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그렇구나…….’
나는 깨달았다. 특수능력 ‘분석’은 전투경험 따위를 전수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저 천재적 재능을 상징하는 특능일 뿐.
상대의 기술을 보는 것만으로 분석해낸다.
장점과 단점을 깨닫고 더욱 나은 것으로 개량해 자신의 기술로 흡수한다.
내 능력이지만 소름 돋네.
“한 수 배우고 싶다고 하셨죠?”
내 말에 이철두가 흠칫 놀랐다.
마나를 전부 방출한 그는 매우 지친 얼굴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얼굴 전체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다.
“이철두 씨의 단점은 싸울 때 너무 흥분한다는 거예요. 힘으로 부족한 정교함을 커버하겠다는 건 나쁜 생각이 아니지만 죽어도 좋다는 기분으로 뛰어들어봤자 진짜 강한 상대를 만나면 정말로 죽을 뿐입니다. 인간은 몬스터처럼 멍청하지 않으니까요.”
강의는 이쯤 하면 되겠지.
사실 이철두는 상당히 유능한 헌터였다. 등급과 무관하게 본인이 잘만 하면 더 대단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뭐, 고작 한마디 해준다고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본능적으로 체득한 것이라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주인 잘못 만나서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스킬이 부지기수일 거라고 생각하니 쓸데없이 한탄이 나왔다.
“잘 가요.”
나는 방금 얻은 스킬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물론 이철두를 직접 맞힐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가 피떡이 되고 말 테니까.
‘핵주먹!’
쩌어어엉!!!
내 딴에는 가볍게 휘두른 주먹이었다.
이철두와의 거리가 가깝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는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공원에서 사라져버렸다.
헌터의 뛰어난 시력으로도 그가 하늘을 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반짝!
이철두는 다시 한번 푸른 하늘의 별이 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하아…….”
귀찮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미미와 파프리카에게 말했다.
“집에 가자.”
21
원하지 않은 싸움을 하고 와서 침대에 시체처럼 누웠다.
이미 오늘 사용할, 아니, 일주일 동안 사용할 행동력을 전부 사용했다.
그 때문에 당분간은 꼼짝도 하지 않을 작정이다.
물론 최근 일을 돌이켜보면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미미는 집에 돌아온 뒤에 다시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 헌터관리소에 안 가?”
“네.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하루만 기다리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요.”
“잘 생각했어. 너무 급하게 안달 낼 거 없다니까? 어차피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될 거야. 아니면 말고.”
“네. 주군 말씀이 무조건 다 맞아요.”
미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혹시…….’
내가 자기 부탁을 들어주어서 그런 건가?
솔직히 미미와 파프리카에게는 모진 마음을 갖기 어려웠다.
‘부탁’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면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미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방안에 익숙한 냄새가 가득 차기 시작한다.
22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눈을 뜬 나는 불현듯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노력’하면 어떻게 될까?’
‘조철웅’ 특수능력을 각성한 뒤에 생긴 네 가지 스킬을 아직 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전에 이철두와 싸우면서 새삼 깨달았다.
람바스가 정말 무지막지한 먼치킨이라는 것을.
그런 재능에 노력이 더해진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귀찮은데.’
요즘 들어 왜 자꾸 게으름의 벽이 허물어지는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타의에 의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위험한 징조였다.
‘‘조철웅’ 특능의 영향인가……?’
능력을 각성한 뒤로 람바스의 성정 저 밑에 내 본래 가치관들이 깨어난 것이 아닐까?
아까 얻은 ‘핵주먹’의 레벨은 아직 1이었다.
이 스킬의 유용한 점은 두 방, 세 방 잔기술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 방에 기력을 모아 빵! 하고 날려버리면 되니까.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게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기술!
스킬로 날려버리는 거랑 그냥 날려버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철두가 하늘을 날았던 속도만 되새겨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몸에 직접 맞히지도 않았는데 대뜸 죽어버린다면 라이온스 제2 분대장이라는 타이틀이 아깝다.
남한테 싸움을 걸어놓고 그 정도도 각오하지 않았다면 안 될 일이므로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지우기로 했다.
‘노력’을 사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 밖에 또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건 한계의 한계를 넘는 행동이니까.
아직 그 정도까지 내 귀차니즘은 극복되지 않았다.
‘누워서 해볼까?’
누워서 ‘노력’하면 어떻게 될까?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스킬을 사용한다는 의지쯤은 내보일 수 있으니까.
나는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헉!”
스킬이 발동하자마자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머릿속에 묵직한 생각들이 가득 들어찼다.
그것이 어색한 이유는 방금까지 품고 있는 생각과 너무나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날의 내 기억이 살아났다.
내가 죽도록 노력했던 순간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부리나케 침대를 빠져나와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 주군? 어디 가세요?”
“왈! 왈!”
뒤에서 미미와 파프리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내 뛰쳐나가는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그것은 금방 사라져버렸다.
내가 달려간 곳은 공원이었다.
오전에 이철두와 싸웠던 곳.
원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노력’할 생각이었지만 스킬을 쓰자마자 노력을 정상적으로 제대로 할 수 있는 곳까지 달려와 버렸다.
‘1초도 낭비하면 안 돼!’
과연 같은 사람의 사고방식이 이 정도로 빨리 바뀔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곧장 새로 습득한 스킬 ‘핵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엉!-
오전에 사용했던 것과 달리 조금의 사정도 두지 않고 뻗은 주먹이기 때문에 전면의 대기가 확 하고 밀려났다.
마나가 뻗어 나가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그것은 급기야 공원 안에 있는 나무까지 밀어버렸다.
우지끈!!
‘아, 미친.’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상태로 스킬을 계속 사용했다가는 공원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걱정보다도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 더 훈련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망설임을 낳았다.
그야말로 인격 자체가 달라졌다!
그때,
파아앗!
갑자기 공원 안에 투명한 막이 씌워졌다. 마나로 만들어진 벽은 공원 내의 일정 범위를 감쌌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 마음껏 스킬을 사용하셔도 돼요. ‘미러 월’이라는 거예요. 람바스 님이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뭔가를 하시려고 할 때 제가 사용했던 스킬이에요.”
역시 충성심 높은 부하답다.
몬스터 해체 기술도 그렇고, 적의 능력을 없애버리는 것도 그렇고 정말 나에게 딱 필요한 스킬들만 가지고 있었다.
“오케이, 그렇다면!”
나는 재차 ‘핵주먹’을 날렸다.
쩌어어엉!!
내가 밀어낸 대기가 ‘미러 월’의 내벽에 닿았다. 그것은 물결처럼 출렁였지만 찢어지거나 부서지지 않았다.
‘안심해도 되겠네.’
나는 시간을 잊고 계속해서 스킬을 내질렀다.
쩌어엉!!
쩌어엉!!
쩌어어엉!!!
[스킬 유지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으아아아…….”
‘노력’ 발동시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힘이 빠져서가 아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나 하는 자괴감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집 밖에 나와 무려 5분 동안이나 연속해서 스킬을 쓰다니.
“으으으…….”
‘미러 월’을 해제한 미미가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잘하셨어요, 주군! 정말 멋져요!”
나는 이왕 미친 짓(?)을 한 김에 이 훈련에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나 확인해 보기로 했다.
스테이터스를 열고 ‘핵주먹’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명칭 : 핵주먹(Lv 20)
등급 : S
내용 : 마나를 주먹에 모아 힘 있게 내지른다.
스킬 정보는 단순했다. 하긴 유니크 스킬인 ‘노력’, ‘근성’, ‘의지’, ‘인내심’과는 달리 효과나 유지시간까지 보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내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와…… 5분 만에 20레벨이 되다니…….’
레벨 1짜리 스킬이 레벨 20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등급은 S.
레벨이 올랐다고 스킬 등급까지 오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리라.
이철두의 스킬이 S등급이었을 리는 당연히 없고, 내가 그 스킬의 정수를 체득하여 흡수했기 때문일 터.
같은 스킬이라도 먼치킨이 사용하면 다르다는 건가.
‘어쨌든 귀찮음을 무릅쓴 보람이 있군.’
사실 스킬을 쓰는 중에는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어쩌면 진짜 먼치킨은 람바스가 아니라 나일지도.’
아니, 둘이 합쳐 진짜 먼치킨이 탄생한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