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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106화 (106/153)

# 106

기적의 스킬 자판기 106화

미케일라와의 대화 이후 하루가 더 지났지만, 정령들은 여전히 일정 거리 이상 용후에게 접근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용후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었다. 미케일라의 말대로라면, 열심히 한다 해서 되는 게 아니니.

딱 떠나기로 정한 날까지만 머무르고 미련 없이 드워프 마을로 가기로 했다.

"지금 얻은 것들만 해도 넘칠 정도야."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먹고 오른 건 정령 친화력만이 아니라, 신체 스탯들도 전반적으로 올랐다.

게다가 항마력과 재생력까지도 상승했단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퍼플 마석도 많이 얻었다.

특히, 5년간 유지되는 거래 계약서를 얻어냈다. 이것만으로도 용후는 대만족이었다.

'정령 친화력은 정령술로 인한 데미지를 상쇄시키는 효과도 있어.'

엘프 마을에서 올려둔 정령 친화력의 도움을 받는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

용후가 맞은편에 서 있는 마도 마법 인형 리리스에게 말했다. 리리스가 즉시 검과 방패를 들어 전투 자세를 취했다.

용후도 성검 벨도른과 방패를 가슴 앞에 세웠다. 리리스의 검날에 오러 블레이드가 둘러졌고, 이어 용후의 검날엔 새하얀 빛줄기가 휘감겼다.

쾅!

리리스가 지면을 주저앉히며 용후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용후도 달렸다. 금방 거리가 좁혀졌다.

용후가 먼저 빛의 검을 휘둘렀다. 마치 자동 사냥 스킬을 쓴 듯한 움직임! 그러나 용후는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카앙! 훙!

용후의 빛의 검과 리리스의 오러 블레이드가 충돌하며 푸르고 흰빛을 내는 파편들이 불에 달궈진 검날을 망치로 친 것처럼 튀어 올라 흩어졌다.

이어 또다시 오러 블레이드와 빛의 검이 충돌하고, 검과 방패가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곤 점점 더 부딪치는 속도가 빨라져 갔다.

둘의 전투가 시작되자 다시 모여든 유저들과 엘프들이 탄성을 냈다.

"와, 진짜 잘 싸우네."

"저 인형도 장난 아냐."

"저 마법 인형 갖고 싶다."

갈수록 자동 사냥 상태보다 움직임이 더 느리고 엉성하단 게 티가 나기 시작했지만, 자동 사냥 상태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로, 둘의 대련을 보는 자들은 용후의 검술 수준에 경탄을 했다.

자동 사냥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였다 해도, 자신의 몸으로 해본 동작들이기에 반복해서 겪으면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카앙!

'됐다!'

용후가 씩 웃었다.

영지 전쟁 때 기사단장 트린을 잡을 때 썼던 자동 사냥의 흘려 막기 기술!

일말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타이밍을 맞춰야만 성공시킬 수 있는 고난이도의 기술이었다. 리리스가 휘청였고, 용후는 이어 다음 공격을 날렸다.

"뭘 한 거야?!"

"스킬을 쓴 게 아니야!"

"유저가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 진짜 말도 안 돼!"

촥!

빛의 검이 리리스의 왼쪽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고, 특히 유저들의 탄성이 더욱 커졌다.

거의 절반 가까이 벴고, 척추 역할을 하는 골격까지 잘라냈기에 리리스는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이걸로 5승 2패."

빛의 검을 푼 용후가 벤도렌을 검집에 넣고 기동이 완전히 멈춘 리리스에게 다가가 등에 손을 댔다.

"만지면 다 고쳐."

용후의 손에 모여든 빛이 리리스의 전신으로 퍼졌다. 잘린 옆구리가 복구되고, 리리스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때였다.

빛의 구 하나가 용후의 얼굴 앞으로 날아왔다. 정령이었다. 아이 같거나 요정 같은 모습이 아닌, 어떤 형태도 갖추지 않은 완전한 구체. 하급 정령이었다.

-정령 계약을 맺겠습니까?

용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정령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자, 이왕이면 중급 또는 상급 정령과 하고 싶단 마음이 생겨났다.

또 하나, 어떤 속성을 가진 정령인 지도 정보가 없어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드디어 정령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셨군요. 축하드려요, 용후 님."

고개를 돌리니 미케일라가 서 있었다.

"근데, 어떤 속성의 정령인지 알 수가 없군요."

"땅의 정령이에요."

"아, 그렇군요……."

용후는 상급 정령, 못해도 중급 정령을 원했고, 속성은 불이나 물을 원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자신에게 계약을 맺자고 다가와 준 정령, 그렇게 생각하자 고맙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네 이름은 양지야."

볕이 드는 곳이란 뜻의 단어. 그때, 땅의 정령과 용후 사이에 육망성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그 마법진의 중앙 부분에 읽을 순 없는, 고대어와도 다른 글자가 새겨졌다. 그리고 마법진은 한순간에 연기처럼 흐려져 사라졌다.

-정령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어수룩한 정령술사 칭호를 얻었습니다

-정령 친화력이 50 오릅니다

-생명력 스탯이 50 오릅니다

"양지…… 울림이 좋은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미케일라가 용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땅의 정령을 눈으로 좇다 용후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용후도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얼굴 앞에 멈춰선 양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널 최고의 정령으로 만들어줄게."

스킬 자판기를 쓰면 가능하다. 상급 정령으로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닐 테고, 그 이상도 가능할 터다.

* * *

"여깁니다."

"……정말 여기라고?"

용후의 집 앞. 1급 도둑의 말에 대도 릭젠스의 미간이 구겨졌다.

"김용후는 영지 전쟁 전에 이미 S급 퀘스트를 3개나 클리어하면서 돈을 엄청 벌어들였어. 그런데 이런 집에서 살았다는 게 말이 돼?"

팔켄 마을 북쪽에 저택이 지어지고 있었다. 저택을 짓고 있단 건 집 욕심이 있단 뜻.

그런데도 마을 안에서 가장 구린 집이라 해도 될 이 집에서 계속 살았다니…… 릭젠스가 생각하기에 이 집은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저기…… 릭젠스 님……."

"뭐야?"

"문이 안 열립니다."

"뭐?"

릭젠스의 얼굴에 번져 있는 불안이 더 커졌다. 하급 도둑도 아니고 1급 도둑.

그런 도둑이 못 여는 문이 있을 리가. 게다가 이 집의 문엔 락 마법이 걸려 있지도 않다.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저리 비켜."

1급 도둑을 뒤로 물린 릭젠스가 자물쇠를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제대로 땄는데 문이 왜 꿈쩍도 안 해."

"마법 아닐까요?"

"헛소리! 탐색 마법에 안 걸리는 락 마법이 어딨어."

"예…… 그렇죠…… 그래도 기적의 스킬을 쓴다는 유저의 집 아닙니까. 탐색 마법에 안 걸리는 락 마법 스킬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잠시 생각하던 릭젠스가 아공간을 다시 열어 언락 마법 스크롤을 꺼냈다. 스크롤은 비싸다.

락 마법이 걸려 있는 게 아니면 엄청 큰 생돈을 날리게 되지만, 락 마법이 걸려 있는 거라면 얼마나 높은 수준의 락 마법이라 해도 풀 수 있다. 해보자. 릭젠스가 스크롤을 찢었다.

"열어봐."

"……안 열립니다."

"X발! 이게 얼마짜린데! 너 이 새끼! 락 마법 안 걸려 있잖아!"

"걸려 있다고 말하진 않았는데요……."

하급 도둑이라면 냅다 정강이라도 걷어찼을 텐데 1급 도둑을 부하처럼 다룰 순 없었다.

"여기 창문이 있습니다!"

문에 모여 있던 도둑들이 창문이 있다 외친 도둑이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보통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지만 어찌나 마을 외곽의 구석진 곳에 있는 집인지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 정도 크기면 그래도 어찌어찌 들어갈 수 있겠는데요."

"근데 안에 누가 있습니다!"

"……인형 아니야? 생긴 것도 다 비슷비슷하고 사람이 어떻게 저 자세로 저렇게 꿈쩍도 안 해."

릭젠스도 벽에 붙어 까치발을 하곤 집 안을 들여다봤다.

"그냥 인형이야. 전부 다 들어간다."

인형이 움직일 리는 없지만, 그래도 릭젠스는 불길한 촉을 느꼈다.

혹, 곤스라가 이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갔고 저 인형들이 일제히 공격을 했다면, 둘러싸여 도망가지 못하고 당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부 무기 손에 들고 들어가. 그리고 들어가면 절대 스킬 파는 상자하고 인형엔 손대지 말고 기다려."

1급 도둑들이 아티팩트나 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창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도둑들은 인형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마법 인형들의 눈은 도둑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침입자들이 전부 들어오면 일망타진하는 게 맞다 판단 내린 것이었다.

탁! 마지막으로 릭젠스가 방 안으로 내려섰다. 그 직후였다. 마법 인형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며 도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어! 뭐야!"

"인형이 아니잖아!

"밖으로 나가!"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X발! 뭐야!"

어깨를 부딪치고 발로 밀어 차도 문은 벽처럼 꿈쩍을 하지 않았다. 도둑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마법 인형들이 몸에 검을 쑥쑥 찔러 넣고 몸 곳곳을 베기 시작해서였다. 반격은 통하지 않았다.

어딜 찌르고 어딜 베도 비슷비슷하게 생긴 여자들은 열리지 않는 문처럼 꿈쩍을 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스킬 상자 아공간에 넣어!"

"창문으로 나가!"

릭젠스와 1급 도둑들이 비명을 지르고 악을 쓰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 사이에도 마법 인형들은 절대 안 열려 스킬에 의해 열리지 않는 문 때문에 방 안에 갇혀 있는 도둑들에게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때, 릭젠스가 스킬 자판기에 손을 대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들어가! 들어가라고!"

스킬 파는 상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말도 안 돼! 이 가방은 아공간이라고! 그때, 릭젠스의 눈에 묘한 게 들어왔다. 버튼들에 적힌 금액이었다.

"뭐가 이리 비싸! ……컥!"

릭젠스가 목에서, 그리고 입에서도 피를 토했다. 숏소드가 목을 관통한 거였다. 쑥 검을 뽑아내자 릭젠스가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아이템 한 개를 드랍하곤. 도둑들 전부 아이템을 드랍한 건 아니었지만 절반은 드랍을 했다.

그렇게 아이템을 남겨두고 시체들이 소멸하기 시작했다.

* * *

"하나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네."

용후가 그만 마을을 떠나겠다 하자 장로 카헨이 그 말부터 꺼냈다.

"생명의 나무를 소생시키고, 생명의 나무를 죽게 한 범인도 잡아준 자네에게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졌기에 또 부탁을 하는 게 망설여졌네만…… 용후 자네라면 이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없군. 부디 내 부탁을 들어줬으면 하네."

그냥 부탁도 아닌 퀘스트. 게다가 은인이란 말까지 쓰며 긴 서론을 늘어놓는 걸 보니 기본 보상만 줄 리 없다.

그러나, 용후는 오늘 엘프 마을을 떠나야 했다. 드워프 마을에서야 마룡의 뼈갑옷을 받으면 바로 나와도 되지만, 계속 영지를 비워둘 순 없었다.

아무리 집사 제이번이 유능해도 영주인 자신의 허가나 결제가 필요해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많이 쌓여 있을 테니.

"마을 안에 계속 머무를 필요도 없고, 시간제한을 걸지도 않을 걸세."

물건을 찾아달란 부탁으론 들리지 않았다.

엘프를 찾는 퀘스트구나.

"내 딸, 엘로이스가 두 달 전 실종이 됐네. 시체를 찾지 못했고, 발자국이 엘프의 영역을 벗어나 산맥 아래로 향하던 중 사라져 버렸네."

그럼 엘프 영역 안에서 사고를 당했거나 몬스터에게 먹히진 않았단 뜻이었다.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다른 흔적이 더 남았을 테니. 시켄들 상단과 관계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노예 경매도 하는 상단이니.

'나한테 된통 깨졌으니 어차피 다시 접근하게 돼 있어.'

시켄들 상단을 처리하다 보면 노예 경매장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곳에 장로 카헨의 딸 엘로이스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알겠습니다. 퀘스트를 받겠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카헨이 인간 식으로 고개까지 숙여 인사를 했고, 뒤에 모여 있던 엘프들도 잘됐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원하는 보상이 있으면 말하게."

"충분히 많은 걸 받았습니다. 이번엔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엘프 마을에서 얻고자 했던 건 다 얻었다. 그리고, 알아서 달라 해도 적당히 주진 않을 테니 보상을 장로에게 맞기고, 호감도를 조금이라도 더 올리는 게 낫단 생각이었다.

"알겠네."

잠시 뒤,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S등급, 그리고 S등급에 걸맞은 기본 보상들과 함께 추가 보상란엔 생명의 나무의 열매 거래가 적혀 있었다.

매달 100개의 열매를 팔아 주겠단 거였다. 그것도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게다가…….

-엘프 카헨의 호감도가 200 오릅니다

"꼭 찾아내겠습니다."

"자네는 우리 마을의 은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했다 해도 언제든 마을에 들린다면 자넬 환영할 것이네."

"감사합니다. 또 들르겠습니다."

그리고 용후는 손을 흔드는 엘프들을 뒤로하고 엘프 마을을 나와 드워프들의 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드워프들의 동굴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눈으로 대충 훑어도 50명이 넘을 것 같은 유저들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상태창이 다 보여."

유저들의 머리 위에 일제히 상태창이 떠올랐다. 전부 레벨이 100이 넘었고, 120, 130, 140레벨대도 꽤 됐다.

특성란엔 청룡 길드가 적혀 있었다. 용후가 웃었다. 오른 전투력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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