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스킬 자판기-99화 (9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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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 099화

드워프들의 마을은 동굴 지하에 있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었다.

특별한 장치나 마법적인 장치가 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틈을 이용해 만든 문이었다.

그런데 그 문이 인위적인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이곳에 문이 있단 걸 알고 왔다 해도 이 문을 찾지 못할 것이었다.

마이만을 만나지 못했다면, 드워프나 드워프 마을을 찾는 건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구구구구궁!

마이만이 바닥에 달린 문을 열자 밑으로 이어져 있는 사다리가 보였다. 벽에 고정되어 있는 철제 사다리였다.

마이만이 먼저 내려갔고, 용후가 그 뒤를 따랐다. 내려가며 고개를 뒤로 돌리자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성 정도 규모는 아니지만, 팔켄 마을이나 바르뎅 마을보단 더 커 보였다. 그리고 그런 마을 안에 있는 드워프들의 수도 상당했다.

천장과 벽에 빛을 내는 뭔가가 있어 드워프들의 얼굴까지도 꽤 자세히 보였다.

인간들과 교류가 없는 드워프 마을, 마법으로 만든 빛은 아닐 테니 발광석일 것이다.

그것도 프루엘이라 불리는 최상등급 발광석. 프루엘은 계속 빛을 내는 게 아니라, 밤에만 발광을 하고 해가 뜨면 빛을 내지 않는다.

그러니 밤낮이 바뀌긴 했겠지만, 이 동굴의 드워프들은 계속 환하게 밝혀진 마을에서 생활하는 게 아니라, 발광석이 빛을 잃으면 자고 빛을 내면 일어나 활동하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놀랍군요……."

용후가 드워프와, 드워프들의 마을에 대한 정보를 접한 건 책을 통해서일 뿐, 스킬 자판기를 얻은 뒤에도 드워프를 만나고 드워프들의 마을까지 오게 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드워프의 손님이란 칭호까지 받아 초대를 받듯 드워프들의 마을로 들어왔다.

멀리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들의 마을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은 무엇이든 큰돈이 되고 내게 도움이 되는 것들일 테고.'

칭호 2개는 시작일 뿐. 이 드워프 마을에서 정말 많은 걸 얻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호델던 장로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마도 기계학에 대해 가장 관심도 많고 조예도 깊은 분이십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마도 마법 인형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지 못합니다. 이해할 때까지 잘 설명을 해주실지 걱정이 되는군요……."

"용후 님은 저희 부족의 은인입니다. 또한,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은인에겐 반드시 보답하는 게 저희 드워프들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사다리를 다 내려간 마이만이 웃으며 다시 앞장을 섰고, 용후도 입가에 씩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줄무늬 칼날 멧돼지 해독이란 카드도 있으니 그 장로로부터 정보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건 틀림없지만, 그래도 그 장로가 마도 마법 인형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진 알 수 없는 일.

알고 있는 걸 다 말해준 건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만이 더 신경을 써서 그 장로에게 말해준다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분명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 용후가 계속 앓는 소리를 하는 이유였다.

그때 마이만과 용후가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마을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 * *

"인간이잖아."

"마이만 씨가 왜 인간을 데려온 거지?"

"그 상단의 상인 아니야?"

"상인으론 보이진 않는데?"

"그 상단의 상인이라 해도 마을로 데려오는 걸 말도 안 돼!"

거리에 있는 드워프들 모두 의구심과 적개심이 담긴 얼굴로 용후를 바라봤다.

그러나 마이만의 앞을 막거나 다가와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 묻는 자들은 없었다.

역시 젊은 드워프지만 마이만이 가진 지위가 상당한 듯했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더 걸은 뒤 마이만이 한 집 앞에 멈춰 섰다.

다른 집들과 다름없이 돌과 철을 섞어 만든 네모반듯한 집이었다.

"호델던 장로님의 집입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대답이 들렸고, 마이만이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들어오십시오."

"실례 하겠습니다."

집 안은 의외로 목조 가구들로 잘 꾸며져 있었고, 안쪽의 식탁 앞에 앉아 기계 부품 같은 걸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친 흰 수염을 기른 드워프의 모습이 보였다.

이마와 눈가의 굵은 주름들이 고압적이고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이야기는 다 들었네. 상인들의 함정에 빠질 뻔한 마이만을 도와줬다고. 고맙네. ……역시 인간은 믿을 수가 없군."

말과 달리 고마워하는 듯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경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 정도로 마이만이 자신에 대해 잘 말해줬고, 이 드워프는 마이만을 아주 신뢰하는 것일 터다.

그때 장로 호델던이 의자를 거칠게 드르륵 밀며 일어나 벽난로 속에 걸린 무쇠 주전자를 맨손으로 꺼내 철로 된 컵에 따르곤, 그 안에 찻잎으로 보이는 풀 조각 몇 개를 넣었다.

그리고 그걸 자신과 마이만, 그리고 용후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렸다.

어찌나 동작이 거칠고 투박한지 컵에서 찻물이 흘러넘쳤지만, 호델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용후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이만과 달리, 책에서 본 전형적인 드워프의 모습. 오히려 신기하고 재밌는 기분도 들었다.

"줄무늬 칼날 멧돼지들의 몸속에 생겨난 독이 인위적으로 주입된 독이고, 자네의 스킬로 한 방울의 독도 남기지 않고 해독해낼 수 있다 들었네. 맞나?"

"맞습니다. 드워프 분들이 줄무늬 칼날 멧돼지들을 잡아 온다면, 몇 마리든 해독할 수 있습니다."

"좋네. 정말 자네가 자네의 스킬로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원하는 대로 내가 아는 마도 마법 인형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하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한데……."

거기서 잠깐 말을 끊고 진하게 우려진 차를 한 모금 마신 호델던이, 녹색빛이 도는 눈을 가늘게 뜨곤 용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마도 마법 인형은 설계도를 갖고 있고 그 설계도를 완벽히 이해했다 해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이 시대엔 재료를 다 구할 수 없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는 그저 마도 마법 인형을 공부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마도 마법 인형을 만들고자 하는 듯한데, 내 말이 틀린가?"

용후는 여유 있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드워프 분들도 만들지 못하는 걸 제가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마이만 씨께 한 말 그대로 그저 마도 마법 인형에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싶을 뿐입니다."

"흠……."

잠시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호델던은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건 그렇지. 드워프도 만들지 못하는 걸 인간이 만들 수 있을 리가."

"……."

용후가 대꾸 없이 그냥 있자, 호델던이 화제를 돌렸다.

"독에 중독돼 있는 줄무늬 칼날 멧돼지를 전부 해독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 80% 정도로 하지. 해낸다면 나도 약속을 지키겠네. 그럼 퀘스트를 주겠네."

드워프들도 NPC. 퀘스트를 만들 수 있었다. 퀘스트를 만들면 조사를 할 필요 없이 중독된 줄무늬 칼날 멧돼지 중 80%를 해독해냈는지도 퀘스트 클리어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저건 뭡니까?"

용후가 호델던 뒤쪽에 세워져 있는 기계 같은 뭔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마치 로봇 같은 모양. 그러나 뼈대만 있었다.

"마도 대인 병기란 물건일세. 셀터라고도 부르지. 고대의 유물이네."

"입는 무기란 건가요?"

"호오, 이해가 빠르군. 맞네."

바로 알아듣는 용후의 모습에 호델던이 흥미롭단 표정을 지으며 눈을 빛냈다.

"착용하면 힘과 스피드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고, 오러를 쓸 수도 있게 되지. 하지만 작동은 되지 않는 유물일 뿐이네. 곳곳이 부서지고 망가져 설계도를 완전히 복원하지도 못했지."

"저 마도 대인 병기의 설계도를 완성하도록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저 마도 대인 병기를 20년 넘게 연구했네. 그건 불가능해. 부서진 부분들의 부품이 없는 한은 절대."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마이만이 나섰다.

"용후 님."

그만하란 뜻.

용후가 괜한 말을 해 호델던의 신뢰를 잃게 될 걸 염려해서였다.

호델던도 20년간 연구를 했어도 완성하지 못한 설계도를 마도 마법 인형에 대한 정보를 더 얻기 위해 온 용후가 도울 수 있을 리 없었다.

장담과 달리 마도 대인 병기의 설계도를 완성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줄무늬 칼날 멧돼지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호델던은 믿지 못할 자란 이유로 김용후에게 그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었다.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이런 무리수를…….'

그러나 김용후의 얼굴은 자신만만했다.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제 도움으로 저 마도 대인 병기의 설계도를 완성한다면, 그 설계도를 제게도 공유해 주십시오. 퀘스트를 주시면, 지금 당장도 설계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어떻게 그리 할 수 있단 건가?"

수작을 부리려는 듯 보이지 않고 너무도 자신만만한 모습에 호델던은 혹시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만지면 다 고쳐 스킬을 쓰면 저 마도 대인 병기는 완벽히, 소실된 부품이 그리 많지 않은 만큼 부품까지도 만들어지며 수리가 될 테고, 그럼 그리지 못한 부위를 분해해 설계도를 마저 그리면 되었다.

"스킬입니다. 제가 가진 스킬이면 가능합니다."

"스킬?"

"예."

"좋아. ……해보게. 자네가 장담한 대로 된다면 설계도 공유를 약속하지."

어차피 마도 대인 병기도 설계도가 있다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자는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내심 들었지만 호델던은 일단 설계도를 완성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호델던이 2개의 퀘스트를 만들어냈다. 하나는 줄무늬 칼날 멧돼지의 독을 해독하는 퀘스트, 하나는 호델던이 마도 대인 병기의 설계도를 완성하면 클리어할 수 있는 퀘스트였다.

"그럼 마도 대인 병기의 설계도 퀘스트부터 하겠습니다. 마도 대인 병기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호델던이 반신반의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후가 마도 대인 병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마도 대인 병기에 손을 댔다.

"만지면 다 고쳐."

마도 대인 병기가 빛에 휩싸였다. 호델던의 눈이 커졌다. 찌그러지고 부서진 부분들이 고쳐지고 있었다.

* * *

-레벨이 오릅니다

-근력이 20 오릅니다

-체력이 20 오릅니다

-호델던으로부터 마도 대인 병기의 설계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호델던의 호감도가 400 오릅니다

호델던이 완벽히 수리된 마도 대인 병기를 보고 설계도를 마저 완성하는 데는 1시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찌그러진 곳을 뺀, 파손된 부분은 두 군데뿐이었고 소실된 부품은 7개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그 7개의 부품이 뭔지, 그리고 그 부품이 뭔지 알았다 해도 그 부품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작동하는지 호델던은 평생 연구를 했어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설계도 작성을 끝낸 뒤에도 호델던은 여전히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놀랍군……."

그저 수리가 아니었다. 없던 부품이 생겨났다.

파손된 부위가 크지 않고, 소실된 부품이 몇 개 되지 않았기에 부품까지도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일어날 수 없는 일.

방금 김용후가 한 일은 마탑 꼭대기에 사는 대현자들도, 드래곤조차도 일으킬 수 없는 기적이었다.

그러나 유저들의 스킬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다른 세계에서 온 힘,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랄 건 또 없었다.

득을 봤으니 그거면 되었다. 드워프들은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는 자들이 아니었다.

"덕분에 숙원을 이룰 수 있었네. 고맙네. 약속한 대로 마도 대인 병기의 설계도를 주겠네."

호델던이 종이를 펼쳐 테이블 위에 올리고 설계도를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 전 완성한 설계도와 모양이 좀 달랐다. 마도 대인 병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도를 만들고 있어서였다.

'이자와 끈을 만들어두면 어떤 식으로든 또 도움을 받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용후가 호델던이 그리는 설계도를 유심히 봤다. 설계도가 완성되면, 뭔가를 하나 더 수리해 주고 설계도의 설명을 부탁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어떤 재료가 쓰이고, 그 재료가 무엇인지 주석까지 달아가며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아주 깊이 있는 이해까진 힘들겠지만 어떤 재료가 사용되어 어떤 원리로 구동이 되는진 설계도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약 3시간.

깃펜을 놓은 호델던이 완성된 설계도면을 용후에게 건넸다.

"되었네."

-마도 대인 병기 셀터의 해석된 설계도를 얻었습니다

이것도 만들어 개량시킨 마법 인형들에게 입힌다면? 그리고 자신이 쓸 수도 있다. 용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설계도를 말아 인벤토리에 넣은 용후가 호델던의 방을 나가 다시 사다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일단, 또 다른 퀘스트를 바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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