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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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늘도 네 갠가.’
오늘도 어김없이 레벨 업 메시지와 함께 눈을 떴다.
나는 문득 내가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보통의 헌터라면 레벨이 오를 때마다 즉각 확인하겠지만 나처럼 레벨이 자주 오르면 그것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등급 : S(Lv 36)/???
근력 : 118/???
민첩 : 118/???
체력 : 123/???
기량 : 130/???
정신력 : 15/100
특수능력 : 조철웅, 분석
스킬 : 노력(Lv 1), 근성(Lv 1), 의지(Lv 1), 인내심(Lv 1), 핵주먹(Lv 20)
칭호 : -
인벤토리(S) : 몬스터 도감 I, 각성수 도감 I
‘벌써 36이구나.’
불과 며칠 전에 각성하여 순식간에 여기 이르렀다.
따지고 보면 별로 한 것도 없었다. A급 변종 몬스터 아미토스를 사냥했고, 어제 이철두랑 좀 놀아준 것밖에.
분양소에서의 일은 파프리카 혼자 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스탯이 전반적으로 모두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내 눈에 띈 것은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는 ‘정신력’이었다.
‘5나 올랐네?’
나머지 스탯은 한계치가 명확히 표시되지 않아-아마 잠재력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뜻이겠지만-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명확한 지표로 삼기 어려웠으나 정신력은 ‘100’이라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그중에 5가 올랐다는 것은 유의미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나 같은 게으름뱅이한테는.
‘그 때문인가?’
나 스스로 요즘 더 부지런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성 전에는 그야말로 몸을 뒤집는 것조차 귀찮았는데.
‘정말 강렬했지.’
‘노력’ 스킬을 사용했을 때의 감각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스킬 발동 직후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기억’들.
예전의 내게는 무척 익숙한 감각이었다.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잠자는 시간도 쪼개가며 노력을 더하려고 했다.
갑자기 찾아온 만큼 반갑다기보다는 불편한 기분이 컸지만, 여기 익숙해진다면 람바스의 성정에 덮인 지금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정신력’ 스탯이 의미 있는 것이다.
내가 변하고 있는 과정을 명확하게 수치로 보여주니까.
‘나머지 스킬은 뭘까?’
‘노력’을 사용했으니 ‘근성’, ‘의지’, ‘인내심’도 무엇일지 궁금했다.
비슷한 가치관이 바탕이 된 것들이니만큼 효과도 비슷할지 모른다. 어쩌면 중첩되어 증폭 효과를 일으킬지도.
‘뭐, 당장은 필요 없으니까.’
‘노력’ 스킬로 ‘핵주먹’ 스킬 레벨을 더 올리는 데 약간의 관심이 있었지만 쿨 타임이 끝나지 않아 당장 사용할 수 없었다.
‘상관없지.’
오늘은 좀 여유 있게 보냈으면 좋겠다. 뭔 일이 매일 발생하는 건지, 각성하지 않았을 때가 훨씬 여유로웠다.
통장 사정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바람은 그러했건만.
오늘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는 전조가 일찍부터 찾아왔다.
어제 이철두가 문 앞에 서 있었던 것과 비슷한 시간, 벨이 울렸다.
띵동.
인기척을 죽이고 가만히 있으려고 했더니 미미가 냉큼 대답했다.
“네~ 누구세요?”
“왈! 왈!”
파프리카까지 짖어버렸으니 ‘아무도 없는 척하기’ 전략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미미가 문을 열었을 때, 바깥에는 훤칠한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키는 이철두와 비슷한데, 인상이 훨씬 젠틀하다. 그리고 이철두보다 몇 살 더 많아 보였다.
‘자꾸 이철두, 이철두 하니까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
내 예감은 사실로 드러났다.
벨을 누른 남자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라이온스 길드장 이석두라고 합니다. 어제는 제 동생이 큰 결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조철웅 씨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요.”
그는 동생과 달리 내가 안에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마나 감지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아 이철두보다는 분명 한 수 위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몸을 일으켰다.
‘형제가 번갈아 찾아와 사람을 괴롭히는구나.’
사실 생각해 보면 어제 찾아온 이철두는 본인의 진짜 용건을 꺼내지도 못했다.
원래는 형의 부탁을 전하러 찾아왔다고 했는데, 나를 보자마자 흥분하여 싸우자고 했으니까.
나는 이석두가 보이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심드렁하게 말했다.
“할 얘기 있으면 얼른 하고 가요.”
이석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긴, 사회적 지위가 있는 그가 보기에는 내 태도가 무척 거슬릴 것이다.
본인과 본인 동생이 내 심기를 거스르고 있는 것은 모르고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크흠, 알겠습니다. 편하게 들으세요. 아시겠지만 전에 있었던 아미토스 사냥은 저희 길드가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의도한 바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 언론 보도가 먼저 나가서 그렇게 돼 버렸죠. 그것을 다시 정정하고자 하면 절차가 복잡할뿐더러 비용도 많이 듭니다. 피차 바쁜 입장이니 좋은 해결책을 제안 드리려고 왔습니다.”
“거, 입장은 이해하지만 말 좀 간단간단하게 합시다. 듣고 있기 엄청 귀찮거든요? 그래서 뭔데요? 도둑질한 거 사과하러 왔습니까?”
“크흐흠…….”
이석두가 나를 노려보았다.
도둑질이라는 단어가 좀 자극적이었던 듯.
하지만 말이 바른 말이지, 그것은 도둑질이 명백하다. 덕분에 며칠 동안 라면만 먹고 있지 않은가?
이석두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겠다는 양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부탁한 대로 간단하게 말을 했다.
“세 배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명예를 잃지 않고 조철웅 씨는 돈을 벌게 되니 피차 윈윈이죠. 어떻습니까?”
“미미. 꺼내 드려.”
길게 얘기할 거 없다.
세 배 준다는 데 팔아야지.
하루만 더 있으면 일이 해결될 것 같다고 말한 미미의 선견지명은 정말 대단했다.
내 빠른 대답에 당황했는지 이석두가 양손을 저었다.
“아니, 잠깐. 제 얘기 아직 안 끝났습니다.”
“하아.”
“……지루하시더라도 조금만 참고 들어주십시오. 조철웅 씨께는 절대 손해 가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음.”
이석두는 지루해하는 내 태도를 못 본 체하고 말을 이었다.
“조철웅 씨.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미미 얼른 몬스터 꺼내 드려. 분비물 떨어지니까 방 안에서 꺼내지 말고.”
“잠깐만요!”
이번에 이석두는 명백히 표정을 구겼다.
“제가 방금 한 말 들으셨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라이온스가 얼마나 위상이 높은지 알아요? 저희 길드에 들어오고자 하는 헌터들이 줄을 섰습니다. 면접도 보지 않고 받아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예요?”
“라이온스 같은 쪽팔리는 이름을 가진 길드에는 안 들어갈 겁니다.”
“헙!”
어찌나 놀랐는지 이석두가 크게 숨을 삼켰다.
호흡이 멈춘 건 아닌지 의심될 지경.
곧 냉정을 되찾은 그가 마나를 뿜어냈다.
웅~ 웅~
역시 이철두보다는 한 수 위의 실력자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보자면 그의 굳은 얼굴을 보는 것도, 남의 집에서 함부로 마나를 뿜어내는 것도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사도에 대한 기억이 일부 깨어났습니다.]
[기억이 정리됩니다.]
[‘사도 도감 I’을 획득했습니다.]
‘뭐야, 이건?’
사도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이 행성을 집어삼키려는 원흉이라고 했지?
그런데 왜 이석두가 마나를 분출하자마자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 걸까?
내 의문은 두꺼운 책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펼쳐지면서 풀렸다.
이름 : 이석두
빙의된 영혼 : 부페르
등급 : A-9
설명 : 27번째 사도 카날리스에게 부역한 악마. 부페르와의 인연이 질긴 나머지 기억이 각성하지도 않은 지금부터 그에게 충성하고 있다. 나쁜 싹은 빨리 잘라버리자.
‘그렇군.’
‘사도 도감’에는 꼭 사도들만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그에게 부역했던 악마들까지 전부 담겨 있다면 책의 두께가 이해되었다.
‘나쁜 싹은 빨리 잘라버리자라…….’
동감이다.
단지 그렇게 하기가 귀찮을 뿐!
그런데 불쑥 아까 자고 일어나서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노력’ 말고 나머지 스킬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했던 것.
‘이 상황에 맞는 스킬은 뭘까?’
나는 잠깐 생각한 뒤에 스킬 ‘의지’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허업!”
‘노력’ 스킬을 사용했던 때처럼 많은 기억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채웠다.
지나간 기억, 감정이 차올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석두 씨. 지금 화나시죠?”
“네? 무, 물론 그렇습니만…….”
“어제 동생이 찾아와 다짜고짜 싸움을 걸었던 건 알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 일로 크게 꾸짖기까지 했죠. 하지만 오늘 조철웅 씨를 보니 동생의 심정이 이해됩니다.”
“그러시다면 시간 끌 거 있나요? 가시죠.”
“네? 어디를요?”
“어디긴요. 당연히 싸우러 가야죠. 요 앞에 좋은 데가 있어요.”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아! 의지가 차오른다!’
내가 스스로 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분양소 때 이후로 처음이지만 지금과 그때의 감정은 아주 달랐다.
지금이 훨씬 싸워야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나는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이석두를 돌아보았다.
“뭐해요? 냉큼 따라오지 않고?”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사람이!”
이석두는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나를 따라왔다.
그 뒤를 미미와 파프리카가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