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기적의 스킬 자판기 134화
"상자에 금화를 넣어 스킬을 산다?"
"그렇습니다. 잡화점 알바를 하던, 아무것도 아니던 김용후가 하루아침에 딴사람처럼 변해 큰 명성을 올려 나갈 수 있었던 건 다 그 상자에서 산 스킬 덕분입니다."
헨슬런 백작의 설명에 국왕 라마드의 표정이 변했다.
그러나 기대감과 놀라움뿐 아니라 경계심과 의심도 얼굴에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헨슬런 백작은 라마드 국왕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스킬 파는 상자에 라마드 국왕이 큰 흥미를 갖게 된 건 분명했다.
'그럴 수밖에.'
누구라도, 기적으로 불리고 있는 스킬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그 상자에서 나오는 스킬들은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라마드 국왕의 입에서 한참동안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자 헨슬런이 참지 못하고 그 말을 덧붙였다. 라마드 국왕의 눈에 더욱 짙은 이채가 번졌다.
그러나 방금 헨슬런 백작이 한 말은, 정보원이 가져온 스킬 파는 상자에 대한 보고에 없던 내용이었다.
금화를 넣어 스킬을 살 수 있는 상자인 건 분명하고, 김용후가 그 스킬 상자를 통해 기적의 스킬들을 얻은 것도 분명하지만, 나오는 모든 스킬이 다 기적 같은 스킬이란 보장까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킬 파는 상자에 대한 이야길 라마드 국왕에게 꺼낸 이상, 반드시 라마드 국왕을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런 보물이라면, 당연히 국왕 폐하께서 왕국의 번영을 위해 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용후의 그 예언이 사실이라면 더욱이 그 스킬 파는 상자는 국왕 폐하께서 사용하시는 게 게이트에서 나온 재앙으로 인한 피해를 더욱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라마드 국왕의 눈이 이리저리 빠르게 돌아갔다.
'국왕인 자신을 상대로 헨슬런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거니와, 아무리 마음이 급하다 해도 확실치 않은 정보를 자신에게 고할 리 없다.'
100%까진 아니더라도 못해도 80% 이상 자신할 수 있는 정보기에 이 정보를 꺼내놨을 터.
하지만, 그 기적의 스킬들을 파는 상자를 김용후가 순순히 내놓을 리가 있나. 아무리 국왕의 명령이라 해도.
죽으면 죽었지 내놓지 않겠단 태세로 나올 수도 있고, 뺏기느니 부숴버리거나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숨겨버리는 수를 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꼴.'
김용후의 예언대로라면, 그 게이트가 다시 열리면서 일어날 대재앙을 막으려면 김용후가 가진 스킬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 스킬 파는 상자를 얻으려다 얻지도 못하고 김용후와 척을 져버리면, 김용후가 약속한, 최선을 다해 왕도의 피해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돕겠단 말이 없던 걸로 돼버리는 것이다.
라마드 국왕의 얼굴이 다시 차츰 굳어져 갔다. 뭐가 맞는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였다.
"국왕 폐하께서 직접 손을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게 약간의 지원만 해주시면 됩니다. 국왕 폐하의 도움이 있었단 사실은 혹 스킬 파는 상자를 뺏는 데 실패한다 해도, 제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절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헨슬런이 긴장한 얼굴로 라마드 국왕의 얼굴을 살폈다.
많은 병력을 내어줄 것도 없다. 아니 병력도 필요 없다. 라마드 국왕의 소드 마스터 기사 딱 몇 명만 김용후를 잡는데 쓸 수 있도록 해준다면, 김용후와의 전면전도 해볼 만했다.
더구나, 라마드 국왕은 김용후를 도모하는 걸 도왔단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만큼, 그림자 기사를 내어줄 가능성이 컸다.
그림자 기사들은 직책도 이름도 없이 국왕의 뒤에서 움직이는 해결사들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들도 있다 했다.
그저 국왕에 대한 공포를 심기 위해 꾸며낸 말이라 말하는 자들도 있지만, 정보력이 뛰어난 헨슬런은 증거까지 찾아내진 못했지만 그림자 기사들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좋다, 헨슬런. 소드 마스터 한 명을 내어주겠다."
헨슬런 백작의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딱 한 명, 그러나 소드 마스터는 일인군단으로 불리는 존재들이다.
소드 익스퍼트 10명이 달려들어도 소드 마스터 한 명을 잡기 힘들다. 그랬기에 소드 마스터에겐 지고 있는 전쟁을 반전시켜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었다.
더구나 국왕의 그림자 기사라면 최고의 장비와 아티팩트, 유물들로 무장하고 있을 터.
김용후를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김용후가 아무리 기묘한 술수들을 쓴다 해도, 압도적인, 진정한 무력 앞에선 잡술에 지나지 않게 될 테니.
그때 라마드 국왕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수정구가 빛을 냈다. 라마드 국왕이 말했다.
"도틸런을 불러라."
내어주겠다 한 소드마스터를 부른 것이리라. 그러나 처음 듣는 이름. 역시 국왕의 뒤엔 그림자 기사들이 있는 것이다.
'되었다.'
만에 하나 실패한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자로 되어 있는 그림자 기사니 불똥이 라마드 국왕에게 튀게 될 일은 없다.
그건 중요하다. 이번 영지전이 패배로 돌아간다 해도, 국왕이 입는 피해가 없어야 국왕을 다시 이용해 재기하거나 김용후를 도모할 방법을 다시 찾을 수 있을 테니.
"폐하,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봐라."
"비리마 백작을 다시 남작위로 강등하셨으면 합니다. 그는 백작 작위를 받을 그릇이 못 되는 자입니다."
김용후로부터 스킬 파는 상자를 빼앗고, 감옥에서 평생 썩게 만들고, 비리마를 다시 남작으로 주저앉히면 남부의 패자 자리를 다시 확고히 할 수 있다.
스킬 파는 상자, 그 대보물을 바치는 만큼 자신도 이 정도는 받아야 수지가 맞는다.
"이미 수여한 작위를 맘대로 회수할 순 없다. 명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
헨슬런 백작이 그저 떼를 쓰려는 것일 리는 만무, 방법을 이미 갖고 있을 것이다.
"헨슬런 백작은 김용후와 짜고 제게 거짓과 속임수를 써 벨베른 토벌을 중간에서 가로채 갔습니다. 벨베른은 악마 소환식을 하고 있던, 그리고 실제로 소환해낸 흑마법사입니다. 그런 위험천만한 자를 상대로 공을 올려 승작을 하기 위해 남부를 크나큰 위기에 빠뜨릴 뻔했습니다."
라마드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는 증거만 있다면 충분히 명분이 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헨슬런이라면 분명 그 증거를 갖고 있을 것이었다. 완벽한 증거일 것까진 없다. 그저 어느 정도 앞뒤만 맞다면 충분하다.
"좋다. 그 말들이 다 사실이라면, 약속하겠다."
헨슬런 백작의 입가에 더 큰 미소가 지어졌고, 그 미소를 숨기기 위해 국왕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림자 기사 도틸런이 도착한 것이다.
"들어오라."
라마드 국왕이 말했고, 문이 열리며 지극히 평범한 외모를 한 4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기운을 완벽히 컨트롤 해 감추고 있어서였다.
익스퍼트급 기사들도 못 하는 걸 하고 있단 건 마스터란 뜻. 남자가 라마드 국왕의 책상 앞에 섰고, 라마드 국왕이 헨슬런 백작을 보며 말했다.
"절대 잊지 마라, 헨슬런. 혹 실패해도, 내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는 걸."
마법사도 사제도, 연금술사도, 유저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자. 김용후는 가치가 있다. 스킬 파는 상자를 뺐지 못 한다면, 김용후와 절대 척을 져선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헨슬런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림자 기사를 데리고 국왕의 집무실을 나가 바로 왕도를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잡을 수 있다!'
기운을 느껴보려 아무리 애써도 느껴지지 않는 도틸런의 모습에, 헨슬런은 더욱 확신이 생겼다.
* * *
"시켄들 상단의 상인 릭이 연금술사 드리안이 있는 곳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집사 제이번의 보고에 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번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릭을 통해 분명 현재 드리안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릭에게서 드리안의 위치를 알아내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릭은 시켄들 상단의 뒷거래를 돕던 자. 분명 그도 지하 암시장 안에 갇혀 있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왕도의 경비대가 부르간 성에서 이런저런 수사를 하고 있고, 암시장 문도 찾아냈을 것이다.
게다가 무슨 수를 써도 문이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먼저 스모크 스킬로 암시장 안으로 들어가 릭에게서 드리안의 위치를 알아낸 뒤, 다시 나와 경비대와 만나 시켄들 상단의 암시장과 관련된 자들을 일망타진하는 공도 세우면 되는 것이다.
"혹 릭이 드리안의 위치를 모르고 있을 때를 대비해 다른 방향으로도 계속 드리안의 정보를 모으겠습니다."
제이번이 말했다.
"그렇게 해주세요."
릭이 드리안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그 위치를 불게 할 수 있단 자신이 있지만,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나쁠 건 없다.
현자의 강화석은 반드시 얻어내야 된다.
"그리고 현자의 돌의 파편이 나오는 유적지와 던전이 있는지도 계속 조사를 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이번이 집무실을 나갔고, 용후는 박정석에게 마차를 대기시키도록 하곤 부르간 성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 * *
콰아앙!
화르르륵!
부르간 성의 지하. 암시장 문 앞에서 굉음이 터지며 바닥과 벽, 천장에서까지 동시에 터져 나온 불기둥이 합쳐 치며 암시장 문을 충차처럼 때렸다.
게다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문을 때리며 사방으로 흩어진 불꽃들이 다시 뭉쳐지며 수차례 더 문을 때려댔다.
그러나 불꽃이 사그라져 사라지고 보인 문은 너무도 멀쩡했다. 흠집도 보이지 않았고, 흑철도 녹일 정도의 고열이었음에도 녹은 흔적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제대로 마법진 설치한 거 맞아?"
"마법진은 완벽했습니다."
불꽃이 사라지고, 연기를 마법을 사용해 전부 없앤 뒤 문 앞으로 몰려간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며 암시장 문 곳곳을 살폈다.
그러나 몇 번을 봐도, 아무리 구석구석 살펴도, 흠집은 찾아낼 수 없었다. 게다가, 이게 벌써 3번째로, 레드 마석을 60개나 썼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문에 흠집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건, 정말 그 유저의 말 대로 뭘 어떻게 해도 절대로 열 수 없는 문이라 봐야 했다.
정말 김용후만이 이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걸까요?"
"마법을 쓴 것도 아니고, 스킬의 힘이 느껴집니다만 그 힘의 패턴이 조금, 아니 꽤 많이 다릅니다. ……이 이상 더 해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마탑에서 빌려온 4서클 마법사의 말에, 왕도 경비병들이 혀를 차거나 고개를 내저었다.
"이것도 기적의 스킬의 힘인가."
"아무리 기적이라 불리는 스킬이라 해도, 4서클 마법에 마법진에, 레드 마석까지 사용해 만들어낸 폭발에도 멀쩡하다니……."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김용후를 부르시죠."
레드 마석 60개가 사용됐다. 이번 수사를 함께 하고 있는 자들이 사비까지 털었기에 가능했던 수.
포상과 함께 진급까지 된다면야 손해가 아니지만, 김용후와 공을 나눠야 한다면 엄청난 손해가 될 것이다.
아니, 김용후가 공을 독차지하게 될 터다. 자신들이 한 일이라곤, 김용후가 시켄들 상단의 뒷거래를 파헤친 뒤 가둬둔 자들을 그저 포박해 왕도로 이동시킨 것뿐이 될 테니.
"팔켄 마을로 가서 김용후 불러와."
결국 수사대장이 그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용후는 이미 암시장에 와 있었다. 암시장 문 앞에 모여 있는 경비대를 본 용후는 즉시 몸을 스모크 상태로 만들어 문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경비병들과 가까워지자 연기가 된 몸을 바닥으로 바짝 깔고 또한 사방으로 넓게 퍼뜨렸다.
횃불과 라이트 마법이 밝혀져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곳곳에 어두운 부분이 많아 용후는 경비대에 들키지 않고 문 틈새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스킬 해제.'
암시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용후가 스모크 스킬을 풀었다. 갑자기 나타난 용후를 알아본 시켄들 상단의 상인들과 귀족들이 일제히 일어나 용후를 바라봤다.
그러나 용후가 총을 쏴대던 걸 봤기에 다가가진 못했다.
눈치가 빠른 자들 몇이 문을 향해 달려갔지만,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이런 X발!"
"열어줘! 제발 꺼내줘!"
문밖에선 여전히 이런저런 말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상태창이 다 보여."
용후가 상태창 스킬을 써 주변을 휙 둘러봤다. 금방 릭의 상태창을 찾아냈다. 리볼버(+4)를 꺼내 들고 그 상태창이 있는 곳으로 간 용후가 릭에게 총구를 들이대며 말했다.
"연금술사 드리안이 있는 위치 말해. 시켄들 상단과 부르간 자작은 끝장났고, 성안엔 왕도 경비대가 쫙 퍼져 있다. 드리안에 대해 아는 걸 전부 말하면 정상 참작이 돼서 경비대에 넘겨질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죽어 부활한 뒤 넘겨지고 더 중형을 받도록 내가 아주 힘껏 힘을 써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