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6화 (6/160)

▣ 6화

‘튀지 않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검사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기대가 잔뜩 담긴 눈으로 나와 이근수를 바라보았다.

의도와는 달리 앞서 보인 두 번의 테스트 때 나는 눈에 띄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말았다.

아직 내 능력이 제대로 측정된 적은 없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 모두 나를 범상한 각성자로 보지 않았다.

거기에 정신 나간 B급 각성자가 내게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나라도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적당히 잘나야 하는구나.’

다행인 점은 검사 장면이나 결과를 사진으로 찍거나 영상으로 녹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 이근수와의 배틀이 다른 곳에 새어나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적당히 하자.’

물론 앞선 테스트 때 적당히 하는 것을 실패했기 때문에 썩 자신은 없었지만 어쨌든 최대한 능력을 억눌러야 할 것이었다.

귀찮은 이근수 놈도 테스트만 끝나면 더 이상 안 보고 살 수 있다.

그렇게 마음먹었건만,

“우리야아압!”

검사원이 테스트 개시를 선언하자마자 이근수가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야, 싸움 아니라는 얘기 못 들었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바깥에 있는 공무원들도 즉각 인지했다.

“이근수 씨 이것은 테스트입니다! 상대에게 상해를 입히면 법적인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눈알이 돌아간 이근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듯했다.

놈이 온 힘을 다해서 막대를 휘둘렀다.

휘잉-

“어?”

나는 이근수가 막대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뭐야?’

그의 움직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인 것.

평상시에 사물을 볼 때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 동체 시력이 상황에 맞춰 특수한 반응을 일으킨 것 같았다.

휘잉-

휘이잉-

이근수는 이를 악물고 막대를 휘둘러댔지만, 그것들은 당연하다는 듯 내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휘이이잉-

휘이이이잉-

이근수의 움직임은 갈수록 느려졌다. 놈의 힘이 빠졌다기보다는 내 동체 시력이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졌기 때문일 것이었다.

역시 헌터들은 조건이 갖춰지면 반사적으로 사냥 능력이 드러나는 모양이다.

괜히 관리소에서 각성 판정 테스트 중 하나로 배틀 테스트를 넣은 게 아니었다.

이근수의 표정은 갈수록 험악해졌다.

한편으로는 절망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나를 통해 우월감을 느껴왔을 텐데 그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며 드러난 민낯이라고 할까?

‘한심한 놈아.’

본인의 성취가 아닌 남과의 비교에서만 우월감을 느끼는 인생이란 얼마나 하찮단 말인가!

테스트를 지켜보고 있던 공무원들도 평정을 되찾았다.

나와 이근수의 테스트가 별일 없이 끝날 거라고 확신한 것 같았다.

“조철웅 씨, 대응하지 않으면 테스트를 종료할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상대 공격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테스트가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막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가볍게 휘두르기만 하면 되겠지?’

그러면 테스트가 끝나고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배드민턴 공을 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막대를 휘두른 나는 예상 밖의 타격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빠아악!!

“응?”

나는 손에 든 막대를 내려다보았다.

분명히 가볍게 휘둘렀는데?

45도 상단의 관리소 천장에 둥그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근수가 날아가면서 만들어 놓은 구멍.

이근수가 반짝, 별이 되지 않았다는 것만 빼면 만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헉!”

갑작스럽게 찾아온 현실감에 나는 얼른 막대를 내려놓았다.

서둘러 장비도 벗었다.

뚫린 벽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공무원에게 물었다.

“검사 끝난 거죠?”

“네?”

“방금 있었던 일은 저랑은 관계없는 겁니다? 저는 진짜 가볍게 휘둘렀어요. 아마 저놈이 비행 스킬을 각성했나 봐요.”

“비행…… 스킬요?”

“테스트 끝났으니까 임시자격증 주세요.”

“자격증은 오늘 발급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자택으로 보내드릴 거예요.”

“그렇구나!”

나는 누가 잡을세라 부리나케 관리소를 빠져나갔다.

의식적으로 동작을 서둘렀기 때문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으아악! 너무 눈에 띄었다!’

설마 천장 수리비를 청구하지는 않겠지?

엄밀히 말해 나는 막대로 이근수를 치지 않았다.

놈은 내가 휘두른 막대의 풍압에 떠밀려 날아간 것뿐이었다. 물론 나 말고 현장에 있는 누구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지만.

‘집에 가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피곤한 하루였다.

허전한 기분이 들어 왜 그런가 했더니 미미를 검사장 안에 두고 온 게 생각났다.

‘다 큰 성인이니까 알아서 오겠지.’

그녀의 현실 적응력은 지구에서 나고 자란 나를 뛰어넘으니까.

6

미미는 나보다 먼저 집에 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옆에는 웬 남자가 눈이 가려지고 손이 묶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가 몸에 걸쳐진 것은 팬티 한 장뿐.

비록 눈이 가려진 상태이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주군, 적을 포획해 왔습니다.”

“…….”

관리소에 있을 때 미미에게 이근수가 적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아마도 그녀가 생각하는 ‘적’과 내가 생각하는 ‘적’의 개념에 큰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이걸 어쩌지?’

천장 밖으로 날려버린 것은 둘째치고 집으로 납치해 온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에서 힘이 빠진다.

‘나 계속 한국에서 살 수 있을까?’

헌터로 각성했으니 사소한 범죄쯤은 눈 감아 주는 국가가 있을지 모른다.

창백한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미미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이근수가 말했다.

“미안하다, 철웅아. 흑흑. 내가 잘못했어. 나 평생 니 쫄따구로 살게. 흑흑흑…….”

미친놈아. 너 같은 놈을 누가 쫄다구로 쓴다고.

정체가 다 폭로된 마당에 눈을 가리고 있어봤자 소용이 없어 나는 일단 그의 눈가리개를 풀어주었다.

킁킁.

‘근데 이건 무슨 냄새지?’

불쾌한 냄새를 따라가자 이근수의 사타구니가 흠뻑 젖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야! 너 오줌 쌌냐?”

“미안하다, 철웅아…… 흑흑. 미안하다…….”

훌쩍이는 이근수의 뒤통수를 미미가 후려쳤다.

“조용히 안 해! 주군을 건드린 이상 넌 이미 죽은 목숨이야!”

“우와아앙~~”

무릎걸음으로 도망치려는 이근수의 어깨를 미미가 팍 잡아 눌렀다.

“주군, 죽일까요?”

“죽이긴 뭘 죽여!”

미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죽이나요?”

“당연하지!”

“살려두면 계속 주군을 귀찮게 할 텐데…….”

미미는 헌터 관리소에서 보인 이근수의 행동이 생각났는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아니야! 나 너 절대 귀찮게 안 할 거다! 나 이사 갈 거야, 철웅아! 아니, 이민 갈 거다!”

이근수가 발악했지만, 나 역시 고민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대로 보내기는 찜찜한데…….”

“히익!”

어쨌거나 놈도 이제 헌터이니까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아까 헌터 관리소에서도 앞뒤 가리지 않고 내게 덤벼든 놈이 아닌가?

아무 조치도 없이 이놈을 풀어주는 것은 후환을 남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죽여야 하나?”

“철웅아!!!”

“아 거참, 시끄럽네.”

퍽!!

미미의 매운 손이 다시 한번 이근수의 뒤통수를 갈겼다.

“아니지. 아무리 헌터라도 살인자가 되는 건 곤란해. 헌터가 살인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고 하니까.”

진짜 어떡하지?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주군.”

“뭔데?”

“이놈의 각성을 무효로 돌리는 겁니다. 공포심을 맛보여주면 앞으로 절대 주군을 귀찮게 하지 못할 거예요.”

“각성을 무효로 만든다고? 그게 가능해?”

“넵.”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미미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할까?”

각성을 무효로 돌린다는 말에 이근수가 절규했다.

“안 돼! 철웅아! 나는 빚쟁이란 말이야! 헌터 됐다고 카드 엄청 긁었다고오!!”

이놈이 안 죽이고 살려줬더니 고작 카드빚을 들먹여?

“그건 네 사정이지.”

허락이 떨어지자 미미가 의식을 시작했다.

그녀의 작은 손바닥이 이근수의 머리통 한 뼘 위로 올라왔다.

곧 입술이 달싹이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흡사 판타지 영화 속에서 마법사가 영창을 하는 것과 같은…….

‘응?’

처음에는 낯설게 들렸던 미미의 말이 점차 또렷이 들려왔다.

“……자격 없는 자에게 빙의한 자여…… 너에게 바른길로 갈 것을 권유하나니…….”

이근수의 머리통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온몸에 비 오듯 땀을 흐르기 시작한다.

오줌에 이어 체액까지…….

제발 이 이상 방바닥을 더럽히지 말아줘.

청소하기 귀찮단 말이다. 물론 내가 하는 건 아니지만.

의식을 끝낸 뒤 미미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끝났습니다, 주군.”

이근수의 얼굴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1893년 작 ‘절규’를 연상시켰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놈에게는 더 이상 각성 능력이 남아 있지 않을 터.

“한 번만 더 주군 앞에서 까불면 죽여버린다!”

“히이익! 네넵!”

능력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공포심까지 맛보여준다고 했나?

이근수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수그렸다.

“조철웅 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요!”

잘났다고 깐족거리던 이근수는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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