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기적의 스킬 자판기 115화
다음 날.
정오가 되자 용후는 박정석의 마차에 타 부르간 성으로 갔다.
노예 경매장의 위치를 불게 했던 상인으로부터 들은 경매 시작 시간은 오늘 정오.
지금쯤 경매가 시작됐을 것이다. 그러니 성안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해도 경매를 중단시키긴 어려울 터다.
중단시킨다 해도, 한두 시간 안에 경매장을 경매가 없었던 것처럼 정리할 순 없을 테고.
부르간 성의 성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용후가 마차를 멈춰 서게 했다.
"성이 뒤집힐 테니 여기서 기다리세요."
"알겠습니다."
성에서 100m도 안 되는 거리. 전부 저렙 몬스터들이고, 개체 수도 적다.
혹 몬스터가 박정석을 공격하려 한다 해도 마차를 달리면 이 들판에 있는 몬스터들을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마차에서 내린 용후가 부르간 성을 향해 달렸다.
혼자서 성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용후를 수상하게 여긴 성문 앞의 경비병 둘이 자세를 바꿔 잡았다.
직후 용후가 인벤토리에서 리볼버(+4)를 꺼내 들었다. 다시 경비병들의 자세가 바뀌었다.
아주 방어적으로. 정규병들이지만 레벨이 100이 넘진 않는 자들, 권총에 겁을 먹는 건 당연했다. 또, 김용후란 생각도 들어서였다.
"머, 멈춰라!"
"누구냐!"
용후는 멈추지 않았다. 리볼버(+4)를 들어 앞으로 겨눴다. 쏘면 백 프로 맞출 수 있는 거리가 됐지만, 용후는 방아쇠까지 당기진 않았다.
부르간 자작은 높은 악명을 갖고 있겠지만, 영주가 악명을 갖고 있다 해서 그 휘하의 부하들이 전부 악명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물론 악명을 갖고 있지 않다 해도 공격을 해온다면 가차 없이 쏠 생각이지만.
"머, 멈춰!"
"어어! 어어어!"
리볼버(+4)가 가슴으로 겨눠지자 결국 한 경비병이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또 다른 경비병도 옆으로 물러섰다.
무기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온다는 건 4번의 강화가 됐단 뜻! 그냥 권총도 막거나 피할 자신이 없는데 그런 권총이 가슴으로 겨눠졌는데 앞을 막아서는 건 개죽음이다.
또, 50m 내로 거리가 좁혀졌음에도 방아쇠를 당기고 있지 않단 건 앞을 막지 않으면 자신들을 쏠 생각이 없단 뜻이었다.
결국 경비병 둘이 완전히 물러서 버렸고, 용후는 경비병들을 지나쳐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김용후다!"
"맞아, 김용후야! 총을 가졌어!"
"잡으면 1천 골드야!"
"아서라, 1천 골드가 아니라 공격을 해보기도 전에 저 총에 맞아 죽을걸."
"그리고 영주가 김용후를 왜 잡으려 하는지도 모르잖아. 영웅 소리까지 듣는 저 사람 잡았다간 악명 엄청 오를걸."
그런 대화를 나누며 그저 달려가는 용후를 바라만 보는 유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용후를 쫓는 자들도 있었다.
100레벨에 근접한 고렙 유저들에게도 1천 골드는 엄청 큰돈이었다.
또, 김용후가 워낙 거물인 만큼 부르간 자작이 만든 단체 퀘스트엔 S등급이 붙었고, 그런 만큼 기본 보상들도 엄청났다.
"파이어랜스!"
"윈드웨이브!"
"슬로우!"
용후를 쫓던 마법사 유저들이 용후와 거리가 좁혀지자 일제히 마법을 썼다.
용후가 꼬리가 붙기 시작했단 걸 눈치채고 일부로 속도를 줄인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파이어랜스가 화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며 가장 먼저 용후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쩡!
화르르륵!
"어?!"
파이어랜스가 두 동강이 나 허공에서 폭발해 흩어졌다. 불꽃이 다 사라지자 파이어랜스를 날린 마법사의 눈에 보인 건 새하얀 빛에 휩싸여 있는 검이었다.
용후가 빛의 검으로 파이어랜스를 반으로 잘라버린 것이었다.
자동사냥 상태가 아니었지만, 용후의 스탯 수치는 110레벨 이상, 총알처럼 빠르지 않고 총알처럼 작지 않다면 충분히 눈으로 보고 베 버리는 게 가능했다.
용후가 빛의 검을 더 빠르게 연달아 휘둘렀다. 빛의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허공에서 빛이 번쩍번쩍 일며 폭풍 같은 바람들이 사방으로 훅훅 흩어졌다.
윈드 웨이브는 수십 개의 바람의 칼날을 쏘아내는 마법, 그 바람의 칼날들까지 눈으로 보고 베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오러 블레이드?!"
"레벨이 100이 넘는단 거야?!"
"디버프가 안 걸려!"
놀라운 건 더 있었다.
아무리 마법을 베 정타를 피했다 해도 파이어랜스가 터지며 생겨난 불꽃이 김용후의 팔을 휘감았고, 바람의 칼날도 잘리자마자 바람으로 변해 흩어진 게 아니라 몇 초간 날카로운 형태를 유지하며 용후의 몸 곳곳을 얇게나마 베며 지나갔다. 그랬는데도 김용후는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은 듯했다.
심지어 뼈갑옷도 그을음조차 없이 너무도 멀쩡했다.
투앙!
"……컥!"
김용후를 향해 달려가던 기사 전직자로 보이는 유저가 이마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곤 움직이지 않았다. 즉사였다. 저게 그 강화 권총이구나! 유저들이 탄성을 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220 오릅니다
총성이 한 번 울릴 때마다 김용후를 잡겠다고 달려가던 유저들이 허무할 정도로 픽픽 쓰러져갔다.
두 명이 동시에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130 오릅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350 오릅니다
그때, 사격을 멈춘 김용후가 탄창을 열어 탄피를 쏟아내곤 여유로운 동작으로 총알을 채워 넣었다.
김용후를 잡겠다 모여든 자들은 50여 명, 그것도 사방에서 모여들었기에 김용후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그 중엔 100레벨이 넘는 자들도 꽤 보였다. 그러나 한 발만 맞아도 중무장을 하고 있는 자들도 즉사, 다 같이 달려들면 잡을 수 있단 생각을 하면서도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사이 김용후는 총알을 다 채우고 장전까지 끝냈다.
"어어! 쏘, 쏘지 마! 왜 나야!"
투앙! 등을 돌려 도망가던 흑갑옷 유저가 앞으로 쓰러져 그대로 늘어졌다.
동시에 김용후가 뒤로 빙글 돌았다. 그리곤 방아쇠를 당겼다. 대쉬 스킬을 썼는지, 빨리 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쇄도하던 유저의 얼굴이 터지며 앞으로 쓰러져 바닥을 우당탕 굴렀다.
그때였다.
"파이어캐논!"
근처 건물 옥상에서 투석기처럼 거대한 화염구가 일직선으로 용후를 향해 날아갔다. 무려 4서클 마법! 이 일대가 불바다로 변할 것이다.
"야 이 미친놈아!"
"사람들 있는 거 안 보여?!"
"그래도 김용후는 잡을 수 있어!"
파이어캐논이 터지며 생겨난 불꽃에 휩싸이기만 해도 100레벨이 넘는 유저라 해도 몸이 줄줄 녹아내린다.
그러니 정면으로 맞는다면 절대 버틸 수가 없었다. 혹, 목숨이 붙어 있다 해도 전투 불능 상태가 될 터.
파이어캐논을 쏜 마법사 유저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1천 골드는 내 거다! 그런데…….
'웃어?'
김용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본 한 유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직후, 김용후가 새하얀 오러 블레이드를 파이어캐논을 향해 휘둘렀다.
콰아앙!
화르르륵!
고막이 찢길 것 같은 굉음이 터지며 화악 퍼진 불꽃이 김용후를 삼키고 주변에 있던 유저들까지 해일처럼 휩쓸고 휘감아 불기둥처럼 치솟아 올랐다.
유저들이 불꽃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댔다. 오러 블레이드에 베여 터진 탓인지 원래 화력보단 좀 약했지만 그래도 바로 앞에서 파이어캐논이 터졌으니 김용후는 최소 전투 불능에 빠졌을 터!
투아앙!
"커헉!"
건물 옥상에서 파이어캐논을 쐈던 마법사가 1층 처마로 떨어져 처마를 깨부수곤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570 오릅니다
"허어!"
"사, 살아 있다!"
"뭐야 저놈 대체……! 완전 괴물이네……."
아직 사라지지 않은 불꽃 속에서 전혀 그을리지 않은 새하얀 뼈갑옷을 입은 자가 걸어 나왔다.
용후였다. 파이어캐논은 누구든 두려워하는 강력한 마법이지만, 아직 스킬 레벨이 3레벨에 불과했기에 마룡의 등뼈로 만든 뼈갑옷의 항마력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용후가 불꽃 속에서 완전히 나왔다. 까맣게 타죽어 있는 유저들의 시체만 보일 뿐, 두 발로 서 있는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부 도망간 것이다.
용후가 인벤토리에서 리리스를 꺼냈다.
"아이템 다 줍고 따라와."
고렙 유저들이 활동하는 성인 만큼 고스펙으로 보이는 드랍템이 많이 보였다.
리리스가 용후에게 받은 아공간에 드랍템을 줍기 시작했고, 용후는 다시 내성 방향으로 달렸다.
* * *
용후는 유저들만 잡았다. 공격해 오는 유저들 열에 아홉은 악명을 갖고 있었고, 그랬기에 가차 없이 리볼버(+4)를 쏘고 빛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리볼버(+4)로 위협을 해도 병사들과 달리 기사들은 꽤 많이 공격을 해왔다.
악명을 갖고 있지 않다 해도, 자신을 잡기 위해, 또는 죽이기 위해 공격해 오는 자들의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었다. 공격해 오는 자들은 전부 잡았다.
외성 성문을 지나 1시간, 용후가 내성에 들어섰다.
"상태창이 다 보여."
용후의 시야 안에 있는 모든 유저와 NPC들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성안에 있는 자들의 상태창까지도. 그 상태창 중엔 부르간 자작의 상태창도 있었다.
'내가 거물이 되긴 됐나 보군.'
부르간 자작은 성의 가장 높은 첨탑의 꼭대기 방에 있었다. 기사 한 명과 마법사 한 명을 호위로 데리고 저 첨탑의 꼭대기에 영주의 집무실이 있거나 침실이 있진 않을 터.
상단주 롤브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길 듣고,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저 첨탑 꼭대기로 피신을 한 것일 터다.
기사의 레벨은 140으로 익스퍼트였고, 마법사는 3서클. 부르간 자작의 레벨은 80.
생각 이상으로 레벨이 높았다. 오래 검술 수련을 해왔단 뜻이었다. 첨탑 중간중간에도 상태창들이 있었기에 용후가 시선을 내렸다. 병사와 기사들의 상태창이었다.
그 수가 상당했다. 100명이 넘었다.
'하긴.'
롤브에게 청룡 길드의 유저들이 당했단 이야기도 들었을 테니.
저 정도 병력이 좁은 계단에 모여 막아선다면 첨탑 꼭대기까지 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밑에서도 몰려 올라올 수도 있고.
스모크 상태가 되면 전혀 싸우지 않고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꼭대기에 도착한다 해도 소드 익스퍼트 기사와 3서클 마법사, 그리고 검술을 익힌 80레벨대 검사인 부르간 자작까지 셋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용후가 생각을 바꿨다.
용후가 바로 노예 경매장으로 가지 않고 내성으로 온 건 부르간 자작이 자신을 잡으려 했으니 자신도 받은 걸 돌려주기 위해, 그리고 부르간 자작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증거는 충분히 있지만 직접 잡아 왕도로 가면 증거만 내놓는 것보단 더 큰 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약 판매와 노예 계약을 하는 상단의 뒤를 봐준 증거가 확실하니 직접 없애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왕도에서 수사관이 병력을 이끌고 부르간 성으로 온다 해도 부르간 자작이 예 하고 순순히 끌려가진 않을 테니.
그때 리리스가 용후의 옆으로 왔다. 드랍템을 줍고 오란 용후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용후보다 좀 더 지체됐던 것.
용후가 인벤토리를 열어 벨베른의 언데드 오브를 꺼냈다. 그리고 오브를 작동시켜 리리스에게 건넸다.
"저 첩탑 꼭대기에 있는 창문 보여?"
"예."
"지금부터 10분 뒤에 저 창문으로 이 오브를 던져 넣어."
리리스의 시력과 동작의 정확성은 용후보다 더 뛰어나다. 이 거리에서도 충분히 저 첨탑 꼭대기의 창문을 깨부수고 방 안에 오브를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부르간 자작과 왼팔 오른팔 격인지 상당한 악명까지 갖고 있는 기사와 마법사까지 손도 안 대고 일망타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저 첨탑 안으로 언데드 오브를 던져 넣는다 해도 문을 열고 나가버리면 그만. 그러나 용후에겐 문이 절대 열리지 않도록 만들 수 있는 스킬이 있다.
저 정도 높이의 첨탑에선 오러 기사도 3서클 마법사도 밖으로 몸을 던지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즈음 리리스가 손에 쥐고 있는 언데드 오브가 완전히 빛에 휩싸였고, 용후는 달려오는 병사와 기사들을 유인해 달리며 첨탑으로 갔다.
그리고 첨탑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다 길을 막고 있는 병사와 기사들이 보이자 몸을 스모크 상태로 만들었다.
"뭐야?!"
"텔레포트?"
"투명 마법일 수도 있어!"
그 말에 맨 앞에 있는 병사가 허공에 검을 마구 휘둘렀다. 그 뒤에 있는 창병들도 허공에 창을 찔러댔다.
뻔히 앞에 갑자기 연기가 생겨났는데도 연기로 변했다곤 생각지 못했다.
용후가 다시 움직였다. 병사와 기사들의 몸 사이사이로 연기를 움직여 순식간에 통과, 더 속도를 내 위로 향했다.
두 무리를 더 통과하자 문이 보였다.
"절대 안 열려."
문에 연기를 대고 스킬을 쓰자 문이 빛에 휩싸였다. 됐다. 이제 이 문은 자신 외엔 누구도 열 수 없다.
오러 블레이드로 베도, 어떤 공격 마법을 날려도 흠집도 나지 않을 것이다.
'1분 정도 남았나.'
그러나 첨탑에서 나가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용후가 나선형 계단이 아닌 가운데 허공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연기가 밑으로 뚝 떨어졌다. 연기 같은 모습이지만 연기 같지 않은 질량을 갖고 있기 때문. 그러나 사람일 때의 질량은 아니었다.
연기를 위로 밀어 올리면 추락 속도를 늦출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용후는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고 1층에 도착했다.
-스모크 스킬이 3LV이 됩니다
"꼭대기에도 없습니다!"
"첨탑 밖에도 없습니다!"
"그럼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거야!"
이제 스모크 스킬의 남은 시간은 30초. 첨탑을 나간 용후가 근처 건물 뒤로 돌아가 스모크 스킬을 풀곤 내성 성문으로 달렸다.
그때 쨍그랑!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리리스가 언데드 오브를 첨탑 꼭대기 창문으로 던져 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후후."
첨탑 방 안의 상황이 상상이 돼 웃은 용후가 노예 경매장으로 가는 비밀 통로가 있는 청룡 길드 건물로 향했다. 첨탑 꼭대기의 방문은 절대 안 열리니 노예 경매장 일을 끝내고 가 언데드 오브를 챙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