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19화 (19/160)

▣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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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는 이석두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헌터관리소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당연히 이유가 궁금했다.

“왜?”

미미는 나에게 이석두의 핸드폰 안에 담긴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길드장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저는 길드장님의 염려와 관심 속에서 매일매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제 딸이 이번에 헌터로 각성을 했는데요. 등급은 D밖에 안 되지만 분명 쓸만한 구석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딸이라 말씀드리기 쑥스럽지만 어렸을 때부터 총명한 구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아, 귀찮아.’

무슨 말을 이렇게 빙빙 돌려가면서 복잡하게 한다지?

조금만 보아도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자기 딸이 이번에 각성했는데 길드에 넣어주면 안 되겠느냐는 거겠지.

뭐, 이런 메시지야 조금 잘 나가는 길드장들은 매일 받는 것일 테니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 의미를 담아 미미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주군, 발신자 이름을 보세요.”

“음…… 최호구?”

나는 들은 듯 만 듯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헌터관리소 소장 최구호. 아마 이석두는 그 이름을 바꿔서 저장한 것 같아요.”

“아아~ 하하하! 절묘하네, 절묘해! 잘 어울린다! 최호구!”

“다른 메시지들을 보면 관계가 더 명확해져요. 우리가 사냥한 아미토스 사체를 받아주지 말라는 내용도 있어요.”

“뭣이?”

예상은 했지만 사실로 드러나니까 더 짜증이 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방 더 때려주는 거였는데.

물론 악마가 빠져나온 뒤에 더 때렸으면 죽어버렸을 테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물론 직접 가는 것은 귀찮다.

“미미, 파프리카, 출동!”

“넵!”

“왈! 왈!”

25

그런 연유로 나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미미와 파프리카가 헌터관리소를 방문한 것을 생중계로 감상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번 편은 지난번보다 훨씬 흥미롭다.

가장 놀란 점은 파프리카가 입을 열어 큰소리를 냈다는 사실이었다.

“소장 어딨어! 빨리 나오라고 그래!”

나는 변신한 파프리카가 말을 할 수 있는 줄은 몰랐다. 그 점이 약간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말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그냥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물론 나라도 귀찮아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디테일한 설정에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썩은 눈으로 고함을 지르니까 왠지 더 박력 있네.’

영화 속에서 가끔 등장하는 퇴폐미 쩌는 망나니를 보는 것 같다.

곧 헐레벌떡 최호구, 아니, 최구호가 뛰어나왔다.

아무래도 찔리는 게 있어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모양.

“무, 무슨 일이십니까?”

그는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는 미미와 파프리카를 보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저희랑 할 얘기가 있을 텐데요?”

“무슨…….”

“아미토스 사체 건, 다 알고 왔어요. 계속 발뺌하실 건가요? 아니면 언론사부터 찾아갈까요?”

“아,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원. 일단 안으로 들어가셔서 천천히 말씀 나눠보시죠.”

번들번들한 낯짝을 지닌 최구호가 쩔쩔매는 것을 보니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둔 갑자 칩을 꺼내어 봉지를 뜯었다.

최구호의 맞은편에 앉은 미미는 다리를 척 꼬고 카리스마 있게 말했다.

“헌터관리소 소장이 길드 뒤나 봐주는 직책이었나?”

“그, 그게 무슨…… 이 아가씨가 다짜고짜 못하는 소리가 없어?”

“따님이 D급 헌터로 각성하셨다. 외람된 부탁이오나 라이온스에 넣어주시면 감사하겠다.”

“허억!”

최구호는 소파에서 내려와 냉큼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계속 오리발을 내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제 보니 상황파악 능력이 제법이었다.

“어떡할 거야?”

“그, 그게 저…….”

이런 상황인데도 최구호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뭐라고 딱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미미가 혀를 찼다.

“이석두 눈치라면 볼 것 없어. 이쪽에서 이미 얘기 끝냈으니까. 그놈이 핸드폰에 당신 이름을 뭐라고 저장했는지 알아? 호구래. 최호구.”

“네에?”

최구호도 그 말에는 제법 강렬하게 반응했다.

“내 고등학교 별명을 어떻게…… 아니, 그게 아니라, 크흠…….”

“고민하지 마. 나 바쁜 사람이니까. 이거 언론에 뿌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협박으로 얻은 정보는 법적 효력이…….”

“웃기고 있네. 당신이 일반인이야? 공무원이 자기 직책을 이용해서 이권을 누리려고 한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요즘처럼 헌터관리소 공무원들의 청렴함에 대해 말을 많을 때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아마 당신 신상 탈탈 털리고, 평생 대한민국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걸?”

“…….”

3초쯤 고민했을까?

최구호가 몸을 일으켜 탁탁 무릎을 털었다.

아마도 결심이 선 모양.

눈치가 빠른 인간답게 아주 짧게 고민한 것이 인상 깊었다.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아미토스 사체를 처리해줘야지.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사체가 몇 개 있는데 그것들도 처리해 주시고.”

“시가 최고액으로 감정해드리죠.”

“그리고…….”

미미는 이게 본론이라는 듯 상체를 살짝 기울였다.

“내 라이선스에 약간 문제가 있는데…….”

“네?”

“개인적인 사정으로 페이크 라이선스를 소지하고 있거든.”

“네에?”

“이게 어떤 데는 문제가 없는데 어떤 데에서는 좀 걸리는 게 있어서. 당신이 능력 좀 발휘해 줬으면 좋겠어.”

“……다른 거라면 몰라도 페이크 라이선스라면 문제가 좀 큰…….”

“그래서? 못 해주겠다?”

“아, 아닙니다! 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해드려야죠!”

나는 최구호가 호구를 잡혀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뭐 자기가 잘못한 일이니 누구도 탓할 수 없지만.

‘과자 맛있네.’

헌터관리소 중계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재미있었다.

자기가 말한 대로 최구호는 신속하게 미미가 요구한 것들을 처리해 주었다.

“종종 봅시다.”

미미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지는 최구호.

미미는 헌터관리소에서 나오기 전에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군, 장 봐서 들어갈게요^^

26

‘드디어 평화가 왔군.’

나는 집에 돌아온 뒤에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하는 미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돈이 생겼으니 집 밖에 나갈 필요가 없다.

A급 변종 몬스터 사체에 각성수들 사체까지 하면 꽤 많은 돈이 들어왔을 테니 한 3년쯤은 거뜬히 빈둥거릴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미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주군, 이석두 핸드폰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최호구 건 말고?”

“사실 이쪽이 더 중요해요. 주군은 이석두가 충성을 다한 사도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

딱히 알려준 적이 없는데 미미의 눈치는 대단했다.

하기야, 악마와 사도의 관계는 깊이 따져볼 것도 없이 명확할 테니까.

나는 이석두와 싸우면서 그에게 빙의한 악마가 과거에 저지른 짓들을 보았다. 일개 악마가 그런 짓을 했는데 사도라면 얼마나 더 악랄하고 막 나가는 놈들일지 가늠이 안 된다.

“모르겠는데?”

“오성택이에요.”

“응?”

나는 처음에 ‘오성택이 누구야?’ 하고 생각했다가 곧 그가 대한민국에 세 명밖에 없는 S급 헌터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이쿠!’

귀찮은 일이 이어지라는 불길한 예감이 심장을 강타했다.

“……나중에 처리하면 안 될까? 한 3년쯤 뒤에?”

“그땐 이미 지구가 사도들에게 장악당한 뒤일 거예요.”

“그렇게 빨리?”

아마 미미가 좀 과장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3년이든 5년이든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오전에 보았던 끔찍한 영상을 되새겼다.

‘밥 먹기 전인데 입맛 떨어지네.’

반쯤은 포기한 심정으로 미미에게 물었다.

“사도는 강해?”

이석두에 빙의했던 악마를 떠올려보자면 아주 약했다. 이런 게 악마냐 싶을 정도로.

“네, 강해요. 무척. 지금의 주군 능력이라면 약간 밀릴지도 몰라요.”

“뭣이?”

비록 헌터와 싸움이라면 이철두, 이석두 형제와 한 것밖에 없지만 나는 약간 쇼크를 받았다.

‘사도가 그렇게 강하다니.’

하긴, 람바스도 최후에는 결국 싸움에서 패했다고 하지 않은가?

전성기의 람바스와 비교하면 내 실력은 거기 훨씬 못 미칠 거고.

“음…….”

귀찮다, 귀찮아.

“주군, 제가 빠르게 전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그런 게 있어?”

“제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보구를 찾으시면 돼요.”

나는 문득 이석두가 사용했던 채찍을 떠올렸다.

가운데가 뜯어져 못 쓰게 되어버렸지만, 실력 없는 자가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아까운 일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보구 중에 무기도 있어?”

“물론이죠! 저에게 레시피가 있어요!”

밝게 대답하는 미미를 보며, 나는 이번에도 뭔가 함정에 빠진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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