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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104화 (104/153)

# 104

기적의 스킬 자판기 104화

캉!

홍민우의 검과 용후의 검이 충돌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홍민우의 목은 용후의 빚의 검에 잘려 날아갔을 것이다.

홍민우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목숨을 부지했고, 자신의 검에 금이 쩍쩍 가 있기 때문.

'아무리 급히 만들어낸 오러 블레이드라 해도 NPC 기사의 오러 블레이드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내 오러 블레이드가 깨져 풀려버리다니!'

그때 유저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날이, 오러 블레이드를 부수며 좀 약해진 새하얀 빛을 다시 강렬히 뿜어냈다. 홍민우가 재빨리 몸을 굴렸다.

카가각!

빛의 검이 홍민우의 오른쪽 견갑을 자르는 소리였다. 물리 방어력뿐 아니라 항마력도 가진 갑옷. 신성력은 상쇄시킬 수 없지만, 오러는 상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도 홍민우의 갑옷이 종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무슨 칼로 골판지를 자르듯 잘려나갔다.

그렇게, 견갑이 갑옷 역할을 전혀 못 한 탓에 빛의 검은 홍민우의 어깨도 조금 잘라냈다.

홍민우의 입에선 비명이, 뒤에서 둘의 전투를 보고 있던 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와, 지리네. 저건 대체 무슨 오러 블레이드 스킬이야!"

"아무리 오러 블레이드라도 성기사 버프로 범벅이 된 에픽 등급 갑옷을 무슨 종이 자르듯 잘라버리네."

"으악!"

마지막 비명도 뒤에 있던 유저들이 낸 소리. 갑자기 공간을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터져서였다.

용후가 또 리볼버를 연달아 6발이나 쏜 것이었다. 그랬다. 홍민우가 신경 써야 할 건 빚의 검만이 아니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부서져 스킬이 풀리고 갑옷이 종이 잘리듯 잘린 충격에 홍민우의 신경은 온통 빛의 검을 피하는 데만 쏠려 있었지만, 그보다 경계해야 될 건 총이었다.

"컥! 큭! 허억!"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만큼 제대로 겨눠 그것도 연달아 쏜 총알임에도 3발은 피해냈지만, 전부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1발은 다리, 2발은 가슴이었다. 그것도 관통. 한 발 한 발이 전부 900이 넘는 공격력! 버틸 수 없었다.

"어어?"

"민우 형님!"

두 청룡 길드원들이 믿을 수 없단 얼굴로 그런 말을 한 직후, 용후 쪽으로 돌아서며 힐을 쓴 홍민우가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제야 힐의 빛이 시체가 된 홍민우를 감싸다 이내 사그라졌다. 직후 용후의 눈앞엔 아이템 획득 알림창이 떠올랐다.

-드리안의 맹독을 얻었습니다

그냥 드랍된 템도 하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포션이었다. 행운 스탯이 높으면 드랍율이 오르지만 그렇다고 매번 높은 등극의 비싼 템만 드랍될 순 없었다.

그러나 드리안의 맹독 이거 하나면 유니크 에픽 등급 템을 몇 개 얻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

흐려지기 시작한 홍민우의 시체로 가 포션을 줍고 템 몇 개를 더 줍는 척 한 뒤 일어난 용후가 인벤토리에서 드리안의 맹독을 꺼내 장로 카헨 쪽으로 갔다.

"이게 생명의 나무를 죽게 한 그 독입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한 나무 쪽으로 갔다. 드리안의 맹독이 든 병의 코르크 마개를 따고 독을 나무뿌리 부분에 조금 졸졸 부었다.

직후, 나무 쪽으로 모여든 유저와 엘프들이 탄식과 탄성을 냈다. 장로 카헨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무가 시들다 못 해 줄줄 녹아내리기 시작해서였다.

그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생명의 나무와 똑같은 모습이 됐다.

용후가 카헨 쪽으로 돌아섰다.

"보시다시피 생명의 나무를 죽게 한 범인은 홍민우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길드원인 저 둘도 공모자일 테구요."

용후가 청룡 길드원 둘을 손으로 가리켰다. 카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뜻. 직후 용후의 눈앞에 퀘스트 클리어창이 떠올랐다.

-레벨이 1 오릅니다

-생명력 스탯이 50 오릅니다

-생명의 나무 열매 100개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

"포위해라!"

장로 카헨이 외쳤다.

생명의 나무 주위에 모여 있던 엘프들이 일제히 허리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 활시위를 팽팽히 당겼다.

땅 위만이 아니라 나무 위에도 많은 엘프가 있었고, 그 엘프들도 전부 두 청룡 길드원들을 향해 화살을 겨눈 상태.

게다가 유저들도 여차하면 엘프들을 돕겠단 기세였다. 특히 홍민우를 단 세 발에 잡은 김용후의 리볼버가 겨눠지자, 두 청룡 길드원은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두 유저가 눈짓을 주고받았다.

무려 생명의 나무를 죽게 했다. 엘프를 죽인 것보다 죄가 컸다.

물론, 이 두 유저는 홍민우처럼 드리안의 맹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랬기에 용후는 이 두 유저가 홍민우와 공범이란 증거를 만들 순 없었다.

그저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로 같은 길드원이란 걸 알았고, 아까 계속 눈짓을 교환하는 걸 보며 공범이라 확신한 것뿐.

그런데 두 청룡 길드원은 용후가 자신들이 공범이란 증거도 갖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튀어!"

"에이 씨!"

두 청룡 길드원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이렇게 하면 그나마 화력이 둘로 나뉠 테니 한 명이라도 살 가능성이 있다 생각한 것.

홍민우 정돈 아니지만 자신들도 무려 130이 넘는 탱커에 딜러들, 화살 서너 발을 맞는 정도론 죽지도 움직임이 금방 둔해지지도 않는다.

또, 혹 자신들이 홍민우와 공범이란 것도 알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에 거리를 벌려둔 상태, 엘프들은 몰라도 권총으론 쉽게 맞추기 힘들 터였다.

아니, 물론 엘프들 정돈 아니지만 거의 모든 전투에 리볼버를 썼고 사격 스킬을 얻어 스킬 레벨도 꾸준히 올린 용후의 사격 실력은 엘프들에게 그리 뒤지지 않았다.

투앙! 투앙!

"컥!"

"크윽!"

딱 2발. 엘프들의 화살을 거의 다 피하고, 몇 발 맞아도 무시해버리곤 달리던 두 유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곤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곤 움직이지 않았다. 즉사였다.

용후가 장비를 드랍한 유저의 시체로 가 템을 줍고 생명의 나무 앞으로 갔다. 바로 생명의 나무를 살리는 퀘스트를 클리어하기로 했다. 용후가 장로 카헨 쪽으로 고개만 돌려 말했다.

"생명의 나무를 소생시키겠습니다."

"부탁하네."

"무럭무럭 자라라."

용후가 빛에 휩싸인 손을 생명의 나무의 뿌리에 댔다. 빛이 죽은 생명의 나무의 뿌리로 옮겨갔다.

순식간에 뿌리 전체가 빛에 물들었고, 빌딩처럼 거대한 나무인데도 꼭대기까지 덮는데 2~3분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든 것도 아니고 완전히 죽은 생명의 나무를 정말 살릴 수 있단 건가?"

"사제도 아닌데, 어떻게 죽어버린 나무를 살려? 그것도 그냥 나무도 아니고 생명의 나무인데."

"사제는 무슨. 교황이 와도 죽은 건 못 살려."

유저들뿐만이 아니었다. 엘프들도 믿지 못하겠단 표정들. 지금 김용후가 하고 있는 건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어어!"

"뭐야?!"

"변했어!"

"살아난다!"

유저 엘프 할 것 없이 경악성을 터뜨리거나 환호성을 냈다. 맨 꼭대기부터 빛이 껍데기처럼 벗겨졌고, 그렇게 빛이 벗겨지고 난 부위가 평범한 나무로 돌아와 있었다.

녹아 있지도 시들어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푸릇푸릇한 나뭇잎이 달려 있고 열매까지 열려 있었다.

빛이 벗겨지는 속도에 속도가 붙었다. 엘프들과 유저들의 환호성이 커졌다. 가장 놀란 건 엘프 장로 카헨이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기적이에요! 정말 기적의 스킬을 쓰는 유저에요!"

카헨 옆에 서 있던 미케일라는 양손을 번쩍 치켜들며 제자리에서 발방 뛰기까지 했다.

그즈음 빛이 모두 벗겨졌다. 껍데기처럼 벗겨졌던 빛이 불티처럼 변해 불어오는 바람에 소용돌이쳐 멀리 날아가거나 높이 솟아올랐다.

그때였다.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들이 생명의 나무 주위에 생겨나 주위를 돌았다. 몇몇 빛의 구체는 작은 아이 같은 모습이나 페어리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도 했다.

정령들이었다. 생명의 나무가 죽자 떠난 정령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은 우리 마을을 구한 영웅이고 은인이에요!"

장로 카헨과 미케일라가 다가와 그렇게 말하며 인사를 했고, 용후의 눈앞에 퀘스트 알림창이 떠올랐다.

-레벨이 1 오릅니다

-생명력이 100 오릅니다

-정령 친화력을 얻었습니다

-정령 친화력이 50 오릅니다

-엘프 카헨과의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카헨과의 친화력이 500 오릅니다

-미케일라와의 친화력이 300 오릅니다

-소로브 산맥 모든 엘피들과의 친화력이 100 오릅니다

-엘프의 은인 칭호를 얻었습니다

-생명력이 100 오릅니다

-정령 친화력이 500 오릅니다

-농작물을 기르고 있을 경우 수확률이 15% 상승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 무려 생명의 나무를 살려내는 S등급 퀘스트였으니. 드워프 마을 못지않은 대박이었다. 용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으아악!"

소리를 빽 지른 홍민우가 발로 분수대를 걷어찼다. 두 길드원은 생명의 나무 앞에서 부활했지만, 홍민우는 부활 귀환 스킬을 갖고 있었고, 부활 장소로 설정해 놓은 곳이 부르간 성이었다.

길드도 있고, 길드와 연합을 짠 시켄들 상단도 있고, 시켄들 상단은 영주와 손을 잡았기에 이 성보다 안전한 곳은 없었다.

"……대체 뭐야 그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레벨이 한참 낮았다. 마법 인형보다도 낮았다. 그저 그 권총이 대단해서 잡힌 게 아니다.

그 권총도 무려 4번이나 강화가 이루어진 무시무시한 병기였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은 지지 않았을 것이다.

싸우는 법을 아는 자였다. 또, 권총을 어떻게 써야 가장 잘 쓸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 것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날 갖고 놀 듯했어."

용후는 지금껏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적들과 싸워왔다. 몬스터뿐 아니라 유저들과도 많이 싸웠고, NPC 기사, 마법사에 흑마법사, 심지어 악마와 싸운 경험도 있다.

직접 싸운 적도 많고, 자동 사냥 스킬 또한 경험이 됐고 검술까지 익히게 해줬다.

그 경험과 검술에 더해, 절대 지지 않는단 자신감과 여차하면 자동 사냥을 써서 잡으면 된단 여유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X발, 역시 둘 다 잡혔구나."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 두 길드원의 정체도 알았을 테고, 당연히 공범인 것도 알았을 터.

생명의 나무 앞으로 부활 장소가 설정이 됐으니 그 둘은 청룡 길드가 구해주지 않는 한 절대 엘프 마을에서 풀려나지 못할 것이다.

엘프는 자애가 넘치지도 정령처럼 순수하지도 않다. 호전적이고 잔혹한 종족은 아니지만, 생명의 나무를 죽였으니 죽음으로도 대가를 다 치르지 못할 터다.

"거기 너!"

홍민우가 광장 안에서 한 여자 유저와 시시덕거리며 대화를 하고 있던 한 유저를 불렀다.

"예!"

홍민우의 얼굴을 본 유저가 바로 홍민우 앞으로 달려왔다. 청룡 길드의 길드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도 레벨이 120이 넘는 고렙이지만, 홍민우는 파티장 직책, 직속 부하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길드원 전부 길드 건물로 불러."

"예!"

살벌한 표정에 길드원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바로 몸을 돌려 달려갔다. 홍민우가 하던 일이 뭔지 알기에 대충 짐작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홍민우는 두 길드원을 구하기 위해 길드원들을 이끌고 엘프 마을로 가려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청룡 길드가 100레벨 이상의 초고렙 유저들로 이루어진 대형 길드라 해도 영주가 병력을 지원해주지 않는 이상에야 길드 전력과 용병을 좀 구하는 정도로 엘프 마을을 습격할 순 없다.

엘프들의 레벨도 대부분 100이 넘고, 정령을 부리는 엘프들은 마법사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잡는 게 까다롭다.

정령만 부리는 게 아니라 기동력을 갖고 있고 화살까지 쏘기 때문.

그 유저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그놈, 김용후가 맞아."

유저들이 했던 말을 믿는 게 아니라, 홍민우도 김용후의 권총과 상식 밖의 전투력, 그리고 존재할 수 없는 마법 인형까지 부리는 모습에 김용후를 떠올렸다.

당한 거에 대한 복수도 복수지만, 김용후를 털면 그래도 임무 실패를 그나마 만회할 수 있을 터.

"그 검 성검이었어."

그것도 무려 1급 같았다. 그 외에도 장비 하나하나가 전부 에픽 등급이었다. 특히 그 마법 인형은 엘프나 드워프를 경매로 파는 거 이상으로 돈이 될 것이다. 홍민우가 이를 갈며 길드 건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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