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스킬 자판기-121화 (121/153)

# 121

기적의 스킬 자판기 121화

"와……!"

왕도의 성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간 병국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탄성을 냈다.

깨지거나 삐뚤빼뚤하거나 튀어나온 부분 하나 없이 매끄럽게 닦인 대로만 해도 병국의 눈을 사로잡았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병국의 눈을 현혹시키고 유혹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병국은 멈추거나 옆으로 새는 일 없이 대로를 따라 왕궁이 있는 내성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용후로부터 받은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대상단과 귀족이 엮인 사건인 만큼 퀘스트 등급이 무려 A+. 기본 보상만 해도 대단하고, 김용후가 건 추가 보상이 100골드나 됐다.

워낙 넓어 내성 성문 앞에 도착하는 데는 거의 2시간이 걸렸다.

"부르간 성에서 온 유저 김병국이라고 합니다. 왕도 수사대에 신고를 하러 왔습니다."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 앞에 선 병국이 말했다.

왕도의 경비대는 여러 부서를 두고 있는데 수사만 전문으로 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다.

왕도 내에서 일어난 사건만이 아니라 왕국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누구든 왕도 경비대에 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도 경비대의 규모가 성이나 도시의 경비대보단 훨씬 크다 해도 인력엔 한계가 있었다.

그랬기에 신고자가 다른 영지에서 온 평민이나 유저일 경우 신고 접수가 돼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랬기에 병국은 용후가 일러준 대로 말을 이었다.

"부르간 성에 본점을 두고 있는 시켄들 상단이 장물 거래와 마약 판매, 노예 경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르간 자작이 그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

경비병 둘의 표정이 바뀌고 눈이 커졌다.

마약에 노예 경매라니!

이 유저의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이라 해도 증거 불충분으로 허탕을 치게 되면, 자신들 선에서 걸러내지 못했단 이유로 불똥이 튀게 될 터. 상단과 귀족이 연관된 일이니 그것도 아주 크게.

"증거가 있습니까?"

"예."

"보여주십시오."

병국이 인벤토리를 열어 용후에게 받은 시켄들 상단의 뒷거래 내역서와 계약서들을 경비병에게 건넸다. 경비병이 그 문서들을 받아 빠르게 읽어 내렸다.

위조된 문서일 수도 있지만, 문서들에 찍힌 직인들은 어설프게 만든 게 아니었다.

또, 종이 자체도 마나의 계약서. 마나의 계약서론 절대 위조 계약서를 만들 수 없다. 가짜 직인이라면 찍을 수가 없기 때문.

경비병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성문 감시 임무는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는데 마침 이 경비병들의 소속은 수사부.

이 증거물을 통해 시켄들 상단과 부르간 자작을 잡아들인다면 자신들에게도 크게 떨어지는 게 있을 것이다.

'병신, 이 귀한 증거물을 이렇게 덥석 주다니.'

머리가 좀 있는 유저라면 퀘스트를 받은 뒤 증거물을 넘겨 공을 세우거나 보상을 얻었을 텐데 멍청한 자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증거물이 더 있나?

"상단주와 간부들, 그리고 암시장에 들어간 자들이 전부 지하 암시장에 갇혀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자들을 전부 잡을 수 있습니다."

경비병의 얼굴이 꽃처럼 피어났다.

'하하!'

간도 크게도 마약 판매에 노예 경매까지 하는 상단의 상인들도, 부르는 게 값인 노예 경매에 참가하는 자들도 전부 한 가닥씩 하는 자들일 터, 그런 자들을 잡아들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 곳에 전부 잡아뒀다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아, 이 설계도면이 그 지하 암시장의 설계도면이군요."

"예."

암시장 설계도면엔 암시장으로 들어가는 루트까지도 그려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에게 맡기시고 이만 돌아……."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수사과로 가 증거를 전달하겠다느니 포상금을 달라느니 하는 말을 하진 않을까 경비병이 경계를 하며 병국을 봤다.

"그자들이 갇혀 있는 암시장 문은 김용후 씨 외엔 열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증거물의 확인 작업이 끝나면 먼저 부르간 성이 아니라 팔켄 마을로 가셔야 합니다."

"……?"

경비병 둘의 표정이 바뀌었다. 갑자기 생뚱맞게 이상한 말을 한다 싶어서. 절대 안 열리는 문이라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저희가 뚫고 들어가면 됩니다."

"아뇨, 그 문은 절대 안 열립니다."

경비병 둘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헛소리 말고 그만 가보란 압박.

병국이 더 말하지 않고 물러섰다.

어차피 부르간 성으로 먼저 간다 해도 그 문은 열리지 않을 테니, 결국은 김용후를 찾아 팔켄 마을로 가게 돼 있다. 그럼 김용후가 왕도 수사대와 공 또는 포상과 관련해 거래를 하게 될 테고.

뭐, 그건 어찌 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왕도 경비대가, 암시장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의 체포를 위해 용후를 찾아가면 퀘스트는 클리어가 되니.

병국이 몸을 돌려 성문 앞을 떠났고, 경비병은 최소 2계급 진급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대에 차선 수사과로 달려갔다.

절대 안 열리는 문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비운 채.

* * *

용후의 저택.

"트롤 같은 재생력을 가질 수 있단 거군."

게다가 무한재생 스킬이 1레벨일 때가 그렇단 거고, 스킬 레벨이 오르면 트롤 이상의 재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유지 시간은 3분, 하지만 유지 시간도 스킬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늘어나게 될 터.

미소 지은 용후가 스킬 자판기 방을 나가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 용후의 개인 수련장이 있었다.

그 수련장에서 무한재생 스킬의 효과를 더 확실히 파악하기로 했다.

수련실에 도착한 용후가 오러를 쓸 수 있는 마도 마법 인형 세 기를 꺼냈다. 리리스와 디나, 로이사였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해 날 공격해. 내가 쓰러질 때까지 전력으로 싸워라."

자동사냥 스킬을 쓰면서 싸우면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직접 싸운다면 리리스와 디나, 로이사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세 마도 마법 인형들이 검을 뽑아 검날에 오러 블레이드를 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용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빛의 검!"

용후가 검에 빛의 검을 둘렀다.

그리고 검술을 펼쳤다.

캉! 카강! 캉!

'강하다.'

용후가 웃었다.

적이라면 웃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특히 리리스가 이전 대련 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인공지능이다.

30분에 걸쳐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30분이 넘으면서부터 용후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세 마도 마법 인형들이 오러에 검술까지 펼치고, 20분이 지나면서부턴 협공까지 제대로 펼치자 아무리 대단한 재생력이라 해도 체력이 떨어지는 걸 막지 못했다.

그때였다.

"…….큭!"

리리스의 변칙 공격에 용후의 왼쪽 허벅지가 깊게 베였다. 이어 날아든 디나와 로이사의 공격은 막고 튕겨냈지만 또다시 리리스의 공격을 허용했다.

이번엔 옆구리.

뼈 갑옷을 입고 있었다면 상처를 전혀 입지 않았겠지만, 상당히 검이 깊게 들어와 피가 뿜어져 나오며 내장까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때, 베인 허벅지와 옆구리에 용후에게만 보이는 빛이 일렁였다. 큰 상처들인데도 상처 부위가 실시간으로 아물고 몸속에선 피까지 생겨났다.

'좋아.'

고통까지도 다 사라지자 용후가 웃었다.

재생 속도는 정말 트롤급, 거기다 몸이 가진 재생력과 달리 체력 소모가 없고, 바로 팔도 허리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떨어져 있던 체력까지 회복이 되진 않았다.

딱, 상처 부위만 재생시키는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용후가 일부로 리사에게 틈을 내줬다.

리사의 오러 블레이드가 날아들어 용후의 왼팔을 어깨 부위에서부터 절단했다.

"큭!"

푸쉬이이이익!

팔이 바닥에 떨어져 구르고, 절단면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솟구치며 쏟아졌다. 오러 블레이드가 절단면을 태우기 시작하자 용후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통증을 느끼며 휘청였다.

그걸 놓치지 않고 리리스와 로이사가 앞과 옆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러왔다.

'심장은 안 돼.'

목은 괜찮다.

그러나 트롤이라 해도 심장에 큰 데미지를 입으면 즉사를 피할 수 없다.

용후가 목으로 날아오는 오러 블레이드는 그대로 두고 심장으로 찔러 들어오는 로이사의 오러 블레이드만 빛의 검으로 쳐냈다.

캉! 촤악!

용후의 목이 잘렸다. 잘린 목이 피를 흩뿌리며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그 직후 목의 절단면에서 핏줄과 근육 다발들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솟아올라 휘감겼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빛으로 변해 용후의 몸으로 날아와 흡수됐다.

재생 속도가 더 빨라졌고 몇 초 뒤 용후의 머리가 완전히 복구되었다.

용후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고여 있는 피를 보니 머리를 복구하는 데 5초 이상 걸리진 않은 듯했다.

심장이 망가지지만 않는다면 3분 동안은 아무 제약 없이 3~5초 사이에 어떤 부위든 재생할 수 있다. 방어와 회피를 무시하고 공격만 마구 퍼붓는 전투가 가능하다. 무시무시한 스킬이었다.

"그만."

용후의 명령에, 다시 공격 자세를 잡던 마법 인형들이 오러 블레이드를 풀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마법 인형들을 인벤토리에 넣고 수련실을 나온 용후가 건축소에 저택 의뢰를 할 때 함께 해둬 거의 완공이 돼 있는 성벽으로 올랐다.

작은 마을이지만, 웬만한 귀족 성들 이상으로 높게 쌓아 올렸기에 꽤 한참 계단을 올라갔다. 다 오르자, 용후가 인벤토리에서 마력포를 꺼냈다. 그리고 마석 투입구를 열어 그 안에 그린 마석을 쏟아부었다.

쏴보려는 건 아니었다. 성능시험을 해보고 싶긴 하지만 들판에 유저들이 있고, 숲을 날려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

그저 마력포를 쏘려면 어느 정도의 마석이 들어가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다. 또, 성벽 위에서 마력포를 이동시킬 수 있는 지도.

'꽤 많이 들어가네.'

거의 저택 한 채 값이 들어갔다 봐도 될 것이다.

이어 용후가 마력포를 밀어 바퀴를 굴렸다.

드르르르륵!

"좋아."

성벽의 폭이 좁아 걱정했는데, 굴릴 수 있었다.

혹 공성전이 벌어졌을 때 마력포를 성벽 위에 놓아두면 자신이 없어도 누구든 마력포 속에 마석을 채워 넣고 성벽 어느 곳으로든 이동시켜 쏠 수 있는 것이다.

마력포를 다시 인벤토리에 넣은 용후가 마을 동쪽 문으로 갔다. 박정석의 마차를 타고 영지를 돌며 영지 내 논과 밭에 무럭무럭 자라라 스킬을 쓰기 위해서였다.

"광산 개발하고 상점 오픈은 제이번에게 맡기면 되고."

돌아오면 다시 당분간은 수련에 매진하기로 했다.

"라주 평야로 갑시다."

그곳에 영지 내 가장 큰 밀밭이 있다.

박정석의 마차가 출발했다.

* * *

"이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부르간 자작의 호통에도 길태현은 빙글빙글 웃었다.

"영주씩이나 되는 양반이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으면 안 되지."

"대답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부르간 자작이 길태현의 멱살을 쥐며 더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길태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잘 들어, 부르간. 이제부터 넌 내 부하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더는 치료를 해주지 않을 거야."

"치료? 하! 이딴 게 치료?"

몸 상태가 좋아지는 건 반나절이나 하루가 고작,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전보다 더 끔찍한 통증이 밀려든다.

이건 절대 치료가 아니다. 점점 더 빠르게 몸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놈…… 네놈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뭐 어떡할 건데? 그 통증 견딜 수 있어? 내 치료가 없으면 그 통증을 계속 느끼다 결국 죽게 되는데."

부르간은 몸을 부르르 떨며 더 입을 열지 못했다. 그 통증을, 신경이 도려내지는 듯한 통증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넌 내 명령을 어길 수 없어. 네 심장은 내 거거든. 네 기사와 마법사의 심장도."

길태현이 손가락을 딱 울렸다. 그러자 부르간 자작과 골디힌, 카르스가 동시에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비명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거나 쓰러졌다.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서였다.

"혹 다른 치료법을 찾아낸다 해도,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너희는 계속 그 통증을 느끼다 죽게 된다. 또한, 내가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기며 그 즉시 죽게 되고."

심장에 새겨 넣은 흑마법사의 각인 때문이었다.

스킬이 아닌 벨베른에게 배운 마법이기에, 완벽히 구사해내진 못해 명령대로 움직이게 하거나 평생 지속이 되진 않지만, 통증으로 길들이면 되고 한 달 정도만 지속이 되면 되었다.

그 안에 부르간 자작의 전 재산을 손에 넣고, 부르간 자작의 병력을 이용해 김용후로부터 마룡의 등뼈도 뺏을 수 있을 테니.

"사, 살려줘……!"

"멈춰…… 크으윽……."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그렇게 나와야지."

길태현이 부르간 자작의 등에 손을 대고 심장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암흑마력을 잠재웠다.

이어 골디힌과 카르스의 통증도 없앴다.

"일단 가진 전 재산을 내게 넘겨."

순순히 다 넘기진 않겠지만, 이 고통을 반복해서 느끼게 하면 내놓지 않곤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단 1골드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쓰면 된다.

과연 영주와 영주의 최측근들. 금화도 금화지만 마석과 고가의 물건들도 잔뜩 나왔다.

그러나 다 뱉었을 리 만무. 길태현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세 사람이 다시 비명을 터뜨리며 바닥을 기었다. 다시 길태현이 암흑마력을 잠재우자 이본엔 셋이 더 많은 걸 꺼내 놨다.

"하하! 봐, 더 있잖아."

신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길태현이 한참을 더 웃음을 터뜨렸다.

"재산은 차차 뺏는 걸로 하고, 지금부턴 영지 전쟁을 준비한다. 영지의 전 병력을 모아라. 팔켄 마을로 가서 김용후를 치겠다. 그리고 골디힌. 이걸 먹어라. 그리고 기사들에게도 전부 먹여라."

길태현이 골디힌 앞에 검고 동그란 환을 쏟아냈다. 벨베른의 마인환과 네크로맨서의 스킬을 조합해 만든, 산 채로 사람을 언데드로 만드는 약이었다.

지성과 검술, 전투 경험을 그대로 유지한 언데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골디힌과 기사들의 전투력을 두 배, 많게는 3배까지도 올려줄 것이다. 물론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방법은 없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