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기적의 스킬 자판기 143화
"끝났습니다, 수리."
용후가 수리가 끝난 단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바만 황제가 한 타이밍 늦게 계단 아래 서 있는 병사에게 턱짓을 했다.
병사가 얼른 용후에게 가 단검을 받아 황제가 앉아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단검을 받아 이리저리 살핀 바만 황제의 눈이 다시 커졌다. 깃들어 있던 마법까지 복구가 됐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 곳곳에 나 있던 균열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막 완성한 새 단검 같았다. 망치 한 번 두드리지 않고 이런 수리가 가능하다고?
"후리컬."
단검에서 눈을 뗀 바만 황제가 긴 보라색 로브를 입고 있는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즉시 일흔도 넘어 보일 것 같은 로브의 노인이 바만 황제의 의자 앞으로 올라갔다. 바만 황제가 단검을 내밀었다. 단검을 받은 로브 노인의 손이 빛났다.
'마법사, 아니 주술사로군.'
바만 황제의 알현실에 함께 할 정도라면 앞에 대자를 붙여야 될, 홀리잔 제국 최고란 수식어를 갖고 있을 대주술사일 것이었다.
그때 빛이 단검으로 옮겨갔다. 직후 후리컬의 눈이 바만 황제보다 더 커졌다.
"허어……."
"어떠한가? 마법은?"
"돌아왔습니다, 폐하! 게다가…… 마법의 효과가 더욱 강화가 됐습니다."
바만 황제의 입이 벌어졌다. 무슨……?! 이 단검은 고대의 유물이며, 유저 마법사가 감정한 바에 따르면 레전드리 등급이 붙어 있었다.
제국 최고의 주술사가 강화시켜보려 했지만 강화시키지 못했고, 제국 최고의 대장장이가 고쳐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수리되지 않던 것을, 수리를 완벽히 해내고 성능까지 강화를 시켜내다니!
직접 확인했고, 누구도 아닌 후리컬의 보고인 데도 바만 황제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 보고 또 봐도 틀림없는 사실!
"하리판을 데려와라."
누구도 고치지 못하는 물건을 고쳐냈다면, 장담한 대로 어떤 병도 정말 고쳐낼 수 있으리라.
바만 황제의 용후에 대한 생각이 싹 바뀌었다. 이젠 김용후가 한 말들이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졌다.
잠시 뒤, 알현실 문이 열리고 깡마른 체구에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져 있고 안색이 창백하고 눈이 누런빛으로 죽어 있는, 비단으로 만든 옷만이 화려한 남자가 병사 둘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걸어 들어왔다.
제국의 7황자였다.
하룻밤 장난으로 신분이 비천하기 짝이 없는 하녀가 낳게 된 자식.
비루한 신분의 어미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기에 죽더라도 제국의 안녕과 번영에는 하등 문제 될 일이 없었다.
그래도 자식. 바만 황제는 하리판의 병을 치료해 주기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의원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고칠 수 없는, 점점 더 몸이 쇠약해지다가 스물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될 불치병이라 했다.
그 말대로 18살이 된 하리판은 먹는 것조차 혼자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어 있었다.
"고쳐보아라."
묵례를 하듯 고개를 끄덕인 용후가 자신의 앞에 여전히 병사 둘의 부축을 받은 채 서 있는 하리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쓰다듬으면 다 고쳐.'
어깨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용후의 손이 밝은 황금빛을 발했다. 그 황금빛이 하리판의 어깨로 옮겨갔고, 빠르게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하리판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황금빛이 짙어졌고 몇 초 뒤 한순간에 사그라져 사라졌다. 동시에 바만 황제의 입에서 그리고 알현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리판의 눈빛과 안색이 달라졌다는 걸. 눈에서 누런빛이 완전히 사라졌고, 혈색이라곤 없던 얼굴 피부가 자신들보다도 더 좋아져 있었다.
"아바마마…… 제 몸이……!"
병사 둘의 부축을 물린 하리판이 스스로 움직여 몸을 돌리더니 바만 황제를 올려다보며 눈물을 주륵 흘렸다.
"어떠하냐? ……정말 병이 고쳐졌는가?"
"그런 것 같사옵니다……!"
바만 황제의 시선이 다시 하리판의 뒤에 서 있는 용후에게로 향했다. 하리판도 몸을 돌려 용후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의 병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 하리판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호전된 게 아니라 완전히 나았다는 걸!
-하리판의 호감도가 1,200 오릅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5,000 오릅니다
이어 알림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바만 황제의 호감도가 800 오릅니다
당연한 반응. 아무리 여러 자식을 가졌어도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는가.
누구도 고치지 못한 아들의 불치병을 고쳐줬는데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호감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
그런 만큼 바만 황제의 표정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고맙단 말까지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래도 용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완전히 바뀌었기에 호위 무사에게 내리고자 했던 지시가 달라졌다.
"죽이진 말아라."
황제의 호위 무사 분터가 깊이 고개를 숙인 뒤 시미터를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바만 황제는 김용후가 분터마저 이긴다면 그의 말을 다 믿고 그 계약서란 것에도 사인을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해도.
아들을 살린 은인. 그러나 그저 고마운 마음을 느껴서만은 아니었다. 분터까지 이긴다면 김용후가 한 말들은, 이 방에서 절대 나갈 수 없을 거란 말까지도 사실이란 뜻이 된다. 자발적으로 협조해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백번 나을 것이었다.
용후도 검을 뽑아 들었다. 이어 리볼버(+7)도 꺼냈다. 생각지도 못한 무기에 분터와 황제, 알현실 안에 있는 모두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왔다.
용후가 아랑곳하지 않고 리볼버(+7)의 방아쇠를 분터를 향해 연달아 당겼다. 물론 뒤에 있는 황제가 맞지 않도록 발 쪽을 향해서.
투아아아앙!
* * *
과연 황제의 호위 무사! 전신에 녹색 기운을 휘감은 분터가 내달렸다. 총알 6발이 전부 바닥에 박히며 바닥을 깨부수고 지진이 난 것처럼 쩍쩍 갈랐다.
한 발도 맞추지 못했지만 즉시 리볼버(+7)의 탄창이 염력에 의해 저절로 열리고 허공에 생겨난 총알들이 탄창으로 속속 들어갔다. 동시에 용후의 몸은 분터가 이동하는 방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빨랐다. 엄청 빨랐다. 자동사냥을 쓰고, 자동사냥 스킬이 가속까지 썼기 때문! 새하얀 빛에 휘감긴 검이 분터를 향해 휘둘러졌다. 총알 6발을 급하게 피해내며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촤악!
"……크윽!"
바닥에 피가 튀고, 알현실 안 가득 비명과 탄성이 울려 퍼졌다.
"허! 새하얀 기운을 발하는 권총이라니!"
7강이란 뜻!
"검을 두르고 있는 하얀 기운도 범상치 않습니다! 서쪽 대륙의 기사들이 쓰는 오러란 기운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어찌 분터의 차크라 검을…….!"
용후와 분터가 충돌할 때마다 알현실 안 곳곳에서 그런 말들이 오가며 탄성이 연달아 터졌다.
황제의 호위 검사인 분터가 강하다는 걸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그러나 김용후는 유저, 유저가 황제의 호위 기사를 상대로 비등한 걸 넘어 압도를 하고 있다는 게 경악스러웠다.
심지어 7번의 강화가 이루어진 게 틀림없는 권총, 그 권총 때문만이 아니었다.
분터는 총알을 거의 다 피해냈다. 제대로 못 피한 총알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스치는 데 그쳤고, 왼쪽 허벅지에 한 발을 맞았을 뿐이었다.
갑옷을 뚫으며 공격력이 확 깎인 총알은 분터를 죽이지 못했고, 차크라를 이용해 출혈을 막은 것뿐만 아니라 총알을 빼내기까지 했기에 분터의 전투력은 거의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분터가 김용후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건 황당하게도 검술의 수준이 김용후가 더 높아서였다.
그때였다.
한순간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알현실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꽤 묵직한 뭔가가 바닥에 떨어져 구르고 사람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그 정적을 깨뜨렸다.
푸쉬이이익!
바닥에 쓰러진, 몸이 목의 절단면에서 피를 계속 뿜어내며 피 웅덩이에 질퍽하게 잠겨 들었다.
스릉!
용후가 허공에 휘둘러 검날에 엉겨 붙은 핏줄기를 털어낸 성검 덱커를 검집에 넣었다. 그리곤 황제의 황좌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살려낼 수 있으니. 어떤 후유증도 남기지 않고 말입니다."
"……부활 스킬을 말하는 것인가?"
5초 뒤에야 겨우 바만 황제가 입을 뗐다. 자신은 호위 무사에게 김용후를 죽이지 말라 명했다.
그런데 김용후는 자신의 호위 무사를 죽였다. 압도를 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굴복시키는 걸로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그랬기에 분노를 터뜨려야 맞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마계 토벌을 노리는 게 과한 자신감이, 허황된 생각이 아니었단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하나 그 부활 스킬은 유저들에게만 통한다 하지 않았던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자의 돌의 파편이 있다면 유저뿐 아니라 NPC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NPC는 유저들의 단어지만 홀리잔 제국에도 많은 유저들이 있기에 황제는 용후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때 용후가 대주술사 후리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지고 계신 현자의 돌의 파편을 제게 전부 주십시오. 그럼 이 호위 검사를 당장 살려낼 수 있습니다."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로 본 후리컬의 아공간 속에 3개의 현자의 돌의 파편이 들어 있었다.
홀리잔 제국 안에도 고대의 유적지들이 있기 때문. 제국 최고의 주술사라면 현자의 돌의 파편을 몇 개 갖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대륙에서도 현자의 돌의 파편은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물건일 테니, 그 가치를 책정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겠지만, 왕의 호위 무사를 살려내는 것이라면 바만 황제가 내놓게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또, 자신의 NPC도 부활시킬 수 있단 말을 바로 앞에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클 테고.
"그걸 어떻게……?"
자신이 현자의 돌의 파편을 갖고 있단 걸 어떻게 아느냔 말이었다. 용후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바만 황제를 바라봤다. 황제의 승낙만 받아내면 되었다.
"시체가 사라지기 전에 해야 합니다. 소멸한 뒤엔 절대 살려낼 수 없으니."
아마 살아나라 스킬을 한 번만 강화시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 다른 두 현자의 돌의 파편은 다른 스킬들을 강화시키는 데 쓸 수 있다.
"현자의 돌의 파편을 김용후에게 줘라."
바만 황제가 말했다.
홀리잔 제국도, 마도 시대의 현자의 돌의 파편을 이용한 마법이나 연금술을 재현해내진 못했다. 그저 연구용으로 쓰고 있을 뿐으로, 그 연구조차 괄목할 만한 성과는 내고 있지 못했다.
그랬기에 큰 가치를 가진 물건이란 건 알고 있지만 바만 황제는 제국 최고 검사를 살려내는 쪽을 선택했다.
또한, 용후의 짐작대로 보고도 싶었다. 죽어도 그대로 두면 부활하는 유저가 아니라, 절대 부활되지 않는 보통 사람까지 부활시킬 수 있는지를.
"3개가 다 필요합니다."
황제의 명령. 아까워 죽겠단 표정을 지었지만 후리컬은 현자의 돌의 파편을 전부 꺼내 용후에게 건넸다.
용후가 현자의 돌의 파편을 현자의 강화석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바로 살아나라 스킬을 강화시켰다.
훙!
용후의 몸이 빛났다. 용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로 발견한 후리컬의 현자의 돌의 파편을 보고 즉흥적으로 짜낸 말.
현자의 돌의 파편 3개를 거저 얻은 셈이니 참아보려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다.
-살아나라 스킬이 강화됩니다
-앞으론 하루에 17명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앞으론 NPC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되었다.'
용후가 소멸하기 시작한 분터의 시체로 얼른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곤 손바닥을 가슴에 올렸다.
'살아나라.'
용후의 손이 빛났다. 그 빛이 금방 분터의 몸을 감쌌다. 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머리도 빛에 휩싸이더니 물처럼 녹아내린 뒤 연기처럼 변해 몸쪽으로 날아왔다.
후웅!
몸을 감싼 빛이 더 커지더니 반쯤 잘려 있는 허리를 붙이고 머리를 재생시키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거듭, 더욱 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용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즈음 분터의 시체를 휘감았던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눈을 뜬 분터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7,500 오릅니다
용후가 바만 황제를 바라봤다.
"어떠십니까. 이제 라마드 국왕 폐하의 서신을, 제 말을 믿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홀린 듯한 표정의 바만 황제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용후가 다시 인벤토리에서 마나의 계약서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바만 황제의 손짓에 병사가 그 마나의 계약서를 들고 황좌로 올라갔다.
* * *
절대맹세 스킬을 건 마나의 계약서에 바만 황제의 사인을 받은 용후는 바만 황제의 만찬을 거절하고 곧바로 라마드 왕국으로 돌아갔다.
저택에 도착한 용후는 바로 집사 제이번을 불렀다. 집무실로 들어온 제이번이 용후가 영지를 떠나기 전 지시 내렸던 일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소로브 산맥에서 숨겨져 있던 미궁을 찾아냈습니다."
용후가 꿈속에서 봤던 그 미궁이 맞는지까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누구도 발을 들인 흔적이 없었고, 용후가 말해준 미궁 입구의 주변 풍경도 거의 흡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신이 가서 확인해 봐야 맞는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미궁을 클리어하기 위한 원정대를 꾸려 바로 그 미궁으로 가기로 했다. 혹 아니라면, 자신이 직접 찾으면 된다. 소로브 산맥은 산맥 중에서도 특히 높고 드넓지만 이쪽 스킬과 탐색 마법을 쓰면서 찾으면 아무리 늦어도 하루 이상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영지 운영과 관련된 보고서들을 다 읽고 영주의 직인이 필요한 부분에 직인을 다 찍은 용후는 아주 간단히 식사를 하고 미궁을 찾는 일에 참여했던 병사 한 명을 데리고서 왕도로 향했다.
왕도에 도착한 용후는 병사를 왕성으로 보내 바만 황제로부터 사인을 받아냈단 말을 전하게 하고 자신은 교황청으로 갔다.
네크로맨서 길태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길태현은 교황청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자살해 부활하지 못하도록 전신이 쇠사슬에 꽁꽁 묶인 채로.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닌 상태로 빛 한 줄기 없는 어둠 속에서 정신과 영혼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 길태현을 용후가 찾아가는 이유는 그의 힘을 마계 원정에 쓰기 위해서였다.
그가 가진 네크로맨서 스킬과 벨베른으로부터 배운 마법, 그리고 갖가지 흑마법 지식들은 마계 원정대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절대맹세 스킬을 쓰면 꼭두각시처럼 만들 수 있으니 길태현이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어.'
징역 550년을 받아 교황청 지하 감옥 맨 끝 층에 수감되어 있는 자.
당연히 면회가 불가능했지만, 용후의 길태현을 만나고 싶단 말은 30분도 지나지 않아 교황에게까지 올라갔고, 교황은 보고를 올린 사제가 김용후가 길태현을 왜 만나려 하는지 정확한 보고를 하지 못함에도 면회를 허락했다.
아주 시급한 일이란 말, 김용후가 한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절 따라오십시오. 계단이 가프로고 어두우니 발밑을 조심해 주십시오."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사제가 앞장을 섰고 용후가 그 뒤를 따랐다. 거의 30분 넘게 나선형 계단을 내려간 뒤에야 지하 감옥의 끝 층에 도달했다.
"여깁니다."
사제가 횃불로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길태현을 비췄다. 칭칭 사슬에 메여져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길태현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실눈을 떴다.
오랜만에 보는 불빛에, 불빛이 생겼음에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용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가 찾아온 건지 바로 알아챘다.
"김용후……!"
분노가 담기긴 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길태현, 운이 좋구나. 기회를 주겠다. 마족이 사는 미궁에서, 그리고 마계에서 공을 세워봐라. 그럼 이 지하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줄 테니."
물론 아주 크나큰 공을 세워 마음이 동해 정말 감옥에서 풀어준다 해도, 절대맹세에 의해 자신의 수하로, 노예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래도 죽지도 못하고 이 지하 감옥에서 550년을 살게 되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