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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18화 (18/160)

▣ 18화

‘자주 오는구나.’

이 동네에 이사 올 때까지만 해도 이 공원에 이렇게 자주 오게 될 줄 몰랐다.

그도 그럴 수밖에, 조그마한 데다 관리도 안 돼 있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점이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편하게 싸우려면 보는 눈이 없어야 하니까.

‘그래도.’

나는 또 한 가지 조치를 할 필요를 느꼈다. 이석두와의 싸움은 이철두와 싸웠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니까.

이철두와는 그가 자존심을 내세워서, 그리고 미미가 부탁해서 그냥 놀아준다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도에 부역하고 있는 악마와 싸우는 것이었다.

‘……그래도 와 닿지는 않는데.’

사도가 행성을 장악했다는 이야기.

그들이 저질렀다는 폭력과 만행을 나는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

사도며, 그에 부역한 악마며 막연하게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만 있을 뿐이지, 구체적인 적의를 갖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갑자기 머릿속이 띵 울렸다.

주변 공기가 흐려지더니 낯선 영상 하나가 눈앞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인간들을 사슬로 엮어 줄줄이 팔아넘기는 노예 상인.

유희로 인간을 죽이고, 짐승보다도 못한 대우를 하는 악마.

갑자기 끔찍한 영상을 보았더니 속이 메스꺼웠다.

‘이게 실제로 람바스가 살았던 행성에서 일어났던 일…….’

그리고 언젠가 지구에서 생길 일이기도 했다.

“그렇구나…….”

‘나쁜 싹은 빨리 잘라버려야지.’

스킬 ‘의지’를 사용한 상태로 영상을 보아서 악마를 죽여야 한다는 욕구가 활활 타올랐다.

“죽어라!”

“아, 잠깐만요. 조철웅 씨. 저와 싸우겠다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저도 그에 응하고자 합니다만 이것은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니에요. 그렇죠? 너무 감정을 앞세우지 맙시다. 오케이?”

이석두가 주절거렸지만 내가 말한 대상은 그가 아니었다.

물론 이석두가 꼴 보기 싫은 놈이기는 해도 죽일 정도의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 눈은 스킬의 영향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미미에게 말했다.

“‘미러 월’을 설치해 줄래?”

“넵, 주군!”

미미가 스킬을 발동하자 ‘핵주먹’을 연마했을 때 그런 것처럼 공원 안에 투명한 막이 형성되었다.

그것을 이석두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흠…… 괜찮은 스킬이군요. 이제 보니 아가씨도 실력이 좋은 헌터 같군요. 어떻습니까? 내가 이기면 둘이 세트로 라이온스에 들어오는 게. 안 좋은 일은 싹 잊고 좋은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덤벼,.”

어딜 감히 나랑 미미를 세트로 묶어서 영입하네, 마네 지껄여?

길드 이름도 촌스러운 주제에.

“크흐음!”

이석두가 진짜 화났다는 듯 외투를 벗었다. 그것을 곱게 접어 옆에 두더니 허공에 손을 뻗어 무기를 꺼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형제가 모두 준비성이 좋았다.

이석두도 겉옷 안에 헌터 장비를 입고 있었으니까.

잘난 척은 오지게 하더니 동생을 두 번이나 날려버린 내가 조금은 신경 쓰였나 보다.

“추리닝 입은 초짜 헌터 상대로 잘하는 짓이네.”

내 말에 이석두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건 당신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서야. 어설프게 실력을 감추고 몸값을 올리려고 해봤자 진짜를 상대로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지.”

그렇게 말하고 악당처럼 크크크 웃었다.

아무리 밖에서 젠틀한 척해도 미러 월 안에서는 본성을 드러낸다.

유유상종이라고, 이러니까 악마가 꼬여 각성한 거겠지.

“시간 없다! 빨리 덤벼!”

내 말에 이석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진짜 뭘 믿고 그렇게 까부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요.”

놈이 손안에 있는 무기를 펼쳤다.

그것은 날이 가늘고 기다란 검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마나를 담아 휘두르자 형태가 바뀌었다.

채찍처럼 길게 늘어나 날카롭게 내 쪽으로 뻗어온다.

쌔애액-

나는 슬쩍 고개를 기울여 그것을 피했다.

볼에 가볍지 않은 풍압이 전해졌다

‘흥미롭네.’

형제지만 싸우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동생이 무식하게 힘만 믿고 돌진하는 타입.

하지만 이석두는 원거리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타입이다.

‘학습할 가치가 있으려나?’

그렇다고 결론 내린 나는 특능 ‘분석’을 발동했다.

내가 최초의 공격을 너무 가볍게 피해버린 것에 충격받은 것인지 이석두는 더욱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마나의 휘둘림이 다이내믹해지고 풍압 또한 점차 묵직해졌다.

‘역시 A급 답네.’

이철두는 노련한 B급 헌터 정도 되는 실력이었다.

헌터에게 있어 등급 차이는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만큼 이석두는 확실히 동생보다 더 뛰어났다.

비록 채찍으로는 한 번도 나를 맞추지 못했지만.

‘분석 완료!’

무기를 가진 헌터와 싸우는 것은 처음인지라 호기심이 동했지만, ‘분석’ 특능으로 파악하다 보니 쉽게 요체가 드러났다.

사실 요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등급빨로 잘난 척을 하는 것뿐이지, 이놈은 자기 동생보다도 실력이 없다.

그저 좋은 무기를 얻어 필사적으로 휘두르는 것일 뿐.

“아까 네가 했던 말이 맞네.”

“무슨 말?”

이석두는 땀을 뻘뻘 흘렸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내 사정거리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진짜 실력이 있으면 공격하는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 만도 한데.

‘특능이 아깝다.’

괜히 ‘분석’을 사용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짜를 상대로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거.”

“이 자식이!”

이석두가 노기를 띄고 거칠게 채찍을 휘둘렀다.

힘이 잔뜩 실린 나머지 엉성하게 날아온 채찍을 나는 허공에서 낚아챘다.

“무기만 좋으면 뭐하냐? 쓰는 놈이 병신인데.”

이석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채찍을 통해 내가 지닌 마나가 전달됐기 때문이겠지.

그가 무기를 놓으려고 했지만 나는 마나의 성질을 바꾸어 놈의 손바닥을 손잡이에 철썩 붙여놓았다.

그 상태로 확 잡아당겼다.

통제력이 잃고 날아오는 이석두.

나는 타이밍을 맞추어 스킬을 사용했다.

‘핵주먹!’

쩌엉!

강력한 주먹에 튕겨 나가는 반동으로 채찍이 툭 끊어졌다.

이석두의 몸뚱이가 미러 월의 내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탄성을 지닌 미러 월은 놈의 몸을 다시 내 쪽으로 돌려보냈다.

‘핵주먹!’

쩌어엉!

또다시 미러 월에 부딪혀 돌아오는 이석두.

‘핵주먹!’

쩌어엉!

세 번째 스킬을 맞추었을 때, 그의 몸 위로 흐릿한 형체가 삐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쩌어어엉!

네 번째 맞추자 그것의 형태가 더 확실해졌다.

영상에서 보았던 악마.

놈이 버티지 못하고 이석두의 몸에서 나오려고 했다.

나는 튕겨 나오는 이석두의 몸을 내버려 두고, 손안에 있는 채찍을 휘둘러 악마에게 날려 보냈다.

사실 채찍이 악마의 몸통에 감기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악마는 흡사 영혼처럼 투명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채찍은 놈의 몸통에 제대로 휘감겼다.

“끄아아아악!”

악마가 내뱉는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귀에 꽂혔다.

동시에 그에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혼이 복수를 종용하는 환상도 보였다.

채찍에 불끈 마나를 불어넣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악마의 영혼이 이내 산산조각 부서졌다.

파아앙!-

찢어진 악마의 영혼이 조각조각 떨어져 내리더니 곧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음…….”

‘의지’ 스킬의 효과가 끝났다.

덕분에 엄청난 무기력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어이쿠.”

못 할 짓이네, 이거.

뒤에서 미미가 말했다.

“주군, 죽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미미는 기절한 이석두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대미지가 악마에게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사람은 이제 능력을 잃었습니다. 아마 몇 달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거예요.”

죽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면 일이 커지니까.

악마가 몸 밖으로 이탈했으므로 헌터 능력을 잃었다.

아마 이석두로서는 몸을 다친 것보다 그쪽의 더 타격이 크리라.

뭐, 남이 공적이나 빼앗는 길드는 애초에 없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미미는 이번엔 이석두가 벗어놓았던 외투를 집어 들어 그 안을 뒤졌다.

뭐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찾아낸 것은 그의 핸드폰이었다.

축 늘어진 이석두의 검지를 이용해 잠금을 풀어낸 미미는 핸드폰을 조작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미미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 헌터관리소에 다녀오겠습니다.”

“응?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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