 레벨로 스킬 유지시간을 모두 합치면 총 29분이었다.
하루에 30분 훈련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흔한 것이겠지만 내게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래도…….’
나는 오성택이 떠올렸다.
그는 내가 사냥한 몬스터를 가지고 역대급 인지도를 자랑하는 중이지만, 그보다 더 내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마주친 순간 보았던 이미지였다.
사도 카날리스가 저질렀다는 만행들.
그것이 이 지구에서 똑같이 자행된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
내가 딱히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세상이 그처럼 어지럽게 돌아간다면 나 역시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도 1초라도 빨리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놈.
‘하지, 뭐. 30분…….’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다짐했다.
이 호텔에 있는 동안 하루 30분씩 훈련하기로.
리모컨을 손에 든 미미가 물었다.
“주군, 뭐부터 훈련하시겠어요?”
“응?”
멍하게 서 있다가 의외의 질문을 받았다.
뭐부터 하겠냐니.
물론 오늘 훈련의 목표는 ‘지배자의 손아귀’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시험한다는 개념을 넘어 이를 통해 내 능력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것이 진짜 목표.
‘람바스는 모든 무기술에 정통했다고 했지.’
지난번 이피누스와 싸울 때 나는 ‘지배자의 손아귀’를 통해 몇 가지 무기를 사용했지만, 그것이 결코 능숙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무기부터 연마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하면 모든 무기술을 전부 연마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귀찮네…….’
나는 무기력증이 온몸을 덮기 전에 서둘러 스킬을 사용했다.
‘노력.’
부와아악-
‘일단은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
‘지배자의 손아귀’가 완성되어 방패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왕이면 무기와 방어 도구를 동시에 수련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지배자의 손아귀’를 착용한 다음, 한 손에는 검, 다른 손에는 방패를 만들어냈다.
누구나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본적인 형태이다.
RPG를 하면 주인공이 가장 먼저 손에 들고 있을 것 같은 무기.
미미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놈이 가장 좋겠네요.”
그녀가 고른 것은 A-3 등급의 몬스터였다.
등급이 더 낮아서인지 한 번에 15마리까지 등장시킬 수 있었다.
모습은 뭐라고 할까.
역시나 RPG게임에 단골로 등장하는 몬스터인 오크를 닮았다.
놈들은 흉물스러운 외모로 씩씩 숨을 몰아쉬며 나를 기분 나쁘게 노려보았다.
손에는 도끼나 몽둥이를 들고 있고, 어떤 놈들은 조잡한 형태의 방패를 들고 있기도 했다.
생김새는 이래도 A등급이니 꽤 강하다고 봐야겠지.
“카아악!”
한 놈이 높은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것을 시작으로 호텔에서의 내 둘째 날 훈련이 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