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기적의 스킬 자판기 147화
푸확!
용후가 내찌른 빛의 검이 머리를 관통하고 핵을 관통해 길게 빠져나왔다. 그 즉시 움직임이 멎었다. 부들거림조차 없었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용후가 빛의 검을 머리에서 뽑아내고 뒤로 물러났다. 거대한 거미의 머리가, 이어 몸통과 다리들이 가루로 변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미가 죽자, 새끼 거미들도 힘을 못 썼다. 간단히 처리됐다.
거미 마족들이 흔적도 남지 않고 다 사라지는 데는 10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가루까지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나자 허공에서 빛이 일렁였다. 그러곤 현자의 돌의 파편들이 생겨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수수 떨어졌다.
"하나, 둘, 셋…… 일곱, 여덟, 아홉……."
많았다. 용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걸음을 떼 현자의 돌의 파편들을 인벤토리에 담았다.
인벤토리를 보자, 현자의 돌의 파편들이 겹쳐져 있는 칸 밑에 숫자 22가 적혀 있었다.
'어떤 스킬에 몇 개의 현자의 돌의 파편을 쓸 것인가.'
짜릿함마저 느껴지는 고민.
그러나 용후는 일단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없앴다.
"일단……."
꿈속에서 본, 마계의 마족들이 나오는 게이트를 막아야 한다. 용후가 게이트로 다가갔다. 게이트에 손을 대고 절대 안 열려 스킬을 썼다.
훙!
용후의 손을 뒤덮은 빛이 게이트로 옮겨갔다. 순식간에 게이트를 감쌌지만, 빛은 더 커지지 못하고 이내 사그라들었다.
길태현이 연, 지구와 이어졌던 게이트 때와 똑같았다. 몇 번을 해도 같을 것이다.
빛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절대 안 열려 스킬을 더 강화시켜야 한다.
'된다.'
용후는 자신했다. 길태현이 연 게이트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성녀 나탈리가 있으니.
"나탈리 사제님, 제게 축복을."
"예!"
나탈리 사제가 얼른 기도를 했다. 그녀가 양손으로 쥐고 있는 스태프가 은은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 빛이 용후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갔다. 용후의 몸이 빛났다. 마법과도, 기적의 스킬을 쓸 때 생겨나는 빛과도 달랐다.
잠시 뒤, 용후의 눈앞에 버프 알림창들이 떠올랐다. 씩 용후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더 위로 올라갔다.
'된다, 무조건 된다.'
인벤토리에서 현자의 돌의 파편을 꺼냈다. 그리고 뭐든 다 만들어 스킬을 써 현자의 강화석으로 만들었다. 이어 절대 안 열려 스킬에 썼다.
훙!
강화는 성공, 그러나 게이트를 닫는 데는 실패했다. 상관없다. 아직도 21개의 현자의 돌의 파편이 있다. 하늘에 생긴 그 거대한 게이트는 절대 안 열려 스킬을 20강 이상으로 만들어도 막지 못하겠지만, 이 게이트는 된다.
훙!
또 한 번 용후가 절대 안 열려 스킬을 강화시켜, 게이트에 스킬을 썼다. 이로써 9강!
"어! 된다!"
용후가 외친 말이 아니었다. 마탑주 오렌펠이 외친 말이었다. 빛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실패했을 때와는 느껴지는 기운이, 기운의 움직임이 전혀 달랐다.
"어!"
"닫힌다, 닫혀!"
"성공이야! 성공이라고!"
다른 파티원들도 외쳐댔다. 게이트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게이트에 투명한 무언가가 덧씌워지고 있는 게 보였다.
또, 그 뒤 게이트가 뿜어내던 암흑마력의 기운이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성공한 게 틀림없었다.
'되었다.'
용후가 뒤로 물러났다.
이 게이트는 바깥에서 안으론 들어갈 수 없지만, 중부 하늘에 생긴 게이트는 밖에서 안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또, 안쪽에서 게이트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 마계에서 돌아올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게이트 아래 설치하라 지시한 텔레포트 마법진, 그 마법진을 통해 이동한다면 이동에 무사히 성공할 경우 게이트 안쪽, 마계에 마법진이 새겨지게 된다.
그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마계 토벌이 끝난 뒤 라마드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마물과 마족들은 탈 수 없다. 사제들의 신성력까지 담아가며 설치하도록 시켰으니.
"돌아가죠."
용후가 말했다. 그런 용후를 바라보는 파티원들의 시선이 다들 묘했다. 김용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누구도 이 게이트를 막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말이 안 된다 생각했던 마계 정벌도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김용후가 지휘를 한다면.'
용후의 뒤를 따라 파티원들이 보스방을 나가 위로 향했다. 다들 걸음이 가벼웠다.
* * *
용후는 파티원들을 다 데리고서 팔켄 마을로 갔다. 어차피 자신이 마계 원정대가 대기하고 있는 들판에 도착하지 않으면 마계 원정은 시작될 수 없기에, 파티원들을 먼저 보낼 필요가 없었다.
함께 움직이며 미궁에서 도축해 인벤토리에 넣어둔 마물 고기로 만든 요리를 계속 해먹이기로 했다.
저택 정문 앞.
용후가 팔켄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병사가 저택으로 달려가 알렸기에 집사 제이번이 문 앞에서 용후를 맞았다.
"식사는 됐고, 간식 정도만 준비하세요."
이어 함께 온 손님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란 지시를 한 용후는 자판기가 있는 방으로 갔다.
역시 스킬 자판기엔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역시 이전보다 더, 훨씬 더 흐릿하게 변해 있었다.
용후가 스킬 자판기 앞에 서자, 금화 대량 투입구가 저절로 열렸다. 인벤토리를 열어 금화 주머니를 쏟아내고, 스킬 자판기 양옆에 서 있는 마법 인형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법 인형들이 움직여 금화 주머니를 들곤 투입구 위에서 뒤집어 금화를 쏟아부었다.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어떤 스킬 버튼이든 다 누를 수 있었다.
용후는 고민하지 않았다.
"딱 한 번만 누를 수 있다면……."
신성술 버튼이다.
한 번 더나 두 번 더에 당첨이 되면 그땐 랜덤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덜컹덜컹!
배출구로 캡슐이 굴러떨어졌다. 용후가 상체를 숙여 캡슐을 꺼냈다. 그리고 돌렸다.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불사의 대지 스킬을 얻었습니다
"상태창."
바로 상태창을 열어 어떤 스킬인지 확인했다. 언제나처럼 심플한 설명. 그러나 바로 이해가 됐다.
용후의 입가에 큰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하지 않은, 생각 못 한 스킬이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마계 원정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불사의 대지 스킬은 광범위 부활 스킬이었다. 그것도 한 번 쓰면 쿨타임에 걸리는 게 아니라, 효과가 10분이나 지속이 된다. 일종에 필드 형식의 광범위 신성술!
범위도 상당히 넓었다. 거의 운동장 정도의 넓이. 스킬 효과가 유지되는 곳에 있을 경우 몇 번이든, 용후가 따로 뭘 더 할 것도 없이 자동으로 부활이 되는 것이었다.
부활 스킬처럼 몇 번 이상은 살려낼 수 없단 식의 제한도 없었다.
단, 쿨타임은 길었다. 12시간. 그러나 이제 1레벨이다. 그리고 이 스킬도 현자의 강화석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
물론 워낙 쿨타임이 길어 맥스 레벨까지 찍고 강화를 5강 6강까지 시킨다 해도 1~2시간 내로 줄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3~4시간 정도로만 줄어들어 준다면 하는 생각을 하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상태창 위로 알림창이 하나 겹쳐졌다.
-두 번 더에 당첨이 됐습니다
"좋아."
용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탈리 사제의 축복을 받고 왔기에 한 번 더엔 당첨될 거란 확신이 있었지만, 두 번 더! 하하! 좋아, 정말 좋다.
계획대로 용후는 랜덤 버튼으로 손을 뻗었다. 곧바로 랜덤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캡슐 두 개가 연달아 배출구로 굴러떨어졌다. 허리를 숙여 캡슐 두 개를 꺼냈다.
-정령왕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스킬이 아닌 아이템이었다.
파편이니 정령왕급으로 진화하진 않겠지만, 양지를 최상급 정령으론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양지."
양지를 소환해낸 용후가 정령왕의 파편을 양지쪽으로 내밀었다. 양지가 정령왕의 파편으로 손을 뻗었다. 손이 닿자 정령왕의 파편이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빛을 뿜어냈다.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 건 잠시, 빛줄기들이 전부 양지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걸 잠시 보던 용후가 남은 캡슐도 돌려 열었다.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고, 용후의 눈이 커졌다.
"이건……."
더욱 확실히 들었다. 랜덤이지만 랜덤이 아니다. 신이 자판기 형태의 매개체를 통해 계속 자신을 돕고 있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스킬을 내어주는 것이다.
'혹 위기에 몰린다면, 이 스킬은 판을 뒤집는 비밀 병기가 되어줄 것이다.'
더욱 든든해지고, 자신감이 들었다.
그즈음 양지를 휘감은 빛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 * *
라마드 왕국의 중부 하늘에 생겨난 게이트가 크게 요동쳤다. 그러곤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성을 통째로 삼킬 수도 있을 정도로 커져 있던 게이트, 그런 게이트가 마치 하늘을 다 뒤덮기라도 할 기세로 커지자 그 아래 있던 사람들이 탄식과 비명을 터트렸다. 용후가 모이게 만든 마계 원정대의 병력이었다.
"더 커진다, 더 커져!"
"세상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어어! 뭔가 나온다!"
누군가 외친 그 말에 곳곳에서 탄식과 비명이 더더욱 커졌다.
게이트 속에서 구름처럼 몽글몽글 떠도는, 또는 솥단지 속에서 끓어오르는 거품처럼 일던 암흑마력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구름처럼 거품처럼 흐르고 들끓는 암흑마력 속에 살아 움직이는 뭔가가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몬스터 중에도 저런 생김새를 한 몬스터를 본 적은 없었다.
"마물……! 마물이다!"
"저게……. 마물?!
"마물들이 나온다!"
"우리가 먼저 마계로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집채만 한, 또는 첨탑 크기의 마물들의 모습까지 보이기 시작하자 불안과 공포가 더욱 속도를 높이고 농도를 올려 마계 원정대 병력에 퍼져나갔다.
급기야는, 용으로 보이는, 검은 비늘을 두르고 긴 목에 긴 피막의 날개를 가진 괴생물이 보이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꼿꼿이 서서 정렬해 있던 정예 병력까지 파도처럼 일렁였다.
"마룡이다! 마룡이 나온다!"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은, 신화시대 고대왕국시대에 존재했다 알려진 신화적인 전설 속 괴물.
책을 통해, 옛날이야기를 통해 들은 그대로 성에 버금갈 정도의 크기!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게이트는 아직 완전히 열린 게 아니었다. 마치 그물에 걸린 것처럼, 집채만 한 마물들도 마룡까지도, 피어까지 연달아 터트리며 몸을 게이트 밖으로 밀고 몸을 비틀어댔으나 게이트 밖으로 절반 정도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 광경에 마계 원정대 병력이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으나, 불안과 초조 공포심은 얼굴에 여전했다.
언제 게이트가 완전히 열려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저런 괴물들이 나오려고 저렇게 발버둥을 쳐대고 있는데 절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런 병사들보다 더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건 지휘관들이었다. 라마드 국왕, 하드리스 교황, 십자가교의 교주 스미스, 루물 마탑의 부마탑주, 홀리잔 제국에서 온 기사단장, 그리고 여러 왕국의 왕들과 여러 마탑의 마탑주들.
하나같이 얼굴이 창백해져 게이트와 남쪽 들판을 번갈아가며 바쁘게도 바라봤다.
이트의 팽창이 그만 멈추기를, 그리고 김용후의 마차가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다들 똑같이.
"대체 어찌된 것인지……!"
"와야 될 때가 아닙니까……."
"보이지 않는군요, 보이지 않아요……."
들판 너머를 보고 또 봐도 마차의 모습도 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는 반드시 미궁에 생긴 게이트를 닫고 중부의 게이트 아래로 오겠다 한 김용후였다.
그러니 오늘 언제든 출진이 가능하도록 병력을 집결시켜 놓고, 그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완성시켜 놓으라 한 김용후였다.
고대 유물을 사용해서만 만들 수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은 마력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던전과 유적지, 미궁 안에서만 작동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텔레포트 마법진을 들판에 설치하라니. 황당한 말. 김용후의 말이기에 따른 것이었다.
500개가 넘는 레드 마석과 100개가 넘는 퍼플 마석을 텔레포트 마법진에 동력으로 사용하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단 것이었다.
게이트 안은 던전 유적지, 미궁과는 차원이 다른 고농도의 마력으로 가득 찬 곳이니.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놓고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니. 미궁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아직 게이트가 완전히 열린 건 아니지 않습니까."
홀리잔 제국의 기사단장이었다.
"그는 분명 올 것입니다.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 반드시."
황제의 알현실에서, 바로 눈앞에서 김용후가 부린 기적을 본 그였다. 어떤 대장장이도 고치지 못한 유물을 손으로 쓰다듬는 것만으로 고쳐냈고, 누구도 고치지 못했던 병을 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 치료하고, 죽은 자까지도, 심지어 유저가 아닌 자를 살려낸 자.
그리고 마계의 침공에 대한 예언도 사실이었다. 그런 그가, 그 기적의 유저가 이제 와서, 이 중요한 순간에 실수할 리 없었다.
-키헤에에에에에에엑!
급기야 게이트 밖으로 머리와 긴 목의 일부를 빼낸 마룡이 괴성을 터트리며 입을 쩍 벌렸다.
피어가 터져 나왔다. 병사와 유저들이, 기사들까지도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비틀대거나 자리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지휘관들의 얼굴이 더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저 마룡이 밑으로 브레스라도 뱉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병력을 피신시켜야 합니다!"
"아니 됩니다! 1만에 가까운 대병력을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병력이 마법진을 이탈한다면 마법진을 새로 그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시간에 맞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될 겁니다!"
"이런 바보 같은! 김용후는 오지 않소! 미궁을 계획한 대로 클리어했다면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는 게 맞아!"
갑론을박이 거칠게 오갔다.
그러나 병력을 뺄 수 없다 주장한 자들도 자신들의 말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머리와 목을 반쯤 뺀 상태에서 브레스를 뱉지 않고 있는 건 그리 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작용하고 있단 생각이 들면서도, 브레스를 뱉을 경우 펼쳐질 처참한 광경이 떠오르며 망설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병력을 물리자는 자들이 더 늘어났다.
그때였다.
"마차! 마차가 옵니다!"
모든 지휘관이 고개를 돌렸다. 정말 마차였다. 몇몇은 눈에 익단 생각을 했다. 마차도, 그 마차를 모는 마부의 모습도.
"김용후! 김용후가 왔다!"
"기적의 김용후가 왔다!"
"마계로 간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작동시켜라!"
지휘관들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몇몇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리쳐댔다.
마차가 더욱 속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