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기적의 스킬 자판기 148화
검은 모래가 지평선까지 깔린, 검은 모래만 있는 사막이었다. 하늘엔 해도 달도, 별도 없이 검은 사막의 검은 모래보다 더 검은 어둠만이 소용돌이쳤다.
그런 하늘 아래…….
흉포하고 포악한 괴성과 포효, 공포와 악다구니가 섞인 비명과 고함이 마구 뒤섞여 암흑마력으로 가득한 얼음처럼 차가운 공간을 뒤흔들었다.
마물과 마족, 인간과 이종족들이 뒤섞여 전력을 쏟아부으며 목숨을 던져가며 처절하게 싸우고 있어서였다.
마계였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마계 원정대가 게이트 안으로, 마계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쁨을 누릴 틈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너무 강해……!"
"이대론 전멸이야!"
"일단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디로 후퇴하겠다는 거야? 여긴 마계라고! 어딜 가도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려! 싸워! 물러나지 말고 싸워!"
"으아아악, 내 파아아알! 힐! 나 좀 치료해 줘!"
"사, 살려줘! 돌아갈래!"
결국 게이트 앞에 모여 있던 마물 떼와 그 마물들을 부리는 마족들의 공격에 마계 원정대가 밀리기 시작했다.
마계 원정대의 병력수는 게이트 앞에 모여 있던 마물 떼에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병력 대부분이, 아니 전부라 해도 되었다.
마족은 물론 마물과도 싸워본 경험이 없었다. 마물과 마족들은 몬스터와 모든 게 달랐다.
심장을 찔렀다고 해서,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고 해서 죽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도 계속 공격을 해오는 마물과 마족들이 있었고, 특히 환수 타입의 마물들은 일반 병사와 유저들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마법과 오러, 신성력으로만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뭘 해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병사와 유저들이 많았다.
당연히 마물보다 더 기가 질리는 상대는 마족이었다. 하급 마족이라 해도, 마족이 한 번 검을 휘두르거나 마법을 만들어내면 열 명 스무 명이 픽픽 죽어 나갔다.
100레벨이 넘는 초고렙 유저들도 그랬다.
그러니 후퇴니 전멸이니 하는 말들이 곳곳에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어?! 살아난다! 살아나!"
갑자기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주변에 처참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는 시체들이 한꺼번에 몸을 꿈틀거리더니 상처들을 재생시키며, 심지어 절단된 팔다리, 박살 난 머리까지도 만들어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언데드가 아니야!"
"정말 살아나고 있어!"
"김용후……! 김용후다!"
"김용후가 기적의 스킬을 쓴 거야!"
불사의 대지 스킬이었다. 불사의 대지 스킬의 범위는 운동장 크기! 3천 명이 넘는 사망자들이 일제히 부활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브레스나 산성액을 전신에 뒤집어쓰고 흔적도 없이 없어져 버린 자들까지도 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만들어지며 복구되고 있었다.
그때, 허공으로 은빛으로 빛나는 빛의 띠가 퍼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 빛에 닿으면, 공포심이 누그러들고 상대가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의지와 자신감이 샘솟아 올랐다.
성녀 나탈리가 만든 신성 버프였다. 공포심을 사라지게 하고 정신력을 강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아드레날린을 마구 분비시켰다.
죽어도 죽지 않는단 생각과 그 신성 버프가 더해져 원정대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기세로 치솟아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김용후가 무슨 몬스터라도 잡듯 마족들을 총으로 검으로 간단히도 잡아내고 있었다. 중급 마족마저도.
투아아아앙!
리볼버(+7)에서 줄줄이 쏘아져 나온 총알 6발 중 4발이 중급 마족의 오른쪽 가슴에 큼직큼직한 구멍을 만들어내며 뒤에 있던 마물들까지도 쓰러뜨렸다.
-……키헤에에에에엑!
소드마스터 셋이 붙어도 어쩌지 못하던 상급 마족이, 원정대 병사와 기사, 유저 500 이상을 잡은 4개나 되는 뿔을 가진 중급 마족이 몸이 가루로 변하며 허물어져다.
4발의 총알 중 한 발이 오른쪽 가슴 속에 있는 핵을 정확히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그 핵을 찾아낸 건 상태창이 다 보여(+7) 스킬이었고.
"와아아아아아아!"
절대 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중급 마족이 소멸하자, 주위에 있던 NPC와 유저들이 무기를 번쩍번쩍 머리 위로 치켜들며 함성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검은 사막 위 하늘을 날고 있던 마룡이 다시 날갯짓을 멈추곤 전장을 향해 브레스를 뱉어냈다.
쿠콰콰콰쾅!
그 직후, 기다렸다는 듯 용후가 빛의 검을 위를 향해, 브레스를 뱉어내고 있는 마룡을 향해 휘둘렀다.
빛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간 새하얀 한 줄기 선이 마룡의 가슴을 가르고, 그 안에 있는 드래곤 하트를 반으로 가르며 몸을 빠져나와 위로 한참 더 뻗어 올라가다 소멸했다.
암흑 브레스가 뚝 그쳤고, 두 절단면에서 검은피를 후두두둑 쏟아내며 반으로 나뉜 마룡이 추락해 내렸다.
콰와아아앙!
마룡의 상체와 하체가 사막에 떨어진 직후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줄줄이 떠올랐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 * *
놀랍게도 마계의 마물과 마족들도 아이템을 드랍하고 경험치를 줬다. 당연히 용후가 잡은 마물과 마족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유저들이 잡은 마물과 마족들도 다 그랬다.
'일종에 와이파이처럼 작용하는 건가.'
흡사 세상을 게임처럼 만드는 힘 말이다. 세상 자체가 게임 같은 세상이 된 게 아니라, 유저 한 명 한 명이 세상을 게임처럼 만드는 힘을 주위에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럴 게, 처음부터 마물과 마족들이 아이템을 드랍하고 경험치를 준 건 아니었기 때문. 도중에 아이템을 드랍하기 시작하고, 레벨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유저들로부터 그 미증유의 힘이 퍼져 마물과 마족들에게도 스며든 것일 터다.
당연히 마계 원정대에겐 좋은 일이다. 레벨업과 아이템 획득을 통해 마계 토벌 중에도 더 강해질 수 있으니.
하급 마물만 해도 100레벨 이상 되는 몬스터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경험치를 주는 데다, 드랍하는 아이템의 등급도 하나같이 수준급이었다.
미궁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과 현자의 돌의 파편을 드랍하는 마물과 마족도 있었다.
단, 현자의 돌의 파편은 용후가 잡은 마물과 마족들만 드랍했다. 워낙에 행운 스탯이 높은 데다, 나탈리 사제의 축복이 더해져서였다.
반대로, 다른 유저와 NPC들은 용후 만큼의 행운 스탯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성녀의 축복으로도 열화판은 가끔 드랍시켜도 현자의 돌의 파편까진 누구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후 전투들도 현자의 돌의 파편도,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도 얻게 되면 즉각 보고 하고, 전부 제게 가져오세요. 이건 무조건입니다. 숨기는 자는 즉각 처형입니다."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까지 써 유저들이 얻은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을 싹 긁어 온 용후가 지휘관들에게 단단히 명령을 내렸다.
리볼버와 성검 덱커, 그리고 마력포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마물과 마족들에게 가장 높은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게 이 세 개의 무기이기 때문.
목표는 리볼버와 덱커, 마력포를 전부 10강 이상으로 만드는 것. 도중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기에 지금보다 더 많은 열화판 현자의 돌이 필요하다.
물론 현자의 돌의 파편도. 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 마족들은 지금 가진 전투력으로도 충분하지만, 마왕들을 잡으려면 스킬들도, 특히 빛의 검은 무조건 10강 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저 짐작이 아니다. 꿈속에서 마왕들을 봤다. 마왕들과 싸우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10강 이상으로도 올리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 강화를 해선 안 된다.
'더 행운 스탯을 올릴 수 있어.'
마물과 마족들이 아이템을 드랍하니. 분명 에픽 레전더리 등급의 행운템도 드랍하는 마족이 있을 것이다. 용후는 그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부터 수리를 해주겠다 전하세요."
마물 마족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제대로 싸운 자 중 장비가 성한 자는 거의 없었다.
마계 원정대엔 드워프도 수백 명이 있지만, 용후보다 더 실력이 좋은 자는 없었다.
게다가 용후는 빠르기까지 하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장비든 수리를 하면 첫 수리일 경우 옵션이 붙으니 원정대의 전투력도 올릴 수 있다.
두 번의 강화까지 시켰기에 붙는 옵션의 수준이 더 올랐고 쿨타임도 거의 없다시피 된 상태.
수천 명을 수리한다 해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세요. 소드 마스터들과 5서클 이상 마법사들, 상급 사제들의 수리부터 먼저 할 겁니다. 그들은 수리가 끝나는 데로 동쪽으로 수색을 보내세요."
지휘관들이 움직였다.
장비 수리가 필요한 자들은 테이블을 펴고 그 앞에 앉은 용후의 앞에 줄을 섰고, 수리가 필요 없거나 수리가 끝난 자들은 베이스 캠프 설치 작업에 바로바로 투입됐다.
수리할 때마다 용후의 눈앞에 큰 수치는 아니나 명성 획득 알림창이 떠올랐다.
'스킬 자판기는 아직 한 번 더 쓸 수 있어.'
당장에라도 사라질 듯 희미했지만 분명 아직 있을 것이다. 하나 더, 신은 자신에게 주고 싶은 스킬이 있는 게 틀림없다.
마계 원정을 끝내고 돌아온다면 말이다. 그러니 마계에서도 부지런히 명성을 모아야 한다.
* * *
"식량이 부패하고 있습니다."
아직 수리를 하고 있는 용후에게 다가온 한 기사가 그런 보고를 했다.
그러나…….
아공간과 인벤토리 속에 넣은 식량까지 썩고 있단 말에도 용후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던전과 유적지, 미궁 깊은 곳에선 비정상적으로 농도가 짙어진 마력으로 인해 식량에 변형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그에 대비한 방법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썩어버리나.'
아쉬운 마음이 안 들 순 없었지만, 양질의 식사까진 힘들어도 굶어 죽는 자가 생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식량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베이스 캠프 설치에 집중하라 전하세요."
다른 자의 말이었다면, 그게 국왕이라 해도 이 말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용후의 말.
그랬기에 기사는 믿었다. 김용후라면 말한 대로 식량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다.
2시간에 걸쳐 마저 수리를 다 끝낸 용후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베이스 캠프를 돌며 진행 상황을 살핀 뒤 베이스 캠프 중심부로 갔다.
다른 곳과 달리 통나무집도 천막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은 텅 빈 공간. 일부로, 비워두게 한 것이었다. 직접 설계도까지 만들어서.
멈춰 선 용후가 인벤토리를 열어 1천 골드도 더 들어갈 것 같은 큼지막한 주머니들을 꺼냈다.
툭툭툭, 투둑, 툭툭!
서너 개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같은 크기의 주머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어 일부로 베이스 캠프 설치 작업에 투입시키지 않고 남겨둔 마법 인형들을 꺼냈다. 총 50기였다.
"씨를 뿌려라."
그랬다. 각종 곡식과 열매들의 씨앗이었다. 마법 인형들이 주머니를 하나씩 집어 들어 가슴에 안고 검은 모래만 쌓여 있는 사막 위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용후는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하나 더 꺼냈다. 나뭇가지였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나뭇가지로는 생각하지 않을 모습.
나뭇잎들이 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자들은 더 놀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아주 격 높은 마나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서였다.
엘프들로부터 받아 길러온 생명의 나무 꼭대기에서 베어 온 나뭇가지였다. 맨 꼭대기에 있는 나뭇가지 중에서도 특히 더 특별했다.
용후가 그 나뭇가지를 모래 속에 푹 반쯤 꽂아 넣었다. 그리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곤 바닥에 손바닥을 댔다.
"무럭무럭 자라라."
용후의 손이 빛났다. 그 빛이 검은 모래를 덮으며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마법 인형들이 뿌린 씨앗들이 싹을 틔우며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의 나뭇가지가 더 짙은 은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