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기적의 스킬 자판기 141화
용후의 저택 안. 식당이었다.
그 식당의 중앙에 자리한 긴 식탁에 중후한 기풍을 풍기는 자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외모와 입고 있는 옷만 봐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자들이란 걸 알 수 있는 자들.
그러나 그런 자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불안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눈치까지 봤다.
"교황, 뭔가 알고 있는 게 없으십니까?"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라마드 국왕이 정적을 깨고 교황 하드리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하드리스 교황도 아무 이유도 듣지 못했고, 식량을 얻고 싶다면 저택으로 오란 말을 김용후로부터 들었을 뿐이기에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혹 아는 게 있다 해도, 국왕의 물음이라 해도,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을 터다.
세히브교가 주적으로 천명한 자 중 한 명인 십자가교의 교주 스미스가 맞은편에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상황도 상황이지만 교황은 십자가교의 교주 스미스도 눈가에 경련이 일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대체 저자가 왜 이곳에…….'
물론 김용후가 십자가교의 교주와 안면이 있다 해서 이상할 건 없다.
김용후는 유저고, 사실 십자가교는 악마교 같은 무리와는 달랐다. 악으로 정의하기엔 사실 무리가 있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종교일 뿐이고, 빠르게 세를 불리며 세히브교의 영향력을 위협하고 있기에 이 이상 더 크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십자가교를 이단으로 삼고 종교 활동을 금지시키고 십자가교의 사제들을 잡아들여 재판에 회부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김용후라면 교황청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스미스가 이곳에 있는 게 그렇게까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국왕과 교황, 마탑주, 거기다 십자가교의 교주라니. 이런 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십자가교의 교주가 끼게 되는 순간 어떤 추측도 아귀가 들어맞지 않게 되어버린다.
"저 또한 들은 것이 없습니다."
결국 생각하는 걸 포기한 하드리스 교황이 짧게 대답했다. 그때였다. 마침 문이 열리고, 뼈갑옷 차림의 김용후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 김용후의 뒤로 한 남자가 손에 계약서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는지요?"
김용후의 그 말에 심기가 아주 불편하단 표정만 지을 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크흠, 매우까진 아니지만 그럭저럭 맛이 있었소. 이 먼 남부 끝자락까지 오느라 몹시도 지쳤었는데…… 식사를 준비해 준 것에 감사드리오."
결국 마지못해 루물 마탑의 마탑주 오렌펠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투에 퉁명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리 식사가 진수성찬이면 뭐하는가. 이곳에 모인 자 중 한가한 자들은 아무도 없다.
부른 이유를, 적어도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바로 말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식사도 다 끝나가는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다니.
수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무아지경에 빠져. 그런 만큼 성과는 당연히 있었다.
용후는 깨달음 하나를 얻어 검술의 경지를 크게 올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고 목소리는 아주 가벼웠다.
또, 모으고자 했던 자들을 이렇게 다 모으지 않았는가. 이제 절대 맹세 스킬을 건 계약서에 사인만 하게 만들면 된다.
그것도 간단하다.
자신의 저택 안에 들어온 이상 절대 누구도 자신의 허락 없인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식사가 다 끝난 거 같으니 여러분을 제 저택으로 부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용후가 뒤에 있는 비서에게 눈짓을 하자, 비서가 국왕과 교황, 마탑주와 십자가교 교주의 식탁 앞에 마나의 계약서를 한 장씩 올렸다.
"일단 그 계약서에 사인을 하십시오."
네 사람이 동시에 헛웃음을 흘리거나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하!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건 상급 마나의 계약서로군."
라마드 국왕은 당장에라도 욕이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걸 참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말해도 믿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니 일단 사인을 하십시오. 그 이후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바보로 보이는가!"
"설명도 듣지 않고, 자네의 지시에 무조건 따른다는 내용이 적힌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할 것 같은가!"
"설명 없이는 이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오!"
"어처구니가 없군. 식량? 팔기 싫으면 팔지 말게나. 굶어 죽으면 죽었지, 루물 마탑의 마탑주인 날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 루물 마탑의 마법사 전원을 무시하는 행위! 더는 김용후 준남작 자네의 수작질에 놀아나지 않겠네!"
넷이 똑같이 분개하며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그러나 넷 다 진짜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럼 정말 굶어 죽게 되는데, 갈 수가 없다.
블랙 페어리 떼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나 싶었는데, 다른 왕국으로 넘어가 다른 왕국에도 검은 가루를 뿌려대고 있었다.
다른 왕국들로부터 식량을 사들이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김용후가 무슨 요구를 하든 식량을 사려면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김용후가 이 넷을 전부 불러 한자리에 모이게 한 건 넷의 힘이 꼭 필요한 일이 있기 때문일 터. 서로 원하는 게 있는 만큼 납작 엎드릴 필요까진 없단 판단이었다.
"앉으세요. 누구도 제 허락 없이 제 저택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얼굴을 야차처럼 일그러트린 라마드 국왕이 용후 쪽으로 홱 고개를 돌리며 살기가 담긴 말을 뱉었다. 다른 셋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이후 이런 대접을, 이런 태도를 보인자를 마주한 적이 없는 자들. 분노가 치밀어 몸이 덜덜 떨렸다.
라마드 국왕이 다시 몸을 홱 돌려 식당 문을 잡아 돌렸다. 그러나 열리지 않았다.
"열어라! 당장 왕궁으로 돌아가겠다!"
호위로, 함께 식당 안에 있던 소드 마스터 기사가 검에 오러 블레이드까지 둘러 문손잡이로 휘둘렀다.
문에 뭔가 장치나 마법이 걸려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문손잡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 기사와 라마드 국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창문도 깨지 못할 겁니다. 제 허락 없인 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 용후의 절대 안 열려 스킬은 맥스를 찍은 상태. 아직 현자의 강화석으로 강화를 시키지 않았지만 맥스를 찍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강한 오러 블레이드를 써도 얼마나 높은 서클의 마법이라 해도 뚫리지 않는다 확신이 있었다.
마법 인형에게 성검 덱커를 쥐여주고 빛의 검 스킬까지 걸어 절대 안 열려 스킬을 건 문을 베게 했는데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기에 가진 확신이었다.
"김용후 이놈……."
그럼 김용후 널 제압해 열게 하면 되지 않겠느냔 말을 차마 라마드 국왕은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림자 기사 도틸런을 잡은 김용후다. 왕궁 근위기사단장이라 해도 김용후를 제압할 수 있단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일단 사인을 하십시오. 그럼 모든 걸 설명해 드릴 테니."
예언에 대해 믿게 하고 설득시키는 것보다 이 방법이 더 빠르고 확실하단 생각에서였다.
결국, 마탑주 오렌펠이 식당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깃펜을 들었다. 흑마법사 벨베른을 잡고, 소환된 악마를 잡고, 소드마스터까지 잡은 김용후다.
지금 그가 이곳에 있는 자들을 다 죽이고자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식당에서 나갈 방법은 이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뿐이었다.
슥슥!
오렌펠이 사인을 끝냈다. 그 모습에, 세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엔 다 자리에 앉아 깃펜을 들었다.
오렌펠과 같은 생각에 도달해서였다.
"전원 사인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여러분을 한 자리에 모으고, 그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을 부탁드린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뭘 꾸미고 있는 것일까.
모두의 눈이 용후에게 집중됐다.
"며칠 전 꿈을 꿨습니다."
용후가, 꿈속에서 본 마계와 연결된 게이트와 그 게이트에서 나온 마물과 마족들, 그리고 그 마물과 마족들에 의해 왕국이, 세계가 멸망하는 꿈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그게 예언이라 어떻게 확신하오?"
"제가 예언 스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킬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스킬이라 한다면,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 말 대로 스킬만큼 직관적인 힘도 없으니.
그리고 김용후는 기적의 스킬을 쓰는 자.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예언 스킬을 갖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라마드 왕국 중부 하늘에 생기는 게이트는 제 스킬로도 닫을 수 없습니다. 그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원정대를 꾸려 먼저 그 게이트로 들어가 마계를 토벌해야 합니다."
말이야 쉽지!
고서에 마계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모호했고,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세계를 멸망시킬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 과연 그곳을 아무리 온 세계가 힘을 모은다 해도 토벌할 수 있을 것인가.
또, 김용후의 말들이 사실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김용후가 야욕을 품고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급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을 할 상태. 절대 못 푸는 건 아니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풀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라면…….'
마탑의 5서클 마법사들을 데리고서 밤낮으로 작업을 하면 빠르면 일주일 안에도 마나의 계약서의 효과를 무효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늦더라도 한 달 이상이 걸리진 않는다.
'원정대를 꾸리려면 그 정도 시간은 걸릴 터.'
자신과 루물 마탑의 마법사 전원이 원정대에 들어가 마계로 가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탑으로 돌아가면 당장 마나의 계약을 푸는 작업을 시작하겠다 벼르며 마탑주 오렌펠이 용후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마탑의 마법사 1/3 정도라면 내어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김용후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 이상을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부디 마나의 계약서를 푸는 일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풀리지 않을 테니까요."
* * *
루물 마탑의 마탑주실.
마탑주 오렌펠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마나의 계약서는 심장에 제약 마법을 거는 마법. 그리고 상급 마나의 계약서는 심장에 아예 각인을 새겨 넣는 방식이다. 그랬기에 더욱 풀기 어려운 것.
그러나 심장에 새겨진 각인이라 해도 약점, 틈이 없는 건 아니다. 그 과정이 어렵고, 자칫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기에 풀 가능성이 낮지만 그래도 오렌펠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제약 각인이라면 90% 이상의 확률로 풀어낼 수 있다 자신했다.
시간을 단축해 일주일 안에 풀고자 한다 해도 70% 이상의 성공률을 자신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제기랄……! 하아하아……."
이번에도 심장 구석구석을 마나로 더듬으며 틈을 찾다가 결국은 포기한 오렌펠이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법진을 새겨 놓은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각인의 틈새를 찾지 못했다는 건 틈이 없다 봐야 했다. 한마디로 완전무결한 완벽한 각인이다!
"이런 각인이라면 평생 동안 풀리지 않는다……."
오렌펠의 얼굴에 공포심이 번졌다. 지금 자신은 김용후의 노예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오직 김용후만이 이 각인을 다시 풀어줄 수 있고, 풀어주지 않는다면 김용후가 하는 지시는 무엇이든 다 따라야 한다.
그런 계약이 적힌 마나의 계약서였으니.
"아니, 이건 마나의 계약서에 의한 각인이 아니야."
모든 마나의 계약서에 담겨 있는 제약 마법과 각인은 같다. 변형을 시킨다면 시킬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틈은 더 많아진다.
즉, 지금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각인은 전혀 다른 종류의 각인인 것이다!
설마…….
"기적의 스킬!"
저택의 그 방 안에서 김용후가 자신의 몸에 기적의 스킬을 건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김용후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다.
6서클 마법사인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스킬을 썼다 해도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괜히 기적의 스킬 기적의 유저 기적의 김용후로 불리는 게 아니다.
"빌어먹을……."
각인을 풀 수 없다면 김용후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디 그가 선인이기를, 자비와 인정을 베풀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계 원정을 성공한 뒤 각인을 풀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아주 열심히 싸워야 할 것이다. 열심히 마법사들을 독려해야 할 것이다.
각인을 풀어달란 부탁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공을 세운 뒤여야 할 테니. 그때, 노크 소리에 오렌펠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들어와라."
마법사 한 명이 들어왔다.
"왕궁과 교황청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교에서도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셋 다 마나의 계약서를 풀어달란 부탁을 해왔습니다."
오렌펠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다들 같은 생각으로 사인한 것이다. 오렌펠이 손을 휘휘 저었다.
"풀 수 없다 전해라. 절대 풀리지 않는, 김용후의 기적의 스킬로 인해 걸린 각인이니."
* * *
용후의 저택.
집무실의 중앙 테이블에 용후와 라마드 국왕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홀리잔 제국을 원정대에 합류시키는 건 불가능하네.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교류 자체가 없었으니. 김용후 자네의 기적의 스킬에 대한 소문도 없는 곳이니 예언 이야기를 한다 해서 믿지도 않을 테고. 오히려 더 경계할 걸세."
라마드 왕국은 힘이 있었다. 그리고 외교도 잘했다. 그랬기에 라마드 국왕은 어렵지 않게 다른 왕국의 왕들을 모이게 만들 순 있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동쪽에 있는 홀리잔 제국의 황제를 설득해 원정대에 합류시키는 건 라마드 국왕은 절대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불러들이는 것조차도.
"불러들일 필요 없습니다. 자리만 마련해 주십시오. 제가 홀리잔 제국의 왕궁으로 가 왕을 만나겠습니다. 그리고 설득하도록 하죠."
일단 자리가 마련만 되면, 용후는 홀리잔 제국의 황제를 설득하고,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도록 만들 자신이 이었다. 기적의 스킬들을 앞에서 써 보이며 자신의 예언을 믿게 만들어서.
마나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만들 거 없이 그저 종이 계약서를 써도 된다. 마나의 계약서와 이중으로 제약을 걸면 더 확실하단 생각으로 마나의 계약서를 쓴 것일 뿐이니.
또 이전 네 사람에게 절대 맹세를 걸면서 스킬 레벨이 3이 된 상태. 마나의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라마드 국왕, 하드리스 교황, 스미스, 오렌펠보다 더욱 강력한 각인을, 그야말로 모든 명령을 다 따르는 꼭두각시처럼 만드는 각인을 새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