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기적의 스킬 자판기 109화
"뭐하는 새끼야!"
"저건 뭐야?"
"오브 같은데요?"
용후가 청룡 길드의 건물 안에 벨베른의 오브를 던져 넣고 문을 닫자마자 1층 로비에 있던 청룡 길드원들이 한 대화였다.
어이없어할 뿐, 누구도 오브를 경계하진 않았다. 오브가 빛을 내고 있으니 작동을 시켰단 뜻, 그러나 오브 안에 담을 수 있는 마법은 3서클 마법까지였다.
어떤 마법이 튀어나오든 그 마법에 맞아 즉사하는 길드원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래도, 부길드장 장성수로부터 문을 열고 오브를 처리하란 지시를 받은 길드원은 방패를 꺼내 들고 오브를 향해 다가갔다.
즉사를 당할 일은 없고 1층 로비에 사제도 한 명 있지만, 그래도 다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항마력이 붙어 있는 방패기에 1~2서클 마법이라면 이 방패로 완벽히 막아낼 수 있다.
그때였다.
"어?!"
오브 위에 세 개의 마법진이 생겨나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더니 돌아가기 시작했다.
보통은 오브가 완전히 열리면 안에 든 마법이 바로 튀어나오는데, 처음 보는 모습.
"뭐야?"
다른 길드원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진을 만들어내는 오브를 본 적도 없지만, 한 개도 아닌 세 개. 세 개의 마법진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단 건 저 세 개의 마법진들이 마법을 융합시키고 있단 거였다.
즉, 저 오브 안에서 튀어나올 마법이 절대 보통 마법이 아니란 뜻!
"뭘 멀뚱히 보고만 있어! 빨리 밖으로 던져!"
부길드장 장성수가 욕을 하며 외치자, 오브 앞에 멈춰 섰던 길드원이 다시 움직여 오브를 쥐곤 문으로 달렸다. 그런데…….
"아악!"
문을 밀던 길드원이 비명을 꽥 지르며 휘청였다. 아직 마법진들이 돌아가고 있다 해도 빨리 던져버려야 한단 생각에 있는 힘껏 문을 밀었고, 문이 꿈쩍도 하지 않자 밀던 힘이 손목으로 되돌아와 손목을 꺾어버린 것이었다.
문이 조금 흔들리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크게 충격이 돌아오진 않았을 텐데, 문은 문이 아니라 벽처럼 변해 있었다.
"무, 문이 안 열립니다!"
"무슨 헛소리야! 문이 왜 안 열려! 밖에서 자물쇠라도 채웠단 거야 뭐야!"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밖에서 잠긴 게 아니라…… 벽 같아요!"
"별 미X! 말이 되는 소릴 해!"
그때 맞물려 돌아가던 마법진들이 멈췄다. 그걸 본 길드원이 오브를 옆으로 내던졌다.
그러나 마법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자색 빛을 내는 안개가 낮게 깔렸다. 독 안개는 아니었다.
언데드 필드였다.
마법사 유저도 그걸 알지 못했다. 유저 마법사들은 마법 스킬을 쓸 수 있을 뿐, 마법 지식은 없다시피 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상당한 마법 지식을 가진 마법사라 해도 언데드 필드는 흑마법, 알 수가 없었다.
"어어! 어어어!"
"……구울? 구울이잖아!"
"어어? 데스 나이트가 왜 나와!"
청룡 길드원들이 다시 하나같이 어이없단 표정이 됐다. 그리고 그 표정은 이내 공포심으로 바뀌었다. 계속, 그리고 흘러넘치듯 언데드들이 나오고 있어서였다.
심지어 뭔지 알 수 없는 괴상한 생김새의 언데드도 나왔고, 언데드로 보이지 않는 언데드도 나왔다. 언데드인 건 분명한데, 거의 썩어 있지 않았다.
"……홍민우?"
"민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길드장님!"
"길드장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
"뭐야?! 뭐냐고, 진짜!"
"죽었어! 길드원들이 아냐! 언데드들이야! 일단 밖으로 나가!"
대체 누가, 왜 언데드를 뱉어내는 오브를 자신들의 길드 건물에 던져 넣은 건진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다 처리해야 될 이유는 없었다.
밖으로 끌어내면, 다른 유저들을 공격하는 언데들도 생길 테고 곧 경비대도 출동할 것이다.
"X발! 창문도 안 열려요!"
"2층! 2층 창문으로 나가!"
그러나 계단을 뛰어 올라간 길드원들은 금방 다시 층계참으로 돌아왔다.
"안 열려요!"
"진짜 안 열립니다."
"이런 X친……."
장성수가 계단을 오르려다 말고 몸을 돌렸다. 죽여도 죽여도 몸을 복구하는 듀라한과 데스나이트는 잡기 까다로운 몬스터지만, 그렇다고 무한히 복구가 되는 건 아니다.
듀라한과 데스나이트를 혼자 부수지 못하는 청룡 길드원은 없다. 언데드들의 수가 자신들보다 세 배 네 배 더 많아지지 않는다면, 몇 명이 죽을 순 있지만 그래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브는 아직도 기세가 전혀 줄지 않은 채 언데드를 뱉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언데드 상태의 청룡 길드원들의 수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김용후, 그놈 짓이야!"
오브 속에서 나온, 언데드가 된 청룡 길드원들은 전부 김용후를 잡으러 갔던 자들.
김용후에게 전멸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김용후는 죽인 길드원들의 시체를 언데드로 만들어 저 오브 속에 넣은 거고.
그러나 지금은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언데드가 된 청룡 길드원들은 길드를 출발할 때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거의 그대로 차고 있었다.
본래 힘의 반만 쓸 수 있다 해도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키헤에엑!"
"키힉, 켁!"
"게에에엑!"
언데드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청룡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망갈 곳이 없는 좁은 공간, 떼로 덤벼드니 결국 상처를 입는 길드원들이 생겨났다.
게다가 사제의 힐을 받아도 상처는 잘 치료되지 않았다.
"상처 부위가 이상해!"
"나도! 검게 변했어!"
암흑마력 때문이었다.
어떤 언데드든 암흑마력이 에너지원이 되지만, 암흑마력이 공격에까지 사용되진 않는다.
벨베른의 오브가 가진 특별한 힘이었다. 하급 좀비와 구울들의 손톱과 이빨에까지 암흑마력이 맺혀 있었다.
결국, 죽는 길드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오브는 무한히 언데드를 뱉어내기라도 하는지 아직도 언데드를 뱉어내고 있었다.
그때, 장성수가 비정상적으로 긴 팔을 좌우로 흔들어대며 달려드는 괴상한 생김새의 구울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찍었다.
쩍 소리를 내며 구울의 머리가 세로로 쪼개졌다. 그러나 나온 건 썩은 피와 뇌수가 아닌 검은 불꽃!
그 불꽃이 콰앙! 폭발을 일으키며 장성수와 뒤따라 달려오던 폭탄 구울들을 삼켰다.
그 두 폭탄 구울들이 함께 폭발하며 1층 로비를 온통 검은 불꽃으로 꽉 채웠다.
화르르륵!
더욱 고열로 변해 2층까지 치솟아 오르는 검은 불꽃에 청룡 길드원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 소리는 조금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 * *
"슬슬 끝났으려나."
용후가 문에 손을 대고 절대 안 열려 스킬을 풀었다. 길드 건물이 빛을 냈다.
그러나 그 빛 또한 용후의 눈에만 보였다.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용후가 문손잡이를 돌려 뒤로 당겼다.
안에 있던 청룡 길드원들은 무슨 짓을 해도 안 열리던 문이 어떤 저항도 없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휘유~"
난리가 나 있었다. 곳곳에 베이고 잘리고 찢기고, 몸 일부가 먹히기까지 한 청룡 길드원들의 시체가 흩어져 있고, 로비엔 발 디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언데드들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시체들이 언데드로 변해 몸을 일으키는 모습도 곳곳에 보였다.
용후는 먼저 오브를 주워 작동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오브를 다시 바닥에 놓자, 언데드들이 오브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탐색."
혹 숨어 있는 자가 있을 수도 있기에 탐색 마법을 써 건물 안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탐색 마법에 걸리는 자는 없었다. 전부 죽은 것이다.
용후가 1층 로비를 돌아다니며 드랍 돼 있는 청룡 길드원들의 장비를 주웠다.
포션이나 싸구려 단검이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유니크 에픽 등급 장비도 꽤 많이 있었다.
드랍템을 전부 줍고 10분 뒤, 모든 언데드들이 오브 속으로 들어가자 오브가 작동을 멈췄다.
"상태창이 다 보여."
오브를 주운 용후가 상태창을 열어 암흑마력의 양을 확인했다. 이젠 몇 번 쓰지 못할 듯했다.
그러나 언데드를 쏟아내는 오브는 대놓고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원래 사람이 갑자기 잘 되면 온갖 말도 안 되는 루머도 만들어지기 마련, 그러니 소문까진 상관이 없지만 자신이 언데드를 부리는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목격이 되고 이 오브가 증거물이 되기라도 하면 곤욕을 치룰 수 있었다.
사기적이고 편리한 아이템이지만 자주 사용해서 좋을 건 없다.
'그래도 시켄들 상단이나, 시켄들 상단의 뒷거래를 지원해주고 있는 게 틀림없는 부르간 자작을 상대하는 데는 몇 번 더 써도 되겠지.'
장물 거래는 그렇다 쳐도, 마약 판매와 특히 노예 경매는 걸리면 귀족이라 해도 극형을 면치 못한다.
그러니 시켄들 상단과 청룡 길드, 자신의 추측대로 시켄들 상단과 한패라면 부르간 자작도 어차피 사라지게 될 자들.
그들의 김용후가 언데드를 부린단 목격담에 귀 기울여줄 자는 없을 것이다.
용후가 오브를 인벤토리에 넣고 청룡 길드 건물을 나갔다. 그리고 시켄들 상단 건물로 향했다. 지하 경매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아내기 위해.
* * *
"치즈 비프 스튜 세트 나왔습니다."
2층에 있는 평범한 식당. 여종업원이 용후가 앉아 있는 창가 자리 테이블 위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세 개나 올리고 포도주까지 잔에 따른 뒤 자리를 떠났고, 용후는 중간중간 창밖을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창밖 대각선 방향에 시켄들 상단의 건물이 보였다.
여기서 시켄들 상단 건물을 보며 기다리고 있으면, 상단주나 그의 측근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쉽게 따라붙을 수 있을 터였다.
슬슬 상단 문을 닫고 상인들이 퇴근할 시간. 상단주나 상단주의 측근들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을 수도 있지만, 측근이 아니더라도 악명 스탯이 높은 자가 딱 한 명만 나와 줘도 된다.
그런 자들은 분명 시켄들 상단의 뒷거래 일도 하고 있을 테니, 노예 경매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용후가 눈여겨보고 있던 상태창 중 하나가 1층 로비로 내려와 잠시 그곳에 머물더니 건물 밖으로 나왔다.
용후가 잔에 반쯤 남은 포도주를 마저 마시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자 그 상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상태창은 보였다.
용후가 상태창을 쫓아 달렸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지자 다시 걸으며 천천히 뒤를 쫓았다.
어느 성이든 다 그렇듯 부르간 성에도 많은 골목길이 있었다. 주택가는 이곳 상업 거리와 꽤 거리가 떨어져 있다.
집으로 귀가하는 거라면, 골목길을 한 번은 지나갈 것이다.
용후의 생각대로였다. 상인 릭이 지름길이 되는 골목으로 들어갔고, 용후가 다시 전속력을 내 달렸다.
잠시 뒤 소리를 들은 릭이 몸을 홱 돌렸지만, 이미 용후는 릭의 바로 앞에 도착해 릭의 얼굴에 리볼버(+4)를 겨눈 뒤였다.
"……헉! 누, 누구냐!"
"큰 소리 내지 마. 내가 누군진 알 텐데."
드워프를 중간에 낚아채 사라진 유저에 대해 백방으로 알아봤을 테고, 또 드워프 동굴로 가던 중 자신을 습격하다 죽어 부활한 청룡 길드원들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을 테니, 자신이 누군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김용후……!"
"지하 경매장으로 들어가는 루트 말해."
이어 용후가 상인 릭의 아공간 속 금화 액수와 물건들을 줄줄이 읊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허……."
"내가 누군지 알면 내 기적의 스킬들에 대한 소문도 알고 있겠지. 말해. 성 지하에 있는 노예 경매장 어떻게 들어가?"
"몰라…… 안다 해도 말 못 해. 그걸 말하면 난 길드장한테 죽은 목숨이 되거든."
"나한테 죽는 건 상관없다 이건가? 왜? 죽어도 어차피 부활하니까?"
"……뭐?!"
릭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릭은 NPC가 아닌 유저였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동자, 거기다 표정과 억양, 제스처까지 NPC처럼 행동하니 보통은 속겠지만 상태창이 보이는 용후를 속일 순 없었다.
"나한테 한 번 죽으면 끝이지만, 길드장한텐 기억을 다 잃을 때까지 죽게 되니 차라리 나한테 죽는 게 낫다 생각하는 거 아냐. 죽어서 부활하면 길드장한테 달려가 알리려는 거고."
"……."
"그럼 이건 어때? 아공간 열어서 똑바로 봐."
불길한 예감을 느낀 릭이 순순히 아공간을 열었다. 릭이 허공을 올려다보자 씩 웃은 용후가 말했다.
"돈 많네. 전 재산 싹 털리고도 버티나 보자. 나 2골드만."
높은 행운 스탯에 의해 바로 더블 크리티컬이 터졌다. 헉! 릭의 눈이 찢어질 기세로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