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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105화 (105/153)

# 105

기적의 스킬 자판기 105화

달빛 도둑 길드.

"진짜 죽기라도 한 건가……."

길드장 헨프의 얼굴이 심각했다. 팔켄 마을로 보낸 곤스라가 돌아올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였다.

죽은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연락이 없을 순 없었다. 스킬 파는 상자를 들고 튀었을 가능성도 제로. 마탑에서 거액을 주고 산 마나의 계약서로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곤스라 연락 없어?"

결국 헨프가 하급 도둑들이 모여 있는 1층 주점까지 내려가 곤스라의 소식을 물었다.

"팔켄 마을로 갔다가 아직 안돌아 왔습니까?"

"팔켄 마을이면…… 혹시 김용후 물건을 훔치러 간 건가?"

"근데 아직 안 돌아왔다는 건, 실패했단 거야?

곤스라한테 연락이 없냔 말만으로도 도둑들은 곤스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정황을 파악해 냈다.

"시끄러! 실패하긴 누가!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

헨프가 다시 2층 길드장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비서를 불렀다.

"역시 죽은 거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길로 샜다가 오는 경우가 있긴 했어도, 곤스라의 소식을 단 한 명도 모르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길드의 도둑들은 부르간 성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인근 성과 마을로 가게 되는 경우도 많기에, 혹시라도 곤스라를 본 자가 있을까 일말의 기대를 걸고 1층으로 내려가 말을 꺼낸 거지만, 다른 곳에서도 본 자가 없다면 이젠 인정해야 했다.

곤스라는 죽었다.

팔켄 마을에서.

"지금 팔켄 마을엔 김용후가 없다고 했잖아."

"예. 정보 길드가 판 그 정보가 틀렸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곤스라가 왜 죽어? 더구나 팔켄 마을은 경비병이 지키지도 않는 마을이 됐는데."

용병이나 유저들을 고용해 치안을 유지하고 있긴 하겠지만, 곤스라가 그런 오합지졸들에게 잡힐 일은 절대 없다.

"그건 저도 잘……."

"……."

잠시 생각하던 헨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릭젠스하고, 1급 도둑들 10명 정도 팔켄 마을로 보내."

릭젠스는 대도급 도둑으로 달빛 도둑 길드에서 세 번째 실력자고, 1급 도둑들도 대도급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1급 도둑들은 전투력이 높은 자들로 추려서 보내."

"알겠습니다."

곤스라가 함정에 당했을 리는 없다.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거겠지. 아주 강한 자이거나, 떼로 덤벼든 자들에 의해.

그러나 대도급 도둑 1명과 전투력이 뛰어난 1급 도둑 10명이라면 둘 중 어떤 경우라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 스킬 파는 상자가 꼭꼭 숨겨져 있어도, 함정까지 만들어져 있어도, 그게 마법진으로 만든 함정이라 해도 대도급 도둑이 가는 한 실패할 일은 없다.

과연 괜히 길드장 자리에 앉아 있는 자가 아니었다. 릭젠스는 물론 1급 정도 되는 도둑들이라면 곤스라와 같은 스킬은 아니지만 비좁은 공간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쯤은 다 갖고 있었다.

그렇게 들어가고 나면, 11명이 마법 인형들과 뒤엉켜 싸우는 사이 누군가 스킬 자판기에 손을 댈 기회가 분명 생길 터였다.

그러나, 스킬 자판기는 손을 댈 순 있어도 아공간에 담을 수 없었다.

"신중히, 최대한 신중하게 행동하라 전해."

"예."

그날 오후, 대도급 도둑 1명과 1급 도둑 10명이 가장 아끼는 장비들로 무장을 하곤 팔켄 마을로 향했다.

스킬 자판기의 비밀도, 용후의 방문에 걸린 비밀도, 방 안의 비밀도 전혀 모른 채.

* * *

용후는 엘프 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매일 한두 마리씩의 트윈 헤드 오우거를 찾아 사냥했다.

그러나 개체수가 적어 5일째부턴 찾는데 꽤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고, 7일째인 오늘은 오전 내내 트윈 헤드 오우거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가 도망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놈 봐라……."

탐색 마법을 다시 써보니 또 거리가 한참 벌어져 있었다.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이며 일정 거리 이상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골 때리네."

트윈 헤드 오우거만 쫓다 오전이 끝나버릴 판이었다.

용후가 엘프 마을에서 하고 있는 건 하나 더 있었다. 정령 친화력 올리기.

정령 친화력은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먹기만 해도 올랐지만, 카헨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보통 20~30개 정도를 먹으면 더 이상 생명의 열매를 통해선 정령 친화력을 올릴 수 없다 했다.

그러나 하나 더 방법이 있었다. 생명의 나무 근처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만큼 큰 폭은 아니지만 오른다 했다.

그랬기에 용후는 엘프 마을에서 한 달 정도 머물기로 했고, 오후와 저녁엔 쭉 생명의 나무 밑에서 지내고 있었다. 검술 수련과 스킬 레벨을 올려 가며.

하지만 지금 이런 식이면 오후가 돼도 오늘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기 힘들 것이다.

"좋아. 시험도 해볼 겸 써보자."

용후가 인벤토리에서 퍼플 마석을 꺼냈다. 그리고 뭐든 다 만들어 스킬을 써 마도 대인 병기 셀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퍼플 마석을 하나 더 꺼내 셀터의 마석 주입구에 퍼플 마석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카가가가가각!

퍼플 마석의 밑 부분이 갈려 들어가며 주입구에 딱 맞게 끼워졌다. 마석이 번쩍 빛을 내더니 골격들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이 일제히 자색 빛을 뿜어냈다.

호델던이 알려준 대로 용후가 셀터의 앞으로 가 등을 지고 섰다. 그리고 양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리고 양팔을 수평으로 들었다. 그 즉시 셀터의 골격들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용후의 몸을 휘감았다. 장착이 완료되는 데는 5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용후가 달렸다. 몇 초 지나지도 않아 용후는 셀터가 가진 위력을 확실히 실감했다. 두 배 더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고, 도약을 하자 마찬가지로 두 배 더 멀리 뛰어올랐다.

"하하!"

쿠콰콰콰쾅!

용후가 더욱 달리는 속도를 올려 전속력을 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땅이 크레이터 모양으로 꺼져 들어가고, 거목들이 오우거에게 들이받힌 것처럼 터지거나 부러져 줄줄이 쓰러졌다. 그렇게 5분, 도망가는 트윈 헤드 오우거의 등이 보였다.

따돌릴 수 없다 생각했는지 트윈 헤드 오우거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포효를 터뜨리며 양손에 마법을 만들어냈다.

두 개 다 불꽃이었다. 불꽃이 자신의 머리보다 더 커지자 트윈 헤드 오우거가 그 불꽃을 한꺼번에 던졌다.

그러곤 포효를 터뜨리며 지면을 박차 질주했다.

"크허어어어엉!"

콰쾅! 쾅!

화르르르륵!

공간을 뒤흔들 정도의 폭발이 옆으로 넓게 퍼지며 용후의 몸을 삼켰다. 그러나 그때, 불꽃을 뚫고 용후가 튀어나왔다.

피부가 녹아내리고 갑옷과 셀터의 골격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데미지는 거의 없었다.

마룡의 등뼈로 새 갑옷을 만들어 입을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금 용후가 입고 있는 갑옷도 그저 그런 갑옷이 아니었고, 그 갑옷보다 더 높은 방어력과 항마력을 가진 셀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재생력은 벌써 화상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트윈 헤드 오우거도 마법으로 잡을 수 있는 상대라 생각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트윈 헤드 오우거가 불꽃 속에서 튀어나온 용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성벽에도 금을 쩍쩍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펀치, 아무리 용후의 생명력과 방어력이 높다 해도 정통으로 맞으면 버틸 수 없었다.

그런데도 용후는 피하지 않았다. 심지어 손엔 방패도 검도 들려 있지 않았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주먹을 향해 마주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그냥 주먹이 아닌 셀터의 골격이 휘감겨 있는 주먹을.

콰아앙!

트윈 헤드 오우거와 용후의 펀치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직후 셀터의 골격에 새겨진 마법진들이 더 강렬한 빛을 내고 요란한 기계음을 토해냈다.

놀랍게도 용후는 뒤로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셀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닌, 기계와 마법을 결합시켜 만든 마도 병기. 게다가 인공지능과도 같은 기능까지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용후의 펀치가 트윈 헤드 오우거의 주먹과 충돌한 직후, 용후가 충격을 받거나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마법이 골격에도 용후의 몸에도 걸린 것이었다.

그러나 트윈 헤드 오우거도 밀려나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트윈 해드 오우거가 반대쪽 주먹을 날렸다. 용후가 상체를 낮게 숙였다.

광풍을 휘감은 주먹이 머리 위를 스치며 허공을 갈랐다. 직후 용후가 지면을 박차 트윈 헤드 오우거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트윈 헤드 오우거의 복부로 주먹을 날렸다.

쩌엉!

"……커어어어엉!"

비명 섞인 괴성을 지른 트윈 헤드 오우거가 입으로 피를 후두둑 쏟았다.

그러나 펀치를 몇 번 더 몸에 꽂아 넣었지만 트윈 헤드 오우거는 쓰러지지 않았다. 역시 오러 블레이드 없이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는 건 힘들었다.

'신체 능력을 얼마나 올려주는진 이 정도면 확인이 됐으니…….'

"상태창이 다 보여."

인벤토리창처럼 떠 있는 드랍템창을 확인해 보니 창 안에 퍼플 마석이 들어 있었다.

"그 템 내 거."

퍼플 마석을 찍은 용후가 성검 벨도렌을 꺼냈다. 그리고 검날에 오러 블레이드를 둘렀다.

그러나 빛의 검에 비하면 느껴지는 기운이 훨씬 약했다. 그래도 셀터를 대량 생산해 마법 인형들에게 입히면 소드 레귤러 기사 정도의 전투력을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크허어어어엉!"

달려드는 트윈 헤드 오우거를 향해 용후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빛의 검에 비하면 기운이 좀 더 약하단 거지 오러 블레이드가 자르지 못하는 가죽과 살은 없었다.

"……크허어어엉!"

오른 다리가 길고 깊게 베인 트윈 헤드 오우거가 바닥으로 고꾸라져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멈추기도 전에 따라잡은 용후가 정확히 두 머리의 목을 향해 연달아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잘린 머리 두 개가 바닥을 굴렀고, 몸은 이내 멈춰 서 축 늘어졌다. 그러곤 순식간에 피 웅덩이에 잠겨 들었다.

-레벨이 1 오릅니다

-퍼플 마석을 얻었습니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가죽을 얻었습니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눈을 얻었습니다

"이걸로 레벨은 75, 퍼플 마석은 9개."

드워프 대장장이 젠프는 마룡의 등뼈로 갑옷을 만드는 데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했다.

용후는 그 때에 맞춰 드워프 마을에 들린 뒤 팔켄 마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니 엘프 마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7일. 소로브 산맥에서 구할 수 있는 퍼플 마석은 다 구했으니 이젠 정령 친화력을 올리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용후가 엘프 마을로 향했다.

* * *

엘프 마을.

-정령 친화력이 7 오릅니다

생명의 열매 하나를 다 먹자마자 용후의 눈앞에 스탯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러나 용후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오른 수치도 초반에 비하면 한참 낮았고, 이제 엘프 마을에 머무르기로 한 날도 이틀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였다.

용후가 정령 친화력을 올리려는 이유는 당연히 정령과 계약을 맺기 위해서였다.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정령 친화력을 200 넘게 올린 만큼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령과의 계약은 정령 친화력이 높다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미케일라였다.

"친화력이 높으면 정령들을 볼 수도 있고 정령들과 교감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지만, 그렇다고 친화력이 높단 이유만으로 정령들이 계약을 하려고 다가오진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죠?"

"그건……."

용후는 자신들의 은인. 돕고 싶은 마음에 다가온 거지만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순전히 운 좋게 정령들이 선택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단 거군요."

"사실 그래요. 계속, 오래 기다리고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꼭 정령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가진 기적의 스킬들로도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고, 적수가 없다 해도 될 정도의 힘도 있었다.

또, 앞으로도 더 기적의 스킬들을 얻을 수도 있고.

"하지만……."

하지만?

"용후 님은 생명의 나무를 살려냈어요. 이미 정령 중 용후 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정령이 있을 거예요. 정령들은 경계심도 많고 수줍음도 많답니다. 하지만 기다리면 분명 있을 거예요. 용후 님과 계약을 맺고자 하는 정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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