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나는 이쪽을 노려보는 이피누스를 보고 생각했다.
몬스터란 놈들의 본능은 참 대단하다고.
A급 몬스터는 싸울 때 내게 겁을 먹고 설설 기었다.
나를 공격하고 싶은 본능과 그럼에도 자신들이 더 약하다는 딜레마 때문에 쩔쩔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S급 몬스터는 어떠한가?
나를 경계는 하고 있어도 절대 쪼는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곧 지금 내 수준이 딱 그 정도라는 것이겠지.
말하자면 S-5-같은 등급이라도 뒤에 붙은 숫자가 줄어듦에 따라 공략 난도가 올라간다.-급 몬스터와 비등비등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내가 각성한 시기를 고려하면 엄청난 것이지만, 우주 최강의 재능을 가진 먼치킨의 능력을 이어받았다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게으름과 싸워 성장시켜야 할 능력이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는 뜻.
배에 대미지를 입은 이피누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눈빛이 이글대는 것을 보니 괜히 분노만 상승시킨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뱃가죽을 가른 것은 분명 큰 쾌거이지만 이 몬스터의 등급과 덩치를 생각하면 결코 치명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이피누스는 “크아악!” 소리를 내며 주둥이를 벌렸다.
아무리 흥분을 해도 구사할 수 있는 공격에는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놈은 다시 한번 독액이 묻은 거미줄을 날렸다.
뻔히 보이는 공격이었으므로 나는 거미줄이 날아오는 것을 피해 달렸다.
하지만 역시 흥분을 했기 때문인지 이피누스가 날리는 것은 단 한 번의 공격이 아니었다.
내가 달리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팡! 팡! 팡! 하고 거미줄을 쏘아낸다.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뒷수습이 만만치 않다.
물론 그것은 미미의 몫이었고, 그녀는 계속 ‘미러 월’을 생성해내느라 바쁜 입장이 되었다.
‘저놈 뱃속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거미줄이 들어 있는 거야?’
집채만 한 덩치를 보면 그것을 생각하는 자체가 불필요한 것 같지만.
아마 놈은 3박 4일을 연속으로 거미줄만 뱉어낼 수 있을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추격전은 또 한 마리 아군의 활약으로 멈추어졌다.
파프리카가 대시 점프로 이프누스의 옆얼굴을 들이받은 것.
“크아아앙!”
불식 간에 공격을 받은 이피누스의 머리통이 휙 들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아플 것 같다.
이피누스의 얼굴 가죽은 그리 두껍지 않아 보이니까.
반면에 파프리카의 이마는 굉장히 단단할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든 나는 파프리카가 만들어준 빈틈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아랫배로 파고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불쑥 한 가지를 떠올리고 ‘지배자의 손아귀’가 만들어내고 있는 무기의 형태를 바꾸었다.
‘채찍’으로.
어째 이석두랑 싸우고 난 뒤에 자꾸 이 무기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지금 상황에는 분명 용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웅웅웅-
마나가 주입된 ‘지배자의 손아귀’가 채찍을 만들어내 그것의 길이를 쭉쭉 늘렸다.
나는 이석두와 싸울 때 ‘분석’을 써서 무기술을 파악한 바 있다.
무기로써 ‘채찍’을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엄청나게 길고 두꺼운 채찍을 휘두른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고급 기술이기도 하고, 다만 내게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머리 위로 원을 그리듯 채찍을 휘둘러 이피누스의 다리 한쪽을 휘감았다.
그런 뒤 크게 점프를 하여 있는 힘껏 채찍을 잡아당겼다.
쿠웅!!
예상대로 이피누스가 자빠졌다.
나는 얼른 놈에게 달려가 등을 타고 올랐다.
아랫배가 사각이라면 등 또한 놈에게는 사각이 될 터.
순간적으로 내린 판단이지만 가히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두껍구나…….’
이피누스의 등판은 번들번들 윤이 나는 육각형 갑각으로 덮여 있었다.
송곳으로 찔러도 웬만해선 박히지 않을 것 같은 비주얼이다.
“크아아앙!”
이피누스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자 거기 따라 내 몸도 비틀거렸다.
덩치가 큰 놈에게는 나 하나가 등에 올라 있다고 해도 감각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고개를 휙 휙 돌려대며 나를 찾느라 바빴다.
눈깔의 위치가 등판보다 낮아서, 예상대로 이쪽으로 시선이 닿지는 않았다.
더욱이 내게는 두 명의 동료가 있다.
파프리카가 점프하여 이번에는 앞발로 이피누스의 얼굴을 할퀴었다.
미미는 마나탄을 쏠 수 있는 총-그녀의 인벤토리에서 나오는 물품들을 보면 항상 놀랍다. 준비성이 철저한 것은 둘째치고, 돈이 없다는 것은 역시 뻥이 아니었을까 싶다.-을 꺼내어 펑! 펑! 이피누스를 향해 쏘았다.
날아드는 마나탄의 위력으로 판단컨대 제법 훌륭한 수준의 무기인 듯하다.
물론 총알은 사용자의 마나이므로 미미의 능력이 그만큼 출중하다는 뜻도 되지만.
덕분에 이피누스는 나를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코앞에서 어그로를 끄는 두 명을 상대하느라 곧 정신이 산만해졌다.
나는 이피누스의 등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이 단단한 등판을 뚫기에는 ‘의지’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으니까.
그러다 불쑥 또 하나의 스킬 이름이 생각났다.
‘근성.’
근성을 발휘한다면 어떻게든 이 등판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어설픈 생각이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조철웅’ 특능에서 파생된 스킬 중 세 번째 ‘근성’을 최초로 사용했다.
“어어?”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핑 돌아서 이피누스의 등판 위에서 비틀거렸다. 처음 사용한 스킬답게 막대한 양의 기억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들어찼다.
그만큼 내가 과거에 근성을 발휘했던 순간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때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으아아악!!”
나는 ‘지배자의 손아귀’가 끼워져 있는 오른손으로 이피누스의 등판을 내리쳤다.
꽈앙!
그냥 내리친 것이 아니라 스킬 ‘핵주먹’을 사용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기술.
역시나 한 번의 주먹질만으로는 이피누스의 등판이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질을 한 반동으로 내 어깨가 아파 왔다.
하지만 ‘근성’을 사용한 효과가 있다고 할까?
어깨가 아픈 정도로는 등판을 깨부수고 말겠다는 의욕이 꺼지지 않는다.
나는 연속으로 이피누스의 갑각에 ‘핵주먹’을 내질렀다.
꽝! 꽝! 꽝!
쩌억-
한 자리를 여러 번 반복해서 두드리다 보니 드디어 갑각에 금이 갔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두드렸다.
꽝! 꽝! 꽝!
“크아아앙!”
이렇게 되자 이피누스도 등에 올라타 있는 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은 펄쩍펄쩍 날뛰며 나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열심히 어그로를 끌고 있는 두 명 때문에 그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인물들이 보통 능력자들인가?
한 명은 람바스의 심복으로 그와 함께 최후의 싸움까지 갔던 인재이고, 또 하나는 그에게 충성을 다한 ‘킹 오브 각성수’이다.
람바스만큼은 아니겠으나 둘도 나름대로 먼치킨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었다.
파각!
드디어 육각형 갑각이 깨어져 튀어 올랐다.
같은 갑각 수십 개가 등판에 펼쳐져 있지만, 하나의 크기도 상당히 커다랗다.
다른 갑각을 연이어서 부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나는 한 우물을 파기로 했다.
퍼억! 퍼억!
갑각이 깨지고 맨살이 드러났기 때문에 때리는 느낌도 달라졌다.
이제는 어깨가 아픈 통증도 느끼지 않았다.
살이 푹푹 파이면서 몬스터의 시퍼런 핏물이 튀었다.
그것은 내 얼굴과 몸을 더럽혔지만, ‘근성’이 발휘되고 있는 상황에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았다.
나는 몸을 일으킨 뒤에 ‘지배자의 손아귀’를 ‘곡괭이’ 형태로 바꾸었다.
그것을 갑각에 건 뒤에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쩌억!
하나가 부서진 탓에 다른 갑각은 수월하게 벗겨졌다.
같은 방식으로 하나의 갑각을 더 벗겨내자, 내 몸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나는 다시 ‘핵주먹’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살이 푹푹 파이면서 두 발도 이피누스의 등속으로 가라앉는다.
이 아래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장기를 부순다면 몬스터에게 치명적인 대미지를 안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주먹이 딱! 하고 무언가에 걸렸다.
설마 갑각 속에 또 갑각이 있나 싶어 당황했지만, 그것은 뼈였다.
곤충형 몬스터의 등 안에 뼈가 들어 있는 게 자연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 되기 때문에 몬스터인 거겠지.
그런데 뼈가 좀 신기했다.
그곳에서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
그 빛이 어딘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어 목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운명의 목걸이’에서 마찬가지로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같은 색깔의, 같은 파장을 가진 빛이다.
말하자면 보구가 지시하는 운명이 이 뼈와 연관이 있다는 의미이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이피누스의 등뼈’.
이것이 ‘지배자의 손아귀’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핵심재료였던 것이다.
“빙고!”
나는 뼈의 이음매 부분을 ‘핵주먹’으로 내리쳤다.
뻐억!
“크아아아앙!”
이피누스가 이제까지 중 가장 격렬하게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두 발을 살 안에 깊숙이 집어넣고 있어서 균형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이음매를 한 번 더 ‘핵주먹’으로 내리치자 뚝 하고 끊어졌다.
반대편 이음매도 두 번의 핵주먹질로 끊어냈다.
갑각에 비하면 뼈는 그리 견고하지 않은 편이다.
더구나 덩치에 비해 등뼈라고 박혀 있는 것이 그리 굵지도 않고.
‘지배자의 손아귀’에 등뼈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는 모른다.
만약 이피누스의 등뼈 전체가 필요하다면 온 등판을 다 뜯어내야 하리라.
그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이미 스킬 시간을 많이 소모한 이상 정신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마디의 등뼈를 뜯어냈을 때, 그곳에서 발하는 빛이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목걸이의 펜던트 부분에서 흘러나오던 빛도 꺼지고.
‘……이걸로 충분하다는 건가?’
내 멋대로 ‘이 정도 양이면 ‘지배자의 목걸이’를 만드는 데 쓰기에는 충분한 양이라는 뜻이겠거니’라고 해석했다.
등뼈를 뽑아내고 난 뒤에 일어난 변화는 단순히 펜던트의 빛이 사라진 것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이피누스가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더니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놈에게서 천천히 생명력이 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미미와 파프리카에게 대항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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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급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문장이 시야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