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기적의 스킬 자판기 136화
창문을 깨부수고 밖으로 나온 드리안이 바닥을 몇 바퀴 구르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아공간에서 블루 마석을 꺼내 바닥에 박아 넣기 시작했다. 이어 레드 마석이 박힌 스태프를 꺼내 빛을 내기 시작한 마석 부분으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10초.
마법진이 완성되자 드리안은 그 즉시 마법진 중앙에 손바닥을 대곤 마나를 흘려 넣었다.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마나 친화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마나를 움직일 순 있었다.
아주 약간의 마나가 주입됐을 뿐인데도 마법진이 발동되며 황금빛 빛줄기들을 뿜어 올렸다.
그 빛이 드리안의 몸을 휘감으며 돌다가 오른손으로 모여들었다. 고대의 연금술인 황금의 손을 자신의 오른손에 건 것이었다.
드리안이 아공간을 다시 열었다. 그러곤 보라색 액체가 담긴 포션 한 병을 꺼냈다. 그 포션병의 코르크 마개를 따 병 주둥이를 입에 대고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꿀꺽!
그때, 김용후가 부숴져 있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뒤를 거대한 집게팔을 휘두르며 키메라 오우거가 벽을 무너뜨리며 뒤따랐다.
용후의 눈에 오른손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다른 신체 부위들은 붉은빛을 발하고 있는 드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용후의 눈이 커졌다. 드리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상태창 속 스탯 수치들이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었다.
계속 가파르게 상승하는 게 금방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스탯란 아래 초감각과 항마력, 속성저항력 등의 특수 스탯이 생겨나 있었다.
'상관없다.'
200레벨이 넘는 마물들도 잡는 게 리볼버(+4)와 빛의 검이니. 한 발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밖으로 나오기 전 용후는 염력을 써 리볼버(+4)에 총알 6발을 장전해놓은 상태. 2발 3발을 맞고도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용후가 달리며 드리안을 향해 리볼버(+4)를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총 4발! 뭔가 더 믿는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며 연달아 총을 쏜 것이었다.
총알 4발이면 무슨 노림수가 있든, 뭐든 다 깨부수고 드리안의 몸에 틀어박힐 것이다. 딱 한 발만 몸에 박히면 끝이었다.
그런데……
드리안이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직후, 손바닥 앞의 허공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러더니 총알들의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지며 황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용후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듣도 보도 못한,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광경!
그때 완전히 황금으로 변하고 움직임이 멈춘 총알 4발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그러더니 녹색 젤리처럼 변해 녹아내렸다.
"허……."
그러나 당황한 건 잠시, 재빨리 움직여 뒤에서 날아드는 키메라 오우거의 집게 팔을 피해내곤, 키메라 오우거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크히어어어어엉!
고막이 얼얼해질 정도로 큰 포효를 터트린 키메라 오우거가 돌진해오는 용후를 향해 몸을 반쯤 돌리며 꼬리를 휘둘렀다.
검은빛으로 빛나는 칼날이 박혀 있는 굵고 긴 꼬리가 크게 반원을 그리며 용후의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용후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며 빛의 검을 휘둘렀다.
캉! 카가가가각!
뭘로 만든 철인지, 빛의 검에도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균열이 갔다는 건 상당한 데미지가 가해졌단 뜻! 키메라 오우거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거렸다.
그 틈을 용후가 놓칠 리 만무.
지면이 꺼질 정도로 세게 바닥을 박차며 더 속도를 낸 용후가 마저 키메라 오우거와의 거리를 좁혀 바스타드소드처럼 길어져 있는 빛의 검을 키메라 오우거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렀다.
촥!
-크허어어어어엉!
길게 잘려 벌어진 옆구리가 검은피를 콸콸 쏟아냈다. 이어 용후가 한 번 더 빛의 검을 휘둘러 키메라 오우거의 왼쪽 무릎을 통째로 잘라버리며 옆으로 빠져나갔다.
즉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큰 상처에, 무릎뼈가 반으로 잘리기까지 하자 중심을 완전히 잃은 키메라 오우거가 옆으로 기울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키메라 오우거를 돌아보지도 않고 방향을 꺾어 달린 용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드리안 바로 앞에 도착해 빛의 검을 뿌리듯 연달아 휘둘렀다.
동시에 드리안이 그 공격을 피해내며 손바닥을 쫙 펼친 오른손을 빛의 검을 향해 내뻗었다.
콰콰콰콰쾅!
굉음이 터지며 폭풍 같은 후폭풍이 휘몰아쳤다. 빛의 검 일부가 황금빛으로 물들더니 바닥에 무수히 많은 황금이 떨어져 내렸다.
빛의 검이 황금빛에 더 빠르게 먹혀들어갔다.
용후의 눈이 커졌다. 빛의 검을 막은 것도 놀랍지만, 몸의 반응 속도도 놀라웠다. 그러나 그건 잠시. 용후가 자동사냥 스킬을 발동시켰다.
용후의 움직임이 확 일변했다.
* * *
"헨슬런 백작이 최후통첩을 해왔습니다."
"군대는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소드마스터로 추정되는 자가 있습니다."
헨슬런 백작령에서 돌아온 정보원들의 보고에 제이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리 봐도 지금 헨슬런 백작이 보이고 있는 움직임은 그저 겁을 주려는 게 아니었다.
"그 소드마스터의 인상착의는?"
정보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세하게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또, 오러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도.
설명을 다 들은 제이번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가진 소드마스터 목록 안에 없는 자였다.
'헨슬런 백작이 소드마스터급 기사를 데리고 있는데 그 사실을 쭉 비밀로 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드마스터 기사를 데리고 있음으로서 영주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으니.
더구나, 비리마 남작이 백작으로 승작하고, 김용후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가고 있던 상황, 숨겨왔던 거라면 김용후에게 성벽을 쌓지 말란 압박을 넣을 때 소드마스터 카드를 꺼내놨을 것이다.
'이제야 꺼내놓는 건 부자연스러워.'
다른 영지에서 소드마스터를 빌려왔을 리도 없고. 그건 더 말이 안 된다. 소드마스터를 여러 명 데리고 있는 영주라면 모를까 빌려줄 리가.
왕국에서 소드마스터는 10명도 채 되지 않고, 2명 이상을 데리고 있는 영주는 없다.
딱 한 명.
있기는 하다.
라마드 국왕.
"……국왕이 헨슬런 백작과 손을 잡은 건가?"
제이번의 표정이 더욱 무거워졌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김용후의, 스킬을 파는 상자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건, 정보 길드에 정보가 팔렸단 뜻. 그렇다면 헨슬런 백작이 스킬 파는 상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 스킬 파는 상자로 국왕을 꼬드긴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국왕은 혹 스킬 파는 상자를 빼앗지 못했을 때를 생각해 앞으로 나서지 않고, 이름 없는 소드마스터를 헨슬런 백작에게 붙여준 것이고.
제이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앞뒤가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그 소드마스터는 그림자 기사일 것이다.
실체한다 안 한다 말들이 많지만 제이번은 실존하는 자들이라 생각했다. 그 소문대로라면, 라마드 국왕의 그림자 기사들의 실력은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 10년 이상이 지난, 소드마스터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괴물들일 터.
'영주님 없이 헨슬런 백작과의 공성전에서 승리하는 건 힘들다.'
마력포에 운 좋게 휩쓸린다면 모를까, 김용후를 빼곤 누구도 소드마스터를 상대론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
제이번의 고민이 깊어졌다. 용후가 언제 팔켄 마을로 돌아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
중부의 보포린 숲으로 갔으니 일이 예정대로만 된다면 일주일 이상 걸리진 않겠지만, 지금 헨슬런 백작 군대의 이동 속도면 2~3일 뒤에 공성전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김용후는 절대 성벽 공사를 멈추지 말라 했다. 반드시 완공을 시켜야 한다 했다.
'그 지시대로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영주의 지시를 따르고, 그가 내린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니. 혹 팔켄 마을이 헨슬런 백작군에 점령당하게 된다 해도.
"성벽 공사를 멈추지 마라."
제이번이 수하에 두고 있는 1비서에게 말했다.
"헨슬런 백작의 군이 비리마 영지를 벗어나면 그때부터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영지전을 준비한다."
"예!"
1비서가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집사실을 나갔다. 이어 제이번이 정보원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비리마 영지로 들어가 헨슬런 백작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계속 보고해."
"예!"
정보원들이 나갔고, 제이번도 자리에서 일어나 집사실을 나가 스킬 자판기를 넣어둔 방으로 갔다. 그곳에 있는 마도 마법 인형들까지 꺼내 쓰기 위함이었다.
"영주님, 빨리 돌아오셔야 합니다."
불이 켜져 있는 스킬 자판기를 보며 제이번이 혼잣말을 하곤, 마도 마법 인형들을 작동시켰다.
* * *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
드리안이 경악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안 그래도 강하던 자가, 갑자기 속도도 공격력도, 거기다 검술의 수준까지 올라 키메라 오우거를 난도질했다.
검술에 문외한인 자신이 봐도 조금 전과 수준 차이가 확 느껴질 정도!
유저기에 스킬을 쓴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길게 유지가 되는 스킬은 있을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판단한 드리안이 결국 몸을 돌렸다.
중요한 연구 일지와 연금 책들은 전부 아공간 안에 있지만 연구실 안에 값비싼 연금 재료들이 많아, 가능한 김용후를 잡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려다간 자신이 잡힐 판, 드리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키메라 오우거의 생명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래도 트롤 이상으로 빠르게 몸을 재생시키며 김용후를 공격하고 있으니, 그래도 자신이 충분한 거리를 벌릴 동안은 버텨줄 것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않아 키메라 오우거의 괴성이 터지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용후의 자동사냥 스킬은 그저 검술만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처럼 학습을 해가며 싸우는 전투 스킬, 키메라 오우거의 움직임을 파악해 가며 싸웠기에, 드리안이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키메라 오우거를 쓰러뜨린 것이었다.
용후가 그 즉시 몸을 돌려 드리안을 쫓아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자, 잠깐! 말로 하자고, 말로!"
드리안이 멈춰 서며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용후의 몸은 멈추지 않았다. 빛의 검을 드리안을 향해 계속 휘둘렀다.
초감각 덕분에 그 공격들을 피해내긴 했지만 드리안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곧 연금 포션의 효과가 사라질 테고, 그렇게 되면 단 한 번의 공격도 피해내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금 포션의 효과가 유지된다 해도 제대로 된 검술을 펼치며 날리는 공격들을 계속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현자의 돌! 내놓을 테니 제발 멈춰!"
용후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말 한마디면 당장 자동사냥 상태를 풀 수 있다.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었다. 드리안을 쫓는 중에 빛의 검은 풀려 버렸고, 자동사냥 스킬의 유지 시간도 이젠 2분이 채 안 남은 상황.
만약 직접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칫 드리안을 놓칠 위험이 있다 판단해서였다.
드리안의 인벤토리 속엔 갖가지 고대의 연금 포션들과 키메라가 든 게 분명한 오브들이 더 들어 있었다.
놓친다 해도 이쪽 스킬을 쓰면 다시 찾아낼 수야 있지만, 용후는 드리안에게 이 이상 더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현자의 돌을 드리안이 만들었다면 모를까, 그저 유적지에서 구한 것이니.
'일단 그 템 내 거 스킬로 찍어둔 현자의 돌덩어리 한 개를 얻는다.'
한 개만 얻어도 6~7개의 현자의 돌의 파편을 얻을 수 있다.
드리안만 현자의 돌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제이번은 정보원들을 시켜 계속 현자의 돌을 구할 수 있는 루트를 찾는 중.
그러니 드리안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현자의 돌의 덩어리엔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팔켄 마을을 오래 비워두면 안 돼.'
왕궁에 헨슬런 백작이 있었다. 이유는 뻔했다. 장벽 공사를 막기 위해서거나, 공성전을 걸고 그 공성전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일 터.
헨슬런이 팔켄 마을을 공격해 온다면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싸워야 한다.
촥!
"크아아악!"
드리안의 오른손이 성검 덱커에 잘려 허공을 핑글핑글 돌며 날아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그 즉시 황금빛을 내던 손이 빛을 잃고 파랗게 변해갔다. 손바닥 쪽으로 휘둘렀다면 막혔겠지만, 빛을 내고 있지 않은 부위는 역시 그저 팔에 불과했다.
용후의 몸이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가차가 없었다. 이번엔 드리안의 목이 잘리며 머리가 옆으로 날아가 바닥을 구르고 머리를 잃은 몸은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그 즉시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현자의 돌덩어리를 얻었습니다
이건 그 템 내 거 스킬에 의해 자동으로 인벤토리로 들어온 아이템이었고……
-고대의 신체 강화 연금 포션 레시피를 얻었습니다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고대 연금술사 케제힐의 펜던트를 얻었습니다
높은 행운 스탯에 의해 아이템도 4개나 드랍이 됐다. 드리안이 아공간 속에 워낙 많은 아이템이 들어 있었고, 드랍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구잡이로 넣어놓은 덕분이기도 했다.
용후가 바로 현자의 돌덩어리를 꺼냈다. 그리고 쿨타임이 끝난 빛의 검을 다시 만들어내 현자의 돌덩어리를 향해 휘둘렀다.
쩌엉!
현자의 돌 덩어리가 7조각이 나 흩어졌다.
"뭐든 다 만들어."
용후가 현자의 돌 파편들을 스킬을 써 현자의 강화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자동사냥 스킬부터 강화시키기로 했다. 5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