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스킬 자판기-96화 (96/153)

# 96

기적의 스킬 자판기 096화

"마이만 씨, 믿지 마세요!"

"저 자는 당신이 드워프인 걸 알고 접근한 사기꾼입니다!"

"저희 상단만 믿으세요. 저희 상단 말곤 믿으시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곤란해지실 겁니다."

두 상인이 번갈아가며 마이만을 말리고, 용후를 향해선 위협과 협박도 했다. 급기야 한 상인은 품속에서 단검까지 꺼내 용후를 향해 겨눴다.

그러나 용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단검까지 뽑아 세게 나가면 겁을 먹고 도망가지 않을까 생각해 위협을 하는 것뿐일 테니.

뒤는 엄청 구린데 겉은 번지르르하게 꾸며놓고 장사를 하는 자들이 대로 한복판에서 칼을 휘두를 리가. 진짜 찌르려 한다 해도 찔릴 일도 없고.

그때였다.

"그만두세요!"

마이만이 단검을 뽑아 용후에게 겨눈 상인을 향해 큰 소리를 냈다. 그 말에 상인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자신의 행동이 과했단 생각이 그제야 든 것.

거짓말이든 사기를 치려는 것이든 어쨌든 상대는 그저 말만 했을 뿐이고, 자신은 단검을 뽑아 겨눴음에도 유저는 허리에 차고 있는 무기에 손조차 갖다 대지 않았으니.

"마이만 씨…… 저흴 믿으세요."

"부디 후회할 행동 하지 마세요."

그러나 마이만의 눈빛은 더 차갑게 변했다. 아무리 사기꾼이 접근해온 거라 해도, 이곳이 자신들의 상단 앞이라 해도, 다짜고짜 단검을 뽑아 겨누는 모습이 평범한 상인으론 보이지 않았다.

마이만이 인간 상인들을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부르간 성으로 오기 전 장로들에게 인간 상인들에 대한 이야길 많이 들었다.

장로들은 200년 300년을 넘게 살아온 드워프들. 인간 상인들과 거래를 하고 교류를 한 경험이 있었고, 지금 이 두 상인이 보인 반응은 장로들에게 들은 인간 상인들의 특성과 많이 달랐다.

그리고 이미 마이만은 두 상인의 안내를 받아 상단 건물을 살펴보며 내심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지금도 확실히 감이 잡히진 않지만, 적어도 이 둘이 평범한 상인이 아니란 건 확실했다.

"당신들, 지금 절 협박하는 겁니까?"

"……예? 그럴 리가요. 저희는 마이만 씨의 안위를 생각해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드워프란 사실은 비밀로 해 달라 했을 텐데요."

조금 전 상인 중 한 명이 '드워프란 걸 알고'란 말을 큰 소리로 한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신중하고, 약속과 신용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게 인간 상인들이라 했다.

그런데 이 상인은 성격이 급하고 또 경솔했다.

"죄송합니다. 사기꾼의 혀에 놀아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만……."

"상단은 충분히 둘러봤습니다. 장로님들과 상의를 한 뒤 다시 들르겠습니다."

"아직 저희 상단을 반도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저 보고 가시지요."

"됐습니다. 충분히 봤습니다."

결국 두 상인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더 잡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곤 용후를 눈빛으로 찌를 기세로 노려봤다. 그때 마이만이 용후 쪽으로 걸어왔다.

"자리를 옮겨 잠시 대화할 수 있을까요?"

"예, 됩니다."

시켄들 상단의 건물 앞을 떠난 용후와 마이만이 멈춘 곳은 한적한 주택가 거리였다.

대낮이라 거리엔 행인이 거의 없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시켄들 상단이 제대로 된 상단이 아니란 말은 뭡니까? 장물 거래와 마약 판매, 노예 경매까지 한다 했습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다 사실입니다. 제가 마이만 씨의 이름을 알 수 있었던 건, 제가 가진 특별한 스킬의 힘입니다."

"스킬?"

소로브 산맥의 드워프족들은 인간들과 교류를 끊고 살지만 그래도 세상에 일어난 격변에 대해선 알고 있었고, 그러니 유저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돈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쓰는 스킬에 대해서도 모를 수 없었다. 마이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스킬에 대해 잘 알았다면 그런 스킬은 있을 수 없다 생각했겠지만, 스킬이 무엇인진 알아도 그 지식은 아주 얕았다.

마이만의 경계가 조금 누그러진 듯한 모습이 보이자 용후가 말을 이었다. 마이만의 상태창에 보이는 내용을 몇 개 더 읊은 것이다.

마이만의 눈이 동그래졌다. 같은 동굴의 드워프들도, 가족이 아니면 모를 정보까지 말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스킬로 아까 그 상인들이 평범한 상인이 아니란 것도 알아낸 겁니다. 장물 거래와 마약 판매, 노예 경매를 한다는 사실도요."

"그랬군요……."

마이만의 어깨가 밑으로 늘어졌다.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한편, 이젠 어찌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부르간 성에 있는 상단은 시켄들 상단 하나뿐이다. 다른 상단에 가려면 다른 영지에 있는 다른 성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다른 상단을 알아보고 다닐 자신이 들지 않았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정체가 뭡니까? 왜 절 도와주는 거죠?"

"소개가 늦었군요. 유저 김용후라고 합니다. 준남작 작위를 갖고 있고, 영지도 갖고 있습니다."

"귀족……이라고요?"

"예."

마이만이 로브모자 사이로 슬쩍 용후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수상하다는 듯한 눈초리. 용후가 말을 이었다.

"저는 유저입니다. 작위와 영지를 갖고 있으나 이 세계의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제 스킬을 쓰면 찾고자 하는 상대를 훨씬 빨리 찾을 수 있기에, 직접 드워프를 찾고 있던 중입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마이만 씨를 이 성에서 보게 된 것이구요."

"드워프를 왜 찾는 겁니까?"

귀족은 더욱 경계하란 장로들의 말이 있었다. 마이만의 어깨에 다시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도 딱딱해졌다.

"이 설계도에 대해 잘 알고 싶습니다."

용후가 소세토 유적지에서 그린 마도 마법 인형의 설계도를 마이만에게 내밀었다.

"드워프라면 더 많은 설명을 더 알기 쉽게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도 마법 인형?"

"맞습니다.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거래를 트고 싶단 말은 일단 하지 않았다. 드워프들의 동굴에 들어가 장로들을 만나면 병장기 거래에 대해서 말할 기회도 분명 생길 것이다.

마이만이 용후가 내민 설계도면을 받지는 않고 내려다봤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드워프들도 지금은 마도 시대의 마법 인형을 만들 순 없습니다."

만드는 법은 알아도 재료는 더 이상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만드는 법만 알면 됩니다. 만드는 법만 배우려는 겁니다. ……시켄들 상단에 들린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상단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저도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을 어떻게 믿고……? 당신은 그 스킬의 힘으로 나에 대해 알 수 있지만, 난 당신을 전혀 모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스킬은 유저 중에서도 아주 특별합니다. 기적의 스킬이라 불릴 정도죠."

"기적의 스킬?"

"예. 분명 제가 도움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마이만 씨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때 제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자신들의 힘으론 해결하기 힘든 일이 생겨 도움을 받기 위해 인간의 성까지 찾아와 상단에 간 것이란 것만 짐작될 뿐, 용후는 마이만이 무슨 문제를 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내용들까진 상태창에 나오진 않으니. 하지만 그 문제가 뭐든 해결해줄 수 있단 자신은 있었다.

만지면 다 고쳐, 뭐든 다 만들어, 쓰다듬으면 다 고쳐 이 세 스킬들을 쓴다면 분명.

잠시 주저하던 마이만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마력독이 없던 줄무늬 칼날 멧돼지의 몸속에 갑자기 독이 생겨났습니다. 그 독이 마력독인지 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줄무늬 칼날 멧돼지가 낳은 새끼, 그 새끼의 몸에도 독이 있습니다. ……당신이 가진 스킬의 힘으로 독을 없애줄 수 있겠습니까?"

원래는 독을 갖고 있지 없던 산짐승의 몸속에 갑자기 독이 생겨났다. 인위적으로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쓰다듬으면 다 고쳐 스킬로 독을 없앨 수 있다.

"할 수 있습니다."

* * *

쾅!

두 상인의 보고를 들은 상단주 롤브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두 상인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몸까지 떨었다.

롤브의 진짜 얼굴을 알기 때문이었다. 또 이번 일에 롤브가 얼마나 공을 들이고, 또 연금술사 드리안으로부터 그 독을 사는 데 돈을 얼마를 썼는지도 알고 있었다.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머저리 새끼들! 그 유저 놈이 드워프를 데리고 가는 걸 그냥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그 유저 놈을 사기꾼이라 말하며 드워프에게 경고도 설득도 했습니다! 그런 데도 저희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유저 놈 보통 놈이 아닙니다. 그냥 드워프란 걸 우연히 알고 접근한 게 아닐 겁니다. 분명 뭔가 있는 놈입니다."

그러나 롤브가 다시 주먹으로 책상을 쾅! 소리 나게 내리쳤다. 두 상인이 그 즉시 말을 멈추고 차렷 자세를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직후 돌로 된 재떨이가 날아가 한 상인의 머리를 쳤다. 머리가 깨져 피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는 데도 상인은 다시 차렷 자세를 했다.

옆에 서 있는 상인이 주저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일, 일단…… 애들 시켜서 미행은 붙여 놨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롤브는 대꾸하지 않았다. 생각에 빠져 들어서였다. 절대 뺏겨선 안 되는 드워프, 어떻게 해야 될지 머리를 팽팽 굴렸다.

일단, 그 유저 놈이 자신의 상단에 대해 한 말들은 우연히 들어맞은 게 아니라 알고서 한 말이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처음 보는 유저라 했다.

시켄들 상단에 드나든 적도 없고, 심지어 성안에서도 본 적이 없는 유저.

그런 유저가 시켄들 상단의 비밀을 알고 있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드워프는 계속 로브를 둘러쓰고 있었다. 드워프들의 체격이 사람과 좀 다르긴 해도, 키가 좀 작고 덩치는 큰 사람이라 하면 그리 이상할 건 없다.

보통은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지 드워프가 성에 들어왔다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드워프란 건 또 어떻게 안 걸까.

'이상하다. 정말 이상해.'

그러나 뭐하는 놈인지, 무슨 목적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다 잡은 고기를."

그물 안으로 들어온 고기였다. 그물을 들어 올리기만 하면 잡혔을 고기. 떡밥도 어마어마하게 풀었다.

연금술사 드리안이 파는 물건은 연금술사 길드의 물건보다 뭐든 두 배 세 배가 더 비싸고, 특히 그 독은 열 배가 넘게 비쌌다.

그런 독을 도둑들까지 서른 명 넘게 고용해 소로브 산맥의 줄무늬 칼날 멧돼지들에게 먹였으니, 밑밥으로 쓴 돈만 해도 1천 골드가 거뜬히 넘어간다. 절대,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

'그냥 그 드워프 놈만 잡아 노예로 만드는 거였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말이다. 그 드워프만 팔아도 성 한 채 값은 벌었을 테니.

아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 드워프라면 지금도 잡을 수 있다. 그 유저에게 파티가 있다 해도 문제없다. 그 드워프도 한 가닥 하겠지만 방법이 있었다.

롤브가 책상 서랍에서 양피지와 깃펜을 꺼내 양피지에 뭔가를 빠르게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양피지를 돌돌 말아 책상 끝으로 슥 밀었다.

"이걸 들고 청룡 드래곤 길드로 가서 길드장한테 전해."

청룡 길드는 100레벨이 넘는 초고렙 유저들로 이루어진 길드. 길드원 수도 70명이 넘는 대형 길드다.

10명 정도만 가도 그 유저를 죽이고 그 드워프를 데리고 오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청룡 길드도 시켄들 상단을 통해 재미를 많이 보고 많은 걸 받아먹는 놈들. 드워프를 잡아 노예로 팔려 한단 걸 알아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양피지를 품속에 넣은 상인이 그 즉시 방을 나갔다. 그리고 롤브의 꺼지란 말에 그때까지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던 상인도 방을 나갔다.

꽤 시간이 지났고, 아무리 그 유저가 말이나 마차에 드워프를 태워 소로브 산맥으로 가고 있다 해도, 청룡 길드의 길드원들이라면 산맥 중턱쯤에선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젠장."

그 드워프만 잡아 데려오면 그걸로도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뿐, 롤브는 청룡 길드가 실패할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0