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기적의 스킬 자판기 119화
"날 잡는 퀘스트를 왜 만든 겁니까?"
교회. 부르간 자작의 치료실로 들어간 용후가 의자에 앉자마자 한 말이었다. 부르간 자작의 얼굴이 붉어지고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
"그것이…… 영주로서 영주민들의 애로사항을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단의 영업을 방해하는 유저가 있다 하여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상단주 롤브가 말한 김용후가 비리마의 영웅인 김용후 님인 줄 모르고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서둘러 퀘스트를 해제시킨 겁니다."
어찌어찌 말이 되게 말을 하긴 했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설명에 용후는 픽 웃었다.
어차피 부르간 자작이 시켄들 상단과 붙어먹었단 증거물도 얻었겠다, 치료비만 받아가면 그만이니.
"그랬군요. 저는 혹 자작님께서 시켄들 상단의 뒤를 봐주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용후가 대꾸 없이 빙긋 웃자, 부르간 자작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절대 아닙니다. 그저 전 제 성안에서 상단을 운영하는 상인들을 돕고자 그리 했을 뿐입니다. ……미리 잘 알아보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제가 경솔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유저였다 해도 다짜고짜 그런 퀘스트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인데,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부르간 성에 머물고 있는 것은 시켄들 상단이 마약 거래와 노예 경매를 하고 있단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시켄들 상단이 말인가요? 그런 기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부르간 자작의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부르간 자작님께 말씀을 미리 드리지 못한 건 혹시라도 제가 시켄들 상단을 조사하고 있단 사실이 시켄들 상단의 귀에 들어가선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군요…… 증거물을 찾아내셨습니까?"
"예."
"아아……."
부르간 자작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러곤 용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용후의 표정은 무표정.
그 증거물 속에 자신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읽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일단은 치료가 먼저다.'
그 뒤에 김용후가 제 영지로 돌아가기 전에 잡으면 된다. 그리고 지하 감옥에 가둬 죽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면 김용후를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게 가능하다.
그럼 모든 게 해결된다. 계속 시켄들 상단이 가져오는 꿀을 빨 수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으윽!"
부르간 자작이 손으로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상체를 숙이고 신음을 흘렸다.
얼마 전에 주교의 힐을 받은 터라 통증은 거의 없었지만 화제를 돌려버리기 위해서였다.
"괜찮으십니까?"
"통증이 많이 심하군요."
용후가 픽 웃었다. 속이 뻔히 보였기에. 벨베른 토벌 퀘스트 당시 상처에 암흑마력이 스며든 부상자들을 많이 봤다.
그랬기에 힐을 받고 나면 통증은 거의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시 속으로 웃은 용후가 부르간 자작의 행동에 맞장구를 쳐줬다.
"빨리 치료를 하는 게 좋겠군요."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완치가 된다는 장담은 못 합니다."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럼 치료에 앞서 치료비 이야기부터 마무리를 지으시죠."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혹 홀더러스 남작에게 했듯 땅을 달라 하진 않을까 부르간 자작이 초조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용후를 봤다.
"10만 골드만 받겠습니다."
부르간 자작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1만이 아니라…… 10만 말입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완치가 된다면야……."
"완치가 된단 보장은 없습니다. 최선은 다하겠습니다."
"……."
"제 생명력과 심력을 크게 사용해서 하는 치료입니다. 완치가 되든 안 되는 치료 스킬을 쓰면 그리됩니다. 제가 자작님과 무슨 사이라고 손해를 볼 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맞는 말. 고뇌에 빠져든 부르간 자작의 눈이 이리저리 돌아갔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주교의 힐로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교회를 통해선 치료할 수 없단 뜻.
잘 찾아보면 치료할 수 있는 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주교는 점점 기력을 잃다 결국은 죽게 될 거라 했다. 치료사를 찾아다닐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럼, 상처가 저보다 덜하다면 가격이 좀 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군요."
부르간 자작의 생각을 읽은 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마법사의 치료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저보다 훨씬 상처가 적습니다. 얼마 정도에 되겠습니까?"
용후가 마법사 카르스의 상처를 살폈다.
"5만 골드만 받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영지를 가진 귀족이라 해도 귀족에게도 5만 골드도 속이 쓰라릴 정도로 큰 지출, 그러나 10만 골드가 워낙 크다 보니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혹 카르스가 완치되지 않는다면 5만 골드만 날리게 되는 거고, 또 김용후가 치료가 아니라 상처를 더 악화시키는 수작을 부려올 수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했다.
"마나의 계약서를 부탁드립니다."
퀘스트를 만들면 더 간단하고 확실하지만, 퀘스트는 모호한 클리어 조건을 붙이면 생성되지 않는다.
치료 관련 퀘스트의 경우, 치료약을 구해오거나 완치가 클리어 조건이 돼야만 만들 수 있었다.
영주인만큼 부르간 자작은 아공간에 마나의 계약서를 갖고 있었고, 바로 꺼내 작성했다.
완치가 되든 안 되든 치료가 이루어졌다면 5만 골드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적어.
말도 안 되게 김용후 위주의 계약서지만 그가 철저히 갑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 작성을 끝내자마자 부르간 자작이 아공간에서 5만 골드를 꺼내 용후에게 건넸다.
-5만 골드를 얻었습니다
씩 웃은 용후가 마법사 카르스 앞으로 갔다.
"그럼 치료하겠습니다."
카르스의 어깨에 손을 올린 용후가 마음속으로 쓰다듬으면 다 고쳐 스킬을 썼다. 카르스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뒤,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몇 초 뒤엔 상처들이 완전히 달라붙고 무기력증도 사라져갔다.
"와, 완치됐습니다! 검은 피가 나오지 않습니다!"
카르스의 말에 부르간 자작과 골디힌이 눈을 크게 뜨고 입까지 벌렸다.
그러나 완치가 아니었다. 그저 호전. 완치가 된 것처럼 보일 뿐, 몸속엔 아직 암흑마력이 남아 있었다. 머지않아 그 암흑마력에 의해 상처들이 다시 벌어지고 검은 피가 흘러나올 것이다.
-쓰다듬으면 다 고쳐 스킬이 8LV이 됩니다
"제 기사 골디힌과 제 치료도 부탁드립니다."
부르간 자작이 아공간에서 마나의 계약서와 금화 주머니를 더 꺼냈다. 용후가 금화 주머니들을 인벤토리에 담으며 씩 웃었다.
"그러죠."
* * *
이틀 뒤, 부르간 자작의 집무실.
"아무래도, 성에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기사단장 골디힌의 보고에 부르간 자작이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핏대를 세워가며 온갖 욕을 다 뱉었다.
"발견한 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돼!"
김용후를 부르기 전, 부르간 자작은 성벽 위와 성 바깥에도 병력을 배치시켜 놨다.
그리고 용후가 소로브 산맥에 갔다 오는 동안 용병들까지 고용해 성안 곳곳에 3~4명씩 팀을 짜 배치도 시켰다. 그런데 김용후를 잡긴커녕 본 자도 없다니 황당했다.
"죄송합니다……."
골디힌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할까요?"
골디힌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성안을 더 찾아봐야 의미가 없단 뜻.
'제기랄…….'
김용후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하나 큰 문제가 있었다. 지하 암시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열리지 않고 있었다.
그 탓에 시켄들 상단의 간부들과 상단주 롤브, 암시장에 온 손님들까지 전부 암시장 안에 갇힌 상태.
'김용후가 가둬둔 게 틀림없어…….'
그들을 그 안에 전부 가둔 이유는 그들을 왕도의 경비대에 넘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즉 그들 전부를 잡아넣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물을 갖고 있단 뜻.
암시장에 온 손님들은 자신과 시켄들 상단의 관계를 모른다. 그러나 상단주 롤브와 간부들은 알고 있다.
그들을 심문한다면 자신의 이름이 나오게 될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자신이 시켄들 상단의 뒤를 봐줬단 증거가 될 수 있는 뭔가를 수사관에서 내놓을 수도 있고.
그러니 상단주 롤브와 간부들이 잡히게 해선 안 된다.
"문도 아직인가?"
"……그렇습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해결하는 게 하나도 없잖아! 네가 그러고도 기사단장이야?! 무능력한 머저리 새끼."
골디힌의 고개가 더 숙여졌다. 그러나 억울했다. 누가 온다 해도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큭!"
갑자기 부르간 자작이 얼굴을 팍 일그러뜨리며 신음을 흘리곤 상체를 푹 숙였다.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아흐으윽……."
그런 소리를 내며 부르간 자작이 급기야 의자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듯 되며 바닥에 쓰러졌다.
"영주님!"
옷 곳곳이 검게 물드는 걸 본 골디힌이 부르간 자작에게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골디힌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언데드들에게 당했던 상처들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몸 상태도 영 이상했다. 옆구리에서 찌릿한 통증을 느낀 골디힌의 얼굴이 굳어졌다. 갑옷 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출혈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당했다…… 당했어! 이런 사기꾼 새끼!"
간신히 상체를 반쯤 일으켜 세운 부르간 자작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분노심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김용후에게 치료비로 준 돈이 얼마인가. 골디힌과 카르스의 치료비까지 무려 20만 골드! 100골드만 돼도 귀족들에게도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무려 20만 골드! 그런데 그런 돈을 냈는데도 완치가 된 게 아니라니!
그러나 김용후는 이미 성을 떠나버린 상태. 김용후의 성으로 찾아간다 해도 김용후가 또 치료를 위해 부르간 성으로 와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 해준다 해도 문제다. 또 20만 골드를, 아니 그 사악한 놈이라면 이번엔 더 큰 돈을 부를 것이다.
"다른, 제대로 된 치료사를 찾아내! 영지 곳곳에 날 완치시킨 자에게 3만 골드를 준단 패를 붙이고 다른 영지로도 사람들을 보내! 서둘러!"
"예!"
악에 받친 부르간 자작의 외침에 골디힌이 얼른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달려나갔다.
* * *
용후가 스모크 스킬을 사용해 부르간 성을 빠져나간 다음 날 오후, 유저 길태현이 부르간 성에 도착했다. 목적은 용후에게서 마룡의 등뼈를 빼앗는 것이었다.
벨베른의 재단 잔해 속에도, 지하 비밀 공간 어디에도 마룡의 등뼈가 없었기에 길태현은 마룡의 등뼈를 김용후가 가져갔다 생각했다.
그래서 용후를 쫓았고, 최근 부르간 성에 나타났단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찾기만 하면 김용후를 잡을 자신이 있었다. 3차 전직 퀘스트를 끝내고 네크로맨서로 전직을 했기에.
그러나 용후는 부르간 성을 완전히 떠났고, 마룡의 등뼈는 드워프 대장장이에 의해 뼈갑옷이 된 상태.
뼈갑옷이 된 마룡의 등뼈를 악마 소환의 재단에 쓸 순 없었다.
그때 길태현의 눈에 광장 게시판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혹 김용후와 관련된 글이 게시돼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길태현이 게시판으로 갔다.
그리고 보게 된 건 영주가 치료사를 찾는단 내용이었다.
'암흑마력에 당한 거군.'
증상도 상세히 적혀 있었기에 암흑마력에 대해 알고 있는 길태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길태현의 입가에 씩 미소가 지어졌다.
김용후로부터 마룡의 등뼈만 뺏는다고 상급 악마를 소환하는 재단을 완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외에도 많은, 값비싼 재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니 많은 돈이 필요하다.
또, 돈이 넘친다면 꼭 김용후로부터 마룡의 등뼈를 뺐지 않고, 돈으로 사는 방법도 있다. 물론 그것도 쉽진 않겠지만.
암흑마력에 당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얕은 상처라면 고위 사제의 힐로 치료가 되기도 하지만, 깊게 배이거나 물어뜯기거나 꿰뚫린 상처는 절대 완치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잠시 상태를 호전시킬 방법은 있다. 암흑마력을 더 넣으면 된다. 그럼 한동안 상처들이 아물고 무기력증이 사라진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상처가 벌어지면서 상태가 더 나빠진다.
'그때부턴 내 꼭두각시가 되는 거지.'
고통을 견디지 못하게 될 테고, 자신의 암흑마력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마약처럼. 그땐 자신이 하란 대로 다 할 수밖에 없게 될 테고.
"좋아. 돈줄이 생겼다."
길태현이 내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