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
“와, 엄청나네.”
나는 TV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TV에서는 부산에서 출몰한 S급 몬스터 메디타시야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식인 식물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괴물은 줄기 하나하나마다 대여섯 명의 사람을 엮고 있었다.
가끔 생각났다는 듯 줄기를 입으로 가져가 인간들을 입에 털어 넣는다.
입이라고 해도 울긋불긋한 색깔의 거대한 꽃 한가운데로 던져질 뿐이다.
식물에 이빨이 있을 리 만무하므로 비명을 지르며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생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것을 TV 리포터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메디타시야는 극성 독물질을 품고 있습니다. 인간을 섭취할 때는 독액을 온몸에 코팅해 뼈와 장기까지 한꺼번에 녹여서 흡수합니다.
아무리 케이블 방송이고 19금 딱지가 붙어 있다지만 언제부터 방송이 이런 잔인한 멘트를 여과 없이 내보내게 됐는지 모르겠다.
“말세다, 말세야.”
확실히 말세이기는 하다. 언젠가부터 세상에 출현하기 시작한 괴수, 몬스터, 이성인들-합쳐서 몬스터라고 하자.-은 세상을 파괴하고 인간들을 죽이기 시작했으니까.
대책 없이 인간들이 죽어가던 것이 멈춘 것은 지금은 소위 헌터라고 불리는 각성자들이 나타난 뒤였다.
마치 마블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처럼 특수한 능력을 각성한 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몬스터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핵무기가 아니고는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을 실제로 사냥하고 명성을 쌓아간다.
너무나 명확한 구도.
몬스터가 나타난 다음에 헌터가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몬스터를 죽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구는 몬스터와 헌터들이 싸우는 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헌터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지만 여전히 인간 세상은 몬스터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다.
처음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성과를 거두었다지만 아직도 몬스터의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더구나 헌터들도 모두 똑같은 실력을 갖춘 것이 아니라서, 소위 등급이 나누어지고 계급이 형성되어 수준에 맞는 몬스터들을 사냥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S급 몬스터가 출몰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이지 아비규환이 되고 만다.
통계에 의하면 S급 몬스터 하나가 출현할 때마다 평균 1,200명의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몬스터의 출현 장소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설픈 통계이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수많은 사람이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거나 짓밟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걸 카메라로 찍어 방송이나 하고 있다니…….’
S급 몬스터가 출현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방송사들은 카메라를 잃을 것을 각오하고 드론을 날려 중계한다.
그들은 몬스터에게 인간들이 잡아먹히는 자극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락을 받고 출동한 S급 헌터들의 활약상을 중계하는 것이었다.
“오, 왔다!”
드디어 한국에 세 명밖에 없는 S급 헌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름은 각각 김철호, 오성택, 이희진.
그들은 자기만의 특기를 발휘해 하늘을 날아오거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거나, 순간이동을 해서 현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일 년에 서너 번밖에 볼 수 없다는 S급 몬스터와 S급 헌터들 간의 일전이 TV 영상을 통해 흘러나왔다-국내 방송만 그렇고, 세계에서 S급 몬스터는 수시로 출몰하므로 꽤 자주 중계를 볼 수 있었다.-.
“저 귀찮은 걸 어떻게 하냐?”
나는 TV를 보면서 한탄했다.
각성도 어지간한 수준으로 해야지, S급이 되면 반강제적으로 S급 몬스터 사냥에 동원된다.
물론 S급 몬스터 이외에는 사냥을 하든 말든 본인의 선택이지만, 어쨌든 S급 몬스터와 싸우는 것처럼 위험한 일에 강제적으로 동원된다는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질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으, 아프겠다.”
화면 안에서는 김철호가 메디타시야의 채찍 같은 줄기 공격을 철썩, 얻어맞고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이희진이 순간이동 능력으로 재빨리 낚아채 구해낸다.
힐링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그녀는 김철호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귀엽네.”
체구가 작고 나이가 어린 이희진은 매우 귀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인기가 많은 것은 인지상정.
물론 김철호와 오성택 또한 외모와 상관없이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럼 뭐해. 귀찮은 일을 강제로 해야 하는데.”
내 기준으로 보면 헌터는 C급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다.
적당히 사냥하고 적당히 벌어들이는.
능력도 어중간하기 때문에 특별히 눈에 띄거나 강제로 몬스터와 싸울 일도 없다.
자유로운 고소득 직종.
정말 부러운 삶이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는 점입가경에 접어들었다.
S급 헌터들은 죽도록 얻어터지면서도 조금씩이나마 승기를 잡아갔다.
“에잉~”
나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 피곤해져서 TV를 꺼버렸다.
‘남의 일인데 뭐.’
헌터의 삶은 나와는 저~언혀 관계가 없다.
‘그나저나 돈도 떨어져 가는데 어쩌지?’
내 나이 스물일곱. 현재 특정한 직업이나 아르바이트 없이 저축을 갉아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 저축도 일 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는 동안 거의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다.
나는 빙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전등 옆에 거미줄이 쳐진 게 보였지만 당연히 귀찮으므로 치우지 않을 것이다.
거미들도 먹고 살아야지, 뭐.
“……콱 죽어버릴까?”
다시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니까 너무나도 귀찮은 나머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게을렀던 건 아니다. 스물여섯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꼭 일 년 전까지 나는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이었다고 자부한다.
딱히 워커홀릭 기질이 있다거나 근면 성실함을 타고나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아마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생이니까 ‘노력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말자.’라고.
하지만 그토록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는 좋지 않았다.
코피가 터질 때까지 공부했지만 성적은 중위권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고, 아르바이트를 기본 세 개씩 했지만 늘 예상 밖의 일이 터져서 돈이 줄줄 새나갔다.
정말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노오오력’을 했을 뿐.
그래도 열심히 한 사람에게 언젠가 결실이 주어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에 네다섯 시간만 자는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던 나는 갑자기 눈앞에 환한 빛이 터지는 현상을 경험하고 언덕을 굴렀다.
데굴데굴, 데구르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팔꿈치와 무릎이 좀 까진 정도.
무척 피곤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바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믿을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웠다.
정확히 말하면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귀찮아졌다.
팔꿈치와 무릎이 아리기는 하지만 그 밖에 몸에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살아 있는 시체처럼 내가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잘못된 일처럼 여겨졌다.
그날은 아르바이트를 가지 않았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그나마 부지런하게 살았던 시절의 잔재로 통장 잔고는 꽤 쌓여 있었고-악착같이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입고 모은 것치고는 소액이었지만-귀찮아서 밥을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몽땅 인터넷으로 주문한 즉석식품들이었다.-뒹굴거리며 지낸 덕에 일 년을 버틸 수 있었다.
일 년이나 쉬었으니 ‘이제 슬슬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일을 하느니 차라리 지금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C급 헌터가 되면 한 달에 한 번만 사냥하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텐데. 한 달에 한 번이 뭐야? 여섯 달에 한 번만 해도 일 같은 거 안 하고 놀 수 있지.”
지금까지 행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삶인데 한 번쯤은 하늘도 기적을 베풀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벌러덩 몸을 뒤집었다.
“아…….”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니 세상 참 족같다.
족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 누군가의 족(足)이 보였다. 아니, 살색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다리라는 측면에서 족이라기보다는 발, 다리라고 정중하게 불러야 할 것 같지만.
“……뭐야?”
나는 위화감이 느껴져 눈을 위로 올렸다.
‘어이쿠!’
쥐도 새도 모르게 내 집에 침입한 누군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서 본의 아니게 속옷을 볼 뻔했다.
‘와, 큰일 날 뻔했다.’
나에게도 성욕이 있었다는 것을 일 년 만에 알게 되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귀찮아 죽을 것 같은 마음을 극복하고 내 집에 들어와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 누구야?”
멀뚱히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얼굴을 내게 들이대는데, 부담스러울 만큼 아름다웠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금발 머리칼을 양 갈래로 땋아 늘어뜨렸고, 새하얀 피부는 백옥처럼 깨끗했으며, 커다란 눈망울 안에 담긴 눈동자는 선명한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초록색? 외국인인가?’
내가 미간을 찌푸리는 찰나 여자가 누워 있는 내 상반신을 와락 끌어안았다.
“주군! 드디어 다시 뵙는군요!”
주군? 내 이름은 조철웅인데?
역시 이 여자, 집을 잘못 찾아온 게 분명해.
그나저나 떼 놓기 귀찮은데 어떡하지? 폭신한 특정 신체 부위의 감촉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여자는 흑흑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마치 지금이 만화책 속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일 년 전 언덕을 구르기 전 보았던 빛이 다시 눈앞에서 터진 것은.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일 년 전에 보았던 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엄청나게 응축된 누군가의 기억이었다는 것을.
같은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각성……?’
보통 각성은 2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첫 번째 현상을 겪고 난 뒤 일정 기간의 잠복기를 거쳐 능력을 완전히 각성하게 되는 것.
보통 잠복기는 하루에서 일주일, 길게는 한 달까지 간다.
잠복기가 길수록 더 높은 등급으로, 더 많은 능력을 각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급 헌터의 잠복기는 약 한 달.
‘뭐야? 나는 일 년이나 걸렸는데?’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나를 끌어안은 정체불명의 여자 이름이 떠올랐다. 외모뿐만 아니라 이름도 만화 주인공 같았다.
“미미……?”
“주군!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여자가 더욱 세게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더 격정적으로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