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스킬 자판기-122화 (122/153)

# 122

기적의 스킬 자판기 122화

"성안에 있는 유저들을 전부 죽여라!"

병사와 기사들이 전부 도열해 있는 연병장, 단상에 오른 부르간 자작이 그런 지시를 내렸다.

이상한 명령에 병사들이 주춤거렸지만, 기사단장 골디힌과 기사들이 검을 뽑아 앞장을 서고, 움직이라 소리를 외쳐대자 결국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래!"

"난 잘못한 거 없어!"

"미쳤나!"

죄를 지은 유저를 잡아들이는 게 아니라 유저면 전부 죽이려 든다는 걸 안 유저들이 서로 뭉쳐 반격을 하거나 성을 빠져나가기 위해 성문을 향해 내달렸지만, 병사들이 5명 10명씩 분대를 짜 전술적으로 움직이니 도망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특히 NPC 기사들의 무력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뭔가 이상해!"

"그렇지? 기사들이라 해도 제대로 베이고 찔렸는데도 비명 한 마디 없는 게 말이 돼?"

100레벨이 넘는 유저들로 이루어진 파티조차 NPC 기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기사 전원이 길태현이 준 영단을 먹었기 때문. 생명력을 통째로 바치고 언데드가 되어 얻은 힘, 큰 대가를 치른 만큼 그 힘이 가벼울 리 없었다.

100레벨이 넘는 유저들조차 기사들에겐 학살을 당하다시피 했다.

어찌어찌 성문에 도착한 자들도 결국은 성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성문 앞과 성벽 위에 이미 검과 창, 활로 완전무장을 한 병사 수십 명이 성문을 지키고 있어서였다. 마법사까지 있었다.

"미친놈들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무슨 개수작이야!"

"아아악!"

그즈음, 내성 첨탑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던 길태현이 씩 웃곤 첨탑을 내려갔다.

잠시 뒤, 부르간 성의 중심부인 광장에 도착한 길태현이 바닥에 손을 갖다 댔다. 직후 길태현의 손바닥에서 빛이 일렁였다.

그 손바닥을 중심으로 자색빛을 내는 선들이 사방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후우우웅!

언데드 필드였다.

NPC 흑마법사였다면 성 전역에 걸쳐 한 땀 한 땀 마법진 작업을 해야 했겠지만 길태현은 유저 네크로맨서, 스킬로 간단히 언데드 필드를 펼쳐낼 수 있었다.

20초도 지나지 않아 부르간 성 전역을 두르는 언데드 필드가 완성됐고, 죽은 유저들이 광장 분수대 앞에서 부활하지 못하고 언데드가 되어 일어났다.

"후후…… 하하하!"

길태현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던 영주는 자신의 꼭두각시가 됐고, 수백 명의 유저들이 한순간에 자신의 병사가 되었다.

정말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에 길태현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때 언데드 필드의 스킬 레벨이 올랐단 알림창이 뜨자 길태현의 입가에 미소가 더 커졌다.

"출진해."

광장 벤치에 앉아 텔레파시로 흑마법사의 각인을 건드려 부르간 자작을 부른 길태현이, 바로 앞으로 다가와 신복처럼 한쪽 무릎을 꿇은 부르간 자작을 향해 툭 말했다.

"예."

이를 뿌드득 갈면서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한 부르간 자작이 다시 연병장으로 돌아가 언데드가 된 유저들이 붙으며 1천이 넘게 된 대병력을 이끌고 남쪽 성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성문을 나가 남쪽으로 진군했다.

며칠 뒤, 비리마 백작령에 들어섰을 즈음엔 유저들의 수가 1,500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목에 있는 마을들에 전부 들려 그곳에 있는 유저들을 언데드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병력을 이끌고 다른 귀족의 영지를 지나려면 그 영지 영주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길태현은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병력을 계속 이동시키게 했다.

어차피 부르간 자작의 재산은 다 털어냈고, 김용후로부터 마룡의 등뼈만 빼낸다면 더는 부르간 자작에게 볼일이 없으니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비리마 성 방향으로만 가지 않으면, 굳이 이 대병력을 공격하거나 길목을 막아서진 않을 것이었다.

길태현의 생각대로, 부르간 자작의 병력이 비리마 영지를 가로지르고 있을 뿐이란 걸 안 비리마 백작은 병력을 움직이지 않고 주시만 하도록 했다.

"김용후가 목적인 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남쪽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팔켄 마을로 전령을 보내 김용후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라. 암흑마력의 기운을 내뿜는 기사들과 언데드들이 섞여 있단 것도."

"예!"

비리마 성을 나간 전령이 부르간 자작의 군대를 앞질러 팔켄 마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 * *

"언데드?"

집사 제이번의 보고를 받은 용후는 짚이는 게 있었다.

'부르간 자작이 아니야.'

진짜 머리는 말이다. 진짜 머리는 따로 있단 생각이 들었다.

병사 기사들과 함께 그저 언데드가 된 유저들만 부렸다면 부르간 자작이 네크로맨서 유저를 고용한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부르간 자작의 기사들로부터 암흑마력이 느껴진단 말에 용후는 촉을 느꼈다. 벨베른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되어 있을 거라는.

'벨베른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절대 없지만…….'

벨베른이 쓰던 마인환이 기사들에게 사용됐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사들의 외형이 변해 있단 말은 없었으니, 마인환이 아니라 변형되거나 더 업그레이드된 마인환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벨베른과 관계가 있는 자가 부르간 자작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아니면…….

'그자가 부르간 자작의 몸에 흑마법사의 각인을 새겨 넣고 그를 꼭두각시처럼 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아무리 부르간 자작이 자신에게 보복을 하기 위해 눈이 돌아가 있다 해도 기사들의 몸을 망가트리는 약을 먹였을 리는 없으니.

몇 명 정도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무려 기사 전원. 거기다 기사단장에게서도 암흑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했으니.

"흠……."

비리마 백작이 보낸 전령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줬지만 정황을 다 파악하는 건 불가능.

용후가 생각을 그쳤다. 그때 집사 제이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2,000에 가까운 대병력입니다. 홀더러스 남작이나 비리마 백작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용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빌로도 남작과의 공성전에서 승리해 흡수한 병력도 꽤 되고, 그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마석으로 만들어둔 마도 마법 인형들의 수가 250기 가까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영지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저들의 수도 상당하고, 그 유저들의 레벨은 평균 70~75.

부르간 성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에 비하면 레벨 대가 낮지만 큰 보상을 걸어 단체 퀘스트를 만들어 뿌리면 그래도 무시 못 할 병력이 되어줄 것이다.

또, 자신에겐 마력포가 있다.

'부르간 자작도, 그리고 부르간 자작의 뒤에 누가 있든 마력포의 존재는 모르고 있을 터.'

성벽을 향해 몰려드는 병력을 향해 마력포를 쏘면 마력포 한 방에 절반, 어쩌면 그 이상을 없애버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 뒤 잔당들은 NPC 병력과 마법 인형, 퀘스트로 모아들인 유저들로 쓸어버리면 되고.

'기사단장과 3서클 마법사는 내가 잡으면 돼.'

그래, 와라. 마력포를 실험해 볼 좋은 기회다. 언데드들을 몰고 오는 만큼 공성전에서 승리하면 명성도 크게 오르게 될 테고.

"퀘스트!"

용후가 퀘스트 스킬을 썼다. 눈앞에 퀘스트를 만들어내는 창이 떠올랐다. 용후가 공성전 단체 퀘스트를 만들어냈다.

-추가 보상을 넣겠습니까?

예를 누른 용후가, 병사나 유저 한 명을 잡으면 10골드, 기사는 50골드를 얻게 되는 추가 보상을 넣었다.

그리고 활약도가 가장 높은 유저에겐 300골드를 추가로 주는 보상도 걸었다.

그 직후, 용후의 영지 내에 있는 모든 유저들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등급은 S였다.

유저들이 환호했다. 높은 등급과 화끈한 추가 보상도 보상이지만 김용후와 함께 하는 퀘스트는 실패하는 법이 없기에.

"영지의 전 병력을 팔켄 마을로 모으세요. 방금 단체 퀘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못해도 500명 이상의 유저들이 모여들 겁니다. 그리고 마도 마법 인형들도 전부 사용해 공성전을 준비하세요."

"예."

제이번이 집무실을 나갔고, 용후는 창고에서 삽자루 두 개를 챙겨 들고 저택을 나가 북쪽 성벽으로 올랐다. 그리고 마력포와 마도 마법 인형 두 기를 꺼냈다.

"너희 둘은 이 마력포를 지키고 있다가 내 명령이 떨어지면 마석을 채워 넣어서 적을 향해 쏴. 마석은 미리 넣지 마. 1분 안에 쏘지 않으면 장전돼 있는 마석이 녹아 없어져 버리니까. 발사는 마력포 속을 마석으로 꽉 채워 넣은 뒤 이 부분의 마법진에 손을 대기면 하면 돼."

"예!"

마도 마법 인형 두 기가 동시에 대답했다. 용후가 아공간 가방을 열어 삽 두 자루와 블루 마석을 쏟아냈다.

와르르르르!

그린 마석으로도 쏠 수 있지만, 블루 마석을 채워 넣으면 화력이 더 증가한다. 한 발을 쏘면 10시간 뒤에 다시 장전이 되니 최대 화력으로 쏘고 싶었다.

용후가 성벽을 내려가 다시 저택으로 갔다. 집무실로 들어간 용후가 테이블 위에 블루 마석을 쏟아냈다. 그리곤 마도 마법 인형들을 더 만들기 시작했다.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뭐든 다 만들어 스킬로 만들 수 있는 같은 물건은 300개까지가 한계. 그 수를 꽉 채우기로 했다.

그 시각, 부르간 자작의 부대는 비리마 영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 * *

팔켄 마을 앞 들판.

"공격해."

길태현이 말했다.

그 즉시 부르간 자작이 옆에 있는 기사단장 골디힌에게 말했다.

골디힌이 하! 말을 몰아 도열해 있는 병력의 맨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검을 뽑으며 외쳤다.

"전 병력 공격하라!"

NPC 병사와 기사, 언데드 상태의 유저들이 함성과 괴성을 내지르며 팔켄 마을 성문과 성벽을 향해 우르르 내달렸다.

그 모습을 보며 길태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 병력이면 마을에 성벽을 좀 높게 둘렀을 뿐인 팔켄 마을을 함락시키는 건 일도 아니고, 사마환을 먹여 언데드의 힘과 마인의 힘을 둘 다 갖게 된 기사들의 힘이면 김용후를 생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죽는다 해도 어차피 팔켄 마을 안에서 부활하니 독 안에 든 쥐. 절대 도망갈 수 없다.

"돌격! 돌격하라!"

기사들이 외쳐대며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전술이고 뭐고가 필요 없었다. 카르스의 마법을 통해 본 팔켄 마을 안엔 꽤 병력이 있긴 했지만, 자신들의 병력엔 비할 바가 못 됐다.

공성전은 지키는 쪽이 훨씬 유리하지만, 병력도 2배 가까이 많은 데다 병력의 반은 죽어도 되살아나는 언데드들, 게다가 기사들도 죽지도 지치지도 않는 언데드인 데다 전투력이 3배 이상이 올라 있다.

반나절 안에 팔켄 마을의 성문은 열어 젖혀질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응?"

성벽 위에서 뭔가가 번쩍였다.

"……뭐야?"

마법이 아니었다. 마법이었다면 성문과 성벽을 향해 달려가는 병력 내에서 뭔가가 일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때, 길태현과 부르간 자작이 동시에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악 비명을 냈다.

콰쾅!

굉음과 함께 성벽 위에서 새빨간 빛줄기가 45도 각도를 그리며 흡사 광선포처럼 쏘아져 나왔다.

"어어!"

쿠콰콰콰콰콰쾅!

한순간에 블루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삼은 마광포가 돌진해오던 병력의 한가운데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광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연기만 피어올랐다.

길태현과 부르간 자작, 간신히 마광포를 피한, 하지만 한쪽 팔을 잃은 골디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뭘 쏜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