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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144화 (14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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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 144화

"어때?"

감옥 안으로 마법 인형들을 넣어 길태현의 왼쪽 팔을 두르고 있는 사슬만 풀게 한 용후가 감옥 창살 안으로 마나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길태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 마나의 계약서라 해도 절대 각인을 못 푸는 건 아니야.'

또는, 악마를 소환해내 악마와 계약을 맺음으로서 가슴에 새겨진 각인을 지워버리는 방법도 있다. 일단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좋아."

마법 인형이 용후가 내밀고 있는 마나의 계약서와 펜을 건네받아 길태현 쪽으로 가 그의 손에 펜을 쥐여줬다.

길태현이 펜을 쥐고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마나의 계약서가 빛을 냈다.

빛은 길태현의 가슴 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심장에 각인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마나의 계약서가 새긴 각인 위에 또 다른 각인이, 더 크고 복잡한 각인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그걸 느낀 길태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마나와는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새겨지고 있는 각인!

'마나가 아니야!'

길태현은 마나와는 다른 힘인 암흑마력을 다루는 자고, 벨베른으로부터 흑마법사의 각인을 받은 경험도 있기에 마탑주나 교황과 달리 또 다른 각인이 심장에 새겨지고 있단 걸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대체……!"

길태현이 용후를 노려봤다.

용후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허튼 생각 마라. 마나의 계약서에 의한 각인은 혹 풀 수 있을지 몰라도, 덧씌워진 절대맹세 스킬은 절대 풀 수 없을 테니. 네가 신이라도 되지 않는 한은."

길태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용후의 힘을, 기적의 스킬이 가진 힘을 겪은 길태현이기에 이 말이 절대 허풍이나 과장이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김용후가 절대를 앞에 붙였다면 말 그대로 이 각인은 무슨 수를 써도 풀리지 않을 터다.

"뭘 죽을상을 짓고 있나. 그 감옥에 있는 것보단 훨씬 나을 텐데. 그곳에 있는 게 좋다면 평생 그 감옥에 있게 해주지."

"아니! 가겠다. 미궁도 마계도! 어디든!"

이어 길태현은 얼른 말을 덧붙였다.

"단, 방금 한 약속은 지켜다오. 큰 공을 세우면 이 감옥에서 완전히 나오게 해주겠다는. 이 감옥에 다시 가두지만 말아다오. 목숨을 걸고, 몇 번을 죽어도, 몇 번이고 목숨을 내던지며 싸워 반드시 큰 공을 세울 테니."

"약속한다. 방금 한 말을 지킨다면."

악인과 악당에겐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고 일말의 선처도 베풀지 않는 용후지만, 방금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몇 번이든 목숨을 내던지며 싸워 큰 공을 세운다면, 용후는 정말 길태현을 이 감옥에 다시 가두지 않기로 했다.

이 세계의 운명을 건 마계 원정. 그 마계 원정에서 누가 봐도 업적이라 할 수 있는 공을 세운다면 죄를 사면받을 자격이 있었다. 물론, 자유의 몸이 되도록 각인을 풀어줄 생각은 절대 없지만.

"믿겠다."

길태현은 느꼈다. 방금 한 김용후의 말이 그저 대충 한 거짓말이 아니라는걸.

"감옥 문을 열고 사슬을 다 푸세요."

용후가 사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사제는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해 했다.

"교황님의 허가 없이 지하 감옥 끝 층에 수감 된 자를 풀어 줄 수는……."

"제가 책임집니다. 봤지 않습니까.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하는 걸. 또, 제 기적의 스킬도 걸었습니다. 길태현 이 자는 제 허락 없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길태현을 데리고 제가 직접 교황님께 갈 것입니다."

소로브 산맥의 미궁에 있는 게이트를 닫으려면 교황청과 국왕, 마탑의 힘이 필요하다.

혼자서도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게이트는 이미 생겨났다. 완전히 열리진 않았지만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최대한 빨리 미궁의 끝 층으로 가야 한다. 용후는 먼저 교황을 만나 성녀로 추대 받고 있는 나탈리와 1급 이단심문관 발렌티를 미궁을 클리어하기 위한 파티에 내어줄 것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이유를 듣지 못했음에도 김용후에게 길태현의 면회를 허락한 교황이다.

김용후에게 최대한 협조하란 지시도 있었고, 김용후가 뭘 하든 허락할 교황이었다.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간 사제가 권능을 사용해 길태현을 포박하고 있는 사슬을 다 풀었다. 그리곤 겁을 먹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길태현은 얌전했다. 김용후가 몸을 돌렸고 길태현이 순순히 김용후의 뒤를 따랐다.

사제도 얼른 벽에 꽂아둔 횃불을 꺼내 들곤 앞으로 달려나갔다.

* * *

당연히, 절대맹세 스킬로 묶여 있는 교황은 나탈리와 발렌티를 바로 내어주었다.

아직 전염병 환자들이 많았지만, 용후는 고민하지 않았다. 대주교 중에도 많진 않지만 블랙 페어리의 전염병을 완치할 수 있는 자들이 있었고, 완치까진 힘들어도 호전을 시킬 수 있는 사제들은 꽤 많았다.

미궁에 생겨나 있는 게이트를 막지 못하면 마족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로 인해 죽게 되는 자들이 블랙 페어리들이 일으킨 전염병으로 죽는 자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또 마계 원정대의 마계 토벌이 실패하면 세계가 멸망하게 되고.

마계 원정에 성녀 나탈리의 힘은 반드시 필요하다. 용후는 마계로 가기 전에 나탈리의 신성력을 더 올릴 작정이었다.

이번 미궁행을 통해, 미궁 안에 있는 몬스터를 던전 밥 스킬을 사용해 요리해 먹는다면 나탈리는 더욱 신성력을 올리고 더욱 강인한 체력을 갖게 될 터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마계에서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용후는 이어 라마드 국왕도 만나고, 마탑주 오렌펠도 만났다. 라마드 국왕에겐 소드 마스터 둘을 받았고, 마탑에선 아예 마탑주 오렌펠을 데려가기로 했다.

"저보다 더 도움이 될 마법사들이 많습니다. 체력이랄 것도 없는 늙은이보다 더 젊은 마법사들을 데려가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용후는 고개를 저었다. 겉모습은 뛰지도 못할 것 같은 노인의 모습이지만 6서클 마법사는 서클링을 6개나 갖고 있는 자.

6개나 되는 서클링들은 교대를 하듯 늘 한두 개씩 돌아가고 있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마나가 몸을 건강하고 강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20~30대 정도의 체력까진 못 되겠지만 40대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을 마탑주였다.

"마탑주님이 갑니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설득은 필요 없었다. 그 한마디에 오렌펠의 심장에 새겨져 있는 두 각인이 반응했다. 결국 오렌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후 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미궁 원정대가 꾸려졌다.

그러나 용후는 바로 소로브 산맥으로 가지 않았다.

이쪽 스킬과 오렌펠의 방대한 범위를 자랑하는 탐색 마법을 써 블랙 페어리 떼를 찾아내 제거해 나갔다.

블랙 페어리들은 검은 가루를 뿌리고 난 뒤엔 며칠 동안 잠에 빠져들었고, 깨어 있는 상태라 해도 그리 높이까진 날지 못했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기에 어렵지 않게 토벌할 수 있었다.

"다른 왕국으로 간 블랙 페어리들까지 잡을 시간은 없습니다."

전투력과 내구력은 그리 대단치 않은 마물들이니 작정하고 잡으려 들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충분히 왕국 차원에서 움직인다면 박멸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용후는 성녀급 사제와 1급 이단심문관, 소드 마스터 2명, 6서클 마법사, 그리고 미궁으로 안내할 병사 한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를 이끌고서, 또 인벤토리에 200기의 마법 인형들을 담고서 소로브 산맥으로 향했다.

산맥에 도착한 뒤부터 병사가 앞장을 섰다. 거의 산맥 초입부에 있었기에 미궁 앞에 도착하는 데는 반나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곳입니다."

병사의 말에 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흙을 걷어내자 바닥에 여러 무늬가 음각된 문이 있고, 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돌사다리가 있었다.

그 밑에서 짙은 마력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꿈속에서 본 그 미궁과 똑같았다.

"들어갑시다."

용후의 말에 소드마스터 둘이 앞장을 섰고 그 뒤로 나탈리와 발렌티, 마탑주와 병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후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그런데 묘했다.

하루 내내 이동했는데도 몬스터가 단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꿈속에선 있었는데…….'

* * *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났다. 현재 용후가 있는 곳은 미궁 지하 3층. 그런데도 마물은커녕 몬스터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상태창이 다 보여."

용후가 쿨타임이 끝나자마자 또 상태창 스킬을 썼다. 그리고 전방을 살폈다. 용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떤 상태창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분명 꿈속에선 몬스터가 나왔다. 모든 층이 다 나온 건 아니다.

그래도 게이트가 있는 마지막 층만 나왔던 게 아니라 다른 층들에서도 나왔고, 그 층들엔 몬스터와 마물 둘 다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없는 걸까?'

투명하거나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라 해도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쓰면 상태창은 떠올라야 한다.

"미궁을 잘못 찾아 들어온 건 아닐까요?"

나탈리가 용후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몬스터가 있는 미궁이라면 이곳 지하 3층까지 이렇게 쥐 죽은 듯 조용할 순 없습니다. 흔적조차 없어요."

소드마스터 중 한 명도 나탈리의 말에 동의했고, 이단심문관 발렌티가 몸에서 빛을 내며 용후의 옆으로 다가와 그 말들에 힘을 보탰다.

"제 권능에도 잡히지 않는군요. 몬스터나 마물이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면, 마법을 써서 숨어 있다 해도 미약하게나마 기운은 감지가 돼야 합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용후는 고개를 저었다. 이 미궁이 틀림이 없기 때문. 그저 꿈이 아니었다.

현실처럼 생생했다. 그런데 착각했을 리는 없다. 입구뿐 아니라 내부도 똑같으니.

'혹시…….'

용후의 뇌리에 순간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마계의 마물들을 몬스터의 상식으로 판단하려 하면 안 된다.

어쩌면 블랙 페어리보다도 더 작은, 벌레보다도 작은 마물이 미궁에 퍼져 있고, 이미 자신들을 공격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리적인 공격만이 공격인 건 아니니. 환상을 걸었거나, 느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정신적인 공격을 받았거나, 아니면…….

'몸속으로 들어와 기생을 했거나.'

하지만 그렇다 해도, 벌레보다 작은 마물이라 해도,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써도 상태창이 뜨지 않는 건 납득이 되지 않지만.

하지만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의 효과를 무효로 돌릴 수 있는 마물이 있지 말란 법은 없다. 일단…….

"상태창이 다 보여."

용후가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다시 쓰곤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파티원들의 상태창을 전부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뒤 용후의 눈이 찢어질 기세로 커졌다.

"……!"

용후가 얼른 리볼버(+7)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냅다 길태현과 소드 마스터 둘, 마탑주 오렌펠을 향해 6발을 연달아 쏴 갈겼다.

설마 자신들을 향해 다짜고짜 총을 쏠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게다가 바로 앞이었기에 누구도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1500이 넘는 공격력! 거기다 전부 머리를 관통당했다. 전부 즉사였다.

"어어!"

"무슨……!"

"아니 대체 왜!"

나탈리와 발렌티, 병사가 비명과 경악성을 내며 용후와 머리가 터져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무기를 꺼내 들곤 일제히 용후를 향해 겨눴다.

용후가 말했다.

"도플갱어입니다."

"예?!"

파티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아아 하고 믿기 힘든 말이었다. 마도시대에 존재했다 알려진, 그러나 정말 실존했는지 확실치 않은 괴물. 정말 도플갱어라 해도 눈에 보이지 않고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은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오히려 용후가 이상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 컸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세요. 도플갱어들을 찾아 잡아내 보여줄 테니."

용후는 먼저 죽은 세 파티원들에게 부활 스킬을 썼다. 시체 세 구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머릿속에 있던 도플갱어를 산산조각을 냈으니 기생 상태가 풀려서 부활할 것이다.

이어 용후는 인벤토리에서 현자의 강화석을 꺼냈다. 그 강화석을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에 썼다.

훙!

용후의 몸이 빛나며 눈앞에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이 강화됐단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런…….'

그러나 파티원들의 상태창 외엔 여전히 눈앞에 떠오르는 상태창은 없었다.

용후의 인벤토리엔 홀리잔 제국에서 얻어 만들어둔 현자의 강화석이 하나 더 있었다.

그 현자의 강화석을 꺼내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에 한 번 더 썼다.

훙!

직후 용후의 눈앞에 벽과 천장 쪽에서 여러 상태창들이 떠올랐다. 용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즈음 죽었던 파티원들이 부활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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