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기적의 스킬 자판기 124화
'난 놈은 난 놈이다.'
길태현이 혀를 내둘렀다. 정말 잘 싸웠다. 유저인데 무슨 NPC 기사처럼 검술을 쓰고, 권총은 쏘는 족족 명중. 백발백중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거기다 어떻게 돼 먹은 건지 쉬지 않고 계속 싸우는 데도 체력이 떨어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저게 그 기적의 스킬이란 거구나.'
정말 많이 들었다.
어딜 가든 김용후에 대한 이야길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떤 무용담이 다 그렇듯 많이 과장된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정말 만지거나 쓰다듬기만 하면 병사들의 장비가 수리되고 쓰러진 병사들이 실시간으로 상처를 치료해 버리곤 일어나 바로 다시 전투를 이어갔다.
쿨타임도 말도 안 되게 빨랐다. 저런 사기적인 효과를 내는 스킬인데도.
'대체 마도 마법 인형은 어떻게 갖고 있는 거지?'
아무리 기적이라 불리는 스킬을 쓴다 해도 마도 마법 인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뭐든 원하는 것까지 다 만들어 내버린다면 그건 신이다.
유적에서 구한 것일 거다.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워낙 수가 많아 그것도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지만.
게다가 300기의 마도 마법 인형들이 전부 오러 블레이드를 쓴다. 그뿐만 아니라 검술도 펼친다.
"하……."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오러 블레이드를 쓰고 검술까지 쓰는 마도 마법 인형들이라 해도 사마환을 먹여 언데드로 만들고 암흑마력을 몸속에 꽉 채운 언데드 기사들이 밀린다는 게.
마법 인형들의 수가 많기도 했지만 김용후 때문이었다. 언데드 기사들을 잡음과 동시에, 마법 인형들이 쓰러지거나 부서지면 귀신같이 달려가 몇 번 쓰다듬은 걸로 금세 복구를 시키는 걸 해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이거뿐이다."
길태현이 인벤토리에서 사마환을 꺼냈다. 김용후를 잡아야 지금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또, 김용후의 귀환 부활 장소는 팔켄 마을일 터.
작은 마을이다.
김용후가 죽어 부활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팔켄 마을의 부활 장소인 광장 분수대로 먼저 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이고, 죽이고 죽인다. 그런 다음엔 흑마법사의 각인을 새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뒤 탈탈 털어내면 되는 것이다. 마룡의 등뼈뿐 아니라 김용후가 가진 모든 걸. 기적의 스킬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그 비밀까지도.
으적으적.
"X발……."
이걸 자신이 먹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길태현은 끝까지 다 씹곤 꿀꺽 삼켰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후우우웅!
길태현의 전신에서 검은 연기 같은 암흑마력이 피어올라 몸을 휘감으며 돌았다.
이어 전신의 근육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팽창했다. 마인으로 만들려는 힘과 언데드로 만들려는 힘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저 마인환이었다면 더 몸이 팽창하며 몬스터 같은 모습으로 변형됐겠지만 잠시 뒤 부풀었던 뼈대와 근육이 줄어들었다.
그러곤 심장이 멈추고, 피가 검게 변하며 전신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하아~"
길게 숨을 내쉰 길태현의 입에서 새하얀 냉기가 자욱이 뿜어져 나와 흩어졌다. 이어 길태현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흐흐크하하하!"
놀랍다. 이렇게나 암흑마력이 몸속을 가득 채우며 맹렬히 휘돌다니! 게다가 서클링이 돌아가는 속도도 두 배 더 빨라져 있었다.
'이긴다.'
그저 스킬만 쓰는 네크로맨서라면 스킬의 효과가 더 강해지고 육체 능력이 더 좋아지는 정도에 그쳤겠지만, 길태현은 스킬의 도움 없이도 벨베른에게 배운 흑마법을 쓸 수 있다. 스킬보다도 그 흑마법의 효과가 폭발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일단……."
길태현이 좀 더 성벽 쪽으로 이동해 언데드 필드를 시전했다.
팔켄 마을뿐만 아니라 팔켄 마을 주변 들판까지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언데드 필드가 한순간에 완성돼 강렬한 자색빛을 뿜어 올렸다.
그러자 아직 소멸하지 않고 있던 NPC 병사들과 유저들이 언데드로 변해 일어났다.
그러곤 전부 용후의 병사와 기사, 유저 용병들을 향해 돌진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이어 길태현이 스킬 하나를 더 썼다.
"트윈 스톤 골렘!"
한 번의 스킬 시전으로 두 마리의 스톤 골렘을 만들어내는 스킬이었다.
단, 이 스킬은 재료가 있어야 골렘을 만들 수 있는 스킬, 그러나 마침 무너진 성벽의 잔해가 있으니 가능했다.
성벽 파편들이 서로 달라붙으며 이리저리 깎여나가더니 4m, 5m 크기의 스톤 골렘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어어! 스톤 골렘이다!"
"핵! 핵 부숴!"
"말이 쉽지!"
두 기의 스톤 골렘들이 성벽 위에서 활과 마법을 쏘는 병사와 유저들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스톤 골렘의 주먹에 맞은 병사와 유저들이 으깨져 즉사당하거나 성벽 밖으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그 유저들에게 적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그 사이 길태현은 용후와 더 거리를 좁혀가며 벨베른에게 배운 흑마법으로 뼛조각들을 긁어모아 본 스피어를 만들어 나갔다.
* * *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용후가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몸을 복구하며 일어났고 오러 블레이드에 암흑마력까지 섞어서 썼다. 그러니 약할 리가 있나.
그래도 무한하게 몸을 복구하는 건 아니었다. 20번 이상을 죽여도 되살아나는 언데드 기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10~15번 정도 전투 불능에 빠트리면 그 이상은 몸을 복구시키지 못했다.
'이 정도면 마법 인형들에게 맡겨도 되겠지.'
일대일로 붙으면 오러를 쓰는 마법 인형이이라 해도 부르간 자작의 언데드 기사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지만 일제히 달려들면 10번 20번을 되살아난다 해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젠 7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용후가, 길태현과 성벽에 붙어 성벽 위의 병사와 유저들을 공격하고 있는 스톤 골렘들을 보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대인 전투 병기 셀터를 꺼내 그 앞에 양팔을 벌리곤 섰다. 그 즉시 셀터의 골격들이 움직여 용후의 몸 곳곳을 휘감았다.
'저런 괴물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지.'
저 네크로맨서가 유저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스킬만 쓰는 게 아니라 진짜 마법도 쓰는 듯했다.
게다가 벨베른이 쓰던 마인환 같은 영단도 쓴다. 그것 말곤 절대 기사 전원이 갑자기 암흑마력을 쓸 수 있게 될 순 없다.
게다가 자신에게서 마룡의 등뼈를 뺏으려 드는 건 악마 소환을 할 수 있단 뜻. 벨베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자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스킬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혹 악마 소환과 관련된 스킬을 갖고 있고 벨베른으로부터 악마 소환식을 배웠다면 중급 악마 정도가 아니라 상급, 어쩌면 그 이상을 소환해낼 수도 있는 일이다.
'한 번 죽이는 걸로 끝낼 게 아니야.'
죽으면 찾아내서 몇 번이고 죽여 하려던 것도, 벨베른에게 배운 마법도 전부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힘을 절반밖에 갖고 나오지 못했던 중급 악마의 힘이 그 정도였다. 상급 악마가, 또는 그 이상의 존재가 힘을 온전히 갖고서 소환된다면 대재앙이 될 것이다.
명성을 올릴 좋은 기회군 하고 여길 수준이 아니게 된다.
키이잉!
셀터의 장착이 끝나자마자 용후가 지면을 박차며 길태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
병사들과 유저 언데드들이 앞을 막아섰지만 오라 블레이드를 쓸 것도 없이 셀터를 두른 상태로 내지른 용후의 주먹에 곤죽이 돼 처박히거나 전신의 뼈가 아작이 나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오우거와 정면으로 맞부딪쳤어도 밀리지 않던 펀치니 당연!
"막아라!"
길태현이 스톤 골렘들을 향해 외치며 스킬을 썼다. 용후를 막아선 유저 언데드들의 모습이 변했다.
근육들이 응축되며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게 변하고 가슴이 부풀었다.
'폭탄 구울?'
벨베른이 쓰던 폭탄 구울과는 생김새가 좀 달랐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비슷했기에 떠오른 건 그랬다.
'굳이 부딪칠 필요 없지.'
용후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다 지면을 박차 뛰어올랐다.
그러곤 외형을 바꾸며 달려들던 언데드들을 전부 뛰어넘곤 바닥에 착지해 다시 바닥에 쩡! 크레이터를 만들어내며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그러나 그때, 스톤골렘 한 마리가 먼저 도착해 길태현의 앞을 막아서 달려드는 용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용후도 주먹을 휘둘렀다.
쩌어엉!
셀터를 두른 용후의 주먹과 스톤 골렘의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오우거의 펀치에도 밀리지 않았던 펀치, 순수하게 스킬로만 만들어낸 스톤 골렘이기에 내구력과 물리방어력은 오우거보다 강하지만 공격력은 그렇지 않았다. 스톤 골렘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허!"
길태현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스톤 골렘만 밀려나고 김용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기 때문.
김용후가 몸에 두르고 있는 뭔지 모를 물건에 갖가지 마법도 담겨 있단 뜻이었다.
그때 김용후가 쥐고 있는 검에 푸른빛이 휘감겼다. 셀터의 마석 에너지를 사용해 만든 오러 블레이드였다.
셀터의 골격들에 충분한 양의 에너지가 공급된 뒤에야 만들어낼 수 있기에 이제야 오러 블레이드가 둘러진 것.
그러나 딱 타이밍이 좋았다. 용후가 뒤로 밀려나 휘청이는 스톤 골렘을 향해 달리며 오러 블레이드를 내찔렀다. 당연히 핵이 있는 부위였다.
쩌엉!
오러 블레이드가 단박에 외피를 뚫고 들어가 핵을 관통했다. 그 즉시 스톤 골렘이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그러나 그사이 지척까지 다가온 폭탄 언데드들이 길태현의 명령에 다 거리를 좁히지 않은 상태에서 폭발했다.
20여 마리의 폭탄 언데드들이 일제히 폭발했기에 공간을 뒤흔들 정도의 굉음이 터지며 그 일대가 새까만 불꽃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때, 길태현의 주변을 돌고 있던 창처럼 빚어진 뼛조각들, 본 스피어들이 흑염 폭풍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잡았다!"
길태현이 외쳤다.
제아무리 레벨이 높고 생명력이 높고 각종 저항력이 높아도 저 고열의 불꽃 속에서, 게다가 폭발적으로 오른 암흑마력 스탯에 의해 공격력이 대폭 오른 본스피어에 몸이 벌집이 된다면 절대 살아 있을 수가 없다.
혹 살아 나온다 해도 몸 곳곳에 암흑마력이 스며들어 전투력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테고 회복도 안 될 테니 간단히 잡을 수 있다.
용후가 불꽃에 휩싸인 직후 외친 무한재생이란 말을 듣지 못했기에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들었다 해도 무슨 스킬인지 몰랐겠지만.
화르르르르륵!
불꽃 속에서 용후가 몸을 계속 재생시키며 걸음을 뗐다.
-무한재생 스킬이 4LV이 됩니다
* * *
세히브교의 교황청 안.
추기경실에 추기경과 함께 총대주교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한 달 만의 정기 회의였기에 여러 보고와 회의가 오갔고, 2시간 정도가 흘렀을 즈음 부르간 자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부르간 자작의 병력에 언데드들이 섞여 있단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현재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추기경 날폰이 보고서를 읽어 내리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보고는 비리마 백작령으로 들어가 계속 남하하고 있단 보고였습니다."
남부 지역 교회들을 총관리하는 총대주교 비건엘이 대답했다.
"그래서, 그자의 목적이 뭡니까?"
"그건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르간 자작과 김용후 사이에 충돌이 있었단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신중한 성격답게 확답은 피하며 총대주교 비건엘이 그 말을 덧붙였다.
추기경 날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확실했다. 부르간 자작의 목적지와 목적이 뭔지.
"하지만 부르간 자작이 미치지 않고서야 아무리 눈이 돌아가 있다 해도 언데드까지 부리며 영지전을 걸진 않을 텐데 이상하군요."
영지전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건 승리가 아니게 된다. 뇌물을 갖다 바친다면 국왕은 모른 척해 줄 수도 있겠지만 교황청은 아니다.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태, 교황청은 자신의 기사들을 언데드로 만들고 마을을 습격해 유저들까지 언데드로 만들어 부리고 있는 부르간 자작을 묵과할 수 없다.
'부르간 자작이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 리 만무, 뭔가가 더 있다.'
"어떤 흑마법사를 고용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벨베른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 되는 수준의 흑마법사일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흠……."
추기경 날폰이 원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감시를 계속하면서 부르간 자작이 누굴 고용했는지 조사만 진행하세요."
자커스 도적단을 소탕하고, 벨베른을 잡고, 악마교를 일망타진하고, 영지전에서까지 대승을 거둔 김용후다.
부르간 자작이 전 병력을 이끌고 갔고, 언데드까지 부린다면 만만치 않겠지만 그래도 패배한 적도 실패한 적도 없는 기적의 김용후 아닌가.
김용후가 승리한다면, 부르간 자작과 그가 고용한 흑마법사를 놓칠 리 없으니 굳이 지금 자신들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추기경 날폰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용후가 승리한다 해도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기에.
'김용후…… 강해도 너무 강하다.'
유저 출신의 김용후가 지금보다 더 명성을 올리고 세력을 키워나간다면 귀족들이 달가워할 리 만무.
그리고 왕까지도 그를 두려워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반드시 김용후는 거대한 태풍이 되어 왕국을 뒤흔들게 될 테니.
그리고 언데드 부대를 부리는 부르간 자작을 김용후가 제압한다면 그 날은 더욱 빨리 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