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뭐라고?’
지난번 S급 몬스터 메디타시야가 출현한 지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S급 게이트가 또 출현했다고?
사장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헛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뭐야, 이게.’
나는 미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항상 여유 있는 표정이었지만 S급 게이트가 출현했다는 말을 들은 지금은 꽤 굳어 있었다.
“주군! 주군밖에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거야? 역시 그렇겠지.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나를 죽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니 이 사냥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시무룩하게 손에 쥐고 있던 펜던트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쓰인 문자들은 여전히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설마…… 우연이겠지.’
그런 생각으로 미나를 보았더니 그녀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군, 그것은 ‘운명의 목걸이’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운명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역할을 하죠. ‘그라페이오’를 직접 죽인 주군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보구입니다.”
그라페이오? 몬스터 이름인가?
아마도 ‘운명의 목걸이’를 만드는 데 쓰인 핵심재료를 제공한 몬스터인 것 같다.
왜 하필 미나가 이 보구를 가지고 있다가 내게 주었을지 궁금했지만, 거기에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아마 람바스는 다른 보구는 내버려 두더라도 이것만큼은 내게 빨리 전달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미나는 상쾌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나한테 S급 몬스터가 왜 필요하다는 말인가? 왜 이게 내게 앞당겨야 할 운명이 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핫!”
여전히 내 오른손에 끼워져 있는 ‘지배자의 손아귀’.
사실 이것은 완성된 물건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재료 하나가 빠진 미완성품.
“젠장…….”
내 기분은 고려하지 않는구나.
‘필요한 방향’이라고 하는 것에 내 의지는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내 의지를 반영했다가는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문가로 걸어간 파프리카가 허공을 보고 짖었다.
“왈! 왈!”
평소보다 늠름한 육성에서 S급 몬스터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쳇!”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귀찮은 상황이 닥칠 때마다 사용하고 있는 마인드컨트롤용 스킬.
‘의지!’
부와아악!
“오케이, 나가자!”
의지를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니 발동 직후에 찾아오는 ‘메모리 타임’이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킬을 사용하면 이제는 거의 자동반사로 의욕이 솟구쳤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문밖으로 나가자 이 동네 하늘 전체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실체가 보였다.
S급 게이트.
이것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TV에서 중계는 숱하게 보았지만, 그것은 늘 중간부터 시작되었으니까.
S급 게이트 출현이 보고되고, 방송국에서 드론을 날리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 두려워졌다.
드론이 날아오고 거기 얼굴이 비친다면 내 존재가 알려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한국에서-비단 한국뿐만이 아니겠지만-S급 헌터들이 어떤 주목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비록 ‘의지’ 스킬을 사용하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기본 성정이나 장기적인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미미가 소리쳤다.
“주군!”
“응?”
돌아보자 그녀가 내게 뭔가를 휙 집어던졌다.
손으로 받아 확인해 보니 마스크였다.
눈과 코 윗부분만 가릴 수 있게 만들어진 마스크는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재질이 부드러워 싸우는 데 방해될 것 같지도 않고.
‘오.’
언제 이런 걸 준비했다지?
나는 미미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녀는 자기 또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마스크는 핑크색이었는데 묘하게 쿨하고 섹시한 인상을 주었다.
나 역시 마스크를 쓴 모습이 가히 나쁘지 않으리라고 짐작한다.
왜냐면 썩은 눈을 가리는 것만으로 상당한 외모 업그레이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멍! 멍!”
파프리카는 어느새 거대한 개로 변신해 있었다.
사실 파프리카에게는 가면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그만 형태에서 거대한 개로 변신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외형의 변화가 일어난 거니까.
누가 감히 그 조그맣고 귀여운 강아지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각성수와 같은 강아지라고 짐작할 수 있겠는가?
S급 게이트는 타 등급의 게이트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깊고 거대한 구멍이 블랙홀 같은 모양으로 넘실넘실 기분 나쁜 아우라를 내뿜고 있다.
내가 S급 헌터가 아니었더라면 당장 내빼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정도로.
주변에는 커다란 소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근처는 이미 사람들이 달아나서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지만, 광범위한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대피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S급 게이트의 출현이 잦아지면서 긴급 문자가 발송되게 되어 있었으므로 이런 반응은 즉각적인 편이다.
물론 막상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그 막강한 존재감에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겠지만.
‘평균 1,200명…….’
그것은 엄청난 숫자다.
나는 절대로 그만큼의 피해가 발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1,200명은커녕 단 한 명도 죽거나 다쳐서는 안 된다.
왜냐면 지금 허공에 떠 있는 S급 게이트는 나 때문에 출현한 거니까.
‘운명의 목걸이’가 일어날 일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역할을 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 게이트는 언젠가는 출현했을 것이고, 그 일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불가피했겠지만 그것이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후우…….”
이런 걸 귀찮다고 해서는 안 되겠지.
내게 귀찮음은 조건반사 같은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다행히 ‘의지’가 발동 중이기 때문에 싸움을 피하고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위압감을 풍기며 허공에 머물러 있던 게이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검은 마나가 넘실거리는 가운데 기다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끝이 뾰족한 그것은 원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그게 신체의 어떤 부위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어떡해야 돼지?’
S급 몬스터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S급 몬스터에 대한 이미지는 TV에 나왔던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면 기운이 쭉 빠졌다.
왜냐면 난다 긴다 하는 S급 헌터들도 아주 아주 고전을 하고 난 뒤에야 사냥에 성공하곤 했으니까.
“하아…….”
‘의지’ 스킬이 발동된 중에도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내 뒤에서 미미가 소리쳤다.
“주군! 걱정하지 마세요! 주군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녀가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의 의미를 잠깐 생각했다.
그런 뒤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
람바스는 최후의 최후까지 악마들과 맞서 싸운 존재니까.
그런 존재의 능력과 의지를 이어받은 내가 S급 몬스터를 사냥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내 곁에는 누구보다 듬직한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미미는 A급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전투력은 그보다 위일 게 당연하다.
단순히 등급을 떠나 그녀가 구사하는 신비한 능력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멍! 멍!”
파프리카는 또 어떠한가?
이 귀여운 애완견은 ‘킹 오브 각성수’이다.
인간 헌터와 동일한 개념으로 견줄 수는 없겠지만, 아마 파프리카보다 뛰어난 헌터를 찾기가 어려울 것.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가 뭘 걱정하는 거야?’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인지 불쑥 잊고 있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인벤토리 안에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몬스터 도감.”
그렇게 중얼거리자 두꺼운 책이 홀로그램으로 불쑥 솟구쳐 나왔다.
어차피 잠시 후면 저절로 책이 나타나 펼쳐졌겠지만, S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와중에 딜레이가 발생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어찌 됐든 A급 이하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제 곧 나타날 몬스터의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피누스.”
내 말을 인식하고 도감의 페이지가 촤르륵 넘어갔다.
멈춘 페이지에 그려진 그림은 거미와 닮아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 지금 나오고 있는 부위는 다리일 것이다.
뾰족한 다리.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출현 중인 S급 몬스터를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게이트가 발생시키는 막대한 마나 자력이 헌터를 집어삼킬 수도 있기 때문에.
더구나 게이트에서 막 나오는 S급 몬스터는 내구력이 보통 때보다 훨씬 강했다.
여러모로 성가신 성질을 가진 최강의 몬스터인 셈.
이름 : 이피누스
등급 : S-5
특성 : 졸루시카 행성 최강의 포식자. 입으로 쏘아내는 거미줄에 걸리면 무엇이든 녹아 이피누스가 먹기 좋은 형태로 변해버린다.
약점 : 몸뚱이가 크고 머리통이 전면에 달린 만큼 몬스터의 사각으로 이동해 싸우면 다소 수월하게 대미지를 넣을 수 있다. 다리 사이로 들어가 상대적으로 연약한 아랫배를 노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
“그렇군.”
몬스터 도감의 훌륭한 점은 몬스터의 약점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나는 도감에 적힌 약점을 숙지했다.
솔직히 얼마큼 실전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기다란 앞 다리 두 개가 먼저 빠져나온 다음 몬스터의 머리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주둥이는 보기만 해도 끔찍한 느낌이 든다.
주욱 하고 침이 흘러내렸는데, 그것은 뚝 하고 낙하하여 아래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의 지붕 위로 떨어졌다.
자동차는 순식간에 폭삭 녹아버렸다.
‘이대로 괜찮을까?’
문득 내가 아직 추리닝 차림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이르렀다.
‘…….’
이 사실은 내게 한 가지 자각을 일깨웠다.
바로 ‘방어용 장비’도 필요하겠다는 생각.
물론 방어용 장비도 보구 중 하나에 들어간다.
고로 그것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지배자의 손아귀’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냥을 해서 재료를 모으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게 람바스가 내게 보구를 완성된 채로 넘기지 않은 이유인가?’
‘운명의 목걸이’처럼 다른 보구도 미나를 통해 전달하면 되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내 스스로 목표의식을 갖기 바라서인지 모른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람바스이니까 설계할 수 있는 일일 터.
‘쳇.’
아무튼.
지금은 방어용 장비가 없으니 이피누스의 공격을 최대한 맞지 않도록 주의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이피누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시꺼멓고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들어찬 입속에서 팍! 하고 발사된 것은 끈끈하고 질긴 거미줄이었다.
이피누스는 나오는 순간부터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거미줄은 나를 향해 발사된 것이었다.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