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스킬 자판기-120화 (120/153)

# 120

기적의 스킬 자판기 120화

부르간 자작의 침실.

"완치가 된다 장담할 수 있나?"

두꺼운 이불을 다리에 덮고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댄 자세로 부르간 자작이 길태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눈매는 매서웠지만 얼굴은 창백하고 수척했다. 상처들이 다시 벌어진 뒤 주교의 힐을 매일 받았지만 역시 완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 주교의 말대로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정말…… 정말 완치할 수 있다고?"

부르간 자작은 길태현의 말을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주교도 고치지 못하는 상처고, 김용후의 스킬로도 완치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제로도 보이지 않는 유저의 완치가 된단 말을 믿을 수 있을 리가.

그러나 길태현의 얼굴은 자신만만했다.

"그 상처들은, 암흑마력을 이빨과 손톱에 독처럼 깃들게 해 쓰는 언데드들의 공격을 받아 그렇게 된 것이죠? 틀립니까? 제 치료법을 쓰면 완치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부르간 자작과 그를 호위하기 위해 함께 침실에 있던 골디힌과 카르스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암흑마력에 의한 상처란 건 영지 곳곳에 붙인 패에 적어뒀지만, 언데드들에 대한 내용까지 적진 않았다.

그런데 길태현이 언데드들의 이빨과 손톱에 암흑마력이 독처럼 스며들었단 말까지 하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장담한 대로 날 완치시키지 못한다면, 넌 평생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한 번 죽이는 걸로 끝내지 않고 죽지 못하게 만들어 지하 감옥에 평생 가둬두겠단 말.

그러나 그럼에도 길태현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그 모습에 부르간 자작은 미간을 좁혔지만 더욱 기대감을 느꼈다.

"좋다. 내 마법사를 먼저 치료해봐라. 완치시킨다면 약속한 대로 치료비로 3만 골드를 주겠다."

'하…….'

이번에도 또 자신…….

카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항의를 해봐야 득 될 게 하나 없기에 순순히 부르간 자작의 지시에 따랐다.

'치료를 해주려는 게 어딘가.'

영주의 마법사로 일하며 큰돈을 벌었지만 3만 골드의 거금은 갖고 있지 않다.

길태현이 카르스에게 다가갔다. 카르스가 로브를 거둬 환부를 보였다.

"그럼 치료하겠습니다."

응?

부르간 자작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당연히 퀘스트를 만들어 달라 말할 줄 알았는데 마나의 계약서조차 요구하지 않기 때문.

퀘스트를 만들지 않고 마나의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좋다.

자신과 골디힌에 카르스까지 치료하면 9만 골드가 된다. 그런데 퀘스트나 마나의 계약서로 제약이 걸리지 않으면 그 9만 골드를 다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유를 만들어서.

하지만, 바보도 아니고 퀘스트나 마나의 계약서를 요구하지 않는 게 영 수상했다.

'귀족이고 영주인 자신이 약속한 걸 어기진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 속이기 위해서였다. 퀘스트를 만들면 완치를 했을 시에만 퀘스트 클리어 창이 부르간 자작의 눈앞에 뜬다.

그러니 완치가 된 것처럼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마나의 계약서도 같은 이유.

"치료를 시작해라."

수상했지만, 결국은 부르간 자작이 치료를 지시했다.

김용후에게 뜯긴 돈이 현금으로 20만 골드. 그런데 치료비로 또 9만 골드를 쓴다면 이건 진짜 타격이 너무 크다.

아무리 정말 완치가 된다 해도.

'한 푼도 안 줘야지.'

3만 골드를 주겠단 약속을 어겨도, 이 유저가 클랜 소속의 유저라 해도 영주인 자신을 상대로 뭘 어쩌진 못할 것이다.

혹 카르스가 완치는커녕 몸이 더 악화된다면 치료를 안 받으면 그만.

퀘스트를 주지 않아도 마나의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자신이 손해 볼 건 전혀 없다.

길태현이 카르스의 팔에 있는 환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곤 암흑마력을 카르스의 몸속으로 흘려보냈다.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면서 마력이 암흑마력으로 바뀌었기에 길태현의 서클링 속엔 많은 양의 암흑마력이 돌고 있었고, 서클링도 4개나 되기에 카르스의 몸속을 암흑마력으로 꽉 채우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저 스킬만 쓰는 게 아니라 벨베른으로부터 마법을 배웠기에 스킬의 도움 없이도 마력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마법사인 카르스는 자신의 몸속으로 암흑마력이 들어오고 있단 걸 감지했겠지만, 암흑마력에 오염이 돼 서클링이 작동을 멈춰버린 상태.

뭔가가 몸속으로 들어오고 있단 것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자 이제 포션을 마시세요."

길태현이 시킨 대로 카르스가 상급 포션을 마셨다.

"어?!"

아무리 힐을 받아도 완전히 재생되진 않던 상처들이 완전히 달라붙었다. 다른 상처들도 다 그렇게 됐다. 무기력증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내 카르스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전 김용후가 치료를 했을 때와 몸의 변화가 너무도 비슷해서였다.

그러나 완전히 달랐다.

용후는 완치까진 하지 못했던 것뿐이지 분명 치료가 이루어졌고, 지금 길태현은 그저 몸속을 암흑마력으로 꽉 채워 그 힘으로 잠시 상처를 아물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흑마법사가 아닌 자가 암흑마력을 몸에 가득 담고 있다면 멀쩡할 리 만무.

지금 당장은 치료가 된 거 같아도 암흑마력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나면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길태현은 카르스의 심장에 흑마법사의 각인도 새겼다. 끝까지 새기진 못했지만, 4~5번 정도 더 하면 완전히 새겨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완치가 된 것은 아닙니다. 4~5번 정도의 치료가 더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카르스가 놀라워하며 길태현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부르간 자작이 물었다.

"정말 치료가 됐나?"

"예. 일단…… 모든 상처가 아물고 무기력증도 사라졌습니다."

"그래?"

부르간 자작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 자신도 치료해 달라 하고 싶은데 여전히 길태현이 수상쩍게 느껴졌다.

며칠 더 두고 보다가 카르스의 몸이 다시 나빠지지 않으면 치료를 하게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러나…….

"영주님과 기사님도 지금 치료를 받으셔야 됩니다. 더 늦어지면 제 치료법으로도 치료가 되지 않게 될 겁니다."

당연히 거짓말. 길태현이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없다.

"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와 골디힌도 치료해라."

오늘 치료를 받지 않으면 완치가 안 된다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작 유저 따위가 미치지 않고서야 영주인 자신을 상대로 수작질을 부리진 않겠지.

카르스의 안색이 확 비꼈으니 카르스의 몸에 치료가 이루어진 건 틀림없어 보였다.

"그럼 치료하겠습니다."

뱀처럼 혀를 날름거려 입술을 핥은 길태현이 기사 골디힌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대고 암흑마력을 왕창 흘려 넣었다.

부르간 자작도 길태현에게 몸을 맡겼다. 심장에 흑마법사의 각인이 새겨지고 있단 건 까맣게 모른 채.

* * *

팔켄 마을에 도착한 용후는 박정석의 마차에서 내려 드워프들을 데리고 먼저 용후 대장간으로 갔다.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자 냉기가 돌고 곳곳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버거튼이 도망간 뒤 다른 대장장이를 아직 구하지 못해 대장간을 완전히 비워뒀기 때문.

제이번에게 대장장이를 구하란 지시를 내릴 수도 있었지만, 제이번은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팔켄 마을 초보 유저들의 수리를 해줄 대장장이를 구할 걱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 대장간을 여러분께 드리겠습니다.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이곳에서 뭐든 만드세요. 그리고 원하는 철이 있으면 제 집사인 제이번에게 말하세요. 구해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세 드워프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드워프들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는 철을 두드리고 이것저것을 만드는 때다. 그걸 못하면 드워프들은 인생에서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병장기와 물건들의 소유권은 이 셋과 고용 계약을 맺은 자신에게 온다.

소로브 산맥 드워프들에게 사들이는 병장기와 함께 무기점이나 방어구점에서 팔 생각.

물론, 월급과 별개로 드워프들이 만든 모든 물건에 정당한 값을 치러줄 생각이었다.

"대신 이 대장간으로 유저들이 찾아와 수리를 맡기면 수리를 부탁드립니다. 모든 유저들의 수리를 다 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레벨이 20레벨 이하인 유저들의 수리만 해주세요."

레벨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드워프들도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어 기운을 잘 느낄 수 있다.

20레벨대 유저의 기운이 어떤지를 충분히 느끼게 하면, 20레벨 이하와 이상을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용후는 팔켄 마을에서 지내며 활동하는 초보 유저들에겐 수리를 제공해줘야 한단 책임을 느꼈다. 그래서였다.

"알겠습니다."

"뭐든 시켜 주십시오."

"다 하겠습니다."

호의적이다 못해 사모라도 하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보며 말하는 드워프들의 모습에 용후가 빙긋 웃곤 화제를 돌렸다.

"잠은 제 저택에서 자면 되고, 식사도 원하시면 저택 안에서 하세요. 물론 광장에 있는 식당이나 주점에서 외식을 해도 되고요. 수리도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필요 없이 하고 싶을 때 하시면 됩니다."

20레벨 이하 유저들의 수리만 한다면 그렇게 많은 손님이 있진 않을 테니.

"그럼 제 저택으로 가시죠."

그런데 그때였다.

"저기…… 장사 다시 하시는 건가요?"

한 유저가 대장간 문 앞으로 다가왔다.

"예, 합니다."

용후 대장간이 다시 문을 열지 않았다면, 광장에 있는 유저들과 직거래를 해 새로 검을 사야만 했기에 유저는 살았다 생각하며 활짝 웃었다.

"근데 제가 아니라 앞으론 여기 드워프 분들이 수리를 해드릴 겁니다."

"예?"

옆으로 고개를 돌린 유저의 눈이 커졌다.

그저 좀 키가 작고 덩치는 큰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과 비슷한 외모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책 속 그림으로 보던 그 모습이었다.

"드워프가 왜 여기……?"

"오늘부터 계속 팔켄 마을에 지내며 수리를 해드릴 겁니다."

어떻게 드워프가 팔켄 마을로 와 자신의 대장간에서 일을 하게 됐는지를 다 설명할 필요는 없기에 용후는 그렇게만 말했고, 유저도 눈치를 느끼곤 더 캐묻지 않았다.

"그럼 검하고 방패, 그리고 견갑 수리 부탁드릴게요."

세 드워프가 용후를 볼 때와 달리 장비를 벗어 테이블 위에 놓는 유저를 차갑다 못해 화가 난 듯한 얼굴로 봤지만, 그래도 장비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용후의 말은 철저히 따를 생각이었다.

세 드워프들이 안쪽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카앙캉카앙! 소리는 엄청 큰데 희한하게 맑게 울리는 망치질 소리가 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워프들이 돌아와 수리가 끝난 장비들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다 끝났소."

"나도."

"나도."

벌써? 과연 드워프! 눈으로만 봐도 완벽히 수리가 됐단 걸 알 수 있었다.

상태창을 확인한 유저의 입에서 더 크게 탄성이 나왔다. 김용후가 수리할 때처럼 옵션이 붙진 않았지만 세 장비 다 내구력이 1도 깎여 있지 않았고, 수리도 완벽했다.

"감사합니다. 아, 가격을 안 물어보고 맡겼네…… 얼마죠?"

무려 드워프가 한 수리, 만만치 않은 값을 부를 거란 생각에 유저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1동화입니다."

용후가 말했다.

어떤 장비의 수리를 맡기든 예전 자신이 그랬든 1동화만 받기로 한 것.

"그럼 다 합쳐도 3동화! 와!"

말도 안 되게 쌌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장비를 차고 3동화를 건넨 유저가 활짝 웃으며 용후와 세 드워프들에게 인사를 하곤 대장간을 나갔다.

멀어져가는 유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드워프 셋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아무리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잘 되겠군.'

더 이상 대장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택으로 가시죠."

용후가 앞장을 섰고 세 드워프들이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들며 용후의 뒤를 따랐다.

저택이 가까워지자 용후는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푸짐한 식사도 식사지만, 스킬 자판기에서 또 스킬을 살 생각에.

부르간 성에서 많은 명성과 돈을 얻었으니, 버튼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 * *

드워프들의 방을 배정해주고 함께 식사까지 끝낸 용후가 스킬 자판기가 있는 방으로 갔다.

문에 자물쇠는 잠겨 있지 않았다.

호기심에 하녀와 하인들이 문을 밀거나 당겨 봐도 벽처럼 꿈쩍도 하지 않던 문이 너무도 가볍게 뒤로 밀려나며 용후를 받아들였다.

스킬 자판기는 빛을 내고 있었고, 그 앞에는 마도 마법 인형들이 그대로 서 있었다.

용후가 스킬 자판기 앞으로 가자, 스킬 자판기의 금화 투입구가 저절로 열렸다.

"역시 신성술 버튼까진 무리구나……."

돈은 충분했다. 그러나 명성은 부족했다. 그러나 다른 스킬 버튼들은 다 누를 수 있었다.

"육체 스킬을 눌러볼까."

당장 새로운 스킬이 더 필요하진 않다. 그랬기에 용후는 지금껏 눌러본 적이 없는 육체 스킬 버튼을 눌러보기로 했다.

몸과 관련된 스킬이란 것만 알 뿐 그 외엔 전혀 감이 오지 않지만, 사기적인 효과를 갖고 있을 테고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스킬이 나올 거란 생각엔 한 점 의심이 없었다.

덜컹덜컹!

배출구로 캡슐이 떨어졌고, 용후가 상체를 숙여 캡슐을 꺼냈다. 그리고 돌렸다.

빛이 터져 나오며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무한재생 스킬을 얻었습니다

상태창을 열어보니 패시브가 아닌 액티브 스킬. 용후가 상태창의 내용을 더 읽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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